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 김해를 날다.
김 채 석
부산에서 낙동강과 그 강의 본류인 서낙동강을 번가라 지나며 경남 김해로 출퇴근을 시작한 게 어느덧 6개월째로, 움츠리기만 했던 겨울을 보내고 봄도 다 지나는 요즈음 어떤 마음의 여유랄까. 옛 가야의 고도 김해가 하나 둘 보이기 시작했고 다가오는 풍경들을 저장하며 걷는 재미는 일상에서 얻는 또 다른 즐거움이었다. 이유는 부산의 지근거리에 있어서 동안 가봐야지 하거나 뭘 알아봐야지 하는 관심의 대상에서 등잔 밑이 어두운 만큼이나 캄캄했는데 말이다.
봄볕이 마음속 깊이까지 따사로이 파고들던 날 사무실에서 비교적 일찍 퇴근한 나는 거처가 있는 부산으로 곧장 가지 않고 세렝게티의 하이에나는 아니지만, 뒷골목을 어슬렁거리며 도시 사냥에 나섰다. 그러다가 가락로 190번 길에서 걸음이 딱 멈추고 말았다. 세상에나! 도심 속에 1960년대나 70년대로의 정지된 풍경이 그대로 숨죽이며 고스란히 녹아있었기 때문이고, 오래전에 잃어버린 것과의 조우와 같은 반가운 마음과 서러움이 서로 교차했기 때문이다.
낡고 오래된 골목길을 따라 유년을 보냈던 풍경 속으로 스며들어 걷다 보니 마주하는 또 다른 풍경은 바로 국가사적지인 수로왕비릉으로 파사석탑과 숭신각이 함께 있었고, 주변의 노송이 어우러져 넉넉한 아름다움과 함께 길은 고라니 한 마리가 바쁘게 뛰어가던 구지봉(龜旨峯)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구지봉 정상 부근에 남방식 고인돌도 있는데 그곳으로부터 천천히 내려가다가 만나는 곳은 국립 김해박물관이다. 달리 가야의 문화유산을 집대성한 곳이다.
그런데 내가 주목했던 것은 다름 아닌 수로왕비릉 뒤편 소나무 군락지에 백로가 둥지를 틀고 집단으로 서식하고 있는 거였다. 그것도 도심의 한 복판과 같은 곳에서 말이다. 그러면서 주변에 김해 시가지를 관통하며 흐르는 해반천의 수질이 좋아 수많은 물고기가 그리도 많다는 것인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 우선 서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천적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한 곳과 먹이 구하기가 용이한 곳이어야 할 터인데 말이다.
그러던 중 그 의문은 뜻밖에도 쉽게 해답을 얻게 되었다. 그것은 사무실 창문을 통해 연초록에서 어느덧 진초록으로 물든 임호산이나 불모산 쪽을 바라보다가 하얀 은빛날개를 휘저으며 수많은 백로들이 시가지를 날아 김해평야를 오가는 모습을 보게 된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조류는 부리를 보면 먹잇감이 무엇인지를 대강 가늠하는데 짧게 휘어진 맹금류에 비해 긴 부리를 지닌 백로의 먹이는 주로 강이나 바닷가의 갯지렁이나 민물고기 등이다. 그런 점에서 백로 서식환경에 있어서 중요한 김해평야는 어떤 곳인가. 태백 황지로부터 발원한 낙동강이 유장하게 흘러오다 태평양 바다에 합류하기 직전의 낙동강과 서낙동강 사이의 삼각주로 우리나라에선 최대의 규모다.
그러한 주변의 광활한 평야지대를 이름인데 길이만 해도 남북으로 18km 동서로 16km에 이른다. 여기에 사이사이로 호계천과 해반천, 봉곡천, 평강천, 맥도강, 조만강 등이 평야를 적시고 흐른다. 달리 비옥한 환경이다. 시쳇말로 여기 백로가 살고 있네 하고 단순화해버리면 간단하겠지만, 한 번 의문을 품으면 생각은 생각의 꼬리를 물고 점점 확대되기 마련이다. 그래서 요즈음은 날마다 백로의 안부라도 묻는 냥 창문 넘어 멀리서 날으는 모습을 탐조하는 일이 더 늘어난 셈이다. 수로왕비릉에서 비상한 백로는 국립 김해박물관 앞 해반천을 따라 대성동고분군과 수릉원, 수로왕릉, 봉황동유적, 회현리 폐총 등을 굽어보며 날은다.
3~5세기 경 금관가야 최고 지배층의 무덤이 발견된 대성동고분군은 높이가 20여 m, 길이는 300여 m의 비교적 작고 나지막한 구릉지로 능선부에 대형 목곽묘가 자리하고, 경사면이나 평지에는 낮은 계층의 무덤 등 모두 8기가 발견되었고, 비탈진 곳에 수령 깊은 느티나무의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가지가 모진 풍상과 같은 고대로부터의 세월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 같은 주변에 대성동 고분군 박물관이 있다.
그리고 길 건너 수릉원은 평지의 공원 같은 곳인데 수로왕과 허왕후가 함께 거닐었던 곳으로 아주 넓은 길과 숲 속으로 아주 좁은 길이 여러 수목과 함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며 수로왕릉과 대성동고분군을 이어주는 단아한 숲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주변에 김해의 생활상과 변천사를 볼 수 있는 민속박물관이 있다. 이로서 김해에는 국립 김해박물관과 대성동 고분군 박물관과 더불어 세 곳의 박물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수로왕릉은 이름 그대로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의 능으로 다른 이름은 납릉이라 부른다. 규모는 18,000여 평에 이르는 면적으로 도심 속에 이렇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 있을까 싶은 곳이다. 그리고 봉황동 유적지는 청동기 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한 이후 생산 및 주거지역이었으며 근래 수차례 조사를 통해 성곽이나 대규모 주거지, 방어나 접안 시설, 고상 건물지 등이 확인됨으로써 금관가야의 주요 거점이었음이 밝혀졌다.
그리고 인근에 회현리 폐총이 있다. 기원 전후한 시기부터 4세기 대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뒷받침이 되는 것은 생활 및 문화 활동에 필요했던 토기나 복골, 침, 청동경 등 다양한 인공 유물과 식생활과 관련 상어나 돔, 고래, 거북, 기러기, 오리, 꿩, 닭, 멧돼지, 사슴, 노루, 개, 소, 말의 뼈를 비롯하여 폐각으로 굴, 꼬막, 홍합, 소라, 고동, 백합, 다슬기 등의 다양한 자연유물이 출토되어 당시의 생활풍습과 자연환경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그러고 보니 백로가 수로왕비릉에서 비상해 김해평야 사이를 우아한 날갯짓을 하며 날고 있는 하늘 아래엔 옛 고도 금관가야의 흔적과 문화유산이 산적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동안에 너무나 무관심했던 김해를 백로 서식의 의구심으로부터 조금은 눈을 뜬 것 같다. 그래서일까. 가급적 일찍 퇴근하는 날은 부러 김해의 낡은 때가 묻어 더 정감이 가는 뒷골목을 탐닉하듯 우아하게 날지는 못하고 마냥 걷는다. 나는 조류가 아닌 까닭에......,
첫댓글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김해를 더욱 사랑하게 될 것 같아서 반갑습니다.
아직은 멋 모르고 쓴 글인데 이해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부산에 사는 저는 김해를 사랑하면서도 김해에 대해선 많이 부족합니다.
앞으로 김해를 더 사랑하게 될 것 같습니다. 주신 글 감사합니다.
잘 알지도 모르고 쓴 부끄러운 글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앞으로 김해에 관해
더 공부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