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띄운 글 '에베레스트 열 번 오르는 것보다 힘든 가정폭력 탈출'을 지난달 31일 넷플릭스에 올라온 다큐멘터리 '마운틴 퀸, 락파 셰르파의 정상들'(루시 워커 감독)을 감상한 뒤 4일 오후 4시쯤 다듬고 제목도 수정한다. 달라지거나 새로 쓴 대목을 명조체로 표시한다.
로튼 토마토 신선도 100%, 올해 본 최고의 다큐 영화 중 하나, 치솟는다 등등이 이 영화의 매력에 사로잡힌 미국 매체들의 평이다. 깔끔하며 섬세한 연출, 정갈한 음악에 그동안 무미건조한 필름으로만 접했던 베이스캠프 위의 상황, 등반 과정을 담담하고도 진솔하게 전하고 있어 감동적이었다. 어떤 역경이 닥쳐도 "다 이겨 먹는다. 그게 바로 나다"라고 웃는 락파 셰르파의 메시지가 묵직하다.
"제가 감히 정상을 즈려밟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표현은 새롭기만 했다. 산으로 향하고자 하는 그녀의 내면과 남편과 아이들이 선사하는 감옥의 간극, 세 모녀의 갈등과 화해 과정은 아래 글로 접했을 때보다 훨씬 감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있었다.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해발 고도 8848.86m)를 10차례 올라 여느 여성보다 많이 올랐던 네팔 여성 락파 셰르파(51)는 알고 보면 위험하고 공포스러운 사생활을 겪었다. 바로 남편의 가정폭력에 시달렸던 것이다. 심지어 2004년 함께 에베레스트를 등정한 뒤 하산하면서도 남편의 주먹질을 견뎌내야 했다.
그런데 지금은 미국에 살고 있다. 그녀는 세 자녀를 양육하느라 잡화점 점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7일 전했다. 몰론 락파는 이 영화를 자랑스럽게 여기며 "여성들이 할 수 있는 일을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최소한의 훈련을 받고 세계 최고 높이의 산들을 올랐다. 넷플릭스 제공
기록적인 고산 등정에도 놀라운 것은 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고 해냈다는 점일 것이다. 에베레스트 등정은 목숨을 빼앗을 수 있다. 산악 등정이 한 세기 전부터 기록되기 시작한 이래 지금까지 에베레스트 일대에서만 300명 넘게 목숨을 잃었다.
영화에서 우리는 락파가 코네티컷주 산들에서 걷는 일로 몸을 가꾸는 것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녀는 필요 때문에 보통의 직장 일을 수행하고 있다.
워커는 인터뷰 중에 락파에게 "당신은 예외적인 선수다. 매우 크다. 매우 강하다"면서 "사람들은 과소평가하는데 낮 동안 일을 하면서도 에베레스트를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성취"라고 털어놓았다. 이에 락파는 "난 교육을 잘 받지 못했지만 산에는 익숙하다"고 대꾸했다.
미국 잡화점에서 일하는 것은 셰르파가 가족을 부양하는 방법 중 하나다. 넷플릭스 제공
네팔 히말라야의 야크 농부 가정에서 1973년 태어났는데 11명의 자녀 가운데 한 명이었다. 여자아이들의 교육을 우선시하는 것이 아닌 지역에서 자라났다. "딸을 키우는 것은 남의 집 나무에 물 주는 것과 같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곳이었다. 그녀는 언덕들을 넘어 남동생을 학교에 바래다주곤 했지만 안에 들어가는 일은 허용되지 않았다.
지금 네팔 상황은 개선되고 있다. 여성의 문자 해독률은 1981년 10%에서 2021년 70%로 치솟았다.
그러나 셰르파의 교육 부족은 오랜 상처를 남겼다. 지금도 그녀는 글을 읽지 못한다. 그녀에겐 사람들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것들, 예를 들어 TV 리모콘을 쓰는 일 같은 것도 힘들다. 1990년대 후반 네팔 남성과의 사이에 태어난 아들 니마, 두 딸 서니(22)와 샤이니(17)가 그 간극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된다.
