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론
요한계시록 6장 15~17 말씀을 통해 뜨거운 토론이 이루어진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혹자들은 너무 논쟁적으로 흐른 부분에 대하여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저는 그 모든 열정이 하나님의 말씀의 참 뜻을 희구하는 심령에서 출발한 것이라면
다소간 토론상의 미흡한 점이 있더라도 충분히 포용할만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토론문화를 정착 시키기 위해서
좀 더 우리가 고려하고 깊이를 더해야 할 부분이 있어서
몇 차례 더 나누기를 원합니다.
여기서는 어법상의 차이점이 의미상 어떤 차이를 불러 오는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2. 여섯 째 인이 떨어졌을 때의 상황에 대한 이해
여섯 째 인의 재앙은 전지구적인 엄청난 재앙입니다.
인류가 일찌기 경험해 보지 못했던 재앙입니다.
그런데 말씀에는 땅의 왕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힘있는 자들과 자주자들과 그 모든 종들이
산과 바위틈에 마련된 자신들의 은신처로 도피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계6:15)."
◎ 에크뤼푸산(ἔκρυψαν): 크륖토(κρύπτω)의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복수 ‘그들이 숨었다(hid)’
◎ 헤아우투스(ἑαυτοὺς): 헤아우투, 헤아우테스 헤아우투(ἑαυτοῦ, ἑαυτῆς, ἑαυτοῦ)의 3인칭재귀대명사 남성변화 복수 목적격 ‘그 자신들을 (themselves)’
◎ 에이스(εἰς): 전치사 ‘~향하여, 속으로, ~에(for, to, in)’
◎ 타(τὰ): 호, 헤, 토(ὁ, ἡ, τό)의 정관사 여성변화 복수 주격 ‘그(the)’
◎ 스펠라이아(σπήλαια): 스펠라이온(σπήλαιον)의 중성명사 복수 목적격 ‘굴들, 은신처들, 지하 저장실들(the dens)’
◎ 카이(καὶ): 그리고
◎ 페트라스(πέτρας): 페트라(πέτρα)의 여성명사 복수 목적격 ‘바위(자연동굴, 벙커)(the rocks)’
◎ 오레온(ὀρέων): 오로스(ὄρος)의 중성명사 복수 소유격 ‘산들의(of the mountains)’
☞ 그들은 산들과 바위들의 굴(은신처)들과 틈(벙커)들 사이에 숨어들었다.
상황상 이 말씀은 땅의 유력자들이 여섯 째 인의 재앙에 대처하는 모습입니다.
자신들의 재난에 대비한 은신처를 산들과 바위틈에 준비해 놓았음을 알 수 있으며,
아직 이 은신처가 파괴되거나 부서진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엄청난 자연재해를 견딜 정도의 은신처라면 얼마나 튼튼하고 정교하고 기능적인지를 짐작할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우리가 이 말씀을 해석할 때, 고려해야 할 아주 중요한 점을 시사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이 여섯 째 인의 재앙이 객관적 사실적인 <주님의 진노의 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진노의 날>은 성경에서 <예수님의 재림의 날>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혹독함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이 진노의 날은
땅의 악인들의 모든 피난처가 부서지고 파괴되고,
심지어 하늘의 별들 사이에 깃들어 숨어 있다해도 모두 땅에 던져진 후의 일입니다.
더 이상 피할 곳이 없이 낯낯이 악인들의 민낯이 드러났을 때 있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인의 재앙에서는 아직 무섭고도 두려운 <주님의 재림의 날>은 아니라는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입니다.
