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시대의 노예제도
** 노예가 되는 경우들
- 어머니가 노예이면 자녀는 노예가 된다.
- 전쟁 포로가 노예가 된다. 그러한 노예 중에는 전문직의 노예들이 있었다.
- 속국의 의사들이 포로로 잡혀와서 의사로 활동하며 사는 노예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 부모가 빚으로 인해 자녀를 노예 시장에 파는 경우도 있었다.
① 그 당시의 노예는 가축법에 적용되었다.
노예에게는 인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주인의 소유물로 인정되었다. 그래서 노예는 주인에게 절대적인 권한이 있었다. 아리스토델레스는 ‘노예를 영혼 있는 재산’ 그리고 주인의 손 안에 있는 ‘영혼 있는 도구’라고 정의한다. 플라톤도 노예는 물적 재화로 간주된다고 했다. 이것은 노예를 인간학적으로 정의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정 안에서 가지고 있는 그의 기능을 규정하는 것이다. 노예는 경제적인 유용성의 측면에서 볼 때, 재산에 해당된다.
노예는 사법적으로 레스(res,물건)로 규정된다. 따라서 노예와 관련해서 생겨나는 법적인 사건들은 소유권적 내지는 물권적으로 규정된다. 따라서 타인 소유의 종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엄한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바울이 빌레몬의 노예였던 오네시모를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사랑 받는 형제라고 부르면서 주인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용서해달라고 부탁한 것은 당시 사회에서는 좀체 볼 수 없는 일이었다.
② 노예의 직업과 지위
집안일이나 농장 일을 주로 담당했지만, 여러 다른 직업들을 가지기도 했다.(의사. 교사. 회계 담당. 관리인 자격을 지닌 노예 등) 일반적으로 노예가 가정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 따라 그 가정에 관여했다. 고대 사회조직에서 물건으로 간주되었던 노예가 인간으로 간주되었던 자유로운 임금 노동자보다 더 나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는 가능성도 있었다. 로마제국 내에 3분의 1이 노예였다. 인구 60-90만 명 중에 20-30만 명이 노예였다는 말이다.
노예는 자신의 가정을 가질 수 있었고 뿐만 아니라 석방과 자유를 살 목적으로 개인의 재산을 모을 수 있었다. 이것은 노예들이 자발적으로 일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
빌레몬서의 오네시모는 보잘것없는 종이었을까? 아니면 빌레몬의 재정을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자였을까? 보통 보잘것없는 평범한 종이었다면 주인의 재산을 함부로 손 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오네시모는 빌레몬의 재정 관리역할을 담당하였기 때문에 주인의 돈을 훔쳐서 달아났을 가능성이 많다.
③ 노예에 대한 법
도망간 노예가 잡히게 될 경우에는 즉시 처형할 수 있었다. 만약, 도망간 노예를 숨겨주었을 경우 숨겨준 자가 노예의 하루 품삯을 주인에게 갚아주어야 한다. 왜냐하면 도망한 노예에게 어떠한 도움이라도 주는 행위는 도적질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1세기 로마에는 도망간 노예를 체포하는 기관을 운영했다. 우리나라의 추노와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 도망간 노예가 체포영장에 의해 체포되거나, 전문적인 노예사냥꾼들에게 붙잡힐 경우, 채찍 형에서부터 낙인 형을 거쳐 십자가형에 이르기까지 온갖 형벌을 받았다. 특히 주인에게 반역하는 행위는 십자가에서 처형을 당했다.
그리고 주인이 노예에게 자유를 주어 풀어주었지만, 스스로 주인을 섬기겠다고 하는 노예는 귀를 뚫고 영원히 주인의 노예가 되는데(신 15:16,17), 그러한 노예를 많이 데리고 있는 주인은 존경을 받는다.
④ 주인의 절대적인 권한
노예들은 사소한 잘못에도 잔인한 벌을 받았다. 로마의 초대 황제였던 아우구스투스는 길들인 메추라기를 우연히 죽게 한 노예를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했다. 90년경 사도 요한의 때에 기독교를 박해한 도미티안 황제는 목욕물을 너무 뜨겁게 데웠다고 노예를 화로에 태워 죽였다. 베디우스 폴리오는 수정으로 만든 잔을 떨어뜨려 깨뜨린 노예를 연못에 집어 던져 칠성장어에게 산채로 뜯겨 죽게 했다.
