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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인과법칙으로 사물을 보면 무슨 일이든 있을 수가 있습니다. 과거의 업과 현재의 삶이 미묘하게 얽혀져 고통을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무리 선한 행위를 하고 살았다고 해도 과거세의 악업이 끼어들어 갑자기 죽임을 당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부처의 양대 제자 중 한 명인 목갈라나 존자는 이승에서는 추호도 나쁜 짓을 하지 않았지만 까마득한 과거세의 업으로 잔혹하게 살해당했습니다.
세상에 있는 건 인과법칙뿐입니다. 하지만 인간이 인과법칙을 다 알기는 불가능합니다. 그 인과법칙은 알 수 없을 정도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법입니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인과법칙을 다 알 필요는 없다. 해탈에 이르기 위해 필요한 인과법칙만 알면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해탈에 이르기 위해서' 라는 말을 잘 모르겠다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고 바꿔도 됩니다.
행복하기 위한 인과법칙은 여러가지가 있지만, 여기서는 마음의 영향력이라는 포인트만 말씀드리겠습니다. 개인 개인은 번뇌(감정)로 연결되는 것에 의해서 살아갑니다. 물질과 마찬가지로 마음 또한 강한 에너지가 약한 에너지에 영향을 미칩니다. 사람이 다른 사람의 마음에서 영향을 받는 것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도 인과법칙입니다.
개개인이 다른 영향을 받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왕 받는 거라면 좋은 영향만 받고 악영향은 안 받겠다고 결정할 수 있습니다. 항상 수행 정진하여 악영향을 받지 않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입니다.
다른 영향이 불가피하다고 해도, 내 마음에 책임을 질 수 있는 것은 나뿐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너는 화내지 마'라고 명령을 해도 무의미합니다.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내가 화를 내지 않는 것뿐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돕는 유일한 방법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내가 맑은 마음을 가꾼다면 정신적으로 괴로워하는 다른 사람들을 도와줄 수도 있습니다. 자신이 온화하게 있는 것으로 주위도 행복하게 되어가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네 가지 요소*
<여름에 시원한 바람과 같은 사람>
인간에게 필요한 맨 처음은 계율입니다. 계율이라고 하는 것은 삶의 방법으로써 말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바르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사람을 괴롭혀선 안 된다고 하는 것은 몸으로 하는 것과 말로 하는 것의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품위있고, 타인에게도 폐를 끼치지않고, 자신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사회에 폐를 끼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기본적인 일입니다. 간단한 일 같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자기자신을 파괴해 버립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어떤 피해도 주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나 타인도 마음이 성장하고 행복한 삶의 방법은 대단한 일입니다.
항목마다 말하면 [살생하지말라] 고 하는 것은 성냄이 일어나면 잔인함으로 연결됩니다. 생명에 대해서 자애를 가지지 않으면 안 됩니다.
두 번째, [훔치지 말라] 고 하는 항목에서는 욕심을 줄일 것을 권장하고 있습니다. 끝없이 뭐든지 갖고 싶다고 생각해서 괴로워할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적당한 량의 소유물만을 지니고 생활해야합니다. 그 이상의 것을 손에 넣으려고 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하는 만큼 마음껏 취하고 사는 것은 자기파괴로 연결됩니다. 가능한 한 소량의 소유물로 살아간다고 하는 것을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매우 뛰어난 삶입니다.
세 번째는 인간은 육체로 밖에 기쁨을 느끼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죽고 싶지 않습니다. 육체라는 것은 온갖 쾌락을 만들어 주는 원천과 같은 것이라고 굳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심한 감기에 걸려도 간장의 맛을 모릅니다. 간장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감기 탓으로 자신의 코나 혀가 이상해졌을 뿐입니다. 육체가 주는 것은 쾌락보다 괴로움이 더 많습니다. 아주 적은 일에도 아픔과 괴로움은 나타납니다. 우리는 무지 속에 있기때문에 몸의 감각이 쾌락 뿐이라고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 착각을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에게도 타인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는 작은 재미라면 상관없지만, 자신의 시간도 돈도 모두 없어져버리는 쾌락 삼매나 끊임없이 타인에게 폐를 끼치는 쾌락의 추구는 그만두지 않으면 안 된다고 하는 것이 계율의 3번째입니다.
네 번째, [거짓말하지 말라] 고 하는 것은 자신에게 강한 정신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체크하는 포인트입니다. 예를 들어 무엇인가 일을 부탁하면 확실히 하는 사람인지, 지켜보지 않으면 하지 않는 사람인지 입니다. 지켜보지 않으면 하지 않는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거짓말쟁이] 인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런 자리가 있으면 거짓말해버립니다. 사람이 지켜보지 않아도 부탁받았던 것을 확실히 하는 사람은 정신적으로 근성이 강한 사람이고 그런 사람은 거짓말이라고 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야무지지 못한 성격의 사람이라든지, 여러 가지 감정에 휘둘려 살아가는 사람은 거짓말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태에 빠질 것입니다.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규칙을 지키면 확고하고 강한 성격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사람이야말로 신뢰할 수 있습니다.