셰르파의 기술과 열정은 등반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넷플릭스 제공
학교를 다니지 않아 그녀는 열다섯 살 때 포터로 일하기 시작했는데 때로는 유일한 여성이었다. 왜 일해야 했느냐면 전통적인 중매 결혼을 피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도 카트만두에서 짤막하게 남성을 사귀어 임신했을 때 삶은 더 고달파졌다. 미혼모란 사실이 부끄러워 고향을 등져야 했다. 등반 일을 하며 루마니아와 미국 이중국적의 산악인이며 주택 리모델링 업자 조지 디마레스쿠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는 독재자 니콜라에 차우세스쿠 치하의 루마니아를 탈출하려고 다뉴브 강을 헤엄쳐 건넜다. 디마레스쿠는 락파와 2002년 결혼했을 때 이미 코네티컷주에 살림을 차려 서니와 샤이니를 데려갔다.
그러나 행복한 관계도 잠시, 남편이 폭력 성향을 드러내며 힘들어졌다. 2004년 부부는 뉴잉글랜드 등반 그룹과 에베레스트를 오르게 됐는데 정상을 밟은 뒤 악천후를 만났다. 현지 신문에 등반 과정을 실었던 마이클 코다스 기자에 따르면 디마레스쿠의 행동은 "거의 즉각적으로 달라졌다"고 했다. 코다스는 다큐멘터리에 출연, 디마레스쿠 주변이 순식간에 "적대적이" 됐다고 말한다.
그와 같은 텐트에 있었던 락파는 카메라를 보고 “그는 천둥처럼 보인다. 총알처럼 보인다. 조지는 소리를 지르며 내게 주먹을 내뻗었다”고 말한다. 그 때 코다스가 촬영한 사진들을 보면 그 뒤 락파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다. 기자는 디마레스쿠가 아내를 텐트에서 질질 끌어 내며 "이 쓰레기를 여기에서 치우라"고 말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털어놓는다.
영화에서 락파는 영혼이 육체와 분리되는, 이른바 유체이탈을 경험했다고 묘사한다. “사람들 목소리가 많은 새들 소리로 바뀌었다. 내 인생 전체를 봤다. 난 엄마 집 가까이를 날고 있었다. 모든 것을 봤다. … 난 스스로를 부끄럽게 느꼈다. 난 죽고 싶었다." 그 때 그녀는 자녀들이 기억났다면서 "죽을 준비가 돼 있지 않다"고 말한다.
코다스는 2008년 책 'High Crimes: The Fate of Everest in the Age of Greed'에 자신이 겪은 폭력 사태 얘기를 집어넣었다. 워커는 나중에 코다스가 촬영한 테이프 원본을 달라고 온갖 협박을 해 뜻을 이뤘다.
락파는 "어려운 주제이고 사람들은 논쟁적이기 때문에 그런 일에 휘말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난 '노'(No)란 답을 듣지 않았다"고 BBC에 털어놓았다.
왼쪽부터 큰 딸 서니, 감독 루시 워커. 락파 셰르파, 둘째 딸 샤이니. 게티 이미지스 제공
관계에는 금이 갔지만 부부는 여러 해를 함께 지냈다. 에베레스트에도 함께 여러 차례 다녀왔다. 하지만 2012년 디마레스쿠가 그녀를 다시 폭행해 병원에 입원하며 전환점이 됐다. 사회 봉사 공무원의 도움을 받아 딸들과 여성 폭력 피난센터로 옮겨와 새 삶을 개척하기 시작했다. 2015년 이혼했고 이듬해 락파는 단독 양육권을 법정으로부터 인정받았다.
아웃사이드온라인 보도에 따르면 디마레스쿠는 평화를 해친 혐의가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 6개월형, 보호관찰 명령 1년형을 선고받았다. 다만 눈에 드러난 머리 부상은 없는 것으로 판명돼 그는 2급 폭행 혐의는 무죄로 인정받았다.