먼지 한 점 묻은 것, 은 조각 하나 잘못 닦은 일, 파리를 쫓지 못한 일, 식탁을 바로 놓지 못한 일, 의자를 바로 놓지 못한 일, 식사를 기다리는 동안 재채기하거나 기침하거나 말 한 마디 속삭인 일, 술시중이나 목욕물의 온도를 조절하지 못한 일 등으로 노예들은 채찍을 맞거나 매를 맞았다. 여주인들도 자기 하녀들이 시키는 대로 머리를 만져주지 못하면 손톱으로 하녀를 할퀴거나 채찍질했다. 주인이 살해되면 노예들도 처형당했다. 페디아누스 세쿤두스가 살해되었을 때에 처형된 노예가 무려 400명이 넘었다고 한다.
⑤ 로마법에 의해 보호받음
가정윤리학은 노예처우에 대한 규정들을 만들었다. ‘노예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주인 자신의 입장을 특별히 고려해서’ 노예를 잘 다스리라고 즐겨 조언하곤 한다. 사람들을 ‘노예들에게 오만불손하게 굴지 않고, 자유인들 대할 때처럼, 그들에게 부당하게 대우하지 않는 것’이 바로 노예를 잘 다스리는 것이다. 노예는 ‘가정’의 유익과 안녕을 가져오는 한, 그는 착한 노예라는 식으로 취급되어야 한다.
⑥ 노예들의 종교에 대한 자유
일반적으로 노예는 로마의 법 정신에 따라, 가정윤리학(노예를 물건으로 취급)에서와는 달리, 종교적인 면에서는 언제나 페르소(인간)로 인정되었으며 그의 법적인 자격도 인정되었다. 예를 들어 그의 선서나 맹세는 구속력이 있으며, 그의 묘지도 자유인의 것처럼 성역으로 간주되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노예들도 공식적인 예배의식에 참여할 수 있었다. 그런 의식에서 노예들은 시한부적으로 예외적인 권한과 자유를 누렸다. 예를 들어, 주인과 공동식사를 하고 놀이를 한다든지, 식사 때에 역할을 바꾼다든지 하는 것 등이 그렇다. 노예들은 자국의 신들을 가져와서, 이국 땅에서 그 신들에게 제사를 지낼 수 있는 자유를 지녔다. 로마인들과 살면서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신들을 택하여 마음대로 제사할 수 있었다.
⑦ 노예에게 주어지는 자유
로마시민들은 많은 노예들을 해방시켰는데 그렇게 해방된 노예들은 리베르투스(libertus, 남성자유민)나 리베르타(liberta, 여성자유민)가 될 뿐 아니라, 로마시민도 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자유민은 과거의 주인(현재 그의 후원자)에게 특정한 법적 책임에 의해 예속되었고, 공직이나 기사의 신분에는 올라갈 수 없었다. 원로원 의원과의 결혼도 불가능했다. 그러나 자유의 몸이 된 이후에 태어난 자녀들은 사회적 자유를 완전히 누릴 수 있었고 귀족계급까지 오를 수 있었다.
악당을 의미하는 villain [vilən]은 1.000년전에는 단순히 '농부'라는 뜻이었습니다. 중세를 거치며 농노들의 반란과 약탈이 늘어나며 안 좋은 의미로 굳어진 것입니다.
우리 일상에서도 여성을 좋은 의미로 여신, 요정. 나쁜 의미로 공주라고 비유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원래는 공주도 좋은 쪽에 속하는 단어인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노예라는 단어에 어떤 이미지가 투영되시나요?
아마 미국의 노예를 생각하실겁니다.
노예의 이미지가 안좋은 쪽으로 굳어진 것은 16세기 유럽의 노예무역때 입니다.
