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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장의 또 다른 옷을 만드는 규례
출 28:31-43
31 너는 에봇 받침 겉옷을 전부 청색으로 하되
32 두 어깨 사이에 머리 들어갈 구멍을 내고 그 주위에 갑옷 깃 같이 깃을 짜서 찢어지지 않게 하고
33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수 놓고 금 방울을 간격을 두어 달되
34 그 옷 가장자리로 돌아가며 한 금 방울, 한 석류, 한 금 방울, 한 석류가 있게 하라
35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36 너는 또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새기되 '여호와께 성결'이라 하고
37 그 패를 청색 끈으로 관 위에 매되 곧 관 전면에 있게 하라
38 이 패를 아론의 이마에 두어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 거룩하게 드리는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하라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으므로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
39 너는 가는 베 실로 반포 속옷을 짜고 가는 베 실로 관을 만들고 띠를 수 놓아 만들지니라
40 너는 아론의 아들들을 위하여 속옷을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띠를 만들며 그들을 위하여 관을 만들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하되
41 너는 그것들로 네 형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입히고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내게 행하게 할지며
42 또 그들을 위하여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
43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나 제단에 가까이 하여 거룩한 곳에서 섬길 때에 그것들을 입어야 죄를 짊어진 채 죽지 아니하리니 그와 그의 후손이 영원히 지킬 규례니라
출 28:31-43 / [에봇 받침 겉옷] 에봇에 받쳐 입는 겉옷을 자줏빛 옷감으로 만들어라. 32) 그 옷감 한가운데에 머리를 집어넣을 수 있도록 구멍을 내고 그 구멍 가장자리를 갑옷의 깃을 누비듯 누벼서 찢어지지 않게 하여라. 33) 또 자줏빛 털실과 붉은빛 털실과 진홍빛 털실을 엮어 석류 모양으로 술을 만들어 그 겉옷 가장자리에 돌아가며 달고 금방울을 만들어 석류 모양의 술 사이사이에 달아라. 34) 곧 겉옷 가장자리를 돌아가며 석류 하나 금방울 하나, 석류 하나 금방울 하나씩 차례로 달아라. 35) 아론이 여호와를 섬기러 성소에 들어갈 때나 성소에서 나올 때 늘 이 겉옷을 입어 거기에 달려 있는 금방울 소리가 들리게 하여라. 그러면 아론은 죽지 않을 것이다. 36) [성직패]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그 위에 인장을 새기는 솜씨로 `여호와께 몸바친 자'라고 새겨 놓고 37) 그 패를 자줏빛 털실을 꼰 끈으로 관 앞쪽에 붙여라. 38) 그래서 아론이 관을 쓸 때마다 이 성직패가 늘 아론의 이마에 있게 하여라. 이렇게 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거룩한 예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마다 잘못 드리는 죄가 있으면 아론이 책임지게 하여라. 아론이 이 패를 늘 이마에 붙이고 있으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이 드리는 거룩한 예물을 기꺼운 마음으로 받으실 것이다. 39) [속옷.관.띠] 가는 베실로 속옷을 짜거라. 또 가는 베실로 관을 만들어라. 그리고 수를 놓아서 띠를 만들어라. 40) 너는 아론의 아들들이 입을 속옷을 만들고 그들이 제복에 띨 띠와 머리에 쓰는 관도 만들어라. 그래서 그들이 품위있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여라. 41) 이 온갖 옷가지를 네 형 아론과 아론의 아들들에게 입힌 다음 그들에게 기름부어 제사장의 권한을 맡기고 내 앞에서 제사장 일을 보도록 구별해 세워라. 42) [고의] 또 가는 베로 고의를 지어서 맨살을 가리게 하여라. 고의는 허리부터 두 넓적다리까지 닿아야 한다. 43) 아론과 그의 아들들이 만남의 장막으로 들어갈 때나 성소에서 일을 보려고 제단으로 가까이 다가갈 때마다 고의를 입게 하여라. 그래서 거기에서 맨살을 보여 목숨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이것은 아론과 그 후손들이 대대로 지켜야 할 규정이다.
성소에서 제사를 사역으로 섬기는 제사장의 여러 의상과 모든 장식은 제사장 자신의 죄와 거룩하지 못한 것들의 가리움으로 하나님을 향한 성결을 나타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의 관계의 상징입니다.
에봇 속에 받쳐 입는 겉옷(31-35) 에봇 속에 받쳐 입는 겉옷을 만들되 전부 청색으로 만듭니다. 청색은 하늘색으로 신성과 생명을 상징합니다. 이 겉옷은 어깨에서 무릎 밑까지 내려오는 긴 통옷으로서 두 어깨 사이에 머리가 들어갈 구멍을 내고 목 위로 입고 벗는데 그곳이 해어지거나 찢어지지 않도록 갑옷의 깃처럼 단단히 덧대고 홀쳐서 만듭니다. 그리고 그 옷자락의 가장자리에 돌아가며 청색, 자색, 홍색 실로 석류를 만들어 달고 그 사이사이에는 금방울을 달도록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대제사장이 주의 앞 성소를 드나들 때 방울 소리가 나면 그가 죽지 않을 것이며, 이를 통하여 제사장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히브리 전승에 의하면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갈 때는 발목에 밧줄을 매고 들어갔다고 합니다. 혹시 그 거룩한 곳에서 제사장이 죽었을 경우 이 줄을 당겨 끌어내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께 성결’ 패(36-38) 하나님께서 순금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법으로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 곧 여호와를 향한 거룩이라는 뜻의 글자를 넣은 후 머리에 쓰는 관 정면에 청색 끈으로 매어 부착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아론이 관을 쓸 때마다 이 패가 늘 아론의 이마에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거룩한 예물을 여호와께 드릴 때마다 무슨 잘못이 있으면 제사장이 그 죄를 대신 담당하도록 하였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제사장이 이 패를 항상 이마에 달고 다니면 백성이 여호와께 드리는 “그 성물을 여호와께서 받으시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속옷, 관, 띠 그리고 속바지(39-43) 대제사장 아론의 아들들은 단순한 복장으로 긴 속옷, 머리에 쓰는 관, 그 속옷을 겉에서 매는 정도이지만, 이들 역시 영화롭고 아름다워 보이는 복장이어야 합니다. 특히 가는 베 실로 만든 속바지 곧 허리에서 시작되는 맨살 하체를 가리게 하라는 속바지는 대제사장 아론과 제사장, 그의 아들들 모두가 입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성소에서 몸 아래를 노출하는 것은 죽음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이들과 그의 자손이 지켜야 할 영원한 규례입니다. 이렇게 아론과 그와 함께 한 그의 아들들에게 옷을 지어 입힌 후, 비로소 그들에게 기름을 부어 위임하고 거룩하게 하여 그들이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합니다.