3. 땅의 악인들인 유력자들의 말의 허구
이 상황에서 땅의 유력자들이 자신들의 은신처로 숨어들면서 하는 말이
<어린 양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감히 서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6:17)"
◎ 호티(ὅτι) : 접속사 ‘왜냐하면(how)’
◎ 엘덴(ἦλθεν) : ‘에르코마이(ἔρχομαι)’의 동사 부정과거 능동태 직설법 3인칭 단수 ‘그가 왔다(is come)’
◎ 헤(ἡ) : 정관사 단수 주격 ‘그(the)’
◎ 헤메라(ἡμέρα) : ‘헤메라, 헤메라스(ἡμέρα, ἡμέρας,ἡ)’의 여성명사 단수 주격 ‘날(day)’
◎ 메갈레(μεγάλη) : ‘메가스(μέγας)’의 형용사 단수 주격 ‘큰(the great)’
◎ 테스(τῆς) : 정관사 단수 소유격 ‘그(of the)’
◎ 오르게스(ὀργῆς) : ‘오르게(ὀργή)’의 여성명사 단수 소유격 ‘진노(the wrath)’
◎ 아우투(αὐτοῦ) : 3인칭대명사 남성 단수 소유격 ‘그~남자의(of him)’
☞ 그의 진노의 큰 날이 왔으니
아직 자신들의 은신처가 온전하여 산들과 바위들의 굴들과 틈들 사이에 숨어들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은
이 상황이 모든 것이 파괴되는 그런 객관적 사실로서의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진노의 큰 날이 왔다>라는 이들의 말이 객관적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4. 이 상황에 대한 어법의 차이에 따른 의미상의 차이
(1) 개요
그러면 이들의 말의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의미를 전달하는 어법으로는 직설법, 비유법, 과장법, 반어법, 가정법, 수사법, 희구법 등을 들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직설법과 비유법 또는 반어법 여부에 대한 다툼이 있으므로
이 어법상의 차이가 의미상 어떠한 차이를 가져오는지 살펴 보고자 합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6:17)"
직설법 ▶ "실제로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왔다." 라는 의미
비유법 ▶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과 같이 큰 재앙이 왔다." 라는 의미
반어법 ▶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아니다." 라는 의미
직설법적 의미는 객관적 사실과 합치해야 하는 것이므로,
실제로도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 왔고,
화자도 그 날이 하나님의 진노의 날이라고 알고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비유법적 의미는 반드시 객관적 사실과 합치해야 할 필요는 없지만,
그 객관적 사실과 비견될 수 있을 만한 상황이 있고,
화가가 그 상황을 객관적 사실에 비유하여 의미를 강조하여 부여하고자 하는 의미가 됩니다.
반어법적 의미는 객관적 미발생 사실에 대한 지식이 있는 상황에서
그 객관적 미발생 사실이라고 속일 수 있는 실제 상황(6째 인의 재앙)이 있고,
화자가 그 상황에 대한 의미를 축소하거나 조롱하고자 하는 의미를 전달하게 됩니다.
(2) 직설법 적용의 난제
앞서 여섯 째 인의 재앙에서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므로
객관적 사실로서 <그의 진노의 큰 날>이 아니라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직설법적 의미로 받아 들일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이를 직설법적 의미로 받아들임으로서
여섯 째 인의 재앙 내용을 <그의 진노의 큰 날>의 상황으로 만들고자 하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직설법으로 오인한 문제 중에서 가장 큰 문제라고 할 것입니다.
(3) 비유법 또는 반어법의 의미상 차이
그러면 이 말은 객관적 상황(그의 진노의 큰 날)과 상이한 상황(6째 인의 재앙)에 대하여
비유적 또는 반어적 어법으로 의미를 전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이제 그럼 마지막 두 어법을 통해 어떤 의미상의 차이가 있는지 짚어 봅시다.
이 말이 비유적 의미가 되기 위해서는,
화자가 이 상황을 중대하게 보고 있고, 의도적으로 의미를 축소하고자 하는 의도가 없어야 합니다.
반면 이 말이 반어적 의미로 사용이 된다면,
화자가 이 상황에 대해서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 비교하여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자 하는 의도성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4) 반어법인 이유와 증거
의미 축소에 대한 의도성이 있는지 없는지 여부는 화법에서 잘 드러나게 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유법은 의미를 확대하여 강조하고자 함이요,
반어법은 의미를 축소하여 강조하기위함 이 그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6:17)"
이 말씀에서 <그들의>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는 <아우투(αὐτοῦ)>로서 3인칭 단수 소유격 명사가 사용되었습니다.
