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구속사 강해
은혜 언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에게 나타나는 특징 중의 하나는 그들이 죄를 지을 수 있는 부패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죄에 빠지게 된 것은 외부로부터 이미 죄를 가지고 있는 자 곧 사탄이 사람을 유혹해서 죄가 사람에게 들어오게 된 것이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마치 사람이 사탄의 유혹에 빠져 죄에 빠지게 된 것처럼 소극적인 결과로 보이기 마련이다. 그러나 사탄이 사람을 유혹하는 과정을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이 죄에 대하여 적극적으로 반응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1. 인류가 창조 언약을 파기한 배경
사탄이 사람을 죄에 빠뜨리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그 의도를 사람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사람과 교통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탄은 말(언어)을 사용하였다. 왜냐하면 언어를 사용하지 않고서는 사람과 교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사탄은 언어를 수단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의 작용, 즉 인식의 작용에 호소하여 죄를 사람 속에 들여보내는데 성공하였던 것이다. 만일 다른 방법으로 죄를 사람 속에 집어넣으려 했다면 성공하지 못했을 것이다. 즉 사람이 사탄의 말을 듣지 아니했다면, 사탄의 말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의미가 아니라 물리적으로 전혀 사탄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다면 죄를 지을 기회가 없었음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에덴동산에서는 그 어느 것도 불순하거나 불의하거나 죄악을 상상하게 할 만큼 부패한 요소들을 찾을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이 에덴동산 안에서 살고 있는 동안에는 어떤 것을 보고 만지고 먹든지 간에 죄에 대한 개념을 가질 수 없었던 것이다.
사탄은 사람을 죄에 떨어뜨리기 위해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 이상(以上)의 것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나아가 그것을 추구하고 욕망을 갖게 함으로서 자기가 속한 현실에 대하여 불만을 갖도록 만들어야 했다. 그와 같은 방향으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영혼의 기능이 작용하도록 계속 부추겨 나가야 했다. 그래서 사탄은 어떻게든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이성을 자극하여 현실에 대하여 만족하지 않고 무엇인가 불합리한 요소를 찾아내도록 부추기고 그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에서 사람으로서는 생각해서는 안될 것까지도 추론하고 추진해 가는 방법을 사용하였던 것이다.
사탄은 하와가 하나님에 대하여 반감을 갖도록 유도할 경우 성결한 영혼의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하와로부터 반박을 당하게 될 것이 자명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사탄은 처음에는 매우 친밀한 방법으로 하와에게 접근하여 교제를 나누고 서로 신뢰할 정도로 사이가 가까워진 후에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하와와 정상한 인격적 관계를 가지기 위해 교제한 것이 아니라 하와가 가지고 있는 신(神) 지식에 사상적 불순을 심어주기 위해 교제를 하고자 한 것이다. 사탄은 처음부터 불순한 의도를 가지고 있으면서 그 사실을 하와에게 숨기고 있었다. 사탄이 불순한 감정을 가지고 비열하게 하와에게 접근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와는 순수한 마음으로 사탄을 교제의 대상으로 삼은 것이 죄의 시작이었다.
왜냐하면, 하와가 교제의 대상으로 삼고 있는 사탄의 분신인 뱀은 하와와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는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협력하여 거룩하신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수행해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그 사명을 수행함에 있어 인격자인 아담과 대화하고 교제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고양해 나가야 했던 것이다. 혹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면 의당히 아담과 대화를 통하여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새롭게 세워나가야 하는 것이다.
뱀은 아무리 보기에 아름답고 영특하여 귀엽다 할지라도 교제의 대상이 아니라 통치의 대상인 것이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논할 대상은 더욱이 아니었다. 하나님의 계시는 신령한 것으로 그 언약을 받은 인간을 제외한 여타의 피조물들은 감히 그 계시에 대하여 논하거나 토론의 대상으로 삼을 수 없는 것이다. 그처럼 고귀한 하나님의 계시에 대하여 뱀과 토론의 주제로 삼았다는 것은 그만큼 하와가 계시를 소홀히 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하와가 계시에 대하여 소홀히 한다는 것은 그 계시의 중요성에 대하여 심각하게 여기지 아니했다는 증거라기보다는 계시에 대하여 철저한 사상을 가지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그 결과 하와는 점차 사탄의 논조(論調)를 수용하고 말았던 것이다.
