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이별
그 후로도 여러 차례 톡 문자가 나의 심금을 올리고 안타까운 내용뿐!
나의 답신,
"희구 친구! 자네 생각에 글 하나 써봤네. <수필과 비평>4월호에 실렸다네. 제목은 <사유의 종착역>." "5월 말에 담양 죽녹원과 순창 메타세콰이어길을 다녀왔네 자네 눈이라도 시원하시게 사진 몇 장 보내네."
절친의 답신,
"오랜 친구 기수에게 메타세콰이어가 길옆으로 늘어선 곳에 다녀오셨군. 그 유명한 담양 메타세콰이어 그 나뭇길 속으로 시원하게 가로수길 여름맞이 산책 나들이 잘 다녀오셨군 부근에 한우 맛집이 여러 군데 있는데 맛있게 먹고 오셨군. 눈앞이 산뜻해지는 상쾌한 남도 여행 축하합니다. 오월 말 철친."
이것이 나에게 날아온 마지막 문자 6월 한 달여 무소식. 김훈의 r허송세월.을 읽으며 일상으로 발길을 돌렸다. 책 읽기.
7월 7일 오전,
일요일 아침 영상예배를 마치고 스탭퍼에 올라 워킹하는시간.
절친의 카톡이 떴다.
"이길용 부친상. 저의 아버지이신 이희구 님께서 향년 75세로 2024년 7월 7일에 숙환으로 별세하셨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절친의 아들이 보낸 부고訃告!
아ᆢ올 것이 왔구나! 멘붕이 엄습한다 동문수학한 대학 동기들과 서울 00병원 장례식장에서 오후에 보기로 했다.
오호, 통재라 가슴이 울면서 탄다.
[친구여, 잘 가라 (추도문)
대학 시절부터 50년 지기지우 대학 동기 절친이 그제 아침 소천했습니다. 이제 겨우 70대 중반 넘었는데~ 아직은 너무 이른 나이입니다 친구는 ROTC 11기 출신으로 전방 지역 철원에서 근무하다 역사적인 사건 제2땅굴을 발견하여 뉴스의 초점이 된 소대장이었습니다. 세상을 떠들썩하게 며칠간을 방송에 오르내리면서 영광스러운 충무무공훈장을 국가로부터 수여받았습니다.
(ᆢᆢ)
혼자된 지 7년 여 세월이 지난 지금 힘든 삶의 연속이었습니다. 아, 자랑스러운 육군 장교, 그리고 존경받던 교사 이희구 그 이름 석자! 길지도 못한 삶이었는데 설상가상으로 서럽고 기구한 굴곡이 너무도 많았습니다.
진달래 꽃비 내리는 서역 삼만 리 그곳에 사랑하는 아내도 가슴 저리게 하던 큰아들도 함께 있을지니, 이승에서 다하지 못한 가족 사랑 마음껏 어울려 누리시게나
아, 아까운 친구여, 두 손 모아 영생을 축원하고 기도하노라. 대전 국립묘지가 아니고 서울 동작동의 국립헌충원에 안장된다니 참으로 잘된 일입니다. 서울 나들이에 오가며 가끔은 만나 뵐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매년 7월 7일을 잊지 않으리 ᆢ.
삶의 종착역을 달려 저승으로 소풍을 떠난 벗.
저승으로 여행을 떠난 절친.
서울 현충원 충혼당에 한 줌의 가벼운 재로 납골당에 안치됐다.
청춘의 아름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이승에서 기쁘고 즐거운 생활을 노래하던 그였는데- "인생은 헛되고 헛되도다." 뇌이면서 귀가했다 이제 칠십 중반을 넘어가는 나이다. 부질없는 생각에 잡념이 많이 인다. 잡념이 부질없다기보다 삶과 죽음이란 단어가 늘 친근하다. 인간의 존재는 죽음을 항해 있는 삶이 아닐까? 언젠가는 사라지는 인생이라도 현재 삶을 충실하고 건강히 살자.
"친한 벗이 한 자 글월도 없으니 (親朋無一字)
늙어감에 외로운 배만 있구나(老去有孤丹)."
함께 공부한 [두시언해] 중 <악양루에 올라서>가 현실이 되었다.
김기수 kschon@hanmail.net
요즘 일과 루틴은 걷기(산책), 찜질(온열), 읽기(수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