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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
제가 날라리 시절에 좋아했던 노래예요~
(형제자매들: 알아요~~~~)
1월6일자에 어느 교수님이 이걸 쓰셨는데,
어떻게 내마음에 드는 얘기를 쓰셨나~~~싶었어요~
성경과 관계 없지만, 제가 날라리 시절 기타치며 노래했던 그 시절이에요~
그런 고집사가 지금 이렇게 됐네~~~하고 들으시면 되겠어요~~
중앙일보 오피니언 ; 한대수를 모르다니
한대수(사진)를 만났다. 아니, 한대수 선생을 만났다.
그도 어느덧 칠십대 후반이다. 신촌 어느 거리의 허름한 간이 횟집에서다.
나는 대학원생들과 종강 호프타임을, 그는 젊은 여성 두어분과 술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다. 워낙 유명한 분이라 보는 순간 알아차렸다.
그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가끔 실내에 울려 퍼졌다.
그러나 그 누구도 주목하지 않았다.
조용히 다가가 같이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그는 쾌히 동의했다. 기분이 좋았다.
다시 술자리로 돌아와 한대수 선생과 사진을 찍었다고 자랑했다. 그
는 우리 세대에게는 이른바 전설적인 싱어송라이터로 통한다.
그러나 여덟명이나 되는 대학원생들의 반응은 조용하다.
한명이 조심스레 말한다. 한대수가 누군데 교수님께서 흥분하고 좋아하시느냐는 것이다.
순간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아니 한대수를 모르다니.
“장막을 걷어라/ 나의 좁은 눈으로 이 세상을 더 보자/창문을 열어라/
춤추는 산들바람을 한번 또 느껴보자.” 못 부르는 노래를 불렀지만 여전히 반응은 없다.
사실 한대수의 대표곡인 ‘행복의 나라로’는 한국 포크 음악 역사상 손꼽히는 명곡쯤 된다.
‘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라는 가사 때문에 군사정권 시절에는 금지곡으로 지정됐다.
“그럼 대한민국은 행복의 나라가 아니란 말이냐?”라는 게 그 이유다. [출처:중앙일보]
그 날 술자리에서 나는 깨달았다.
늘 얘기하는 정서적 차이란 바로 이를 두고 한 말이라는 것을.
송년 저녁으로 간이 횟집은 만원이었다. 그
러나 수십 명이나 되는 젊음 그 누구도 한대수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몰라서 그랬을 것이다. 오늘날 세대 간의 문화적, 정서적 차이는 이처럼 심각하다.
술자리가 파하고 혼자 신촌거리를 터덜터덜 걸었다.
‘아아 나는 살겠소/태양만 비친다면/밤과 하늘과 바람 안에서/비와 천둥의 소리 이겨
춤을 추겠네/나는 행복의 나라로 갈 테야’.
혼자 가만히 부르는 노래는 겨울밤 하늘로 올라가 별똥별이 되었다.
김동률 서강대 교수
………………………………………………
서로 나이 차이가 나니까, 세대간에 ‘정서적 차이’라고 적으셨어요.
그런데 만약‘찬양곡’이었더라면 어떘을까요?
그렇게 되면 ‘정서적 차이’가 아니라, ‘영적차이’가 되겠지요~~
이 분은 교수님이시니까 영적세계는 잘 모르셔서 그냥 정서적 차이라고 표현하셨어요~~
‘정서적 차이’
‘영적 차이’
***지난 주일에 게스트 목사님이 오셔서 설교하셨는데,
오늘 오시기 전에 다시 듣고 오라고 했지요?
(한나: 저는 들으면서 옛날에 흰옷사모님이 쓰신 ‘가짜 발표회’가 생각나면서 좋았어요~)
그럼.
또?
(기도하는자: 여러분이 예배를 드릴때 가짜인지 진짜인지, 껍데기 예배를 드리는지~
그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시는 분이 잘 없는데, 그렇게 말씀하셔서, 저는 좋았어요~)
다른분들은요?
“다시 듣고 오세요~”할때는 이유가 있어서예요~
여러분들이 얘기하셔야 제가 얘기하지~~~
내용이 뭐예요?
(형제자매들:법궤를 수레에 싣고 가다가 타작마당에서 소가 날뛰자
떨어지려는 법궤를 웃사가 잡았다가 그만 죽었어요.