적용: 당신은 참 예배자로서 어떻게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습니까(히 10:19)? 또 하나님의 집 다스리는 큰 제사장은 누구이며 당신은 그분을 통해 몸과 마음에 어떤 은혜를 덧입고 있습니까(히 10:21-22)? 지금 ‘여호와께 성결’ 곧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고 있습니까?
14세기 영국의 영성가인 리차드 롤은 "기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과 가지는 사랑 체험을 불, 열 또는 영적 음악이나 천사들의 찬양과 같은 노래 또는 황홀, 달콤함 등으로 비유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나의 사랑이 만날 때 불꽃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사랑의 불꽃(flame of fire)이라고 불렀습니다. “오, 사랑의 산 불꽃 그토록 부드럽게 나를 상처주시네 내 영혼의 가장 깊은 중심을 당신이 이제 더 이상 나를 강압하지 않으신다면 그리고 그것이 당신의 뜻이라면 마지막에 이렇게 결말을 내 주십시오! 이 달콤한 만남의 베일을 찢으라고”
< 설 교 >
예복을 갖춘 제사장
출 28:31-43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통한 제사 제도가 확립되기 전에는 매 가정의 가장들이 흙으로 만든 제단을 쌓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지만 일단 성소가 건립되고 성소의 각종 기구들이 제조되어 모든 시설이 갖추어짐에 따라 개개의 가정 제단은 마침내 한 민족적인 제단으로 통합되었고 그런 의미에서 성막은 민족통일의 중심을 이루었으며 또한 이로 말미암아 성소는 저들의 영적 정신적 통합의 가시적인 상징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필연적으로 제사 집행을 위한 제사장이 필요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로써 여호와께서는 모세에게 명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을 성별하여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할 것이며 특히 아론을 위하여는 거룩한 옷을 지어서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라”고 지시하셨던 것입니다.
1. 제사장이 예복을 갖추어야 할 이유(31-35절) 겉옷은 만들고(31-35절), 속옷을 만들며(39-41절), 고의를 만들라(42-43절)고 했습니다. 그리고 각각 그 만드는 재료와 방법까지도 가르쳐 주셨습니다. 겉옷은 물론 겉에 입은 옷이여, 속옷은 속에 입는 옷인데, 고의라고 하는 것은 그 속옷 안에 입는 짧은 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고의를 만들어 허리에서부터 넓적다리까지 이르게 하여 하체를 가리게 하라고 했습니다. 아론과 그 아들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와 하나님의 제단에서 섬길 때에는 반드시 이러한 예복을 입어야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예복을 입지 아니하는 것은 지를 짓는 것이기 때문에 예복을 입지 아니하고 제단에서 제사 드리면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2. 이마의 패 출 28:36-38에 정금으로 패를 만들고 이 패 위에 “여호와의 성결”이라고 새겨서 이것을 관의 전면에 붙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렇게 하신 이유는 28:38절에 하나님께 성결이라는 패를 이마에 붙이고 제사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시고 그 백성들의 죄악을 다 용서하여 주시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적용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화되어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리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악을 다 용서하여 주겠다고 하시는 말씀이 되겠습니다. 과연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친히 대제사장이 되시고 또 제물이 되셔서 우리를 죄악에서 속량하여 주셨습니다. 히 9:13에 “예수님께서는 염소와 양의 피도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속죄의 제물이신 것을 증거하는 말씀이었습니다.