사탄은 하와와 가까워지자 절대자이신 하나님에 대하여 조금씩 의문을 갖게 하는 방향으로 대화를 이끌어 갔다. 하와는 처음부터 사탄의 언사에 대하여 인정하거나 동조하지 않고 자기 나름대로 사탄을 이해시키려고 하였을 것이다. 그러다가 점차 사탄의 논리에 대하여 옳고 그름을 자기의 이성으로 판단하고자 하는 자료로 접수하기 시작하였다. 어떤 부분에서든 인정할 수 없었던 사탄의 논리라 하더라도 자꾸 되새겨 볼 때 점차 그 사상에도 나름대로 그럴듯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여기게 되었던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사고(思考)해 나갈 때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합리성이 그 안에 있다고 생각하는 데까지 이르게 되었던 것이다. 이것은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치밀하지 못했던 데에서부터 시작된 당연한 결과가 아닐 수 없다.
하와는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조금씩 불신이 생기면서부터 점차 사탄의 생각에 동조하기 시작하였고, 마침내 하나님의 언약에 대하여 의심하는 정도까지 도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사탄의 말을 신뢰하고 스스로 결단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기 시작하였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명령하신 말씀에 대하여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이다. 하와는 그 말씀을 거역하는 구체적인 행위에 도달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기에 이른 것이다.
하와는 이 약속의 말씀을 기계적으로 접근하고 너무 쉽게 자기 위주로 해석해 버렸기 때문에 사탄이 그 말씀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도록 꼬드길 때 비판 없이 그 언약의 말씀에 대하여 의심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기 이성의 능력을, 이때까지 하와의 이성은 순수하고 거짓과 악이 없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점차 하나님에 대하여 의심하고 부정하는 방향으로 발휘하게 됨으로서 마침내 하나님을 거역하는 자리에 도달하고 만 것이다. 결국 인류는 하나님과 맺은 최초의 언약을 스스로 파기하고 말았던 것이다.
2. 은혜 언약을 체결하신 하나님
창세기 3장은 인류가 최초에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타락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이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죽음의 상태에 놓여져 있던 인간을 향하여 하나님은 친히 찾아오셨다. 영원히 죄 가운데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에게 찾아오셨다는 사실이 바로 은혜인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인간에게 새롭게 언약을 맺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을 은혜 언약이라고 한다.
여기에서 계약과 언약의 차이점을 재차 확인할 수 있다. 곧 언약(창조 언약)을 위반한 아담에게 찾아오셔서 은혜가운데 새로운 언약을 맺으시는 점이 계약과 다른 점이다. 이런 특징은 일반 계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계약에선 위약이 될 경우엔 즉시 그에 따른 보상을 해야 한다. 그러나 언약에선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더 나은 조건으로 새롭게 언약을 체결하신다. 차츰 더 나은 조건으로 언약의 핵심이 되는 약속 즉 인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은 결코 변하지 않으면서 오히려 나중에 세워진 언약이 앞서 세워진 언약보다 좀 더 그 조건이 나아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앞서 세워진 언약이라고 해서 어디가 부족하거나 뒤에 세워졌다고 해서 내용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어느 시기에 세워진 언약이든 그 나름대로 완벽한 언약이며 그 언약에 따라 영원한 구원을 얻는 것도 전혀 다를 바가 없다. 이 언약은 갈수록 갱신되고 있으나 서로 유기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으며 그 핵심은 결코 변하지 않는 독특한 특성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언약의 유기적 점진성이라고 말한다.
아담과 두 번째 맺은 은혜 언약에선 인간과 사탄이 영원한 원수가 될 것이며 특별히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여자의 후손을 통하여 사탄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을 약속해 주셨다(창 3:15). 그리고 그 후손이 누구인가는 점차 밝혀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