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주국과 만주군 계보
* 만주 국은 일본 관동 군이 1931년에 만주 사변을 일으킨 이듬해 1932년에 청나라
마지막 황제 <푸이>를 황제로 옹립하고 개국한 일본의 괴뢰국이었음.
* 만주국은 외형상으로는 일본의 속국이 아닌 독립국가 형식을 갖추었지만, 관동군
이 직접 통치하는 국가였음.
* 일본은 만주 벌판의 넓은 농토를 경작하여 부족한 식량을 확보하려고 본국인 500
만명 정도의 인구를 이주 시키려고 하였으나,일본 본 국민의 지원자가 부족하여 조선
인과 대만인, 한 족을 끌어들이는 유인책을 썼음.
* 그 유인책으로 관리를 양성하는 대동학원을 신경(장춘)에 세우고, 봉천(심양)에
2년제 군관 학교를 세웠으며, 1938년에는 신경(장춘)에 건국대학교와 1939년에는
4년제 군관학교를 세웠음.
* 당시에 조선은 농토가 부족하여 삶이 어려웠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만주로의 이
주를 원하게 되었으며 거기서 무료로 농지를 배분받아 농사를 지으면서 자식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었음.
* 대동 학원은 고급 관료를 양성하는 학교로 대학을 졸업했거나 공무원 중에서 선발
하여 교육을 시켰음.대동 학원을 졸업한 조선 인은 116명인데, 대표적으로 최규하 前
대통령, 고재필 前 보사부 장관, 황종률 前 재무장관 등이 있음.
* 건국 대학 출신은 90명인데, 대표적으로 민기식 前 육군 참모총장, 강영훈 前국무
총리가 있음.그리고 그 때 건국대 교수로 육당 최남선이 재직하고 있었음.
* 봉천 군관 학교 -봉천 군관 학교는 1932년 3월에 개교 하여 1939년 3월 9기 까지
배출하였음.
-조선 인은 3기부터 입교 하였는데, 3기는 김정호(국회의원 역임) 등 2명, 4기는 5명,
5기는 정일권 前국무총리, 김백일 前1군단장 등 18명,6기는 양국진 前 육군 소장 등
7명, 7기는 최창륜 등 7명, 8기는 석주암 前 육 군소장 등 3명, 9기는 백선엽 전 육군
참모총장 등 3명이었음.
관동 군은 여기서 9기까지 배출하고 장춘에 다시 4년제 군관 학교를 세웠는데 여기를
신경 군관 학교라고 함(장춘을 만주 국 수도로 정하고 新京이라고 개명했기 때문임)
*신경 군관 학교 -관동군은 1939년 3월 3일 신경에 4년제 군관학교를 개교하고 생도
를 모집하였는데, 조선인 생도는 다음과 같음.
-1기에 이주일 前2군사령관, 김동하 前해병대 사령관 등 13명
-2기에는 박정희 前대통령, 이한림 前1군사령관 등 11명
-3기에는 최주종 예비역 소장 등 2명
-4기에는 장인수, 예관수 등 2명
-5기에는 강문봉 전 2군 사령관 등 5명
-6기 9명, 7기 4명이었음.
* 해방 후에 이들은 대부분 창군(創軍)에 참여하였으며, 행정가로서 국가 발전에 이바
지 하였음.
* 육당 최남선 같은분은 1919년 3월 1일 기미 독립 선언서를 작성하고 선언서를 낭독
한 애국 지사였는데, 일본 관동군이 세운 건국대학교에서 교수를 한것 때문에 반민족
행위자로 낙인이 찍혔는데, 안타까운 일이었습니다. 그 당시 이광수, 홍명희와 함께
조선의 3대 천재로 명성이 자자했던 인물이기도 하였습니다. (펌글)
첫댓글 잘 몰랐던 만주국, 만주벌판에 이주한
농업이주민들의 자식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려고, 세운 대동학원, 군관학교, 건국대학교에서 배출된 많은 인재들이,
대한민국의 창군멤버가 되어 역사를 만들었군요. 건국대학교에서 교수를 하였다고 반민족 행위자로 낙인이 찍혔던, 육당 최남선은
의령 중학교 교가를 작사하셨습니다. 저는 그 교가가 좋아서, 60여년 직장과 사회생활 하던 시기에, 큰 소리로 노래하면서 어려움을 이겨내었습니다. 기회가 되면 조선의 3대 천재인 육당선생이 작사하신 자랑스런 교가를 불러드리고 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