3. 여호와를 섬기는 제사장 (1) 그리스도의 모형인 그리스도 에봇 제조에 따른 지식에서 그리스도의 모형으로서의 제사장의 영광스럽고도 고귀한 지위를 생각케 됩니다. 대제사장의 에붓에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의 자료들은 공교한 기술로써 짜낸 합성직물의 복지를 사용했어야 했었습니다. 즉 청색, 자색, 홍색, 백색의 색깔들이 그리스도의 인성의 다양성을 뜻하는 것이라는 점을 인식한다면, 여기에 금실을 섞여 짬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결합됩을 뜻하며 그리스도는 참 사랑이시요, 참 하나님이신 완전한 대제사장이라는 뜻입니다. 오늘날 성직자를 보는 견해가 달라서 혼돈을 일으키기 쉽습니다. 성직자는 제사장으로 모십니다. 이들을 신적인 지위에 있는 자로 생각하는 경향과, 인적인 성품만을 갖춘 자로 생각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신적인 지위로 치우칠 때 제사장의 과오를 볼 때 실망하기 쉬우며, 인적인 성품으로 치우쳐 볼 때 제사장들을 경시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제사장이라도 신앙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는 자라는 올바른 견해를 지녀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2) 이스라엘 대표자로서 제사장 우리는 제사장의 옷에 달려 있는 하나의 장신구로서의 견대와 홍패에서 이스라엘 대표자로서의 제사장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견대란 마치 오늘의 군인들의 견장 비슷하게 생긴 것으로서 이것을 에봇 위 좌우편에 달고 그 위에 호마노란 큰 보석 두 개에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의 이름을 새겨서 여섯 지파씩 나누어 금테에 물려 견대에 부착시켰습니다. 그리고 흉패란 것은 넓이가 두 뼘, 높이가 한 뼘으로 역시 에봇 짜는 형식과 방법으로 짜서 그 안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 이중으로 접으면 사면 한 뼘씩의 사각형이 됩니다. 그 위에다 보석 열 두 개를 취하여 금테에 물린 다음 이를 흉패 위에 부착시킵니다. 견대나 흉패에 부착시킨 보석들은 계시록의 열 두 진주문과 기초석(계 21:11-21)에 함축된 원리와 동일한 것으로써 구약의 열 두 지파, 신약의 열 두 사도로 대표되는 성도들의 상징입니다. 열 두 개의 보석들이 각각 특이한 색깔과 가치를 지니고 있음 같이 성도들 역시 각각 독특한 개성을 지니며, 또한 이를 발휘할 수 있음을 뜻하는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보석판을 그리스도의 속성을 상징하는 에봇 위에다 황금고리와 사슬로 부착시켜 그리스도와 불가불리의 관계를 가지고 있음을 표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제사장의 어깨에 달린 견대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의 종교적인 책임을 져 주심을 나타내는 것이라면, 가슴에 다는 흉패는 그리스들의 사랑의 대상이 되어 있는 성도의 위치를 각각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야말로 우주를 떠 받들고 있는 어깨의 힘으로 가장 미천한 신자라도 안전하게 보호하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은 비록 가장 미천한 신자에게라도 다함 없는 애정으로 고동치고 있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의석들이 에봇에 부착되고 있는 한 언제나 빛을 발하기 마련입니다. 여호와께서 에봇에다 부착시키는 이상, 그 누구도 이를 제거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 사람들은 성도들의 이와 같은 고귀한 위치를 알지 못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멀어버린 저들의 눈은 결코 영계의 신비로운 성도의 입장을 식별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이를 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3) 판결자로서의 제사장 흉패를 형성할 사각의 2중 주며니 속에 들어 있는 우림과 둠밈 때문에 그 흉패가 판결의 흉패가 되는 것입니다. 우림과 둠밈이야말로 이스라엘의 장구한 역사 속에서 저들이 직면하였던 다양한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의 뜻을 식별하는 신탁을 상징합니다. 극난의 위기와 국왕들의 주관이 서지 않고 판단이 서지 않을 때면 의례히 제사장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판단을 의례하였던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어 모세가 그의 후계자를 세우려 했을 때 민 21:21에 “우림과 둠밈”에 의해서 여호수아를 선택한 일이 있으며, 신 33:8-12에 레위에 대한 “우림과 둠밈”의 판단은 정확하였던 것입니다. 삼상 28:6에 사울 왕이 곤경에 빠져 블레셋과 싸우지 않으면 안될 상황에 놓였을 때 여호와 힘으로도 우림으로도 또는 선지자로도 일체 대답해 주지 않았던 역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들을 통해서 개인이나 국가적 차원에서 역사의 진로를 제시하시며 지극히 큰 것에서부터 작은 일에까지 다 판단해 주시는 것입니다. (4) 봉사자로서 제사장 겉옷의 모양은 극히 사소한 사실로 예배자들이 예배에 방해될 우려가 있는 것들을 미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하여 신중을 기하도록 하라는 교훈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이 옷이 청색으로 되었음은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부과된 일을 마치신후 하늘의 지성소에 들어갔음을 뜻하며 이로써 하늘에서 오셨던 주님은 하늘나라로 되돌아 갔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제사장의 옷 아래 가장자리에 청색, 홍색, 자색실로 석류를 수 놓았으며 그 간격마다 금방울을 달아 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봉사할 때는 백성들은 밖에서 방울 소리를 들으면서 제사장이 소정의 임무를 마친 후 기다리는 무리에게 나타나서 축복해 주기를 바라며 기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네 가지로 구성된 성의의 제조된 양식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일반 제사장의 옷은 단순히 4품으로 되었으니 속옷, 고이, 띠 그리고 관입니다. 하지만 대제사장의 경우는 이상 4품에다 또 4품을 더하고 있으니 에봇 받침, 겉옷, 흉패, 그리고 관에 붙인 금패입니다. 대제사장의 옷은 네 가지로 된 것이 특징입니다. 그리고 에봇과 띠의 재료는 네 가지 색실로 짠 것 모두가 넷으로 구성되고 표현되기 마련입니다. 뿐만 아니라 성막 내외부의 구조와 모든 기구들이 모두가 넷으로 표현됩니다. 즉 성소는 사각의 장방형, 지성소는 정사각형 입방체, 그리고 성전 뜰도 사각형 그 외에도 떡상 하단, 그리고 벽의 널판 등이 모두가 사각형으로 설계되고 제조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양장 역시 4색실로 만들어졌고 천막 역시 4중막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4이란 숫자가 의미함은 우리 주님의 성품의 완전성, 동서남북의 사방, 그리고 정직, 완전 등의 표시로써 이는 성막 및 제사장의 복장에서 강조되고 있는 중요한 상징적 표현인 것입니다.
여호와께 성결
출 28:31-43
구약시대의 제사장은 자칫 잘못하면 죽임을 당하는 직분이었습니다. 분향을 하는 불을 잘 못 담았다가 아론의 두 아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오늘 말씀에도 35절과 43절을 보시면 이렇게 하여야 죽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제사장이 잘못하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얼마나 거룩하신 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거룩하신 분 앞에 나아가는 것은 특별한 제사장의 복장을 갖추고서 나아가야 하는데 그 조차도 죽임을 당할 수 있기에 주의하라는 말씀이 주어집니다.
