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을 하자마자 느닷없이 선교사 후반기 한국에 올때마다 이교회 저교회 찾아다니며 구걸하던 경험이 떠올랐다. 대부분의 경우 처음 찾아갈 때는 반갑게 맞아준다. 그리고 일정금액의 후원금을 전달해 준다. 그러나 두번 세번 찾아가면 담임목사의 표정이 달라지며 마치 세금징수원 취급을 당하게 된다. 눈치가 더딘 나는 그때서야 이러한 태도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음을 깨달았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교회 저교회 찾아다니며 구걸하는 것을 싫어하신다는 것은 기도하라는 명령일 것이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일체 찾아가지를 않게 되었다. 그 결과는 당연히 재정고갈로 이어졌고 귀국할 수 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체면불구하고 기간제로 일을 하는 이유도 이미 그러한 구차한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일을 할망정 구걸은 안한다는 체험을 했기 때문에 못해낼 일이 없다.
아내는 지금도 이따금 원망을 한다. 왜 목회를 포기했느냐는 원망이다. 그래서 집만 날리지 않았느냐고 원망을 한다. 당연할 것이다. 아내의 목표는 목사사모였지 선교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엄밀히 말해 겉모습만 보고 배우자를 선택한 실수인 셈이다. 물론 나 역시도 결혼당시만 해도 선교사가 될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졸업후 바로 선교사로 나가기를 원했지만 길이 열리지를 않았다. 그래서 선교는 포기하고 개척을 선택했었다.
어떤 선교사는 후원자를 잘만나 선교지에 주택과 차량도 구입해 안락한 생활을 누리는 자들도 있다. 선교사의 실태를 모르는 분들은 모든 선교사들이 열악한 환경에서 고생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또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선교사가 어떤 사역을 하느냐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마치 개척교회를 하듯이 개척선교를 하시는 선교사들은 고생이 심하다. 그러나 이미 틀이 다져진 바탕에서 선교를 하는 분들은 돈만 있으면 된다. 현지인 사역자들을 교역자로 임명하고 매월 일정액의 생활비를 지급해주는 매니지먼트 선교사도 있다. 몇명의 제자를 세운후 그들이 목회하는 교회를 순회하는 순회선교사도 있다.
한국교회가 2만명 이상의 엄청난 인원을 해외에 파송했다고 자부심을 가지지만 과연 하나님앞에서 그중에 인정받는 선교사가 몇명일지는 아무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