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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 날아가는 소리 아침에 일어나기 전에 이불 아래에서 허리를 비틀었는데, 척추에서 비둘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반대 방향으로도 허리를 비틀었는데, 역시 같은 소리가 났다. 언제부터 이런 소리가 났더라. 개나리와 민들레도 구분 못하던 나이였을 거다. 어떤 만화책 주인공이 하는 짓이라며, 동네 형이 손가락을 꺾으며 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그 전까지는 신경쓰지 않았던 소리가 내게 멋진 의미로 다가왔다. 왼쪽 새끼 손가락 바깥에서 첫번째 마디를 꺾는 법은 간단하다. 왼 새끼 손가락 바깥쪽 한 마디의 손등을 보았을 때 왼쪽에, 오른 검지가 시작되는 부분의 손등을 보았을 때 왼쪽을 접한 다음, 왼 새끼 손가락의 바깥쪽에서 두 번째 마디와 세 번째 마디 사이의 관절을 오른 엄지로 꾸욱 밀어준다, 안에서 바깥쪽으로. 그러자 '뚝'소리가 났다. 마찬가지의 방법으로 나머지 손가락들도 경쾌한 소리를 내며 밤새어 같은 자세로 있었다는 불쾌함을 토하게 했다. 동일한 관절이 여러 방향으로 비틀려 소리를 내는 것인지, 각자 다른 관절이 소리를 내는 것인지는 구분할 수 없었지만, 내 손가락들은 하나당 적어도 다섯 가지 방법으로 소리를 냈다. 이는 발가락들도 마찬가지였다. 중학교때 학교에서 수업을 들으며, 지겨운 마음을 달래기 위해 생각 없이 꺾기 시작했던 것들이 손가락에서 손목으로 전이되고, 언젠가 목을 꺾어보니 목에서만 여덟 가지 방식으로 소리가 났다. 어깨 죽지와 팔꿈치에서도 소리가 났고, 허벅지나 다리는 물론 발목에서도 소리가 났다. 척추에서 소리를 내는 방법만 해도 열 가지가 넘었다. 햇살이 먼지낀 창문과 얇은 커튼을 뚫고 이불에 닿았다. 이불 밖의 차가운 공기가 팔과 등에 닿았다. 척추 근처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열몇가지 방법 중, 스스로 가장 감명 깊게 발견한 것은 심장과 매우 가까이 있는 부분의 척추에서 소리가 나는 방식이다. 바닥에 앉아 어깨를 편안하게 편 상태에서 양 발바닥이 마주 닿도록 한다. 그 상태에서 양발의 열 발가락을 양 손으로 모아 쥐고 배쪽으로 당기며 고개를 최대한 뒤로 젖힌다. 그러면 심장 바로 위쪽에서 척추와 척추 사이가 벌어지는듯한 느낌과 함께 굉장히 충격적이고도 시원한 느낌이 드는데, 난 이것을 정말 좋아한다. 일어나서 이불을 개어 장농에 넣다가 발목이 삐끗했다. 발 앞꿈치의 새끼발까락 부근에 몸의 무게중심을 옮기며, 뒤꿈치를 발레하듯 최대한들어올려, 발목 관절에서 소리가 나게 했다. 그리 하니 삐끗한 발목의 고통이 덜했다. 왼쪽 허벅다리뼈와 골반뼈 사이의 어디에선가 소리가 나게 하는 방법이 있다. 일단 바닥에 등을 대고 눕는다. 무릎을 세워서 한 곳에 모으고, 다리가 교차하지 않게 종아리를 사람 인자 모양으로 세워둔다. 그렇게 하면 가랑이 안쪽 허벅다리뼈에서 루빅스큐브의 6면 색깔이 모두 맞아들어가는 듯한 감각의 삐걱거림이 있을 것이다. 거기까지 완료했다면, 다음은 매우 간단하다. 발 앞꿈치를 중심축으로하여 발 뒤꿈치를 아웃사이드로 감아 돌린다. 그럼으로써 다소 여성스러운 자세로 시원한 울림을 느낀다. 간혹 길을 걷다 기분 나쁜 경험을 하기도 했다. 골반뼈와 허벅지뼈가 연결되는 부위가 이상하게 삐걱거리곤 하는 것이었다. 길을 걷는 내내 그 삐걱거림이 멈추지 않고 심지어는 통증을 동반하는데, 가끔은 무릎이 그럴 때도 있고 발목이 그런 적도 있었다. 그러한 경우 길을 가는 동안 다른 데에 전혀 집중하지 못하여, 그 뼈가 뒤틀린 느낌에 신경을 쓰게 되고, 결국 앉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된다. 하지만, 급한 사정으로 오랜 걸음을 걷는 경우 나는 미치기 일보 직전에 이르곤 했다. - 내가 다닌 초, 중, 고등학교는 전부 도보 통학을 할만한 위치에 있었다. 