<그들의 진노>가 아니라 <그의 진노>입니다.
<그의 진노>는 계6:16에서 말한 <어린 양의 진노>입니다.
앞서 누차에 걸쳐 <어린 양의 진노>라는 말은 성경적으로 모순적인 말이라고 강조해 왔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과 어린 양을 거의 동급으로 인식하는 관념이 형성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 시대에는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호칭할 때는
예수님이 온순하고 순종적이고 약하고 겸손한 어린 양의 속성을 가지는 경우에만
어린 양을 예수님의 별칭으로 사용했습니다.
유월절 어린 양,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
털깎는 자 앞의 어린 양,
어린 양의 피,
시온 산에 선 어린 양,
어린 양의 이름,
하나님의 어린 양,
어린 양의 신부,
어린 양의 생명책,
어린 양의 속죄 제물,
구원자 되시는 어린 양,
어린 양의 보좌,
성전이 되시는 어린 양,
등이 되시는 어린 양,
어린 양의 신부, 등등....
특히 예수님은 제자들을 보내시며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눅10:3)"고 하시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는 "어린 양과 이리가 함께 거하고....(사11:6)" 라고 하심과 같이
겸손하고 순종적인 섬김, 희생, 봉사, 사랑, 구원 등의 의미를 부여할 때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호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 어느 곳에서도
철장으로 깨부수는 어린 양,
진노의 포도주 틀을 밟는 어린 양,
이리를 잡아먹는 어린 양,
원수를 물리치는 어린 양,
진노하시는 어린 양,
심판하시는 어린 양 등등의 호칭을 발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진노> 또는 <예수님의 진노>를
<어린 양의 진노>라고 말한 부분은
저 땅의 악인들이 여섯 째 인의 재앙에 자신들의 은신처로 도피할 때 한 말이 유일합니다.
이것은 저들이 그 말을 의도적으로 썼다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인의 재앙이 혹독하기는 하지만 결코 자신들을 굴복시킬 수 없을 것이라고 자만하며
<어린 양의 진노>라고 의도적으로 의미를 축소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산들아 바위들아 우리를 가리우라.
꼬마 양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감히 견딜 수 있으랴!
라고 반어적 의미로 사용한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의도적으로 하나님의 재앙을 깎아내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교만함이 마음에 가득한 말인 것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5. 결론입니다.
계6:15~17에 나타난 땅의 악인들이 한 말은
직설법으로 받아 들일 수 있는 말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어린 양의 진노>라고 성경적으로 사용할 수 없는 모순적인 말을
의도적으로 사용한 것을 볼 때 이는 의미를 축소하고자 하는 반어법으로 말한 것!
결국 그들은 그들의 은신처로 숨어들며 한 말은
예수님을 조롱하고 교만떨기 위해 한 말들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이 말을 기록한 것은
그 재앙 가운데서도 회개하지 않는 악인들의 강팍함을 드러내기 위함이라 할 것입니다.
첫댓글
12.3 비상계엄 내란수괴 윤이 말하기를
12.3 비상계엄은 <평화적 계엄>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계엄>은 <평화>가 사라졌을 때 혹은 <평화>가 깨졌을 때 동원하는 비상수단이라는 점,
특히 윤이 발령한 12.3 비상계엄은 <평화>를 깨는 폭력이었다는 점에서
<평화적 계엄>이라는 말은 성립될 여지가 없는 모순된 화법입니다.
우리는 이런 화법을 유체이탈 화법이라고 말하고
아무 말이나 가져다가 남발하는 중구난방 화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어린양의 진노>라는 말도 이와 같습니다.
<어린 양>은 <진노>할 줄 모르는 <순한 양>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린 양>과 <진노>는 모순되는 말로써 성립될 수 없는 어법입니다.
즉, 진노의 큰 날을 조롱하는 반어법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진노>라는 말은
여기 계6:16에서 악인들의 입에서만 유일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마귀똥자루에서는 마귀 똥만 나오는 것이지
영의 양식이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