계율의 다섯 번째는 어리석지 않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것입니다. 마약이나 술 등을 사용하지 않고 있으면 분명하게 건강하고, 예의범절 좋고, 품위있는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율이라고 어렵게 말했지만, 요점은 [도덕적인 삶] 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지혜있는 사람은 적어도 도덕적인 삶을 하고 있습니다. 도덕적인 삶을 하고 있지 않으면 아무리 노력해도 지혜가 나오지 않습니다. 아무리 명상해도 삶이 야무지지 못하면 하루가 끝나면 또다시 원래의 야무지지 못한 삶으로 돌아가버립니다. 그러면 전혀 효과가 없습니다. 한 걸음도 진행되지 못합니다.
지혜는 확고하고 정직한 사람에게 일어납니다. 거짓말하고 속임으로 살아가는 사기꾼과 같은 성격에서는 안 됩니다.
타인이 정말로 도덕적인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아닌지를 판단하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계략과 같은 것입니다. 타인에게 [잘하는 사람] 이라고 속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표면만 닦아두면 되기 때문입니다. 표면만 닦아 타인에게 좋은 얼굴을 보이는 것은 누구나 하고 있는 보통 일입니다. 우리가 특히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을 선택하고 싶다면 이러한 모습으로 선택해서는 안 됩니다. 정말로 도덕적인 사람을 택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남자이든 여자이든 좋은 도덕관이 있어 계율을 지키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과 친밀한 인간관계를 가지는 편이 자신의 성장을 위해서 좋습니다.
세상의 인간관계에 의해서 많은 사람이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왜 그토록 괴로운 것일까요? 그것은 어느 누구도 도덕적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말은 거칠고, 사람을 깍아내리고, 모욕하고, 자신의 좋고 싫음에 따라 마음대로 말합니다. 어떤 자기 컨트롤도 없습니다. 먹을때도, 전철을 탈때도, 일상의 어떤 상황이라도 예의범절이 없는 사람이 있으면 주위는 매우 귀찮습니다.
그래서 인간관계를 맺는 것은 자신의 성격을 바로잡는 일인 것입니다. 성격을 바로 잡으면 계율을 지키게 됩니다. 계율이 없으면 인간관계가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일시적인 인간관계조차 괴로움을 만듭니다. 그렇다고해서 사람과 전혀 말하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가 하면 그럴수도 없습니다. [코뿔소처럼 혼자서 살아가라] 하는 부처님의 말씀이 있지만, 그것은 부처님이 깨달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 보통 사람들에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누군가와 교재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한다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좋으며, 거기에는 계율을 지키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할머니이든 할아버지이든 아이이든 여성이든 남자이든 외국인이든 원시인이든 관계없습니다. 그러한 사람을 찾아내서 사이좋게 지내보십시오. 대단히 온화할 수 있습니다. 인간관계라고 하는 것이 몹시 괴롭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완전히 정반대라고 느껴지게 됩니다. 여름에 시원한 바람이 부는 느낌입니다. 여름에 시원한 바람을 몇 시간동안 맞아도 속이 메스껍게는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몹시 친근하고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그러한 사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문제는 같습니다. 자신도 그러한 성격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됩니다. 자신이 되어있지 않으면 그러한 사람은 좀처럼 모이지 않습니다.
<불행에도 침착함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
또 하나 인간에게 필요한 것으로서 [인내] 를 부처님은 말씀하고 계십니다. [고행] 이나 [아만] 이라는 말로 바꾸어넣어서는 안됩니다. 인내라고 하는 것은 불선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누르는 것입니다. 선행과 해탈을 단념하지 않는 것입니다. 목적이 올바르면 어떤 장애가 있어도 결코 단념해서는 안됩니다. 목적을 단념하지 않는다고 하는 [인내] 가 수행입니다. 일반적인 인내는 싫은 일에 대한 대응이지만, 불교에서의 인내는 침착성입니다.
방해 ,모욕, 공격 등의 악한 상황에 지지말고, 분노나 미움을 일으키는 일 없이 노력하는 것도 인내입니다. 결코 타인의 탓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인내는 [침착하게 하는 것] 입니다. 좋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들뜰 것도 없고, 괴로운 일이 있어도 끙끙거리며 걱정할 것도 없고, 냉정하고 침착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조심해서 실천해야 하는 것입니다.
과거 생에서 부처님이 수행자였을 때 인내가 무엇이냐는 왕의 물음에 [인내라고 하는 것은 누군가가 비난하거나 화내거나 때렸다고 해도 분노를 일으키지 않는 것이 인내입니다.]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래서 인내의 실천자는 자신의 진척 상태를 체크합니다. 좋은 결과가 나오도록 힘쓰는 방법을 조절합니다. 이성적으로 마음이 성장하도록 조정합니다. 좋은 조건에도 들뜨지 않게 조심합니다. 항상 침착성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인내는 탐.진.치. 없이 있는 그대로의 담마를 보고 그리고 차별없이 받아들입니다. 그것도 인내입니다.