작년에 한 번은, 꽤 오랫동안 그렇게 삐걱거리길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조사를 해 보았다. 그런 검색을 하는 동안 의자에 앉아 있었더니, 어느새 통증은 끝나 있었다. 통증은, 끝나면 잊어버리기 마련이다. 나는 별 걱정 없이 냉장고와 컴퓨터를 왔다갔다하면서 식사와 오락을 즐겼다. 그렇게 그 날의 조사는 끝난 것. 그런데 조사 중에 알아낸 몇 가지 사실이 있었다. 하나는, 이러한 관절 소리가 인체에 어떠한 영향을 주는지가 아직은 의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는 것이었다. 몇몇 의사들은 성장기에 관절에 무리가 가서 중노년기에 관절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권고를 하기도 한단다. 몇몇 의사들은 오히려 그러한 행위가 관절을 부드럽게 할 수도 있다는 견해를 보였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별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신체 현상 중 하나.'라는 느낌이 강했다. 누리꾼 중 하나가 말하기를 '내 50평생 관절을 뿌드득거리며 살았건만, 아무 이상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누구는 '그래도 손가락을 꺾어대는 사람들 보면 손가락이 두꺼워지더라고요.'하고 말했다. 세수를 하기 위해 욕실에 간 나는, 손가락이 두꺼워진다는 의견을 생각하며 거울을 보았다. 자세히 보니 왼쪽 눈과 오른쪽 눈이 약간 달랐다. 손을 들어 얼굴을 반씩 가려보고는, 왼 턱이 오른 턱보다 쳐져 있어 왼쪽 귀가 오른쪽 귀보다 약간 뒤쪽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이며 그 덕에 얼굴 전체의 균형이 틀어져 왼쪽 눈이 더 매서워 보인다고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손가락 관절의 소리와 손가락 생김새가 연관이 있다면, 내 얼굴이 그런 모양을 하고 있는 것도 무언가 그 쪽에 관련이 있지 않을까하고 생각했다. 실제로 왼쪽 턱에서 소리가 나는 방식과 오른쪽 턱 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방식이 달랐다. 왼쪽 턱은 턱을 내밀고 왼쪽으로 이가 어긋나게 씹는듯한 동작을 할 때 소리가 났지만, 오른쪽 턱은 턱을 왼쪽으로 비집어낸 상태에서 오른쪽 턱 근육을 긴장시킨 후 아랫니를 오른쪽으로 평행이동시키면 소리가 났다. '맞아요! 손가락이 두꺼워지는 이유는 손가락 뼈가 자라지 않기 때문인 것 같아요. 허리나 다리 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사람은 키가 덜 자라지 않을까요?'라는 한 누리꾼의 말을 떠올리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하지만 내 키는, 공중화장실에서 자칫하면 소변기 위쪽에 오줌을 흘릴 만큼 컸고, 어릴 때부터 먹는 걸 많이 귀찮아했던 나로서는 충분히 큰 키였다. 척추에서 소리가 난다고 했지만, 사실 척추와 갈비뼈 사이의 관절에서 소리가 나는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검색 중 한의학적으로, '신장이 안좋은 사람은 귓병이잘생기고, 뼈에서 소리가 나고, 허리가 안 좋'다는 설도 보았다. 그러고보면 특별히 내가 허리가 안 좋지는 않아도, 귀가 자주 아픈 편이기는 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신장에 관한 병에 걸린 적은 없었다. 인터넷에 떠도는 온갖 '신빙성있을 가능성이 있는 소문' 중 하나로, '관절 사이의 공기가 빠져 나가는 소리'라는 주장이 있었다. 다른 측에선, '관절 사이에 있는 미세한 채액 주머니가 터지는 소리'라고도 한다. 그런가하면 '인대와 근육의 마찰음'도 그 소리를 만들어내는 데 한 몫을 한다는 말도 있었다. 