그것은 우리가 볼때는 맞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게 아니라 죽였다고…)
그래서 목사님이 옳지 않았다고 하시며 출애굽기로 들어가셨지요~
원래 법궤는 레위 족속이 법궤를 막대에 걸어서 어깨에 직접 메고 가는 거라고~~~
그런데 법궤가 떨어지려는데 당연히 손으로 받쳐야 하잖아요~~~
내생각으로는 받쳐야지~~
그런데 그게 아니라며며 하나님이 웃사를 죽였다고 했어요.
그런데 수레 앞에 가던 아효는 살았어요~~~
목사님은 이런자들은 하나님은 잘 모르면서,
그냥 ‘종교 기술자’와 같다고 말씀하셨어요.
목사님은 성경을 예로 드시며 설교를 확실하게 잘 하셨어요~!!
그런데 제가 덧붙히고 싶은게 있는데,
호다식구들이 목사님 말씀처럼 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것과 같아요.
법궤를 소수레가 끌고가는게 맞아요?
……………
(형제자매들:아니요~)
법궤를 언제 빼았겼지요?
……………
(형제자매들:블레셋과 싸울때)
네, 블세셋과 싸울때.
그래서 어떻게 되었어요?
……………
(형제자매들:다곤신전에 갔다놨어요~)
그때 누가 죽었어요?
……………
(형제자매들:엘리의 아들들)
엘리의 아들들인 홉니와 비니하스.
전쟁에 나가서 죽었지요~
그러면 법궤는 어떻게 해서 뺐겼어요?
……………
법궤는 닿기만 해도 죽는데, 어떻게 뺐어가요~~~~~
그런데 뺏어가서 다곤신전에 두었잖아요~~~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갈때, 법궤가 어디에 있었어요?
……………
바벨론이 침공했을때 예루살렘이 다 불타버렸잖아요~
그때 타서 없어졌는지~ 없어져버렸어요~
보세요,
법궤는 닿기만 해도 죽는데~
레위족속이 어깨에 매고 그대로 순종해야 해요.
그런데 웃사는 그렇게 하지 않아 하나님이 죽였다고 목사님이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말씀대로라면 목사님도 이미 죽으셨을지도 몰라요~~~~
목사님이 하신 말씀은 초보자들에게 하시는 거고,
우리도 물론 경각심을 일으키게 하는 말씀이시긴 했어요.
그렇지만 제가 여러분한테,
“야, 법궤 가까이 가지마! 그랬다간 찢겨죽여~~~~”라고 해야 하나요?
그래서 법궤 가까이 가지말아야 해요?
저는 그렇게 안가르치겠어요~
법궤가 아비나답 집에 있는것 보니까, 제사장이었겠지요.
그러면 제사장으로써 레위지파 사람이 메고 가야 한다는건 알고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그냥 수레에 싣고 갔어요.
그 당시에 전쟁에서 지면, 진 나라의 신상을 자기나라 신전안에 둔대요~
그래서 법궤를 뺏어다가 다곤신전 안에 둔 거예요.
그런데 다곤신상이 목이 잘리고 하니까, 블레셋 사람들이 법궤를 다시 돌려보내지요~
그때 어떻게 해서 보내었어요?
……………
(형제자매들:수레에 실어서~)
네, 수레에 실어서 보냈어요.
그때는 안죽고 잘 갔어요~~~~~ㅎ
그리고 아비나답, 웃사때 법궤를 수레에 실을때엔 어떻게 실었을까요~~? ㅎㅎ
기중기로 했나 어떻게 했나~?
저는 엔지니어라 이것저것 생각해보는 거예요~~~~
법궤가 순간적으로 쓰러지는데, ‘아 손대면 죽는다고 하는데!’하면서 손을 안되겠냐구요~~
제가 아무리~~~~ 믿음이 좋다고 해도 그 상황에 손을 안되겠냐구요~~~
(온전한은혜:어~맞어~)
(ㅎㅎ~~~~)
ㅎㅎ~~~
당연히 받치지~~~
여러분도 당연히 그렇게 하실걸요~~~
그런데 그렇게 하면 목사님의 하나님은 죽이시겠지만,
저의 하나님은 죽이지 않아요~!
왜냐하면 여러분은 하나님 아들이에요~~~~
웃사와 여러분은 완전히 다른 거예요~~~~
하나님 아들은 레위족속 저리가라예요~~~
그래서 그 말씀대로 했다간 저도 살아남지 못했을 사람이에요.
벌써 벌써 죽었지~~~~
그런데 하나님 사랑때문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데~~~
지금 호다 식구들이 그 말씀대로 하면 다시 옛날로 돌아가는 거예요.
목사님이 구약을 가르치신 거예요.
