子夏曰 大德不踰閑 小德出入可也 자하가 말하기를, “큰 덕이 한계를 넘지 않으면, 작은 덕은 나고 들더라도 괜찮다.”라고 하였다.
大德小德 猶言大節小節 閑 闌也 所以止物之出入 言人能先立乎其大者 則小節雖或未盡合理 亦無害也 큰 덕과 작은 덕은 큰 절조와 작은 절조를 말하는 것과 같다. 閑은 闌인데, 사물의 출입을 막는 물건이다. 사람이 능히 그 큰 것에 먼저 설 수 있다면, 작은 절조가 비록 혹시라도 이치에 다 부합하지는 않을지라도 역시 별 해로움이 없다는 것이다.
朱子曰 子夏之言 謂大節旣是了 小小處雖未盡善 亦不妨 然小處放過 只是力做不徹 不當道是可也 주자가 말하길, “자하의 말은 큰 절조가 이미 옳게 되었다면, 자잘한 것이 비록 다 좋지는 않더라도 또한 무방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작은 것이라고 해서 그냥 방치해버리면, 이는 그저 힘쓰기를 투철하게 하지 않은 것이니, 이를 괜찮다고 말해서는 안 된다.”라고 하였다.
問伊川謂小德如援溺之事 如何 曰 援溺事却是大處 嫂溺不援是豺狼 這處是當做 更有甚麽出入 如湯武征伐三分天下有其二 都將做 可以出入 恁地都是大處 非聖人不能爲 豈得謂之小德 乃是道之權也 누군가 묻기를, “정이천 선생이 작은 덕은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일과 같다고 말하였는데, 어떻습니까?”라고 하였다. 나는 말하길,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해주는 일은 오히려 큰 것이다. 형수가 물에 빠졌는데 구해주지 않으면 바로 승냥이와 이리다. 이런 것은 마땅히 해야 할 일이지, 다시 무슨 들고남이 있겠는가? 예컨대 탕임금과 무왕이 폭군을 정벌하거나 천하를 삼분하여 그 둘을 차지하는 것은 모두 장차 그것을 행함에 있어, 들고남이 있을 수 있는 것이지만, 이렇게 하는 것은 모두 큰일로서 성인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이니, 어찌 그것을 일컬어 작은 덕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는 도리어 道의 權衡인 것이다.”라고 하였다.
勉齋黃氏曰 子夏此語信有病矣 然大德小德皆不踰閑者 上也 大德盡善而小德未純者 乃其次也 若夫拘拘於小廉曲謹而臨大節則顚倒錯亂者 無足觀也矣 子夏之言 豈有激而云乎 此又學者不可不察 면재황씨가 말하길, “자하의 이 말은 진실로 병통이 있다. 그러나 대덕과 소덕이 모두 한도를 넘지 않는 사람이 최상이다. 대덕은 모조리 善하지만 소덕이 아직 순수하지 않은 자는 마침내 그 다음이다. 만약 작은 청렴에는 구애받아 세세하게 조심스러워하면서도, 큰 절조에 임해서는 거꾸러져 헝클어지고 어지러운 자라면, 살펴볼만한 것이 없는 것이다. 자하의 말이 어찌 그저 흥분해서 한 말이겠는가? 이것은 또한 배우는 자들이 잘 살피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胡氏曰 書以細行對大德而言 細行卽小德 大節小節蓋以其所關有大小也 父子君臣等之大倫 大德所在也 一動靜一語默與凡應對進退之文 小德所在也 觀人之道 取大端而略小失 猶可也 若立心自處 但曰謹其大者而小節不必致意 則將倂其大者 失之矣 호씨가 말하길, “서경 周書 旅獒 편에, 미세한 행실을 갖고서 大德에 대비하여 말하였으니, 細行은 곧 소덕이다. 大節과 小節은 대체로 그것이 관여한 바에 크고 작음이 있다. 부자와 군신 등의 大倫은 大德이 소재한 곳이다. 하나의 動靜과 하나의 語默은 무릇 응대하며 나아가고 물러나는 節文(절차와 제도)과 더불어서 小德이 소재한 곳이다. 사람을 살펴보는 도에 있어서, 큰 단서를 취하되 작은 잘못은 생략하는 것은 그래도 괜찮은 것이다. 만약 마음을 세우고 스스로 처신함에 있어서, 단지 그 큰 것만을 삼가되 小節은 반드시 뜻을 지극하게 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면, 장차 그 큰 것마저 아울러 잃게 될 것이다.”라고 하였다.
慶源輔氏曰 道理無空缺處 亦無間斷時 一有空缺間斷 便是欠少了 是以君子之學戰戰兢兢 無時無處不然 豈有大小久近之間邪 子夏篤實次於曾子而有小德出入可也之論 此其所以不及曾子歟 경원보씨가 말하길, “道理에는 텅 비고 빠진 곳이 없고, 또한 중간에 끊어질 때도 없는 것이니, 일단 비어서 빠진 곳이 있거나 끊어질 때가 있다면, 곧 부족하고 모자라게 되는 것이다. 이런 까닭으로 군자가 배울 적에 전전긍긍하는 법이니, 그러하지 않을 때가 없고 그러하지 않은 곳이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어찌 크고 작고 오래되고 가까운 차이가 있겠는가? 자하는 독실하기가 증자보다 못함에도 불구하고, ‘小德은 들고남이 있어도 괜찮다’는 주장이 있었으니, 이것이 바로 그가 증자에 미치지 못한 까닭이리라!”라고 하였다.
