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성취하는 법
상(相)은 허망하고 무상하고 영원성이 없어 진실이 아니다.
상을 떠난다는 것은 상에서 도피한다는 것이 아니다.
변화무상한 상을 추월하여 꿰뚫어 보면
바로 그 자리에 영원토록 변치 않는 고요한 적멸의 자리가 있다.
일체 모든 법의 진실한 모습의 실상은 적멸할 뿐이다.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가지도 않고 오지도 않는 바로 그 자리,
올라가지도 내려가지도 않는 그 자리가 바로 실상의 자리이다.
생기지 않으니 소멸해도 하나도 슬플 것이 없고,
내려가지 않으니 올라가도 기뻐할 것이 없이 일체가 다 평등할 뿐이다.
본래로 기뻐하거나 슬퍼할 것 없는 텅 빈 그곳이야말로 진정으로 즐거운 자리이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적멸위락(寂滅爲樂)’이라고 하셨다.
오랫동안 철학과 종교 교리를 다 섭렵하여
학덕이 높고 연세도 많아 장로로 추앙받는 수보리가 너무나도 감동하여 울기까지 한다.
그동안 눈에 보이는 현상을 진실로 받아들이고 얄팍한 삶을 살았는데
이처럼 간단명료하고 시원한 실상의 가르침을 받아 참 모양에 눈을 뜨게 되어
점잖은 수보리가 희유하다고 하며 눈물을 보이는 것이다.
오죽 마음에 희열로 차올랐으면 울기까지 했겠는가.
기쁨이 넘치면 오히려 눈물이 나오는 법이다.
우리 같은 중생은 부처님의 참뜻을 잘 이해하지 못해 경을 보더라도 잘 울지 못하는 것이다.
여기서 기도하는 우리들의 태도를 한번 점검해 보자.
과연 우리들은 불교를 알기 위해,
부처님의 진실한 뜻을 알기 위해 절실한 기도를 얼마나 올렸을까?
오히려 우리들은 사람 때문에, 명예나 지위 때문에, 돈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에는 많은 눈물을 흘리면서 정작 절실하게 울어야 할 때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어머니가 빨래하고 밥을 짓고 국을 끓이느라 바쁘다 하더라도,
안방에서 아기가 ‘아-앙’ 하고 갑자기 울면 달려가지 않을 어머니는 한 사람도 없다.
이 세상 그 어떤 어머니라도 달려가게 되어 있다.
그까짓 밥이 타고 국이 넘는 게 중요할까?
어머니는 아기가 큰 소리로 울기만 하면 뱀이 나타났는지,
불이 났는지 하고 만사를 제쳐놓고 달려가게 되어 있다.
이것처럼 불교라고 하는 것, 진리라고 하는 것, 마하반야바라밀이라고 하는 것,
부처님, 관세음보살이라고 는 것,
이 모든 것은 우리가 절실하게 울기만 하면 순식간에 우리 곁에 와 닿는다.
부처님이 누군지 알기 위해 가슴이 복받치도록 울기만 하면,
부처님이 누군지 알기 위해, 마하반야바라밀을 알기 위해, 내 인생을 알기 위해,
기도를 성취하기 위해 가슴이 복받치도록 울기만 하면
부처님이, 관세음보살이 무엇을 하고 있다가도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 우리의 기도를 이루어 주신다.
기도 성취 아주 간단하다. 절실하게 울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제대로 울어 보지도 않고 소원 성취가 안 된다고 하면 안 된다.
-무비 스님- 금강경 강의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