즉, 성령을 받기 전의 이야기예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
백보좌에 앉아계신 거룩거룩 하나님~~~
그런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 올라온 어록에도 나왔듯이, 우리 아빠~~~
그런 아빠가 넘어지는걸 잡았다고 치시는 아빠가 어딨어요~~~
그래서 목사님이 말씀하신게 맞기는 하지만,
저 안에 예수가 들어오고 나니 그게 아니예요~
그러면 제가 실수할때마다 아버지가 저를 찢어죽이실 거예요~~????
헠~~~~~~~~~~~~~~~~~~~~~~~~
그런 하나님을 어떻게 믿어요~~~~~~~
그런 하나님이 계신 천국을 간다구요~??????
아이구야~~~~~~~~~~~~~~~~~~~~~
그래서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죽여요.
바리새인들이 ‘성경에 그렇게 나와 있잖아!’하며 죽여요.
웃사 죽는건 저리가 라고 십자가에 메달아 죽인다니까요~~
목사님 말씀은, 우리가 가짜가 아니라 진짜가 되어야 한다는 건 맞아요~!
그렇지만 목사님이 말씀하신 ‘진짜의 정의’는 저하곤 좀 거리가 있다는 거예요.
물론 성경에는 있죠~~~
눈에는 눈? 이에는 이?
그렇지만 예수님이 오셔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하지 않으셨어요.
바리새인들은 회당에서 배웠을텐데,
사람들이 예수님 말씀을 듣고 얼마나 파워풀하게 느꼈어요~~~~
사랑의 하나님은 어디로 갔냐는거죠~~~~
예수님은 어디로 갔어요~~~~?
예수님이라면 웃사를 저렇게 하셨을까~?
예수님이라면 이것을 어떻게 설교하셨을까요~?
그런것도 보셔야 한다는 거예요.
물론 목사님 말씀은 똑바르게 말씀하셨어요.
그렇지만 웃사의 사건을‘예수님이라면 어떻게 보셨을까’하는 것도
말씀을 하셨으면 어땠을까 하는 거예요.
제가 과거에 그랬으니까~~~~
그래서 남들을 칼처럼 비판정죄해야 하고~~~~
과거의 율법주의~
저같은 날라리였던 사람은 근처도 못가요~~~
사망의 법에서 생명의 법으로 옮겼다고 했는데,
그렇게 말씀하시면 ‘사망의 법’이 되버리는 거잖아요..
그렇게 죽이시는 하나님~?
(한나:그래서 흰옷사모님 간증에 옷을 빳빳하게 다려입고 앉아서 다른사람을 베고 있었다고..)
네~~~
그래서 제가 얘기하고 싶은것은
‘예수님이 오신 다음에 우리한테 어떻게 하셨을까?’의 관점도 얘기하시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거예요.
로마서8;2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그러면 법궤가 있어서 예루살렘이 복을 받았어요?
……………
다 타버렸다니까~~~
법궤를 우상화 시킨 거예요~
법궤가 메고 가면 뭐가 다 될것같았는데, 뺏겨버렸어요~~~
그러면 법궤가 어떻게 됐어요?
…………
결국은 어떻게 없어졌는지도 몰라요~~~
하나님이 가지고 올라가셨나~?
승천했나~?
제가 볼때는 바벨론 군사가 와서 다 불살라버린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왜냐하면 법궤가 우상화 되니까 하나님이 없애버리신게 아닌가 싶어요.
법궤가 없다고 이스라엘 백성이 죽었어요?
……………
포로로 끌려가서도 하나님을 예배했어요~~~~
제가 예전에 교회에 있을때 강대상에는 올라가지도 못하게 했어요~~
이햐~~올라가면 천벌받는다고~~~~ㅎㅎ
법궤를 수레에 싣고 가는데 웃사가 넘어질 정도라는건,
심한 구덩이에 빠졌거나 아마 그랬을 거예요~~~
법궤 위에 뭐가 있어요?
네, 그룹
그러니 그게 떨어지며 웃사의 머리를 친게 아닌가...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와~~~! 하나님의 법궤를 손으로 잡았다~~그러니까 죽었지!!’라고 했어요.
넘어져서 죽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엔 하나님이 쳐서 죽였다 라고 봤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구전으로 내려오고~~~
왜냐하면 지금의 내 아버지가 그때의 아버지이시기도 하잖아요~~~~
지금의 내 아버지로 보니까, 잘못했다고 바로 팍 죽이시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시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도피성까지 만들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래서 어느 신학자들의 얘기로는,,,
정말로 하나님이 쳐서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구전이 내려와서 그렇게 해석을 한 거라고 하더라구요~
저의 하나님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하나님이 아니세요~~~~~ㅎㅎ
법궤에 맞아서 죽은 사람이 몇이나 돼요?