탄발음성 견관절과 탄발음성 고관절 어쩌구라고 불리우는 심각한 증상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따져 보면 내 몸에서 이러한 소리가 나는 것이 한두 군데가 아니기 때문에, 각각의 부위는 이러한 다양한 원인 중 하나, 혹 둘을 선택하여 소리를 들려주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 어쩌면 나는 남들이 상상조차 못한 부위에까지 소리가 나게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명치에서 양 방향으로 갈라지는 갈비뼈를 따라 손을 가져가서 숨을 내쉬어 배를 홀쭉하게 한 후 각각의 갈비뼈를 아래쪽으로 움켜잡는다. 그러곤 손가락의 힘으로 갈비뼈의 안쪽을 긁어 밖으로 비집어내는듯한 동작을 하면 갈비뼈에서 소리가 난다. 이것은 습관삼아 자주 하다가는 큰코 다칠 정도로 아픈 부위이다. 이런 식으로 갈비뼈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위치도, 따지자면, 여섯 곳이 있다. 모두 어지간하면 건드리고싶지 않은 곳이지만 말이다. 각 위치의 관절은, 내게 이런 소리를 맨 처음 들려줄 때 가장 깊은 감각적 자극을 선사했다. 그게 청각이든, 촉각이든……, 통각이든 말이다. 습관적으로 관절을 비틀고 누르고 당기다보면 서서히 그 자극은 익숙해진다. 심지어는 굳이 내려고 하지 않아도 그 어긋나는 감각은 - 가루로 된 감기약이나, 옆집 개가 짖는 소리나, 초겨울의 추위처럼 - 찾아온다. 그러다가 언젠가부터는 그런 소리가 왜 나는지, 그런 소리가 나는 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굳이 생각하려고 하는 것조차 한심하게 느껴질 정도다. 들은 것 없이 커다랗기만 크로스 백을 휘둘러 매다가 왼쪽 어깨와 팔의 뼈 사이에서 소리가 났다. 금요일이었다. 나는 맑은 하늘에 입김을 뿜었다. 그러곤 목을 꺾었다. 기하학적 스카이라인의 아래에는 어두운 건물들이 직육면체다운 명암을 드러내고 있었다. 볕은 커다란 콘크리트 묘석의 유리창을 비추었다. 그 빛이 다시 반대편 유리창에 비추고 다시 튕겨나와 내 수정체를 불질렀다. 내 각도에서는 그런 식으로밖에 태양을 볼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눈을 피했다. 그 건물들의 1층에는 간판이 있고, 쇼윈도가 있었다. 자동차를 위한 쇼윈도, 옷을 위한 쇼윈도, 차 한잔의 안락함을 위한 쇼윈도. 겨울은 지각변동 없이도, 세상을 바들바들 떨게 했다. 판매원의 넥타이도 학생들의 가방도 스님들의 목탁도 버스의 시동 소리와 함께 떨었다. 버스는 한숨을 쉬곤 사람을 먹었다. 입을 닫고 출발했다. 기울어진 세상은 중력과 아스팔트와 구두 뒷굽 덕분에 싱크대 구멍으로 빨려들어가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나는 또 하루라는 모험을 시작했다. "네가 아냐?" 나는 테이블 좌측 상단에 있는 김치를 젓가락으로 잡으며 팀장을 쳐다보고, 김치를 입에 넣고 숟가락을 밥에 꽂으며 심드렁하게 되물었다. "뭘요?" "죽인다는 기분을 말이야." "글쎄요." 내가 '죽인다'는 표현을 썼던 것이 불만인가? '노쇠하여 허약해져가는 우리 허리의 고통을 견디기 위해 우리가 해야할 일'이라는 논점을 가진 토론. 나는 그에 대하여, 열 다섯 동작의 스트레칭을 통해 허리뼈와 등근육을 충분히 풀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그에 반발하여 팀장께서는 멸치를 많이 먹어야 하노라고 말했다. 나는 단순히 팀장께 뼈에서 근육과 인대로 전해지는 그 진동의 감각을 알려드리고 싶었을 뿐이다. 그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자극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느낌이 '죽인다'고 말했던 것이 지금 팀장은 불만이라는 것인가? "개, 잡아본 적 있냐?" 옛날엔 있잖아, 개줄을 한 쪽에 묶어두고 개를 나뭇가지 위로 던져 넘겨서 개를 목 메어 죽이곤 했단 말이야. 