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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49장 28절 ~ 39절
O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칠 케달과 하솔의 왕국들에 관하여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는 일어나서 케달로 올라가서 동쪽의 사람들을 멸하라. 28)
Concerning Kedar, and concerning the kingdoms of Hazor, which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shall smite, thus saith the LORD; Arise ye, go up to Kedar, and spoil the men of the east. 28)
케달과 하솔은 바빌론의 동쪽에 있지 않은데 동쪽으로 가서 멸하라라는 말씀은 뒤에 나올 엘람에 대한 설명을 함께 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케달에서 일어나 동쪽의 엘람까지 멸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그들은 그 사람들의 장막들과 양떼들을 빼앗아 가며, 그 사람들의 휘장들과 그 모든 기명들과 그 낙타들을 자기들의 것으로 삼고, 그들은 그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사면에 있다." 고 외칠 것이라. 29)
Their tents and their flocks shall they take away: they shall take to themselves their curtains, and all their vessels, and their camels; and they shall cry unto them, Fear is on every side. 29)
O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오 너희 하솔의 거민들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데 거하라. 이는 바빌론의 느부캇넷살왕이 너희를 대적하여 계획을 세웠으며, 너희를 칠 한 계략을 품었음이라. 30)
Flee, get you far off, dwell deep, O ye inhabitant of Hazor, saith the LORD; for Nebuchadrezzar king of Babylon hath taken counsel against you, and hath conceived a purpose against you. 30)
주가 말하노라. 일어나서 염려 없이 거하고, 성문이나 빗장도 없이 그들만이 사는 부유한 민족에게 올라가라. 31)
Arise, get you up unto the wealthy nation, that dwelleth without care, saith the LORD, which have neither gates nor bars, which dwell alone. 31)
30절과 31절에 다른 민족들에게 하신 말씀과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도피하라는 말씀입니다. 그것도 부유한 민족에게로 도망가라는 말씀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케달과 하솔의 동쪽과 엘람의 위쪽에는 페르시아 제국이 있습니다. 부유한 나라는 페르시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후에 유대인들이 페르시아에 정착하여 살아가는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케달과 하솔에도 유대인이 있었을 것이고, 모르드캐와 에스더는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끌려간 사람들의 자손이지만 모르드캐와 에스더로 인하여 도움을 받았던 많은 유대인 백성들은 케달과 하솔과 엘람에 있었던 사람들일 수 있습다. 그리고 페르시아에서 예수님의 탄생을 경배하러 오는 동방박사들도 하니님을 아는 유대인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케달과 하솔과 엘람에게 특별히 도피하라는 말씀은 이런 미래의 있을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으로 보입니다.
O 그때 수산궁에 한 유대인이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모르드캐로 베냐민이요, 키스의 증손, 시므이의 손자, 야일의 아들이더라.
그는 바빌론 왕 느부캇넷살이 끌고 갔던 유다의 여코냐왕과 함께 끌려갔던 포로들과 함께 예루살렘에서 끌려갔던 자라.
에스더 2장 5절 6절
여호야킨(여코냐, 코니아, 22:24-30)
여호야킨에 대해서는 『또 내가 너와 너를 낳은 네 어미를 너희가 태어나지 않은 다른 나라로 쫓아내리니 거기서 너희가 죽으리라.』(26절)고 말씀한다. 느부캇넷살은 여호야킴을 사로잡아가면서 그의 아들 여호야킨을 왕으로 삼았는데, 그의 통치는 3개월밖에 가지 못했다. 느부캇넷살은 여호야킨을 그의 가족과 백성들과 더불어 사로잡아간다. 여호야킨 때 대규모의 포로 됨이 있었다(왕하 24:12-16, B.C. 598/597). 특이한 사실은 이 인물을 코니야(Coniah)라고 부른다는 사실이다. 코니야란 여호야킨의 다른 이름인 여코냐(Jeconiah)에서 "여"(Je)가 빠진 변형이다. "여"는 여호와를 뜻하는 말이며, 여코냐는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이름이다. 그런데 그 "여"가 빠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여코냐를 버리셨다는 상징적인 뜻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30절에서는 『그의 씨에서는 아무도 번성치 못하며 다윗의 보좌에 앉아 유다를 다스릴 자가 더 이상 없을 것임이라.』고 말씀한다. 여코냐는 자식이 있었지만, 보좌에 앉을 자식은 더 이상 없다. 즉 왕국의 완전한 멸망을 예언하는 것이다. 물론 시드키야가 그 다음 왕이 되었지만, 그는 여코냐의 아들이 아니라 삼촌이다. 시드키야에 대해서는 21장 전체에서 그 멸망을 예언하고 있다. 시드키야 때 느부캇넷살의 침공으로 유다는 완전히 멸망한다. 성전도 파괴된다(B.C. 587/586).