(디모데:법궤가 돌아올때, 벧세메스 사람들이 언약궤 안을 들여다 보자 하나님이 죽였다고 나와요. 삼상6:19)
블레셋과 싸우다가 법궤를 뺏긴 이유가 뭐라고 했어요?
…………
엘리제사장이나 그 자식들이 하나님도 없이, 그저 법궤만 있으면 이기는줄 알았어요.
법궤 자체가 능력이 있는게 아닌데~
하나님을 믿어야 능력이 있는데, 믿지는 않고 보이는 법궤에만 집중하고 있었어요.
한국에 절에 가면 하나님이 계실까요?
…………
네, 계세요.
그리고 여러분이 가면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역사하세요.
그것처럼 법궤를 다곤신전에 갖다 놓으니까, 거기서 역사하세요.
제가 예전에 한국 발전소 일때문에 갔을때, 이대 봉원사에 가보았어요.
제가 어릴때 항상 놀던 곳이거든요~
여름방학이면 북아현동에서 산타고 넘어가서 봉원사 가서 놀고~~~~~
가보니까, 그때가 대학입시더라고요~
앞에다가 돈을 내고 기도하고~ 대학 붙게 해달라고~~~
저는 법당 밖에서 구경하면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하며 기도했어요.
그래서 아마 나때문에 거기 사람들이 다 떨어졌을것 같애~~~ㅎㅎ
왜 다곤 신전에 법궤가 있었거든.
그러니 다곤신의 목을 잘라버렸잖아요~~~~~
귀신쫓는 내가 갔으니~~~~~
그때는 혹시 내가 다칠까 하는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혹시 공격받지 않을까 하는데~~~~
아뭏튼 여러분이 가면 파워풀해요~
y자매님이 절에 가서 단청을 보다 단청 귀신이 들어오기도 했었죠~~~
그 자매님이 미술 전공했었잖아요~~~
.
.
***레위기에 보면 ‘내가 너희의 여호와 하나님이야~!’라는게 많이 나와요.
‘내가 여호와 야훼야~ 내가 너희들의 하나님이야~’
이십 몇번이 나와요~
그게 무슨말이에요?
(형제자매들:보호자, 나만 보라~…)
레위기는 주로 뭐예요?
(형제자매들:제사하는법, 율법~~)
그래서 계속 ‘내가 너희 하나님이야~~~’라고 하는데, 이런 거예요.
내가 세상 어디에든 있어~~~
네 옆에도 있어~~
내가 너에게 말하잖아~
그대로 들어~내가 네 하나님이잖아~~
나는 네 여호와 하나님이야~~~
내가 네 하나님이니까 제발 들어~~~
내가 네 여호와 하나님이잖아~~~그러니 이것들을 잘 들어~~~~
그렇게 제일 많이 쓰인데요~
하나님이 절절히 말씀하시는 거예요,
내가 네 하나님이야~ 내가 네 하나님이야~~~~
내 말 들어~~~들어~~~
내가 네 하나님이잖아~~~~
저는 여러분에게 뭘 절절히 얘기했어요?
……………
용서와 사랑.
그게 없으면 헛것이에요...
***제가 재밌는걸 읽어드릴게요~
[양성희의 문장으로 읽는 책] 기도가 필요한 시간
‘하늘에 계신’이라고 하지 마라. 세상 일에만 빠져 있으면서./ ‘우리’라고 하지 마라.
너 혼자만 생각하며 살아가면서./ ‘아버지’라고 하지 마라. 아들딸로서 살지 않으면서.
-우루과이 한 성당 벽에 쓰인 기도문에서.
그날 밤 지옥문이 열린 기분이다.
우리 앞에 느닷없는 정치와 역사의 퇴행극이 펼쳐졌다.
폭주한 망상가는 여전히 반성을 모른다.
정치 셈법에만 눈먼 정치인들도 너무 많다.
거리에서 태극기를 흔드는 무리 중 한 여성은 차가운 땅바닥에 몸을 굴리며
“대통령님을 지켜드리지 못했습니다. 용서하세요. 마마”라고 울부짖었다.
이들을 이끄는 이는 ‘목사님’이다.
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아스팔트 목사님’에게 90도 폴더인사를 했다.
세상이 도저히 공존 불가능한 사람들로 동강 난 느낌이다.
