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잎보다 못한 인간들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이 맑고
공기가 맑다
그러나 인간은 시끄럽다
신이 말한 저주의 땅처럼
인간의 말이 너무도 시끄럽다
작은 공간거리에
피아난 풀잎보다 못하네
살아 가는 군상들이다.
아침에 눈을 뜨면 햇살이 맑다.
밤새 가라앉았던 공기는 투명하고, 창밖의 나뭇잎은 말없이 아침을 맞는다. 풀잎 하나도 제 자리를 지키며 바람이 불면 흔들리고, 햇살이 비추면 빛을 받아 반짝인다. 자연은 그렇게 조용히 자신의 하루를 시작한다.
그런데 인간의 세상은 다르다.
눈을 뜨자마자 수많은 소리가 들려온다. 자동차의 소리, 사람들의 목소리, 서로를 향한 비난과 다툼, 끊임없이 울려대는 휴대전화와 수많은 정보들.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말하고 또 말한다. 그러나 정작 서로의 말을 듣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인간의 말이 너무 시끄럽다.
말은 원래 마음을 나누기 위해 생겨난 것이 아닐까. 기쁨을 전하고, 슬픔을 위로하고, 서로의 생각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는 말을 한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말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잇는 다리가 아니라 서로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어버렸다.
조금만 자기 생각과 다르면 화를 내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남을 밀어내며, 남의 삶을 쉽게 판단한다. 자신은 옳고 상대방은 틀렸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렇게 사람들은 서로에게 상처를 주면서도 자신이 얼마나 시끄러운 존재가 되었는지는 알지 못한다.
신이 인간에게 내려준 저주의 땅처럼,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는 온갖 소리가 가득하다. 그런데 그 소리는 단순히 귀를 시끄럽게 하는 소리가 아니다. 욕망의 소리이고, 탐욕의 소리이며, 분노와 질투와 경쟁의 소리다.
작은 공간 하나를 두고도 인간은 서로 부딪친다.
조금 더 가지려 하고, 조금 더 높은 곳에 올라가려 하고, 조금 더 인정받으려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 곁에서 조용히 살아가는 풀잎 하나를 바라볼 여유조차 잃어버린다.
풀잎은 누구보다 정직하게 살아간다.
햇빛이 있으면 햇빛을 받고, 비가 오면 비를 맞는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지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다른 풀잎보다 높아지려고 애쓰지도 않고, 다른 풀잎을 밟고 올라서려고 하지도 않는다. 그저 자신의 생명을 다해 조용히 살아간다.
어쩌면 인간은 그런 풀잎보다 못한 존재인지도 모른다.
인간은 지혜가 있다고 자랑하고, 문명을 만들었다고 자부하며, 자연을 정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욕망 하나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다. 작은 말 한마디에 마음을 상하게 하고, 사소한 이익 앞에서 양심을 내려놓기도 한다.
풀잎은 아무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 자신의 생을 살아간다. 인간은 살아가기 위해 때로 다른 생명을 짓밟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인간이라는 존재를 모두 부정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인간에게 아직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더 안타깝다. 인간에게는 생각할 수 있는 마음이 있고, 자신의 잘못을 돌아볼 수 있는 양심이 있으며, 누군가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
문제는 우리가 그것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아침 햇살 아래 풀잎을 바라보며 잠시 멈추어 서면 알게 된다. 세상은 생각보다 조용히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풀잎은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자리를 침범하지 않는다. 나무는 자신의 그늘을 자랑하지 않고, 꽃은 자신이 아름답다고 떠들지 않는다.
자연은 말없이 존재함으로써 우리에게 많은 것을 가르친다.
그러니 이제는 조금 조용해졌으면 좋겠다.
말을 줄이라는 뜻만은 아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한 말을 줄이고, 자신의 욕심을 앞세우는 말을 줄이며, 남을 함부로 판단하는 말을 줄이자는 것이다.
그리고 대신 들어보았으면 한다.
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를,
새벽의 고요를,
상처받은 사람의 작은 한숨을,
그리고 내 마음 깊은 곳에서 들려오는 양심의 목소리를.
우리가 조금만 조용해진다면 세상도 조금은 달라질 것이다.
아침 햇살은 여전히 맑고, 공기는 여전히 맑다. 풀잎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자리에서 살아간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인간을 생각한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위해 이렇게 시끄럽게 살아가는가.
더 많이 갖기 위해서인가.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서인가.
아니면 그저 남들보다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인가.
삶이 끝나는 순간 우리가 가지고 갈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남는 것은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얼마나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왔느냐일 것이다.
오늘 아침에도 풀잎은 아무 말 없이 흔들리고 있다.
그 작은 풀잎 하나가 나에게 묻는 것 같다.
“너는 나보다 나은 인간으로 살아가고 있느냐?”
나는 쉽게 대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조용히 살아보려 한다.
말보다 마음을 앞세우고, 욕심보다 배려를 생각하며,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나 자신을 돌아보면서.
풀잎보다 나은 인간이 되는 것.
어쩌면 인간에게 필요한 삶은 그토록 거창하지 않은 것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