출애굽기 30:17-21절도 봅니다. “봉독” 성막 마당에 물두멍이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그 두멍에서 수족을 씻게 합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데도 물로 씻어야 죽기를 면할 것이라고 합니다. 레위기 16:2, 12-13절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네 형 아론에게 이르라 성소의 휘장 안 법궤 위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이니라” “12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 앞 제단 위에서 피운 불을 그것에 채우고 또 곱게 간 향기로운 향을 두 손에 채워 가지고 휘장 안에 들어가서 13 여호와 앞에서 분향하여 향연으로 증거궤 위 속죄소를 가리게 할지니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며” 씻어야 하고 향으로 가려야 죽지 아니한다는 것은 여호와의 거룩함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제사장이 제사를 제대로 드렸다면 온 백성들은 기쁨과 감사와 찬양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자신들을 받아주셨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의 제사를 받아 주셨는지 아닌지 어떻게 압니까? 제사를 다 마치고 밖으로 나오면 알 수가 있지만 그 전에도 알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제사장의 옷 끝에 금방울을 달아서 소리가 나게 합니다. 31-34절입니다. 에봇 받침 겉옷을 어떻게 만들지를 말씀하시면서 그 에봇의 끝에 석류를 수놓게 하고 그 석류 사이에 금방울을 달게 합니다. 이런 금방울을 왜 달게 합니까?
35절을 보시면 성소에 들어가고 나올 때에 이 소리가 들리면 그가 죽지 아니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대 제사장이 일 년에 한번 지성소에 들어가서 분향하고 속죄의 피를 뿌릴 때에 금방울 소리가 나면 지금 제사가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신호가 됩니다. 그런데 아무 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임 당하였다고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제사장의 발에 줄을 묶고 들어갔다는 말을 하기도 합니다만 성경에는 그런 말은 없습니다. 대 제사장이 여호와께 들어가는 일이 자칫 하면 죽임을 당할 정도로 거룩하신 하나님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이 속죄를 마치고 나오면 백성들은 환호를 지를 것입니다.
36-38절을 봅니다. “봉독” 제사가 온전히 드려지기 위하여 제물도 흠이 없고 온전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드리는 제물에 흠이 없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온전한 제물이 됩니까?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방법으로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기고 제사장의 관 전면에 매달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성물과 관련된 죄책을 담당하게 됩니다. 그 패가 아론의 이마에 늘 있어야 그 성물을 여호와께 받으시게 됩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이 제물을 가져온다고 다 받아지는 것이 아니라 제사장의 이마에 금으로 된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패가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거룩하고 성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39-48절에서는 베 실로 속옷을 만들게 합니다. 베로 속바지를 만들어 하체를 가리게 합니다. 하체가 보이지 않게 하라는 말씀은 가나안 종교와 구별하기 위함이라고도 합니다. 가나안은 그들의 제의가 성적인 제의가 있기에 금하기도 합니다. 출애굽기 20:26절에서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는 층계로 내 제단에 오르지 말라 네 하체가 그 위에서 드러날까 함이니라” 이방의 제사란 사람의 생식기가 숭배의 대상이 됩니다. 세계 곳곳에서 남근석이 숭배가 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생산의 능력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식을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가려야 합니다. 생식의 능력이란 인간이 행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포함합니다. 혈통이나 육정이나 사람의 뜻으로는 하나님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인간의 혈통을 부정한 것으로 여기기에 아브라함이 자기의 혈육의 능력으로 이스마엘을 낳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이스마엘을 약속의 자녀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할례를 행하게 하신 후에 낳은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인정하십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이 사람의 생식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서 나오는 것을 보이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4:14-17절입니다. “14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상속자이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파기되었느니라 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법도 없느니라 16 그러므로 상속자가 되는 그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만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러하니 아브라함은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7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하나님의 약속으로 받아들여진 자는 자신의 능력을 믿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부정하기에 도저히 용납되지 못함을 알고 제사장의 처분에 맡깁니다.
지금 우리가 구약시대라면 대 제사장이 지성소에서 분향을 하고 피를 뿌리고 있다면 밖에서 귀를 기울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금방울 소리가 나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받아들이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지성소에서 제사장의 직분을 다 행하고 밖으로 무사히 나오면 밖에 있던 백성들이 어떻게 하였을까요? 감사와 찬양을 올릴 것입니다. 제사장이 제대로 제사를 드림으로 백성들이 다 용납이 된 것이기에 어찌 감사하지 않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받아 주심에 대한 감사와 찬양의 모습을 열왕기상 8장에서 봅니다. 10-11절입니다. “10 제사장이 성소에서 나올 때에 구름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하매 11 제사장이 그 구름으로 말미암아 능히 서서 섬기지 못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성전에 가득함이었더라” 성전이 완공되고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지성소에 두고 나옵니다. 이때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에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다는 표가 됩니다. 이때 솔로몬이 기도하고 나서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성전을 지은 솔로몬의 말이 하늘과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용납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사람의 손으로 지은 전에 하나님이 계시겠느냐고 합니다. 다만 언약하신 대로 이 성전을 향하여 여호와께서 보아달라고 합니다. 성전에는 언약궤가 있고 피 흘림의 제사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죄를 지어 여러 가지 벌을 받을 때에 성전에서 기도하든지 아니면 포로로 잡혀갔을 지라도 성전을 향하여 기도하면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용서하여 주시기를 간구합니다. 그 기도 후에 솔로몬이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54-61절은 솔로몬이 백성들에게 축복하는 내용입니다. 이 중에 56절을 보시면 그 종 모세를 통하여 무릇 말씀하신 그 모든 좋은 약속이 하나도 이루어지지 아니함이 없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완성은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솔로몬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 하였으니 너무나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감사의 찬양을 드리고 백성들을 축복합니다. 세상에서 여호와만 참 하나님이시니 그만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자 백성들이 솔로몬을 축복합니다. 열왕기상 8:66절입니다. “여덟째 날에 솔로몬이 백성을 돌려보내매 백성이 왕을 위하여 축복하고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는데 여호와께서 그의 종 다윗과 그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베푸신 모든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마음에 즐거워하였더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여 주신다는 것에 대하여 왕과 백성들이 다 기뻐하며 즐거워합니다. 진멸당해야 마땅한 자들임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행한 일과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도 행한 일을 보면 압니다. 그러함에도 진멸되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제사로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사장들이 무사히 제사를 마치고 나왔다면 백성들은 감사와 영광과 찬송을 자신들을 용납하여 주신 주께 드릴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드리는 것은 구약의 제사가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주님께 받아들여졌다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받아들여질 수가 있는가를 생각한다면 예배 시간은 그야말로 감사와 감격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아주셨다는 기쁨은 자신들의 노력으로는 결단코 받아들여지지 않는 죄인임을 아는 사람들에게만 기쁨이 됩니다. 자신의 정성과 열심을 바쳐서 무언가 받아내겠다고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받아주심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내가 이렇게 정성과 열심을 바쳤는데 신이 나에게 당연히 복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감사와 기쁨이 아니라 거래가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소원하는 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이 나에게 이럴 수 있느냐고 항의할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의 예배는 어떻습니까? 제사장이 제사를 무사히 마치고 나왔을 때에 백성들이 환호하고 기뻐하는 그런 감사와 찬양이 있습니까? 아니면 아직도 구약의 제사와 같은 의식이나 제물을 바쳐야하는 제사로 봅니까?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위하여 속죄할 제사가 없습니다. 히브리서 7:22-28절을 봅니다. “봉독” 구약의 제사장들은 항상 있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셔서 영원히 계십니다. 구약의 제사장이 제사를 드리고 무사히 나오면 기쁨과 찬송이 나옵니다.