그러니까 만약, 이 젓가락이 나뭇가지다. 그리고 이 잡채 줄기가 개끈이란 말이야. 그리고 이 쪽에 달랑달랑 개가 목을 매고 죽어가는 거지. 개 목걸이가 그런 용도로도 쓰이던 시절이 있었어. 아니, 지금도 그런 곳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내가 어릴 땐 가끔, 산 속에 개가 매달려있는 꼴을 보곤 했어. 그래도 개가 죽어가는 꼴을 보긴 싫은지 사람들이 나뭇가지에 매달아놓고 집에 갔다가, 한참있다 다시 와서 죽은 걸 확인하고 요리했단 말이야. 가끔 보신탕에 관련한 토론이 인터넷에 올라오면, 애완용이 아니라 식용이라는 둥 재잘대는 인간들이 있는데 - It, isn't - 아니지. 아이들에게는 애완용이었고, 아버지에겐 집을 지키는 파수꾼이었고, 동시에 온 가족의 식용이었어. 사실, 서구 문물이 수용되기 이전의 우리나라를 생각해봐. 소나 돼지나 닭도 집에서 기르고 개도 길렀지. 그렇데 소, 돼지, 닭은 먹으면서 개는 안 먹어봐. 굉장히 불평등하지 않냐? 난 그렇게 생각한다. 개와 다른 가축들의 차이가 뭘까? 왜, 할리우드에선 사람을 죽여도 개는 죽이지 않냐. 그건 단순히 서양에서 제스춰를 중시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소나, 돼지나, 닭은 개에 비해선 표정도 없고, 표현도 없고, 짖지도 않잖아. 그래서야. 우리나라에서는 적어도 사람과 짐승을 뚜렷이 구분했지만, 그래서 양키놈들은 거의 우상 숭배 수준인 거지. '의사표현능력'만을 따지고 보자면 개가 사람보다 낫거든. 근데 말이야, 언젠가 한 번 그런 적이 있었다. 개가 나뭇가지에 매달려있는 것을 보고 학교를 가서 6교시를 끝내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 그 개가 살아있더라고 - 꼬리를 흔드는 거야. 내가 산에 올라가서 그 개를 보니까, 개 목걸이 틈에 아슬아슬하게 틈을 만들어 겨우 숨을 쉬고 있더라. 그리고 조금 있다가 아저씨들이 올라와서 2.5미터 길이쯤 되는 굵은 각목으로 개를 패 죽이더라. 머리 좀 컸다고, 날 구경하게 내비뒀거든. 그래서 거리낌없이 개를 죽인 다음에 가스불로 지지는 거 까지 봤단 말이야. 그런데 개털이 다 탔을 무렵 갑자기 개가 벌떡, 일어나더라. 그러더니 혀를 내밀고 가스불로 지지는 아저씨를 보면서 꼬리를 흔들더라. 그러니까 옆에 있던 아저씨가 각목으로 한 대 다시 내려치고, 그 다음엔 뭐, 배 갈라서 씻고, 구워먹든 삶아먹든 했겠지. 그런 팀장의 이야기를 경청하며, 나는 의자를 잡고 허리를 비틀었다. 척추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몇 가지 방법 중에는 의자를 활용하는 방법이 있다. 가능하다면, 발목과 발을 이용하여 의자에 하체를 고정한다. 그리고 허리를 30도 정도 꺾은 상태에서 근처의 사물을 잡는다. 의자 손잡이나 허리 받침대가 좋다. 잡았으면 천장에서 내려보았을 때 골반뼈와 갈비뼈가 직각을 이루도록, 혹은 그 이상으로 허리를 틀며 뒤를 바라본다. 혹시 쉽지 않다면 다리를 꼬거나 위치, 각도 등을 달리하여 다시 시도해보며 스스로 찾아보면 자신의 몸에 맞는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적당한 높이의 등 받침대를 이용하여 받침대에 고정된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을 틀어 소리가 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그런데 오늘 따라 허리에서 소리가 나지 않았다. "요즘에 로봇 개 팔리잖아. 그거 왠지 위험하지 않나 싶다. 인본주의가 흔들리고 있어. 그런 걸 기르면, 인간이 인간을 존중하지 못하게 될 것 같다." "그래서 죽인다는 기분이 어쨌는데요." "나는 개를 잡아봤거든!" 팀장은 자랑스럽게 말했다. 목소리가 조금 컸다. 옆 테이블에서 긴꼬리여우원숭이같이 생긴 여자가 기분 나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개를 잡으려면 말이야, 인간이 아닌 건 생명도 아니라고 생각해야 하지. 