해탈의 지혜도 인내라고 말합니다. 해탈의 직전에 나타나는 상카라 우벡카 냐나(행사지)도 인내의 일종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수행은 침착성으로부터 시작하여 침착성으로 끝납니다.
인내를 완성하면 반드시 해탈에 이르는 도에 들어갑니다. 다음의 순간에 성스러운 경지인 사문과에 이릅니다. 인내를 완성한 다음의 순간이 깨달음입니다.
인내가 왜 필요할까요? 세상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모릅니다. 모른다고 해도 세상은 일순간도 정지하지 않습니다.계속 바뀌어 가는 것이 계속되어 갑니다. 그 변화에 우리는 가끔 손해도 보고, 때로는 칭찬받고, 어떤 때에는 비난받기도 합니다. 또 어떤 때에는 크게 즐겁고, 어떤 때에는 대단히 괴롭습니다. 지금 명예가 있어도 다음에는 모든 것이 사라져서 사회로부터 추방당할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행복해도 다음에는 불행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변화가 멈추지 않는다는 것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나 무지한 사람은 멈추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버립니다. 이득만, 즐거움만,행복만, 칭찬받는 것만, 갖고 싶다고 생각합니다.나쁜 것은 필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때에도 침착하게 살아가고, 불행한 때에도 침착하게 대처할 수 있는 인내가 필요한 것입니다.
사물은 변화하는 것이라고 하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불교의 세계입니다. 계속 장사가 잘되기를 조르는 것은 불교적인 생각은 아닙니다. 자신의 약점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여러가지로 변화가 일어나는 세상에서 정말로 훌륭한 인간은 불행을 만났을 때 압니다. 그 사람이 정말로 행복한지 아닌지는 어떤 트러블을 만났을 때에 압니다. 삶이 안정되어 있을 때에 싱글벙글 웃고 모두에게 고개숙여 인사한다고 해서 훌륭한 사람이라고는 반드시 말할 수 없습니다.
불행이라고 하는 것은 누구에게라도 돌아오기 때문에 인간이 정말로 훌륭한 사람인지 아닌지는 그러한 심한 일을 당했을 때 침착한 사람인지 아닌지로 밝혀집니다. 크게 손해 보았을 때에도 낙담하지않고, 또 반대로 이득을 보았을 때에도 들뜨지 않고 침착하게 해야 할 일을 계속하는 그러한 삶의 방법이 지혜가 있는 사람의 삶입니다.
그처럼 인내가 있는 사람을 우리는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인내가 있는 사람은 우리가 불행을 당했을 때에도 [이렇게 하면 어떻습니까] 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그러나 그처럼 침착하고 평온한 사람은 들뜨거나 낙담하거나 하는 인간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역시 그러한 인내력을 기르지 않으면 안 됩니다.
<일관성이 있는 사람>
훌륭한 인간에게 필요한 요소 3번째는 [일관성이 있는 것] 입니다. 자신의 인생, 삶이 일관성이 없으면 의미가 없습니다. 일관성이 없으면 신뢰할 수 없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어떤 일에 대해 이 사람에게는 이렇게 말하고, 저 사람에게는 저렇게 말한다면 일관성이 없습니다. 또는 상황에 따라서 생각이 바뀐다면 일관성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이지만 일관성 있게 인생을 사는 것은 중요한 일입니다. 일관성이 전혀 없는 사람은 주위에도 폐를 끼칩니다.
< 지혜가 있는 사람>
그리고 4번째는 [지혜] 입니다. 우리가 친하게 지내는 사람을 선택하는 경우에는 지혜가 있는 사람을 선택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지혜가 있는 사람은 무지한 사람과는 굳이 어울리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어렵습니다. 다만 지혜를 구하고 있는 사람이 부탁하면 조금은 어울려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지혜를 구하는 마음이 전혀 없으면 아무리 부탁해도 달아날 뿐입니다. 그 사람으로부터 그 무엇도 얻을 수 없습니다.
안정된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지혜] 가 필요합니다. 그 사람이 어느 정도의 지혜가 있는지를 알려면 [토론] 하는 것을 눈여겨봐야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대화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그 사람에게 지혜가 있는지 없는지가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도 보고 있는 사람 측 사람이 지혜가 없으면 모릅니다. 지혜가 있으면 이 사람이 문제를 잘 해결하고 있는지 아닌지가 명확하게 보입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과법칙을 잘 이해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지혜가 없는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만, 지혜가 있는 사람은 문제를 만들지 않습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문제를 만났을 때 순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자는 문제가 일어났을 때에 어떻게 대처할 수 있는가를 압니다. 지혜를 방해하는 고정 개념 등이 방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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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공개 입니다
첫댓글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 인내라고 하는 것은 불선한 일이 일어나지 않게 누르는 것입니다.
선행과 해탈을 단념하지 않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인내는 싫은 일에 대한 대응이지만, 불교에서의 인내는 침착성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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