그들의 낙타들은 전리품이 되고, 수많은 가축은 약탈물이 되리라. 내가 먼 변방에 있는 그들을 모든 바람으로 흩어 버릴 것이요, 또 내가 사면에서 그들의 재난을 가져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32)
And their camels shall be a booty, and the multitude of their cattle a spoil: and I will scatter into all winds them that are in the utmost corners; and I will bring their calamity from all sides thereof, saith the LORD. 32)
booty ① 전리품 ② 약탈물 ③ 엉덩이
하솔은 용들의 처소가 되어 영원히 황폐할 것이요, 거기에는 아무도 사는 사람이 없을 것이며, 그 어떤 사람의 아들도 그 안에 거하지 아니하리라. 33)
And Hazor shall be a dwelling for dragons, and a desolation for ever: there shall no man abide there, nor any son of man dwell in it. 33)
용들의 처소는 사람이 살지 않는 곳을 의미합니다. 용은 사탄을 묘사하는 것으로 사람과 사탄은 같이 어울릴 수 없는 존재인 것입니다. 이 땅에서의 육신의 욕정을 채우기 위해 그런 용의 종이 되겠다고 생각하는 자들의 결말은 이 땅에서의 육신의 욕정을 채우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신이 황폐화되어 용들의 처소가 되어버리는 것입니다.
O 유다의 시드키야왕이 치리하기 시작할 때에, 엘람에 대한 주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말씀하시니라. 34)
The word of the LORD that came to Jeremiah the prophet against Elam in the beginning of the reign of Zedekiah king of Judah, saying, 34)
엘람
‘고지’(高地), ‘고원’, ‘숨겨진’이란 뜻. 셈의 아들인 엘람의 자손들(창 10:22)이 바벨론 반대편 티그리스 강 동쪽 곧 오늘날의 이란 고원 남서부 지역에 세웠던 강대국(겔 32:24). 수도는 ‘수산’(수사). 엘람은 일찍부터 문화가 발달했고, 다양한 종족으로 구성된 혼합 민족 국가로서 매우 호전적(好戰的)이었다. 특히 지정학적인 위치로 인해 주변 열강들(수메르, 앗수르, 메대 바사 등)과 끊임없이 싸웠으나, 앗수르 제국에 패한 뒤부터는 그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다.
성경에서는 아브라함 당시에 그돌라오멜이 다스렸던 비교적 강성한 성읍으로 묘사되었고(창 14:1, 9), B.C. 645년경에는 앗수르에 의해 패망하였다. 또 앗수르의 이주 정책에 의해 이곳 사람들이 사마리아로 이주한 것으로 보인다(스 4:9-10). 앗수르가 바벨론에 멸망하자 엘람은 메대와 연합하여 바벨론에 대항하였고, 그후에는 바사의 지배를 받았다(사 21:2; 22:6). 엘람은 자신들의 죄악으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마셔야 했고(렘 25:25-26),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다(렘 49:34-39; 겔 32:24). 엘람은 멸망했지만 그 수도 ‘수산’은 바사 제국의 수도가 되어 에스더서의 주무대가 되기도 했다(에 1:2). 한편, 신약 시대에는 오순절 성령 강림 당시 예루살렘 방문자 중에 엘람인도 있었다(행 2:9).