雙峯饒氏曰 此章用之觀人 則可 用之律己 則不可 但觀人不可責備 且只看他大節 大節旣立而小小節目或有出入 亦未可瑣屑議之 若律己之道 又與觀人不同 雖一毫亦不可放過 微有背理便成欠缺 如何聽他出入得 쌍봉요씨가 말하길, “이 장의 말은 남을 살피는 것에 쓴다면 괜찮지만, 자신을 규율하는 데에 쓴다면 안 된다. 다만 사람을 살펴봄에 있어 다 갖추라고 요구할 수 없으므로, 또한 단지 그의 大節만 살필 따름이다. 大節이 이미 세워졌지만 자잘한 항목에서 혹여 들고남이 있더라도, 역시 그것을 너무 자질구레하게 논의해서는 안 된다. 만약 자신을 규율하는 도라면 남을 살펴보는 것과는 같지 않으니, 비록 터럭 하나라도 역시 그냥 방치해서는 안 된다. 약간이라도 이치에 위배됨이 있다면 곧 흠결이 되는 것이니, 어찌 그것이 들고나도록 내버려둘 수 있단 말인가?”라고 하였다. ○ 吳氏曰 此章之言 不能無弊 學者詳之 오씨가 말하길, “이 장의 말은 폐단이 없을 수가 없으니, 배우는 사람은 그것을 상세히 살펴야 한다.”라고 하였다.
朱子曰 大節旣定小節有差 亦所不免 然吳氏謂此章不能無弊 學者正不可以此自恕 一以小差爲無害 則於大節必將有枉尋而直尺者矣 주자가 말하길, “大節은 이미 정해졌지만 小節에 흠이 있는 경우도 역시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오씨가 이 장에는 폐단이 없을 수 없으니, 배우는 자는 바로 이것으로 스스로를 용서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번이라도 작은 흠은 무해한 것이라고 여긴다면, 곧 大節에 반드시 장차 여덟 자를 구부려 한 자를 펴는 상황이 발생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新安陳氏曰 書曰 不矜細行 終累大德 畢公懋德 克勤小物 越小大德 小子惟一 以此律之 此章之言 信不能無弊也 신안진씨가 말하길, “서경에 이르길, ‘미세한 행실을 아끼지 않으면 끝내 큰 덕에 누를 끼친다.’고 하였고, ‘마침내 公께서 덕에 힘써서 능히 작은 사물에도 부지런히 하였다.’고 하였으며, ‘작고 큰 덕을 넘어서 小子들이 오직 하나로 여기도록 한다.’고 하였으니, 이로써 규율한다면, 이 장의 말에는 진실로 병폐가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邢昺 論語註疏曰 此章論人之德有小大 而行亦不同也 閑猶法也 大德之人謂上賢也 所行皆不越法則也 小有德者謂次賢之人 不能不踰法 有時踰法而出 旋能入守其法 不責其備 故曰可也 형병이 논어주소에서 말하길, “이 장은 사람의 덕에 크고 작음이 있고 실행 또한 같지 않음을 논한 것이다. 閑이란 법도와 같다. 큰 덕이 있는 사람을 일컬어 상현이라 하는데, 행하는 것 모두 법칙을 넘어서지 않는다. 덕이 작은 사람을 일컬어 그 다음으로 어진 사람이라고 부르는데, 법도를 넘어서지 않을 수가 없어서, 가끔 법도를 넘어서 벗어나는 때가 있다. 하지만 되돌아서 능히 그 법도에 들어가 지킬 수 있기에, 그에게 다 갖추라고 나무라지 않는다. 그래서 괜찮다고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丁若鏞 論語古今注曰 大德小德之謂大節小節 古無可據 孟子曰 大德役小德 中庸曰 大德敦化 小德川流 皆以德之大小 分爲等級 豈大節小節之謂乎 君子之積累工夫 全在小節 一視一聽 一言一動 皆有禮防 苟以大體無惡 許其惟意出入 則豈有成德之日乎 曲禮三千 惟意出入 則經禮三百 無所立矣 정약용은 ‘논어고금주’에서 말하길, “대덕과 소덕이 대절과 소절을 일컫는다는 것은 옛날부터 근거할 바가 없다. 맹자가 말하길, 대덕은 소덕을 부린다고 하였고, 중용에서 이르되, 대덕은 돈독하게 교화시키고 소덕은 냇물처럼 흐른다고 하였는데, 이것들은 모두 덕의 크고 작음으로써 등급을 구분한 것인데, 어찌 대절과 소절을 일컫는 것이겠는가? 군자가 공부를 쌓아 올리는 것은 모두 소절에 달려있는 것인데, 보고 듣는 것 하나하나, 말하고 행동하는 것 하나하나가 모두 예로써 방비함이 있는 것이다. 진실로 大體에 잘못이 없다는 이유로 그 뜻의 법도나 예에서 들고 남을 허용한다면, 어찌 덕을 이룰 날이 있겠는가? 곡례 3천 가지에 있어 오직 뜻이 들고 난다면, 경례 3백 가지도 설 곳이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