그러나 새 언약에서는 그런 제사장이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셨기에 그 직분이 갈리지 않습니다. 25절을 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우리가 우리의 힘과 정성과 거룩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님을 힘입어 나아갑니다. 예수님을 이런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항상 살아 계서서 그들의 위하여 간구하시기 때문입니다.
26-28절을 계속하여 봅니다. 이러한 대제사장은 우리에게 합당하고 거룩하고 악이 없고 더러움이 없고 죄인에게서 떠나 계십니다. 그러므로 온전히 여호와께 성결한 제사장이 되십니다. 영원히 온전하게 되신 아들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어서 히브리서 10:1-22절까지도 봅니다. “봉독” 단번에 영원히 속죄를 이루셨습니다. 율법으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다 이루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대제사장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성소에서 영원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영원한 속죄를 드리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자기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구약 식으로 말하면 하늘 지성소에서 금방울 소리가 계속 들리며, 여호와께 성결의 패를 붙이시고, 성결하고 흠과 점과 티가 없는 거룩한 자기 피로서 단번에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그 효력이 영원함을 오늘도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리는 기뻐하며 감사하며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제사장의 옷 – 거룩한 옷
출 28:31-43 / 성흥모 목사
오늘은 제사장의 복장 중에서 겉옷과 머리에 쓰는 세마포로 만든 두건과 같은 모자와 패에 대하여, 그리고 속옷에 대한 말씀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입는 겉옷은 겉옷이라고 하며, ‘에봇 받침 겉옷’이라고도 합니다. 에봇은 대제사장이 겉옷에 위에 걸쳐 입는 앞치마와 긴 조끼와 같은 것으로, 에봇에는 가슴받이-판결흉패가 있습니다. 가슴받이 -판결흉패는 에봇의 가슴판에 매어다는 한뼘 크기의 정사각형의 주머니입니다. 그 위에 4줄로 12개의 보석을 달아 장식하였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상징하고 있으며, 가슴받이는 두 겹으로 되어 있는데, 그 주머니 안에는 어떤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뜻을 물으려고 우림과 둠밈을 넣어 두었습니다. 그래서 그 주머니를 판결흉패라고 불렀습니다. 판결흉패는 에봇의 위에, 에봇의 앞가슴에 붙이는 한 뼘 정사각형의 주머니였습니다. 이런 에봇은 대제사장을 구별하는 옷이며, 대제사장만이 겉옷 위에 에봇을 걸쳐 입었습니다. 일반제사장은 에봇을 입지 않았습니다.
일반제사장들은 겉옷만 입으면 그것이 제사장의 정장이요, 예복이었습니다. 그러나 대제사장은 겉옷 위에 에봇을 입어야 했습니다. 겉옷의 다른 이름이 에봇 받침 겉옷이라고 불렀습니다. 겉옷을 입은 다음에 그 위에 에봇을 입었기에 에봇 받침 겉옷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에봇 받침 겉옷은 일반제사장이나 대제사장을 구별하지 않는 제사장이라면 누구나 다 입어야 하는 옷입니다. 이 겉옷은 전부 청색실로 짜서 만든 청색옷이었습니다. 겉옷이란 말은 히브리어로 ‘메일’이라고 하는데, ‘덮는다’는 말에 나온 말입니다. 이 겉옷은 넓고 길며 발목에 이르는 통옷이며, 소매가 없는 옷입니다. 제사장의 겉옷을 실감 있게 전해주는 사람의 말을 들어보면 이 겉옷은 관이나 원통 같은 모양이었다고 합니다.
청색실로 짜서 만든 옷감으로 제사장의 겉옷을 지었습니다. 청색이라고 하지만, 청색과 자주색의 중간색으로 남색에 가깝다고 합니다. 옛날에 청색을 얻으려면 뿔 고등과 달팽이에서 청색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많은 달팽이가 죽어야 염료를 추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과 같이 색이 다양하고 쉽게 염료를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청색실을 만들기 위해서는 참으로 많은 수고해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제사장의 겉옷은 옷감을 말하지 않고 청색실로 만들어야 함을 말씀하여 청색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청색은 하늘의 색이요, 청색은 하나님을 생각하게 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을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청색이 주는 의미는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이라고 합니다. 제사장의 임무는 사람의 생명을 구원하는 데 있습니다. 청색이나 초록색은 피의 적색과 보색이 되어, 피를 잘 볼 수 있게 하였습니다.