하도 어이없는 풍경의 연속이라 차라리 눈과 입을 닫고 싶다는 이들도 많다.
마냥 희망찬 인사를 주고받기조차 꺼려지는 새해 아침, 위태로운 마음을 다스리며
『당신의 그림자 안에서 빛나게 하소서』를 펼친다.
이문재 시인이 시처럼 읽히는 기도문들을 묶은 책이다.
모든 기도는 선하고 정의로운 세상을 갈구한다.
신학자 아브라함 요수아 헤셸은 기도의 쓰임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기도함으로써 우리 자신이 구원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이 되려는 것이다.”
우루과이 성당 벽 주 기도문은 이렇게 이어진다.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라고 하지 마라. 자기 이름만 빛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면서./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라고 하지 마라. 물질만능의 나라를 원하면서./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라고 하지 마라. 내 뜻대로 되기를
기도하면서./
(…) ‘악에서 구하소서’라고 하지 말라. 악을 보고도 아무런 양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면서.”
……………………
여러분, 이게 성당벽에 써있대요~~~~
신부님이 사람들의 고해성사를 듣잖아요~
밤낮와서 고해성사를 하는데~~
신부님이 얼마나 지긋지긋하겠어요~~~~~
그러니 주기도문에 ‘000라고 하지도 마라~하지도 않으면서~~~’라고 써놓은 거예요.
과거에 우리의 스토리였다면 좋은데,
지금도 우리의 스토리라면 회개하셔야 해요.
‘하나님 아직도 내가 멀었네요...’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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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볼때는,
‘와~~~! 하나님의 법궤를 손으로 잡았다~~그러니까 죽었지!!’ 라고 했어요.
넘어져서 죽었는데, 사람들이 보기엔 하나님이 쳐서 죽였다 라고 봤다는 거예요.
그리고 그것이 구전으로 내려오고~~~
왜냐하면 지금의 내 아버지가 그때의 아버지이시기도 하잖아요~~~~
지금의 내 아버지로 보니까, 잘못했다고 바로 팍 죽이시는 그런 아버지가 아니시거든요~~
우리 아버지는 도피성까지 만들어 놓으시는 하나님이신데….
그래서 어느 신학자들의 얘기로는,,,
정말로 하나님이 쳐서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구전이 내려와서 그렇게 해석을 한 거라고 하더라구요~
저의 하나님은 그렇게 무시무시한 하나님이 아니세요~~~~~ㅎㅎ" 아멘~~!!
정체성 희미하여 내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알던시절
벌주시고, 무시무시한 하나님을 믿었으니
예수님의 겉옷을 네 조각으로 찢어
내 안에 사랑이신 예수가 없었지요~~^^
사랑의 인티머시로 웃사를 풀어주시니
애비의 마음 안에서 주시는 통옷이네요~~
사 40:15 보라 그에게는 열방은 통의 한 방울 물 같고
저울의 적은 티끌 같으며 섬들은 떠오르는 먼지 같으니
율법을 주실 때 모세가
그리하지 마옵소서~~ 해야 하는데
그 죄와 사망의 법아래 살며 우리가 고생했지요
그러나 마귀의 일을 멸하러 오신
예수님 덕분에 구약도 사랑의 하나님으로
다시 풀어주시니 생명의 성령의 법은 살리시는 영이네요~~
사도 요한도 밧모섬에서 부활하신 예수님 만나고
계 1:15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 소리와 같으며
1:16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구약만 가지고는 부러지기 쉬운 검인데
사랑이 임하신 성령의 검, 말씀의 검은
부드러운 사랑의 검이시라~~
요한에게
" 네가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
강한 성령받은 여호수아 형제님이 먼저
그 일을 하시고, 우리도 사 61장~ 간증을 쓰게 하셨네요~~
웃사의 죽음 ~~ 이제야 시원하게
풀렸으니 도피성까지 만드신 사랑의 아버지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안다하셨으니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또 ..
이렇게 ..
하나나님아빠의 오해를 풀어드린
웃사 스토리 너무 시원하고 좋았어요 ..
그렇지 !
내 아버지는 그런 하나님이 아니야 .~
이렇게 2000년넘게 풀리지 않는 늘 오해만 받으셨던 하나님아빠의 마음을
이리도 시원히 풀어드리니 얼마나 좋아하실까 ~~
우리 하나님아빠 오해가 풀려서는
가슴을 쓸어내리시며 묵은 체증이 쑤욱 내려갔셨겠어요.
그렇지 , 내 아빠는 그런 아빠가 아니지 !! 를
확증시켜 주셔서 고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