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하느님이 바라시는 일
오늘은 1800년대 후반 이탈리아의 피에트렐치나에서 사셨던 오상의 비오 성인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다른 사람의 삶에 일어난 훌륭한 모습을 대하면서, 우리는 나의 삶에도 그런 삶의 모습이 반복될 것이라고 얼마나 말하겠습니까? 예수님이 겪으신 다섯 가지 상처라고 하는 삶의 고통에 관한 모습은 프란체스코 성인과 오늘 기억하는 비오 성인에게도 드러난 모습이라는 것이 교회의 일반적인 판단입니다.
머리와 두 손과 두 발에 있던 예수님의 오상은 세상의 사람들에게 흔한 모습은 아닙니다. 하느님께서 특별히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일어난 표징이겠지만, 우리는 그 일을 대하면서 어떤 삶의 태도를 드러내겠습니까? 내가 바란다고 해서 예수님의 오상이 내 몸에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 일은 우리의 바람에 따라 생기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선택하신 사람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표징일 것입니다.
우리는 기도라는 형식을 이용하여, 우리의 삶을 하느님께 맞추고 나를 향해서 세우신 하느님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싶다고 합니다. 물론 이렇게 하는 형식의 기도를 한두 번 실천한다고 해서 사람의 삶이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존재로 온전히 바뀌거나 하느님의 뜻을 정확하게 알게 되는 것은 아닐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게 하는 일로서 하느님의 뜻을 알려고 합니다.
우리가 삶의 뜻은 그렇게 거창하게 세우면서, 실제로 내 생각과 뜻대로 하느님이 움직이지 않으신다면 그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어떤 대상이 될까요? 그럴 때라도 하느님의 뜻을 알고 싶다면서 겸손한 삶의 태도를 지닐까요? 아니면 다른 삶의 태도를 갖겠습니까?
독서의 말씀으로 들은 잠언의 표현은 하느님의 앞에서 겸손한 삶의 태도를 청하는 것이지만, 우리가 청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선포를 위하여 사도들을 파견하시면서 말씀하신 실천의 조건도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세상 일의 걱정을 앞세운다면 우리에게 편안한 일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세상의 삶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바르게 기억하고 실천하는 것이라고 알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