뭐, 그리 어려운 건 아니야. 단백질과 지방과 칼슘과 인, 그리고 뭐더라, 물로 이루어진 기계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는 거지. 그러면, 죽이는 게 아니야. 부수는 거지. 먹는 게 아니야. 합체하는 거지. 우리가 모기나 파리를 잡을 때마다 죄책감을 느끼지는 않잖아, 안 그래? 그게 바로 '죽인다'는 기분이지." 팀장은 그렇게 말하곤 한동안 창 밖을 바라보았다. 물론, 두 '죽인다'는 말은 의미가 달랐다. 그 부분을 따지고 들자면, 충분히 따지고 들 수 있을 것 같았지만, TV 100분 토론도 아니고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이제 밥도 다 먹었고 말이다. 아침 여덟 시 반, 직장 앞 식당에서 팀장과 나는 밥을 먹는다. 1년 전만 해도 이 아침 식사 모임의 인원은 네 명이었다. 우리는 모두 아침밥을 집에서 해먹지 못하고 출근하는 형편이었고, 우연히 같은 식당에서 아침에 마주치게 되면서, 늘 함께 아침을 먹곤 했다. 한 명은 해고되었고, 한 명은 죽었다. 전자는 준늙은이고, 후자는 여자다. 조기 퇴직과 자살. 다시 의자를 잡고 허리를 비트는 시도를 해보았다. 빌어먹을, 실패하면 시도하지 않으니만 못하다. 기분 나쁘게 찌뿌둥하고 말이다. "그 말을 들으니, 마이크가 생각나는데요." "마이크?" "예, 목이 잘린 채 18년간 생존했던 닭이요." 팀장은 그릇 바닥의 밥알갱이를 숟가락으로 긁어모으다 말고 쳐다보았다. "닭이 뭐?" "진짜 있어요. 목이 잘린 채 살아서 잘 걸어다닌 닭." "날아다닌 건 아니고?" "이 인간이 또 못 믿네." "정말이냐?" "검색해봐요, 인터넷상의 무슨…… 미국 과학 잡지가 사실이라고 인정했다던데요." 그러니까 그 닭 주인이 모가지를 자른 다음에, 그 닭을 자루에 담으려고 했는데요……, 그 닭새끼가 머리를 남겨두고 어디론가 없어진 겁니다! '어! 이 닭이 어디 갔지?'하고 닭 주인이 여기저기 찾아보니까, 고놈이 살아있는 닭처럼 다른 닭들 사이에 숨어있더라는 거죠. 제가 인터넷에서 사진도 봤는데, 사람으로 치자면 여기 쯤 - 빗장뼈(쇄골) 윗부분 - 까지가 없는 거죠. 물론, 닭이 걸어다닐 때 머리를 흔들면서 균형을 잡는다는데, 어떻게 그 닭이 걸어다녔을까 궁금했지만……, 어쩌겠습니까? 과학적으로도 인정했으니까요. 목을 쳐도 뇌간이 살아있는 경우가 있어서, 대부분의 반사신경이 살아있는 닭과 같데요. 마이크라는 그 닭 주인은, 뭐 서커스같은 데서 닭을 구경시켜주고 돈도 받았다고들 하던데요. 영혼이니 생명이니 감정이니 자아니 하지만, 그저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추켜세우기 위해 우리를 신비로운 존재로 만들고 있는 것 뿐이라고 저도 생각해왔어요. 이렇게 생각한다고 뭐가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우린 열효율 좋은 기계에 불과하지요. '종족 보존의 본능'이라는 명령어를 탑제하고 있는 기계요. "진지해지긴, 새끼. 개똥 철학 집어치워라. 그래. 나는 닭도 잡아 봤지. 한 다섯 번인가 잡아 봤는데, 그 중에 두 마리는 목이 잘린 채로 몇 초간은 파닥거리면서 개좆빤다고 도망치긴 하더만." 허리 근육을 풀려다가 오히려 젖산만 쌓였다. 좌우 각각 세 번씩은 시도한 것 같았다. 옆 테이블에 앉아서 쫄면을 먹고 있는 긴꼬리여우원숭이같이 생긴 여자는 '저 인간 뭐 하는 짓인가?'하고 흘끔흘끔 나를 쳐다보았다. "다 드셨죠, 팀장님?" 척추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열 몇 방법 중에 여섯 개 정도는 반동을 이용하는 것이다. 골키퍼가 멈추어있는 축구공을 찰 때의 동작과 비슷하게, 그러나 그것보다는 약하게 발을 들어올리면서 허리를 반대편으로 꺾는 것이다. 이 때 유의할 점은 발보다 약간 늦게 허리가 움직여야 한다는 점이다. 또 허리도 그냥 반대쪽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팔의 반동을 이용해서 돌리는 편이 좋다. 