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생명을 던져 다른 사람의 생명과 교환하고 구하는 일이 인간의 힘으로 가능한 것일까? 인간도 동물처럼 "이기적 유전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주장하는 생물학적 진화론자들에게는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이야기다.
20세기가 남긴 최악의 기억이라고 할 수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1941년에 일어난 일이다. 한 명의 수인이 수용소를 탈출하면, 본보기로 10명의 수인을 무작위로 뽑아 아사형 감방으로 보낸다. 물 한방울 조차 주지 않고 굶겨 죽이는 아사(餓死)형이다. 사람들은 아사 감방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 알기에 공포에 질린다.
불려나온 10명 중에 한 사람이 가족때문에 죽을 수 없다고 절규한다. 그때 수인 중 한 사람이 나치 앞에 나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이 사람 대신에 나를 그곳에 넣어줄 것을 원합니다." 꼴베 신부님이었다. 나치는 그 신부님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지만, "당신이 누구냐?"는 물음 뒤에 원하는대로 해 주었다. 이 순간이 바로 어린 꼴베가 성모님께서 들고 계셨던 붉은 장미 화관을 쓰는 순간이었다.
그래서 꼴베 신부님 대신에 목숨을 건진 이가 가죠브니체크라는 사람이었다. 이번 7월 시카고에 피정 갔다가 꼰벤두알 프란치스칸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피정집 곁의 24시간 성체 조배 성당 옆 꼴베 성인의 유품이 전시된 곳에서, 그의 사진과 그가 그곳을 다녀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여러가지로 감회가 새로웠다.
가죠브니체크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 신부님과 이야기하지는 못했습니다. 한마디도 말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 말 없이 헤어졌는데, 신부님은 나를 보고 미소를 지었습니다." 가죠브니체크는 그 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고, 그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길에 이끌리어 기적적으로 살아남게 된다.
그는 꼴베 성인의 명성을 듣고 심한 자책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훌륭한 사제를 죽음으로 몰아낸 것은 나다. 내가 죽는 편이 더 좋았을 것을…" 그렇지만 오랜 시간 후에 그는 "괜찮다"고 말하는 듯 말없이 미소짓던 꼴베 신부님의 그 미소의 의미를 깨닫고, 긴 세월의 고뇌에서 벗어난다. 그리고 그는 꼴베 신부님의 "벗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는 그 사랑"을 전하는 전달자가 되는 것이 자신의 사명임을 알게 된다.
어떤 꼰벤뚜알 프란치스칸은 이런 이야기를 한다. "지금까지 나는 꼴베 신부님이 가죠브니체크씨 한 사람을 구하기 위해 대신 죽겠다고 자원한 것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사실은 꼴베 신부님이 아사 감방에 함께 넣어진 9명을 영적으로 구하기 위해서 가죠브니체크씨 대신 감방에 들어가겠다고 자원한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사 감방에는 완전히 발가벗겨져 속옷을 입는 것 조차 허락되지 않았고, 마실 물 한 모금도, 먹을 음식도 제공되지 않았다. 몇 날 지나지 않아 반드시 죽을 것이고, 살아날 희망은 없으며, 인간의 존엄성과 인권은 도무지 없다. 그들에게 인간적으로 삶의 의미같은 것이 존재했을까? 그 가운데서도, 꼴베 신부님은 죽음를 두려워하지 않았고, 조용히 기도하였으며, 같은 감방안의 동료들을 격려하였다. 그들의 망가지고 절망의 파도속에 삼켜진 마음을 품어주고, 그들에게 진정한 삶의 의미를 신앙안에서 가르쳐 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임종을 한 사람, 한 사람 지켜 주었다.
꼴베 신부님은 시체를 치우러 오는 병사를 상냥한 눈으로 쳐다보며, 그들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9명이 다 죽어 나가고 꼴베 신부님이 최후의 한 사람이 되었다. 기도의 힘과 신앙의 힘은 성령의 은총을 불러들였고, 놀랍게도 17일간 살아 남았다.
보통 인간이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17일간을 산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다. 40일 금식하는 이들도 물은 마시기 때문에 사는 것이다. 보통 사람이 물을 2주일간 마시지 않으면 죽는다고 한다. 게다가 꼴베 신부님은 고질적인 폐결핵을 앓고 있었기 때문에,감방에 들어가기 일주일 전에는 나치 간수로부터 몽둥이로 기절할 정도로 두들겨 맞았다. 모두가 죽어 나가고 감방에 꼴베 신부님 홀로 남았다.
나는 아우슈비츠 강제 포로 수용소의 꼴베 신부님의 좁은 감방을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나치는 꼴베 신부님이 피골이 상접한체 끝까지 살아 남게 되자, 페놀 독약 주사를 놓아 안락사 시키는 방법을 택했다.
아사 감방에서 최후의 한 사람이 되어서도 꼴베 신부님은 고결함의 품위를 유지했다. 극한적인 죽음의 마지막 찰나에서 존엄을 잃어버려야 할 사람이 오히려 자애로운 눈으로 무언가를 쳐다보며 골똘히 묵상에 잠긴다.
그 무언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일 수도 있고, 천상의 지존하시고 거룩하신 삼위일체와 그 곁의 원죄없으신 성모님일 수 도 있고, 아니면 다른 아사 감방과 그곳 수용소의 수인들일 수도 있다. 나치는 결국 꼴베신부에게 결정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이 승리의 소식은 살아남은 수인들에게 조용히 전해졌다.
"아우슈비츠에 희망은 전혀 없었다. 그렇지만 꼴베신부의 그 <벗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죽음>을 알았을때, 이상하게도 우리 모두에게 '살자, 끝가지 살아남자, 생명은 소중하다'고 하는 힘이 용솟음쳐 올랐다. 그 마음의 변화를 나는 지금도 확실히 기억하고 있다."
아우슈비츠 포로 수용소에서 살아남은 한 사람의 증언이다. 그리고 가죠브니체크는 93세까지 천수를 누리고 1995년 세상을 떠났다. 꼴베 성인의 성덕을 전파하던 가죠브니체크 생전의 모습 |
첫댓글 감사합니다 ~^^
감사합니다~^^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