겉옷은 두 어깨 사이에 머리가 들어갈 수 있도록 구멍을 내는데, 돌아가면서 옷감이 찢어지거나 실이 빠지지 않도록 구멍의 둘레를 갑옷의 깃처럼 홀쳐서 입거나 벗을 때에 찢어지지 않도록 하였습니다. ‘홀친다’는 말은 풀리지 않도록 단단히 동여매는 것으로 오바로크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실이 풀려나지 않도록 단단히 천을 안으로 조금 말아 넣고 박음질하는 방법으로 바느질하였습니다.
이 겉옷은 오늘의 스웨터나 셔츠처럼 먼저 머리를 집어넣고 입어야 하는 옷이었습니다. 소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어서 소매가 없는 옷이라도 하고, 겉옷이니 소매가 있었을 것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출애굽기에 나오는데 제사장의 옷을 그릴 때에, 소매가 없고, 소매는 속옷의 소매로 그리고 있습니다.
겉옷 자락 둘레에는 청색 실과 자주색 실과 홍색 실로 석류 모양의 술을 만들어 달고, 석류 술 사이사이에 금방울을 만들어 달았습니다. 겉옷자락을 돌아가면서 금방울 하나에 석류 하나, 또 금방울 하나를 달고 석류 하나를 달고 옷자락 끝에 땋은 사슬에 매달라고 하였습니다. 겉옷 자락 둘레에는 청색, 홍색 자색 홍색실로 만든 석류모양을 달았습니다.
석류는 아름다운 향과 맛을 가진 과일로 제사장의 옷자락에 석류 모양을 매어다는 것은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금방울을 매어다는 것은 그가 지금 성전에서 움직이면서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것을 밖에 알려주는 신호가 되었습니다. 금방울이 달그랑 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제사장이 지금 성소에서 자기의 일을 잘 감당하고 있다는 표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금방울 소리가 나지 않는다고 하면 무엇인가 잘못되어서 지금 제사장이 움직이지 못하고 심할 때에는 심장마비로 죽어 있을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나 당직 제사장이 성소나 지성소에 들어갈 때에는 허리에 긴 끈을 매고 들어갑니다.
그것은 금방울소리가 나지 않으면 죽은 것으로 간주하고 끌어낼 수 있게 한 것이었습니다. 성소에는 감히 다른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니, 성소에 들어간 사람을 끌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의 몸에 긴 끈을 매고 끌어내는 방법뿐이 없었습니다. 35절에 금방물을 매어다는 이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아론이 입고 여호와를 섬기러 들어갈 때와 성소에서 나올 때에 그 소리가 들릴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35)라고 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이 다른 일반 제사장과는 다르게 머리에 관을 써야 했습니다. 머리에 관을 쓰는데, 관에는 순금으로 패를 만들어 도장을 새기는 방법으로 금패 위에 글을 쓰는데,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쓰게 하셨습니다. 그 패를 머리에 쓰는 관의 전면에 부착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사장의 머리에 쓰는 관은 금패를 붙인 대제사장의 것과 일반제사장의 겉이 다른 것은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금패가 부착된 것은 대제사장의 관이요, 일반제사장의 관을 금패가 없었습니다. 성결이라고 하였는데, 성결이란 말은 거룩이라는 말과 같고, 성직이라는 말도 됩니다.
금패를 다는데, 청색 끈으로 그 패를 관의 전면에 놓이도록 달게 하였습니다. 성패가 관에 매어 이마 위에 놓이게 하였습니다. 대제사장은 구별된 사람이요, 하나님의 일에 부름을 받았습니다. 대제사장은 어떤 제사장도 마찬가지이지만, 성별의식을 가져야 할 사람입니다. 대제사장이 쓰는 관과 일반제사장이 쓰는 관은 높이 다른데, 대제사장의 관이 더 높고 그 관에는 “여호와께 성결”이라는 금패가 붙여 있습니다. 제사장들이 머리에 쓰는 관은 터번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머리에 관을 쓰고 성소에 들어갈 때에 그는 성물로 드리는 그 성물의 허물을 담당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가는 베실로 속옷을 만들게 하셨습니다. 반포속옷, 고의라고 했습니다. 반포속옷, 모시 속옷이라는 말인데, 속옷은 제사장의 부끄러움을 가려주고 성결을 의미하였습니다. 속옷을 입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체가 보이지 않게 해야 했습니다. 레위기16:4에서 “거룩한 세마포 속옷을 입으며 세마포 속바지를 몸에 입고 세마포 띠를 띠며 세마포 관을 쓸지니 이것들은 거룩한 옷이라 물로 그의 몸을 씻고 입을 것이며”라고 하셨습니다.
세마포, 모시로 짜서 만든 속옷은 제사장이 가장 먼저 입는 옷으로 긴 옷으로 소매도 있고, 그 길이는 발까지 미치고 온 몸을 가려줍니다. 제사장은 속옷을 입고 겉옷을 입고 에봇을 걸치고 그리고 띠를 띠라고 하셨습니다.
이 띠는 옷을 입고 나서 몸을 잘 보호하고 옷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힘을 줍니다 이 띠는 제사장으로 권위가 있음을 말해주고, 진리로 무장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도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라고 하셨습니다.
옛날부터 하나님은 제사장들은 일반 백성과는 다르게 보이게 하셨고, 성별하셨다는 사실을 옷으로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옷이란 신분을 말해주고 그가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도 흰색의 가운을 입고 있으면 의사나 간호사를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법관은 법의를 입어야 권위가 있습니다. 법관이 재판하면서 일반인과 같은 복장을 하고 있으면 재판에 권위가 없어집니다.
