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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그림)-이미지, 표상, 언어, 이념(제도, 권력, 부, 종교, 철학, 학문 등), 에고(생각, 감정), 인간의 모든 사고작용
파이프가 아니다-실제, 실재, 실체가 아니다.
https://naver.me/xVBvTCo8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Ceci n'est pas une pipe)"
벨기에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으로, 현
대 미술과 철학의 경계를 탐구하는 작품입니다. 1929년
에 발표된 이 그림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언어와 사물 ,
그리고 진실 사이의 관계를 심오하게 성찰한 마그리트의
비전을 담고 있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 속에는 파이프 그림이 그려져 있으며,
그 아래에는 프랑스어로 **"Ceci nest pas une
pipe"**라는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이 단순한 선언은 관
객들에게 파격적인 질문을 던지며, 미술과 철학의 영역에서 오랫동안 논의의 중심이 되어왔습니다.
마그리트의 작품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
1. 이미지와 언어의 분리
마그리트는 이 그림에서 '파이프'의 이미지를 그려
놓고 그것을 부정하는 텍스트를 추가했습니다
• 이는 이미지와 언어가 동일하지 않음을 보여주며,
우리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식을 전복시킵니다.
그림 속 파이프는 실제 파이프가 아니라, 단지 파이프를 묘사한 그림일 뿐입니다.
2. 상징적 의미
마그리트는 우리가 흔히 '파이프'라고 부르는 사물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묻고 있습니다
그는 그림과 현실, 이름과 대상 간의 차이를 강조하며, 우리의 언어와 사고방식이 현실을 얼마나 왜곡하는지를 드러냅니다.
미셸 푸코와의 연결: 언어와 사물의 관계
1968년, 프랑스 철학자 **미셸 푸코(Michel
Foucault)**는 이 그림을 주제로 한 에세이 *"이것은 파
이프가 아니다"*를 발표하며, 마그리트의 작품을 철학적
으로 해석했습니다
푸코는 이 그림을 통해 다음과 같은 철학적 논의를 전개
했습니다:
1. 표현의 다중성
• 푸코는 그림 속 텍스트가 진실과 거짓 사이의 고정
된 경계를 흐릿하게 만든다고 봤습니다
• 그림은 파이프의 이미지를 제공하지만, 텍스트는 그
것을 부정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언어와 이미지 사이의 간극을 인식하게 됩니다.
2. 표상(representation)의 문제
푸코는 마그리트가 '표상'을 문제 삼았다고 분석합니다.
• 우리가 사물을 묘사하거나 이름 붙이는 행위 자체가 실제 사물과는 별개의 과정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3. 현실의 해체
푸코는 마그리트의 작품이 현실을 다층적으로 분해하며, 우리가 익숙하게 여기는 진리의 구조를 의심하게 만든다고 주장했습니다.
미술적 해석: 초현실주의와 관객의 역할
1. 초현실주의의 특징
마그리트는 초현실주의 운동의 주요 인물로, 일상적
사물에 숨겨진 불가사의함을 탐구했습니다.
• 이 그림은 초현실주의의 핵심인 익숙한 것에서 낯선 것을 발견하기라는 개념을 구현합니다
2. 관객의 역할
• 마그리트는 관객이 단순히 그림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의미를 적극적으로 해석하도록 요구합니다.
• 관객은 텍스트와 이미지를 대조하며, 현실과 표상 사이의 관계를 사유해야 합니다
유명 인사들이 한 말
1. 미셸 푸코
"이 그림은 언어와 사물의 관계를 끝없이 질문하게 만든다."
2.살바도르 달리
• "마그리트는 우리가 보는 세계를 근본적으로 낯설게 만든다."
3. 파블로 피카소
"마그리트는 단순함 속에서 복잡함을 발견하는 마법을 부린다."
이 작품이 현대 사회에 주는 메시지
1.현대 미디어와 정보
• 이 그림은 현대의 이미지 중심 사회에서 정보와 진실의 경계를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특히 가짜 뉴스나 이미지 조작이 난무하는 시대에,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믿지 않고
그 본질을 질문해야 합니다.
2.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
마그리트는 우리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그 의미를 탐구하며 사고의 틀을 확장하라고
말합니다.
3. 창의성과 상상력
강숭한 그림 한 점이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완전히 바꿀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결론: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가 남긴 유산
르네 마그리트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는 단순한
초현실주의 그림을 넘어, 철학적, 예술적 담론을 촉발하
는 강력한 도구입니다. 이 작품은 언어와 이미지, 진실과
표상의 복잡한 관계를 탐구하며,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바굽니다.
