금강산 온정각에 도착하여 셔틀버스를 타고 만물상으로 가는 길은
짙푸른 녹음(綠陰)으로 온통 푸른 바다로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다.
쭉쭉 뻗은 각선미를 자랑하는 미인송(美人松)의 늘씬한 몸매는 아찔할 만큼
관능적이고 파란 이파리 사이로 수줍어 다 웃지 못한 산목련(山木蓮)은 흰
나비처럼 여기 저기 팔랑거리고 있다. 모임에서 부부동반으로 금강산 유람을
떠나 마침내 꿈에 그리던 금강산 관광의 첫 번째 코스인 만물상을 향하여
버스에 몸을 실은 것이다.
만물상으로 올라가는 길은 구렁이 등줄기처럼 구불구불하고 가파르다. 이날은
마침 안개 자욱하여 구름 속을 거닐고 있는 듯하다. 기암절벽(奇巖絶壁)과
기화요초(琪花瑤草)가 그림처럼 반겨 줄 것이라는 기대는 안개가 송두리 채
앗아가 버리고 사위(四圍)는 그저 오리무중(五里霧中)이다.
앞선 사람 발 꿈치만 보며 비지땀을 흘리며 만물상으로 향하는 길은 눈발 같이
흩날리는 폭포와 김삿갓 낮잠 깨우는 산사(山寺)의 종소리는커녕 등산객의
거친 숨소리와 무거운 등산화 끄는 발자국 소리만 귓전을 어지럽힌다.
천선대(天仙臺) 지척에 이르러 자욱하던 안개는 발아래로 비껴 내려가 망망한
운해(雲海)를 이루고 있다. 여기서부터 길은 더욱 가파르고 험준하다. 좁은
철계단을 개미처럼 기어 천선대에 올라, 전후좌우를 둘러보니 누가 반죽하여
저리 기기묘묘한 형상을 빚었을까. 어디선가 한줄기 바람이 불어 안개를
헤치니 절세미인이 생끗 웃으며 주렴 밖으로 사쁜히 걸어 나오는 듯하다..
..
발아래 굽어보는 봉우리는 아득한 바다 한 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외롭고
억겁 풍상을 이겨낸 소나무는 천야만야(千耶萬耶) 절벽이 위태롭다.
귀면암(鬼面巖)을 지나면서 가빠지던 호흡은 절부암(切斧巖)에
이르니 숨이 턱턱 천장에 닫는다.저절로 시 한수를 흥얼거려 본다
금강산 운해[雲海]를 바라보며
아슬아슬 높은 천선대에 올라
천길 낭떠러지 발아래 굽어보니
하늘끝 치솟아 경외(敬畏)롭던 산봉우리들
잠포록한 난바다 한 가운데
말없이 떠 있는 섬처럼 외롭다.
스멀스멀 섬처럼 흐르니
하얀 신선이 나타나서 날을것만 같구나
한많은 인고의 세월
살아갈수록 이끼처럼 서러움이 자라고
그 서러움 깊어 갈수록 가슴속 살찌는 통한
흐르는 세월
연륜(年輪)으로 켜켜이 쌓여
오지도 만나지도 못하는 절통한 사연안고
오매불망 못잊는 혈육 그리워
실향민들 이제나 저제나 기다린지 반세기
설움 꾹꾹 누르고 대책없는 세월속
망연히 바라보아야만 하는 얄궂은 운명에
흐르는 운무가 더욱 슬프다 May.29.2004.
시간 관계상 망양대(望洋臺) 관광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하산하여 북측에서
운영하는 옥류관에서 쟁반냉면과 들쭉술로 점심을 먹었다. 쟁반냉면이 값이
비싸(우리 돈으로 한 그릇에 15,000원) 주문하였는데 다들 맛이 없다는 원성
을 뒤로 하고 삼일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금강산의 절경과 봉우리바위마다김일성 찬양 일색인 선혈 낭자한 비문이
자리 잡고 있다. 아마 그 상흔 보이기 싫어 안개는 그리 자욱하였나 보다. 천
선대에서 어느 관광객이 김일성 비문을 읽다가 북측 안내원에게 주의 받는 모
습을 보며 실소(失笑)를 금치 못하였다.
.
삼일포로 가는 도중에 금강산역과 우체국이 보였다. 북측 세관을 거쳐 금강산
으로 오는 길 도중 일정한 간격으로 지키고 감시하고 있는 인민군을 볼 수
있었는데 삼일포 가는 도중에도 어김없이 빨간 깃발을 들고 마네킹처럼 서
있다. 티끌만큼도 미동조차 않는 그네들 흉중에는 무슨 생각이 담겨 있을까.
그들 가슴에도 따뜻한 피가 흐르고 있겠지. 언제 저 군인 얼굴에 웃음이 피어
올라 손과 손을 흔들며 반겨주는 날이 올까. 철조망 밖으로 벼와 옥수수가
무심히 자라고 있고 밭일 하는 농부들이 지친 표정으로 밭뚝에 앉아 쉬는
모습도 보였다. 그네들에게도 삶에 대한 희망과 인생에 대한 즐거움이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삼일포 주차장에 도착하였다. 주차장에서
삼일포로 가는 길은 완만한 구릉으로 이루어져 그야말로 산책코스로는 그만
이다. 옛날 어느 왕이 관동팔경 구경을 하고 돌아가는 길에 삼일포에 들렸는
데 너무 아름다운 경치에 삼일을 머물렀다기에 삼일포라는 명칭이 전해 온다
는 전설처럼 그야말로 선경(仙境)이 따로 없었다. 단풍관에 들려 볼 일을 본
후 삼일포를 휘감아 돌아오는 다리를 건너 산에 오르자 북측 안내원의 삼일포
에 대한 설명이 한창이었다. 조장이 일러준 대로 노래를 청하자 조금은 주
저하는 듯 싶더니 구성지게 북측 노래를 불러 재꼈다. 앵콜과 박수가 난무한
후에야 우리는 발길을 주차장으로 향하였다.