다리와 팔의 반동 방향에 따라 척추의 꺾이는 위치와 정도가 다르다는 점도 숙지해야 한다. 드디어, 허리에서 기분 좋은 소리가 들려왔다. 식당을 나서서 사무실이 있는 빌딩을 향해 걸어갔다. 우리 앞에 비둘기 한 마리가 목 춤을 추며 걸어가고 있었다. 갑자기 가래가 끓어, 녀석에게 뱉어보았다. 비둘기는 그런 소리를 내며 날아간다. 푸드드드드드드드……. 팀장과 나는 엘리베이터에 탔다. 5층과 닫힘 버튼을 누른 후, 나는 생각했다. '똥이 마렵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화장실로 직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런 사소한 예정은 쉽게 무산되기 마련이다. 4층에서 올라탄 여직원 두 명과 인사를 하면서 똥을 누어야 한다는 생각은 잊어버렸고, 어느새 마렵다는 감각도 사라져 있었다. 사무실에 들어가자 소장이 나를 불렀다. 그리고 미안한데 어깨 좀 주물러달라고 했다. 사실 나는 우리 사무실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안마 전문가이다. 나는 어깨와 팔, 등 근육의 중심점과 내 손의 딱딱한 부분들을 어떻게 이용하여 안마를 하는 것이 내 손의 피로를 최소화한 상태에서 상대방 근육에 적절한 자극을 줄 수 있는 방법인지를 쓰라면 책으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결코 안마하는 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생각한 건데, 사람은 자기 몸 정도는 스스로 안마할 수 있는 동물이다. 나는 지금까지 누군가에게 안마를 해달라고 부탁해 본 적이 없고, 그럴 필요성도 느낀 적이 없다. 목에서 소리가 나게 하는 몇몇 방법은, 분명 목 근육을 최대로 활용하기는 하지만 결국 그 시원한 느낌이 전달되는 것이 어깨 뒷부분이다. 그리고 비슷한 부위에서 소리가 날 때도, 내가 팔을 어느 방향으로 펴고 있는가에 따라서 자극을 받는 근육의 위치가 다르며, 이러한 사소한 차이를 이용하면 피로한 우리 몸의 각 위치에 대한 적절한 치료 효과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따지고 보자면 국민체조의 옆구리 운동, 등대 운동, 몸통 운동같은 경우 이러한 효과를 노렸다고 할 수 있겠다. TV에서 보아온 운동 선수들의 스트레칭이나 요가 동작의 일부 역시 그러한 안마 효과를 노린 듯한 것이 몇 있었다. "어, 고마워. 역시 안마 하나는 잘 한다니까." 소장은 눈짓으로 '자리로 가서 일하라'고 말했다. 나는 컴퓨터를 켜고 자리에 앉았다. 그러고보니 나도 어깨가 뻐근했다. 부팅시간동안 나도 목이나 좀 풀어볼까. 목에서 소리를 내는 방법만큼 간단한 것도 없다. 손바닥 한 가운데가 턱의 꼭지점에 닿도록 왼손으로 턱을 잡는다. 오른 손 역시 같은 방식으로 머리 꼭대기를 잡는다. 그리고 목에 힘을 풀고 손으로 고개를 갸우뚱갸우뚱 움직여본다. 그러다가 한 순간 확 재껴버리는 것이다. 그러자 역시 비둘기 날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어쩌면 좋은가.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세상이 뒤집혀있다. |
아크v의 글틀 |
첫댓글 어 씨발 이라고 해놓고 씨발을 지웠음 (?) 설마 다음 자동 필터링?
다음 자동 필터링이라는 건 틀린 말이고, 설마 자동 필터링이라는 말은 글쎄요.
비둘기 날아가는 소리라... 표현이 참 '상큼(?)'합니다. 암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설마다음자동필터링?
설마가사람잡네.
정말 잘 쓰셨네요. ^^ 잘 읽었습니다. 퇴고를 하신다면, 창비나, 문학동네에 단편으로 응모하셔도 좋을 만한 수준인 것 같습니다. 제 개인적인 의견이지만, 말입니다. 설마님이 예전에 시도 쓰시지 않으셨나요. 아무튼 잘 읽었습니다.
마지막에서 숨이 막히는군요. 내내 포즈를 따라해야 하나 고민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