마그리트는 관객에게 단순한 메시지를 던지지 않습니다
대신, 그는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는 과정에서 우리가 스
스로의 사고방식을 재구성하도록 초대합니다. 이는 오늘
날에도 유효하며, 현대인의 사고와 시각적 소통에 깊은
영향을 미칩니다
https://naver.me/G65Jm1NS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
《이미지의 배반》(La trahison des images)은 벨기에의 초현실주의 화가 르네 마그리트의 대표작이자 그의 세계를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해주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는 흔한 파이프가 그려져 있지만 그 아래에는 'Ceci n'est pas une pipe'(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쓰여 있다. 관습에 따르면 파이프를 재현한 그림 속의 파이프는 파이프가 맞지만, 마그리트는 관습적 사고방식을 깨기 위해 의도적으로 그림과 문장을 모순적으로 표현하였고 미술가가 대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한다 하더라도 그것은 그 대상의 재현일 뿐이지, 그 대상 자체일 수는 없다고 역설한다.
르네 마그리트(: René Magritte)
초현실주의 시대에 대표적인 작가 중에 한 사람인 르네 마그리트(프랑스어: René Magritte)는 초현실적인 작품을 많이 남긴 벨기에의 화가이다. 그는 1898년 11월21일에 벨기에에서 태어나 1967년 8월 15일에 사망하였다. 1916년 브뤼셀에서 미술공부를 시작했고,1920년 중반까지 미래주의와 입체주의 성향의 작품을 그렸다. 그러나 그 이후 조르조 데 기리코(Giorgio de Chirico)의 영향을 받아 초현실주의적인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그는 초현실주의적이지만 자신만의 개성이 두드러지는 작품들을 제작했다.주로 우리 주변에 있는 대상들을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그것과는 전혀 다른 요소들을 작품 안에 배치하는 데페이즈망 기법을 사용하였다.1940년대에는 그 전까지 했었던 작품들과는 다른 작품을 제작하기도 하는데, 인상주의시기의 피에르 오귀스트 르누아르(Pierre Auguste Renoir)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과 바슈시기의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작품들이 제작되었다.그의 작품들은 주로 신비한 분위기와 고정관념을 깨는 소재와 구조,발상의 전환 등의 특징을 보이며 이러한 특징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모든 것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이미지와 말편집
그려진 이미지는 통속적 재현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화가가 사물을 보는 방식과 그리는 기법, 즉 자신의 눈과 손을 통해 포착된 자신의 몸, 그 화가 개인을 묘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회화는 증명사진처럼 동일성의 의미를 전하지 않는다. 회화의 목적은 외형적 현실 자체가 아니라 현실 이면에 있는 깊이를 헤아릴 수 없는 비밀에 주의를 돌리는 것이다. 마그리트의 작품에 그려진 이미지는 언제나 사유의 이미지다. 이와 같은 입장에서 그것이 이미지로서 갖는 고유한 상황을 반성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가시적 환영이라는 의미에서, 현실 묘사를 위한 단순한 외관의 재현이 결코 아니다. 특히 이미 친숙하기 때문에 이름 붙여질 필요 없는 것을 이름을 붙이고 그것 자체를 부정함으로써 부조리한 표현을 하였으며, 거기에서 단지 결정되지 않고 얽매이지 않은 상황에 놓인 파이프의 재현밖에 없다. 이미지와 문구는 긴밀한 관계에 있어도 그 문자의 주장이 허위인지 진실인지 말하기 어렵다.
이에 대해 미쉘 푸코는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파이프의 뎃상’일 뿐이다.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라 ‘이것은 파이프다’ 라고 말하고 있는 문장이고,‘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은 ‘파이프’가 아니며,‘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란 문장에서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며, 그림, 쓰여진 문장, 파이프의 뎃상, 이 모든 것 ‘파이프’가 아니라고 설명한다.
이미지가 대상인 사물, 오브제를 나타낼 수도 있고, 잘못된 언어와 결합하면 이미지가 심지어 오브제 그 자체로 여겨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말과 이미지의 관계의 임의성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이미지와 글귀가 명백히 연관되어 있더라도 글귀의 내용이 옳거나 그르다고 말하기 어렵다. 즉, 언어의 임의성이란 문제 외에도, 그려진 대상은 2차적인 물체일 뿐이고, 현실의 환상적 이미지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제시한다.
작품해석
위에 보이는 그림처럼 그려진 파이프를 가지고는 담배를 피울 수 없다. 따라서 그려진 파이프는 파이프가 아니다. 이미지와 대상 사이가 그런 것처럼, 말과 대상 사이에는 정의하기 어려운 비밀스러운 간극이 존재한다.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말을 통해 실재를 포착하고 이 두 보완적인 체계들의 협력을 통해 실재를 단단히 붙들어두는 장치를 구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말에 대한 내적 거리와 이미지에 대한 외적 거리를 이용하여 잠에서 깬 상태에서 지각할 수 있는 꿈을 보여주는 독창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는 두개의 언어(시각적인 것과 말로 되어 있는)가 서로 무효화시키도록 만들고 있다. 그 자신은 자신의 그림이 "생각의 자유에 대한 물질적 기호로서" 여겨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는 이러한 자유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정의를 내렸다."삶, 우주, 무한한 공간 등은 생각이 진정으로 자유로울 경우에 아무런 가치도 갖지 못한다. 그것에 대하여 가치를 지니는 유일한 것은 의미, 즉 불가능한 것들이라는 정신적 개념이다."
