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현지시간) 루마니아 부큐레슈티 북쪽 부체지(Bucegi) 산군을 하이킹하던 열아홉 살 소녀 디아나 카자쿠가 어린 암컷 곰에 물려 숨을 거뒀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루마니아 정부는 2016년의 곰 사냥 모라토리엄을 해제, 다시 곰 사냥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곰 개체수가 늘어 유럽에서 러시아를 제외하고 가장 많은 루마니아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논란이 불붙고 있다고 영국 BBC의 중부 유럽 특파원 닉 토프가 3일(현지시간) 전했다.
변을 당한 날, 디아나와 남자친구가 공포에 질려 긴급전화 112에 신고한 것은 오후 3시쯤이었다. 신고는 이 나라의 산악구조대인 살바몬트 본부에 전달됐다. 본부 직원들은 침착하고 효율적으로 움직여야 한다는 점을 요구조자에게 전달하도록 했다.
그 날 담당자였던 세르지우 프루시노이우는 두 팀을 파견했다. 한 팀은 위에서, 다른 팀에서 아래에서 사고 현장에 접근했다. 곰들은 자기 방어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인간을 공격하는 일이 드물다. 따라서 세르지우는 간단한 구조 임무가 될 것이라고 봤다.
대원들의 눈에 넋나간 남자친구가 들어왔다. 곰은 디아나를 잡아챈 뒤 강 아래로 던져버렸다. 대원들은 로프를 이용해 아래로 내려갔는데 곰이 피해 여성을 밟고 서 있었다. 곰은 후추 스프레이를 뿌리고 돌을 던지며 방어하려는 대원들도 공격했다. 한 사냥꾼이 달려와 곰을 사살했다. 디아나는 차마 글로 옮기지 못할 정도로 처참한 죽음을 맞았다.
세르지우는 토프 기자에게 디아나가 곰과 마주쳤을 때 달아나려 한 것이 실수였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곳에서 자라나 수백 번 곰들과 마주쳤지만 사고가 없었다고 덧붙였다.
가장 표준이 되는 조언은 곰 영역에 들어갔을 때 소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것이다. 곰과 만나면 조용히 멈춰야 하며, 뒷걸음질로 그곳을 벗어나야 한다. 반려견과 함께라면 뛰어 달아나는 것이 최악의 선택이 된다.
그 날 디아나의 족적을 따라가면, 왜 곰과 마주치게 됐는지 알 수 있다. 큰 쓰레기통 4개가 있었는데 모두 하늘을 향해 열려 있었다. 한 통은 엎어져 상한 음식, 통, 비닐 등을 어지러이 흐뜨려 놓았다.
유럽에서도 가장 야생다운 모습을 간직한 곳 가운데 하나인 카르파티아 산맥 자락에는 8000마리 곰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의 서식지는 벌목이나, 마을 확장, 관광 때문에 잠식되고 있다.
토프 기자는 근처 부스테니 마을에서 묵었는데 저녁 7시에 휴대전화에 곰 경고 문자가 떠 급히 한 도로로 달려갔다. 화가 잔뜩 난 주민들은 곰 때문에 밤에 귀가하기가 무섭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이 도착하자 주민들은 "하는 일이 없다"고 항의했다. 한 경관이 "우리가 뭘 해야 한다는 거냐?”고 따지자 한 남성이 "안전하게 지켜라!”고 소리를 질렀다.
토프 기자는 문제의 곰을 사살한 사냥꾼에게 얘기를 걸어보려 했으나 그는 조사가 끝날 때까지 입을 다물겠다고 했다.