요즈음 예배 시간에 열린 예배니, 구도자예배니 하여 남방셔츠 입고 강단에 오르는 목사들이 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그렇게 좋다고 보지 않습니다. 그래도 목사는 정장하거나, 성직을 나타내는 옷을 입어야 자신도 하나님 앞에 구별된 사람으로 설 수 있고 신분에 걸맞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이 로만칼라, 클러지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분에 어긋나지 않게 살아가려고 자신을 보호해주기도 하지만, 교회는 신비성이 있어야 좋습니다. 천주교회에 가보면 강단도 높고 무엇을 하는지 잘 모르지만, 신비한 분위기가 있습니다. 불교에서도 승려들이 머리를 깎는다든지, 승복을 입는 것으로 일반신도와 구별합니다. 그런데 오늘의 한국교회는 모든 상징을 버리고 있습니다. 말씀의 능력만 있으면 된다고 하는데, 종교에는 신비한 분위기를 버리면 안 됩니다.
완전 불신자를 천주교에서 데려가 보고, 불교의 절에도 데려가 보고 교회에도 데려가 본 후에 어느 종교를 선택하겠느냐 하였더니, 60%가 천주교회를 택하고 30%가 불교를 택하고 10%만이 개신교회를 선택하였다는 말이 있습니다. 왜 천주교회를 선택하였느냐 하였더니, 신비하더라고 합니다. 무엇인가 있는 것 같고, 사제들이 권위가 있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단순합니다. 종교에서 신비한 분위기를 빼어버리면 남는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옛날 처음 유대교회에서 대제사장과 제사장을 세우는데, 그들이 입는 옷이 달랐습니다. 일반 백성들이 감히 그렇게 비싼 옷을 입을 수가 없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일반백성들과 구별이 되었고, 자가 자신들과 제사장이 되었다는 의식이 있었고,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제사장이란 어떤 분들입니까? 하나님이 제사장으로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성별하여 기름을 붓고 제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아론의 4아들들이 다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그들 제사장은 일반백성의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들어가 대속의 희생 제사를 드리고 죄를 용서하신다는 말을 선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를 대신하며, 우리를 대표하며,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시는 분들입니다.
이스라엘을 해방시킨 가장 위대한 사람은 모세입니다. 그러나 아론은 모세보다는 못하고 항상 2인자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축복하시고 구별하셔서 대대로 제사장 가문을 이어가게 하셨습니다. 아론을 성별하시는 것은 모세의 추천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셔서 세우셨습니다. 항상 2인자요, 모세가 할 수 없는 어려운 말을 대변하던 사람이었는데, 하나님은 모세보다 아론을 더욱 복되게 하셨습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 제사장들은 거룩한 옷을 입게 했습니다. 제사장의 옷은 거룩한 옷입니다. 이것을 제작하는 사람은 마음에 지혜가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이행하는데도 마음에 지혜가 있어야 합니다. 주의 영이 함께 하시는 전문기술자들을 말합니다. 대제사장이 입는 옷은 아주 정교하고,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만들어야 하는데, 일에 익숙하지 못하고 어둔하다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정확히 만들 수 없습니다. 지혜의 영으로 감동을 받아야 하고, 기술이 뛰어나야 합니다. 옷을 한 벌 만들려고 해도 손재주가 있고, 지혜로운 사람은 잘 만들고, 기술이 뛰어나지 못하면 옷이 그렇게 좋은 옷이 되지 못합니다.
사61:10-11에서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을 내게 입히시며 공의의 겉옷을 내게 더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석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나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셨습니다. 그리고 공의의 겉옷을 더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모를 쓰며, 온갖 보석으로 단장한 것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에게 구원의 옷을 입혀주셨고, 공의의 겉옷을 덧입혀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들어갈 때, 벗은 몸으로 부끄럽게 들어가지 아니하고 구원의 옷, 공의 겉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우리는 착한 행실로 거룩한 옷, 구별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시110:3에서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새벽 이슬 같은 주의 청년들이 주께 나오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온 입어야 합니다. 롬13:12-14에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갈3:27에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계시록7장에 보면 사도요한이 천상에 올라가서 천천만만 성도들이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 찬송하는 이들을 보았습니다. “장로 중 하나가 응답하여 나에게 이르되 이 흰 옷 입은 자들이 누구며 또 어디서 왔느냐 내가 말하기를 내 주여 당신이 아시나이다 하니 그가 나에게 이르되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계7:13-14)고 하였습니다.
우리 주님은 우리의 모든 의가 되시고, 구원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수님을 옷입고, 예수님의 의로 만드신 옷을 입고 구원받고,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면서 살아가시기를 소원합니다.
겉옷과 관 속옷의 교훈
출 28:31-43 / 엘림전원교회
1. 겉옷의 교훈
겉옷은 단일색으로 청색이었으면 하늘을 상징하는 것으로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성취됨을 의미한다고 했습니다.(롬8:34, 히7:24, 8:1) 단일색으로 번쩍이는 광채가 없으니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평온한 만족감을 얻도록 해 줍니다. 또 하늘색은 정결함의 상징입니다. 영원히 변치 않는 부드러운 푸른 하늘보다 더 정결하고 평온하며 안식이 있는 곳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대제사장의 옷은 그것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 그런 옷을 입고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들도 정결함과 온화함으로 차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에봇 받침 겉옷”은 이은 데가 전혀 하나 없이 짜여 졌습니다.(출39:22) 그것은 교회의 하나 됨을 넓은 의미에서 상징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하나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요17:21-23) 눈에 보이는 연합은 깨어질 수 있으나 그리스도가 참으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연합의 정신을 기르는 경건한 판단과 교회의 모든 분야에서 자기의 능력껏 최선을 다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서로 장점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진리와 거룩함으로서 기도로 정진해야 하며, 서로 협력하며 봉사해야 합니다. 또 방울은 제사장의 모든 움직임을 백성들에게 알려주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사상적으로 방황하고 세상일에만 신경을 쓰다가 성소로부터 아무런 소리를 듣지 못할 때 그들의 영혼이 깨어나게 하는데 제사장의 금방울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우리들도 땅으로부터 하늘로, 즉 세상의 헛되고 욕된 마음으로부터 대제사장인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있는 성소로 눈과 귀를 돌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관심을 참 대제사장이신 예수그리스도의 뜻에 집중시키고 그 방울소리를 통하여 연합되어야 할 것입니다.