그의 이런 방식은 전통적인 묘사방식을 부정하고 있다. 사람들이 어떻게 파이프 그림이 파이프 자체라고 생각할 수 있는지에 놀라는 자신을, 관람자는 발견 하게 된다.
실체와 명명
두 개의 비밀(The Two Mysteries) 1966년, Oil on Canvas,65 x 80 cm, 브뤼셀 이시 브라쇼 미술관
마그리트는 이미지와 말을 통해 실재를 포착하고 이 두 보온적인 체계들의 협력을 통해 실재를 단단히 붙들어두는 장치를 구성하는 데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말에 대한 내적 거리와 이미지에 대한 외적 거리를 이용하여, 잠에서 깬 상태에서 지각할 수 있는 꿈을 보여주는 비밀, 저 손상되지 않은 비밀스러운 차이, 독창적인 사유를 불러일으키고자 한다.
말(言)은 가시적인 것의 영역에 속하지만 그 개념 자체에는 말의 특성이 전혀 없다. 예를 들어,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진 말(馬)이라는 '개념'과 이 피조물 사이에는 오로지 추상적인 관계만 존재한다. 이미지와 마찬가지로, 말(言) 또한 언어의 본성과 그것이 언급하는 사물 사이의 차이를 가지고 게임을 한다. 또 다른 예로 '센 강'이라고 쓰인 말은 파리를 연상시키지만 이것은 실제적이지 않고 단지 추상적인 과정일 뿐이다.
파이프의 재현물은 파이프가 아니라는 것으로 우리가 명명하는 것과 그 실체는 엄연히 다를 수 있다는 간단하고 평범한 결론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이것은 마그리트가 거듭 언급하는 세속적인 비밀을 그만큼 더 감추고 있다. 대상을 지시하는 말도 대상을 그린 그림도, 대상이 실제 존재한다는 점을 우리로 하여금 확신하게 할 수 없다.
출처: 위키백과
https://naver.me/xoHsSUDB
이러한 의문은 비단 파이프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과 개념에 적용가능하다.
요컨대 누군가 내 이름을 부르며 나는 내가 아니다라는 말을 하더라도, 그것의 논지는 파이프가 아니다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우리는 언어의 불완전함을 잘 알고 있다.
인간들은 언어를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세상의 온갖 사물에 이름을 붙히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인지능력에는 한계가 있다.
때문에 미처 발견하지 못해 이름이 못 붙은 것들이 있다.
예를 들어, 원시 시대에는 공기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바람에 대한 개념은 알아도 그 바람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산소와 질소와 기타 등등의 이름이며 비율이며 전혀 몰랐다.
하지만 그 당시에도 산소는 존재했다.
산소가 무엇인지는 몰랐어도 자연스레 숨을 내쉬며 그것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는 말이다.
이번엔 무지개를 떠올려보자.
한국 사람들은 무지개를 일곱가지 색으로 나누는데 익숙하다.
그러나 과거 조선시대에는 색을 흑백청홍황의 다섯가지로 구분했다.
때문에 무지개에서도 다섯가지 이상의 색을 구분 하지 못했다.
이 잔재는 여전히 남아서 우리들의 부모님 세대는 신호등 초록불을 파란불이라고 표현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더불어, 한 인터넷 기사에 따르면 나라별로 무지개의 색 구분은 다 다르며
최대 207가지까지 구분할 수 있다고 한다.
즉 같은 대상을 보더라도 개개인마다 다른 감상, 다른 느낌을 받는다는 말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실재는
① 이름을 붙이는가에 관계없이 존재하며
② 같은 이름이 붙어 있더라도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느낌은 다르다.
그런데 이게 도대체 파이프와 나와 무슨 관계가 있는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적 관점인듯. 이데아론에서는 항상 어떤 물체와 개념의 이상적인 모습을 설정함. 예컨대 책상의 이데아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만인이 봤을 때 책상이며 현실에 존재하는 책상은 그것으로 부터 파생된 형태라는 거임. 그런데 언어학에서는 이를 완전히 수용하지는 못하는데 이데아가 각각의 이데아들끼리 서로 완전히 구분됨과는 달리 언어는 서로 간의 차이도 있지만 유사성이 존재하기 때문임. 이 유사성을 바탕으로 각각 단어들간의 비유. 관계가 성립한다.
물론 어떤 사람은 인간의 인식작용에 있어 경험적(언어)로 학습하는 작용에 앞서 선험적으로 각 개체들의 공통된 부분을 묶어 분류를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므로 파이프가 아니라고 말을 한들 실제 다른 파이프와의 공통점을 선험적으로 인식하기에 결국 그것의 이름을 이렇게 붙이든 저렇게 붙이든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수 있다고도 말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