루마니아 환경부 장관을 지낸 바르나 탄크조스는 지난달 의회를 통과하고 클라우스 이오하니스 대통령이 승인한 새로운 법률을 입안했다. 이 법은 앞으로 18개월 동안 500마리까지 곰을 살해할 수 있도록 허용한다. 그는 "곰 개체는 루마니아에서 날마다 달마다 해마다 늘고 있어서 우리가 뭔가 하지 않으면 수천, 수만 마리가 될 것인데 인간에게도 곰에게도 좋지 않다"면서 "통제하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인간과 곰의 관계, 갈등, 접촉에 균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크리스티 레무스 랍 세계자연기금(WWF) 대형 포식동물 국장에 따르면 새 법은 상황을 개선시키긴커녕 악화시킬 수 있다. 그도 "말썽쟁이" 곰들이 늘어난 것은 인정했지만, 얼마나 많은 곰들이 그곳에 사는지에 대한 정확한 통계도 없다고 지적했다. 어떤 경우에도 숫자가 문제가 아니라고 말한 그는 "갈등의 근본 원인, 예를 들어 곰들에게 바짝 붙은 인간들의 주거 공간, 도로를 따라 들어선 관광 구역 등을 지적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산 시대 이후 곰에게 먹이를 주는 행위를 허용해 곰을 쉽게 사냥하게 하고 곰들을 마을로부터 멀어지게 했는데 지금은 관광 사업자들이 고객에게 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보장하려고 부분적으로만 곰 먹이 주는 행위를 허용한다. 소셜미디어에는 관광객이 차 안에서 곰들에게 먹이를 주는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새 법이 시행되면 그런 일을 하는 이들에게는 벌금이 부과된다.
다른 곰 관리 수단은 약간의 성공을 거두기도 한다. 수면제를 투여해 야생 공간으로 곰들을 옮겨놓는 일이다. 하지만 통을 뒤지거나 먹을 것을 달라고 애원하는 버릇을 들인 곰들은 인간 곁으로 돌아온다. 해서 환경보호론자조차 추려내기(culling) 말고는 대안이 없다고 말한다.
좋은 선례를 보인 바일레 투스나드 마을이 있다. 촐트 부티카 시장은 토프 기자에게
“2021년에는 곰 경고 문자가 220번 있었다. 올해는 여태껏 세 차례뿐”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마을은 14개의 스테인리스 재질의 곰 퇴치 쓰레기통을 구입하고, 마을 안 과실수 50그루를 베버렸으며, 정기적으로 곰을 조심하자는 캠페인을 벌였다. 마을회관 포스터에는 “곰에 먹이를 주면, 곰을 죽인다”고 적혀 있었다.
그 마을은 올트 강 협곡을 가로지르는, 곰들의 주요 이주 통로인데 지금은 곰들이 외곡을 빙 돌아간다고 했다. 부티카 시장은 “여기는 별 볼 일 없다는 것을 곰들도 알게 됐다"고 말했다.
폭염이 덮친 저녁에 관광 투어 사업자로 투스나드 지역의 곰 관찰 포인트를 운영하는 자노스 친은 토프 기자에게 어디에서 곰을 기다리면 되는지 일러주는 지도를 보내줬다. 삼림 레인저가 사륜구동 자동차에 토프 기자를 태워줬다. 관찰 포인트의 대형 유리창 뒤에 몸을 숨기자 레인저가 곰 유인제를 뿌렸고, 얼마 안 있어 두 마리 암컷 곰이 찾아왔다. 한 마리는 새끼 세 마리를 데리고 왔다. 잠시 뒤 커다란 수컷이 나타나자 다른 곰들이 뿔뿔이 흩어졌다. 그 수컷은 먹이틀로 위장한 저울 위에 올라갔는데, 무려 240kg이었다.
친은 전화 통화를 통해 그 법은 나쁘다고 말했다. 소위 “나쁜 곰들이” 죽임을 당할 것인데, 사실 이 대형 수컷들은 새끼들을 죽이고 그들의 어미와 짝짓기를 할 수 있기 때문에 곰 개체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이런 일은 야생의 사자들에게 흔한 일인데, 전문가들은 곰들에게도 비일비재한 일인지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 이도 있다고 했다. 새끼 곰들을 훔치려는 밀렵꾼들은 또다른 문제라고 친은 주장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온세상 사냥꾼들이 루마니아에 몰려들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벽에 걸어둘 수 있도록 곰 가죽을 벗기거나 해골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