수천년 인류역사에서 노예가 지금처럼 비참한 이미지화 한 것은 불과 몇백년 사이의 일입니다.
물론 노예의 어원이나 실상이 여신이나 공주처럼 좋은 의미의 단어나 모습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비참한 모습만을 지칭하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기원전 그리스 노예나 1~2세기 로마시대의 노예들은 법적신분이 노예일 뿐 여러가지 일상은 자유민과 구분하기 어려웠습니다. 주인이 부유하면 노예도 부유했고, 주인이 가난하면 노예도 가난했을 뿐입니다. 일단 노예는 법적으로 주인의 '소유물'이었습니다. 또 노예 뿐 아니라 아내나 자식도 고대에는 가족보다는 소유적 개념에 가까웠습니다.
로마시대 시골 노예는 대부분 농사나 힘든 광산 일을 했지만, 도시 노예는 교사, 요리사, 상인, 의사 등 광범위한 직업에 종사했고 입는 옷도 자유민과 구별되지 않았습니다. 노예지만 경호원, 노예지만 가정교사, 노예지만 주택관리인 등 아마 영화나 소설 등에서 보셨을 겁니다.
역사학자 스코트 발트치는 "1세기 노예들의 유일한 공통점은, 각자 주인이 있었다는 점 뿐이다." 라며 그 시대 노예들의 다양한 삶을 설명합니다.
노예가 누리는 삶의 질은 주인에 따라 천차만별이었습니다.
고대의 노예는 16세기 유럽이나 19세기 미국의 노예보다는 오히려 노동자에 가깝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다만 그들은 주인을 선택할 권리가 없었습니다.
만약 권력을 지닌 주인의 노예라면 그 삶의 질이나 사회적 대우는 일반 자유민보다 우월한 경우도 종종 있었습니다.
1세기 노예는 자기가 맡은 일에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실수나 실패에는 징계가 성공에는 보상이 있었습니다. 그 보상중에는 해방도 포함됩니다.
특이한 것은 해방된 노예들이 전 주인과의 관계를 계속적으로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특히 전 주인이 사회적 명사일 경우 그것은 자유민으로서도 큰 메리트가 되기에 자신을 누구의 노예였다고 소개하거나 심지어 묘비에 기록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이것을 단순한 노예근성이라 보기는 어렵습니다.
주인이 노예를 공식적으로 해방시키면 노예는 법적으로 로마시민권자가 됩니다. 그런데 특이한 것이 주인은 이 노예가 자유민으로 살아갈 수 있게 지속적으로 후원을 했다는 것입니다.
노예는 로마시민이 되어 매매, 결혼, 고문면제, 사형면제 등 로마시민으로서의 특권과 전 주인의 후원을 받습니다. 물론 후원을 받을 경우 자유민이 된 노예는 전 주인에게 의무적 봉사를 실행해야 합니다. 노예들은 아버지가 없습니다. 전 주인이 자유민이 된 노예의 법적 아버지가 되는 것입니다. 전 주인은 자유민이 된 자신의 노예가 법정에 서면 그를 정죄하는 증언도 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해방이 아니라 입양이 되어 상속자가 되는 노예가 있었습니다. 이 경우 단순히 신분만 변한 것이 아니라 과거를 종결시키는 변화였습니다. 이전 사회적 법적 관계가 소멸되고 주인의 가족구성원으로 모든 것이 변합니다. 아버지가 된 주인의 죽음 이후 일어날 모든 법률적 문제를 입양 당시 결정해 두고 입양을 선언합니다.
마치 일본의 가신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주인을 섬기고 봉사하고 주인에게 생사여탈권이 있지만 가족처럼 가깝고 주인의 선택에 가족이 될 수도 있는 관계.
물론 모든 노예가 저렇게 장미빛 인생을 살았다거나 노예라는 단어가 본질적으로는 좋은 뜻이다 이런 말은 아닙니다. 본문에 그런 표현은 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우리가 사용하는 단어가 지닌 내력과 상징이 계속 변하는 것처럼 그 단어를 지칭하던 본질도 역사속에서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참고 - 존 맥아더 著 SLAV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