두 떨과 모녀가 서로 머리를 매만져주며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디마레스쿠는 2020년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트라우마는 끈질겼다. 락파는 다큐멘터리를 위해 부부 관계를 다시 입에 올리는 일이 정말 힘들었다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난 모두 비밀이 지켜졌으면 하고 바란다. 난 모두가 아는 일을 원치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들은 워커의 이전 작업들을 검색하고 난 뒤 워커와 영화를 찍는 것을 권했다. 워커 감독은 락파에게 "당신이 당신 얘기를 들려 줄 때 '우린 이 시절에 대해 얘기하지 않아요' 하며 건너 뛸 수도 있다. 그리고 천천히 천천히 우리는 어려운 일들로 나아갔다. 당신에게 너무 트라우마인 일이라 화가 나고 잠도 안 오고 매우 강렬한 일"이다. 하지만 대체로 공유할 수 있으면 사람들은 당신을 더 사랑할 것이다. 당신이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운 시절이 있었음을 알게 하면 내 생각에 훨씬 더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두 딸도 공감했다. 둘은 영화에 모습을 드러내는데 "처음에는 보기에 압도적이었다. 우리 삶을 통째로 보여줘야 하니 얼마나 취약해질까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참여하기로 결정한 것은 "우리가 가족으로서 함께 이겨낸 싸움이기 때문이며, 우리가 우리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강하게 하는 데 익숙해지는 일이 우리 엄마의 이야기 가운데 결정적 부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놀랍지도 않게 셰르파는 결혼 생활 트라우마를 겪은 뒤 삶이 힘들어졌다는 것을 말한다. "오 주님. 예, 울어요. 난 내 인생을 열심히 일궜는데 열심히 일했으며, 어려운 용기를 냈다때대로 나에게 '왜 내가 살아 있는지, 왜 내가 죽지 않았는지' 묻곤 한다. 너무 위험이 많다. 천국에 거의 있을 번했는데 돌아왔다. 하지만 어쨌든 해냈다. 상처받은 여인이 매우 강하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 계속 그럴 것이다."
셰르파가 운해 위로 두 딸 사진을 들어 보이며 각오를 다지고 있다. 넷플릭스 제공
등반은 그녀의 열정일 뿐만 아니라 치유 과정이기도 하다. "내 어두움은 산 위에 두고 왔다"고 했다. 2022년 에베레스트 10번째 등정에 나서 기록을 경신했다. 샤이니에게 속삭여 작별을 고하고 베이스캠프 근처 텐트에서 잠을 청하고 등정은 한밤중에 출발한다. 정상에서 내려올 때는 해가 중천에 떠있을 때다.
딸들이 엄마를 자랑스러워하는 점은 분명하다. 정상 등정에 나선 열흘 사이 락파의 얼굴이 늙은 락파처럼 변했는데 베이스캠프에서 맞은 샤이니가 깜짝 놀라며 엄마를 놀리고 둘이 끌어안으며 "사랑한다. 너 때문에 이 산을 찾았다"고 말하는 과정이나, 에베레스트행에 함께 하지 않은 서니가 "공간은 달랐지만 엄마가 성취하는 과정을 함께 했다"고 말하며 세 모녀가 함께 공감하는 장면은 감동적이었다.
락파는 미국에서 아이들에게 교육을 제공하는 등 더 나은 삶을 가꿀 수 있다고 말한다. "정말로 내 인생, 딸들을 바꾸고 싶어 열심히 일한다." 10번째 등정에 성공하며 인지도도 올라가고 후원 약속도 받아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파키스탄 K2도 올랐다. 그녀는 자신의 산악 가이드 회사를 차려 돈을 벌고 싶으며 더 많은 후원이 제공됐으면 한다고 했다. "산을 알기 때문에 내 실력과 경험을 다른 이들과 공유했으면 한다." 서니와 샤이니는 "여성들이 큰 봉우리들을 오르기 시작해 우리 엄마의 족적을 따라갔으면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