2. 관(冠)의 교훈(36-38절)
관이 “왕관”의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미루어 볼 때 제사장들은 종교 및 정치적 지도자로서 이중 직무를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이 쓴 관에는 정금으로 패(牌)를 만들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 새겨서 제사장의 이마에 달고 다니게 했습니다.
(1) 그것은 대제사장에게 요구되는 공적인 성결함을 의미합니다.
대제사장은 그 민족의 머리가 되어 민족을 대표하는 위치로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모든 다른 사람들과 구별되어 거룩한 직분을 감당하도록 선택되었음을 의미합니다.
(2) 거룩한 인품을 요구한 것입니다.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예식을 행하는 자로서 바리새인들처럼 겉과 속이 달라서는 안 될 것입니다. (마23:27) 그 이마위에 “하나님께 성결”이라고 쓴 흉패를 달고 있는 대제사장이 그의 머릿속에는 불결함이 가득 차 있고 그의 가슴은 안일함을 추구하는 마음으로 차 있다면 그것을 얼마나 가증한 것입니까? 우리 크리스챤 모두는 거룩한 제사장으로 양 무리의 본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공적(公的)으로 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도 요구되는 것입니다.
(3) 대제사장은 종교적인 인도자로서 거룩함을 돕는 교사요 선구자였습니다.
의식(依式)적인 면에서 그 직분을 행함으로, 목회자로서 가르치고 훈계하며, 인격적인 면에서 모범을 보임으로 하나님과 중재(仲裁: arbitration)시키고 죄악으로부터 영혼을 깨끗케 해 주었습니다. 그의 훈계와 모범은 권위 안에서 자연적으로 능력을 갖게 되고 영원히 효력을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엘리 제사장은 범죄에 대하여 너무 온유하였으며 사명감당과 생명을 너무 쉽게 여겼으므로 (삼상2:22-36, 3:13, 4:11-18) 어떤 결과가 왔었습니까?
거룩한 직분을 가진 사람은 이중으로 거룩함에 속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레위의 언약을 파하면” 하나님은 “그들로 모든 백성 앞에 멸시와 천대를 당하게 하고”
하시고 또 “저주를 내려 복을 저주하리라”(말2:2, 8)고 했습니다.
3. 속옷과 띠(39-43절)
여기 속옷은 일반 제사장들이 대제사장과 함께 입는 예복이었으나 무늬만 달랐습니다.
(1) 속옷: 가는 베실로 만들어졌으며 티 없는 흰색이었습니다.
재료와 색깔은 정결함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의 제사장은 머리에서 발끝까지 정결하게 입혀졌습니다. 정결함은 그의 모든 외부를 감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순결성과 의(義)를 상징합니다. 이 속옷이 아론의 아들들에게 입혀졌던 것처럼(41절) 또 오늘 우리 성도들은 오직 대제사장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왕 같은 제사장들로 의의 옷을 입게 되는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제사장 아론의 아들들도 관을 썼는데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속하심으로 (히2:9) 우리에게 의의 면류관(딤후4:8), 영광의 면류관(벧전5:4), 썩지 않을 면류관(고전9:25), 생명의 면류관(계2:10)을 씌어 주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2) 띠의 교훈(40절)
띠는 에봇 받침 겉옷 밑에 허리를 동여매는 것으로 대제사장의 띠와 비교해 보면 금실만 빠져 있습니다.(28:40, 39:29절)
그러면 이 띠는 무엇을 상징하고 있습니까?
①이 띠는 다양한 색실로 공교히 수놓아져 있었지만 겉옷 밑에 있었던 것처럼 누구에게 보이든지 안 보이든지 간에 최선의 것으로 하나님을 섬김으로 헌신했음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허리를 동이고 겸손히 봉사하는 자세를 의미하며(요13:4) 우리 성도들이 가져야 할 태도입니다.
②긴장된 마음을 상징합니다.(눅12:35―36)
밤중에 주인을 기다리는 충성된 종은 등불을 켜고 허리띠를 띠고 긴장된 상태(준비된 상태)에서 기다립니다. 허리를 풀고 해이된 상태는 마땅치 않습니다.
③나그네적인 삶을 상징합니다.(벧전1:13)
오늘도 성도는 예수님이 다시 오실 때 임하게 될 은혜를 사모하면서 이 땅에서는 나그네 된 심정으로 허리띠를 띠고 본향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신약성경은 구약의 대제사장은 예수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제사장은 성도들을 상징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벧전2:5-9절) 곧 제사장의 옷이 우리들에게 교훈하고 있는 것은 대제사장 뿐 만 아니라 제사장들이라 할지라도 성소에서 예배드리는 성직자는 거룩한 옷을 입어야 합니다. 세마포 속옷은 몸 전체를 감추어야만 온전히 거룩하게 되는 것처럼 우리들은 세마포 옷으로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정결해야 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사장의 예복도 대제사장의 옷과 같이(38:2) 영화롭고 아름다웠습니다.(40절) 그 옷도 하나님의 의하여 설계 되었고 띠만 제외하고 모든 것이 흰색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변형되었을 때 모습이 어떠했습니까?(마9:3절) 그것은 그것이 변화된 우리의 모습이어야 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순결한 생각, 순결한 마음, 순결한 행위, 소박하고 질서 있는 봉사헌신은 얼마나 아름답겠습니까? 그때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아4:7)하고 칭찬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