삼일포(三日浦)에서
가슴 속 담은 사연 다 풀어놓고
실컷 울고 불고할지라도
삼일만 이곳에서 실컷 회포 풀었으면
실향민들 가슴에 담긴 회한
단단하게 결박[決縛]당해
사상의 족쇄를 끌러 버리고
심장 박동 빨라지며는
감격의 숨이차고 피가 돌아
소망이 이르는 곳으로
총총히 걸어가는 그 날이 오기를
사상이 뭔가 다 같은 혈육인데
화석처럼 굳어버린 그대들의 마음
진정한 동포애의 사랑으로
이념(理念)이 죽고 사상(思想)이
부질없음을 절절히 깨닫고
용솟음치는 활화산처럼 타 오르기를,,,,,, May.30.2004.
온정각에 돌아와 평양교예단의 예술 공연을 보았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작년인가 언젠가 TV에서 방영되었던 평양곡예단의 공
연을 손에 땀을 쥐고 본 기억이 있었는데 직접 현장에서 그들의 공연을 보니
그야말로 감탄, 경탄 그 자체였다. 마치 무협소설에서 나오는 상승 무공의
협객처럼 자유자재로 경공술을 발휘하는 듯 하였다. 경공술 중에도 최고의
경지인 답설무흔(踏雪無欣), 눈을 밟아도 흔적이 남지 않는다는 것처럼 그네
들은 창공을 박차고 날아가는 한 마리 제비였고 너무나 정교함으로 인하여
사람이 아니라 잘 조련된 원숭이 같았다면 지나친 비약일까. 한편 그들이 그
정도의 기예를 익히고 수련하는데 얼마나 혹독한 과정을 겪었을까 생각하니
안스런 마음 금할 수 없었다. 저들의 웃음 속에는 처절한 피눈물로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은 검은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 있으리라
이제 오늘의 공식일정은 모두 끝났다. 금강산호텔에 여정을 풀고 호텔 식당
에서 한식 뷔페로 식사를 마친 우리 일행 중 일부는 온정리에 위치한 금강산
온천에 가서 하루의 피곤을 말끔히 씻어 내고 숙소로 향하였고 금강산의 밤
은 그렇게 깊어갔다.
조반을 먹은 후 우리들은 구룡연으로 출발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아침부
터 이슬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목련관에서 하차한 후 구룡폭포로 향하였다.
이 길은 어제 만물상 코스에 비하면 산책로였다. 만물상 가는 길은 계곡도 말
라 답답하였는데 구룡폭포로 가는 길은 시원한 청계수가 흘러 더욱 기분이
상쾌하다. 구룡폭포로 가는 길 도중에는 비봉폭포와 연주담, 옥류동, 금강문
이 있다는 말과 그 아름다운 풍경은 필설로 표현하는데 한계를 느껴 김삿갓의
시가 선뜻 떠 올랐다
金 剛 山 -김삿갓-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돌아오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에 기묘하더라" 정말 김삿갓의 시와 같은 풍경들
안개를 헤치고 드디어 구룡폭포에 도착하였다. 자욱한 안개 속으로 하얀 광목
같이 긴 띠가 보이는데 아 저게 구룡폭포로구나.구룡폭포는 북한 명승지
제225호로서 외금강, 구룡동 골짜기에 있으며 중향폭포(衆香瀑布)라고도 한다,
높이 74미터, 너비 4미터로서, 설악산의 대승폭포, 개성의 박연폭포와 함께
우리나라 3대 폭포 중의 하나이며, 십이폭포, 비봉폭포, 옥영폭포, 등과 금강
산 4대 폭포를 이룬다는 안내원의 설명이다
상팔담으로 가는 길은 시종 가파른 철계단이다.
하산객 중에는 올라가 보아야 안개만 보이고
선녀와 나뭇꾼의 흔적조차 찾을 길 없어 별 볼일 없다는 투로
이야기한다.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그래 언제 또 금강산에 와
보겠는가 생각하니 지친 발걸음에 저절로 기운이 생긴다.
상팔담에 올라가 자욱한 안개에 꽁꽁 몸을 숨긴 상팔담과의 인연이 없음을
안타까이 여기며 하산하는 길은 상쾌하기 그지없다.
목련관에 내려오니 벌써 하산한 일행들이 원탁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여
기서 파는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일행이 모두 내려오자 목련관에 들어가 비빔
밥을 시켜 먹었지만 너무 피곤한 탓인지 별로 입맛이 당기지 않는다
주마간산으로 대충 둘러본 금강산, 자유롭게 갈 수 없는 곳, 막상 가더라도
많은 제약이 따르고 불편 사항이 한 둘이 아니지만 언젠가는 자유로이 통행
할 그 날을 기약하며 아쉬운 발길을 접는다 May.29.2004. 금강산 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