[네이버 지식백과] 엘람 [Elam] (라이프성경사전, 2006. 8. 15., 가스펠서브)
만군의 주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그들의 힘의 우두머리인 엘람의 활을 꺾으리라. 35)
Thus saith the LORD of hosts; Behold, I will break the bow of Elam, the chief of their migtht. 35)
또 엘람에게 내가 하늘의 사방으로부터 네 바람을 가져와서 , 그 모든 바람들을 향하여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니 엘람의 쫓겨난 자들이 가지 않은 민족이 없으리라. 36)
And upon Elam will I bring the four winds from the four quarters of heaven, and will scatter them toward all those winds; and there shall be no nation whither the outcasts of Elam shall not come. 36)
지금의 시리아의 난민들이 전세계로 흩어진 것과 같습니다. 우리나라도 시리아난민을 받았습니다.
내가 엘람으로 그들 원수들과 앞과 그들의 생명을 찾는 자들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그들에게 재앙, 즉 나의 불 같은 진노를 가져오리라. 주가 말하노라. 또 내가 그들을 쫓아 칼을 보내리니 내가 그들을 진멸할 때까지 하리라. 37)
For I will cause Elam to be dismayed before their enemies, and before them that seek their life: and I will bring evil upon them, even my fierce anger, saith the LORD; and I will send the sword after them, till I have consumed them: 37)
엘람의 원수들은 앗수르와 바빌론입니다.
내가 엘람에다 내 보좌를 세우고 그 왕과 고관들을 그곳으로부터 멸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38)
And I will set my throne in Elam, and will destroy from thence the king and the princes, saith the LORD. 38)
O 그러나 훗날들에 내가 엘람의 사로잡힌 자들을 돌아오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39)
But it shall come to pass in the latter days, that I will bring again the captivity of Elam, saith the LORD. 39)
엘람은 그래도 모압과 암몬과는 다르게 돌아오게 되는 은혜를 입었습니다. 이스라엘과 에돔과 엘람등은 정체성이 소멸되지 않고 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차이는 차별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일 뿐입니다. 엘람이 모압보다 낫기 때문에 또는 이스라엘이 암몬보다 낫기 때문에 돌아오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과 민족의 사명을 위하여 기회를 얻는 것일 뿐입니다. 민족이라는 집단은 어찌보면 허상입니다. 우리는 오로지 개인으로만 존재하며, 집단은 개념일 뿐 현실에서 존재하지 않는 추상적인 것입니다.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는 순종입니다. 그것이 민족의 뜻이전에 나라는 개인에게 합당하지 않더라도 순종하는 것이 지혜임을 반복하여 증거하여 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개인과 민족에게 반복하심과 이스라엘 주변의 민족들에게도 반복되어 나타나는 현상으로 불순종은 곧 멸망함입니다. 이는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고 우리 이전에 당신 그리고 제 자신에게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집단을 바라볼 것이 아니라 제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나의 뜻과 반대되는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대하여야 하는 것인지가 예레미야서의 핵심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우리의 이웃이 불순종을 하는 상황은 예레미야가 살던 시대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예레미야가 살던 시절도 재앙에 들어갔고, 우리도 재앙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레미야서에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재앙중에서 살아남고 순종함을 어떻게 이루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와 바룩은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재앙에 들어갔고 살아남았습니다. 이는 우리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일루미나티들의 정보를 분석하지 않아도 세계경제는 붕괴하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경제의 붕괴는 곧 사람들이 의존하던 재물이 붕괴됨을 의미합니다.
O 너희 자신을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이나 녹이 해치며, 또 거기는 도둑들이 뚫고 들어와서 도둑질하느니라.
오히려 너희 자신을 위하여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 두라. 거기는 좀이나 도둑들이 뚫고 들어오지도 못하고 두둑질도 못하느니라.
마태복음 6장 19절 20절
개인에게 재앙은 있어왔습니다. 개인의 순종은 선택이며, 연대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직 우리의 마음이며, 다른 이는 아무런 권세가 없습니다. 우리가 종된 자라면, 최소한 땅의 보물도 우리것이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세상은 움직일 것이며, 세상의 의지와 상관없이 우리의 마음은 결정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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