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힘..
소승이 해인사에서 공부할 때일입니다.
대구 약전골목에 가면 대남한의원이 있었습니다 지금은 돌아가신 주인 여동명거사는 대한불교조계종 경북신도회 회장을 지냈으며
그당시 전국에서 제일유명한 한의원이었습니다. 진맥은 대남에서 하고 오라는 말이 있을 만큼 유명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동명 거사의 뒤에는 어머니의 지극한 기도가 받쳐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일찍 남편을 여읜 보살은 외아들을 한의사를 만들기로 작정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을 대학에 보내지 않고 한약방의 종업원으로 취직시켜 한의학을 익히게 했습니다. 당시는 한의학과 대학이 없었고 한약방이 그 역할을 했습니다.
첫 번째로 들어간 한약방에서 더 배울 것이 없게 되자 다른 한약방으로 보내 의술을 더 익히게 했고 그 곳에서 배울 만큼 배우면 또 다른 한약방으로 보냈습니다.
그렇게 여러 곳을 다니며 두루 의술을 익혀 마침내 한약방을 차려 독립해도 되겠다면 스승이 의술을 인정하자 어머니는 아들에게 한의원을 차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충청도 연기군의 조그만 마을에 개업한 한약방은 생계를 유지하는 것조차 힘들었습니다.
최악의 상황에서 어머니는 백일기도를 시작했습니다. 남들이 모두 잠들어 있는 한밤중에 일어나 찬 물에 목욕한 다음 맑은 물을 깨끗한 사발에 떠서 뒤뜰의 장독대에 올려놓고 아들이 잘되기를 기도했습니다. 하루도 빠짐없이 날마다 일정한 시간에 목욕재계를 하고 정성껏 기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정화수를 떠 뒤뜰로 가는데 물 사발이 손에 척 달라 붙는 듯했습니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순간 그릇을 놓았는데 물 대접이손에서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물 대접을 잡은 자리에 손가락 자국이 나 움푹 파여 있었습니다.
그런 신기한 체험을 하고 더욱 정성껏 기도를 했으며 마침내 백일기도가 끝날 무렵 꿈을 통해 계시가 있었습니다.
"아들을 데리고 남쪽으로 가다가 큰 대자가 든 도시에 머물러라. 그곳에 가면 너의 아들은 크게 성공을 할 것이다."
그리하여 아들과 함께 고향을 떠난 어머니는 대구로 왔고 대구에서 여동명 거사는 과연, 한의사로 큰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대구에 자리를 잡은 뒤 여동명 거사의 어머니는 반월당에 있는 보현사에 다녔는데 이곳저곳 다니지 않고 오직 보현사만을 고집했습니다.
절에서도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잡담하기보다는 오로지 기도하고 법문듣는 데 정성을 다했습니다.
노년이 되어 거동이 불편해 집에서만 지내게 되자 '나무아미타불'을 일념으로 염송하면서 왕생발원을 했습니다.
임종을 앞두고 단주를 굴리며 염불하던 어머니는 비몽사몽간에 꿈꾼 얘길 했습니다. "스무살쯤 되는 아름다운 처녀들이 깨끗하고 화려한 꽃가마를 들고 와서 나를 타라고 하는 걸 보니 그만 갈 때가 됐나보구나." 하더니 손에 든 단주를 떨어뜨리며 숨을 거두었습니다.
그 때가 약 30년 전에 일이니 그리 오래된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사후에 특별한 이적을 남겼습니다. 이 부분은 어머니의 생전 이야기입니다.
여동명 거사는 대구 불로동 동화사 들어가는 입구에 태국식으로 절을 창건했는데 그 절 주변에 있는 200평 정도의 밭을 어머니의 산소터로 정했습니다.
살아생전에 땅을 사 어머님께 확인시키고 싶었던 거사는 땅주인에게 팔 것을 제안했지만 시세의 몇 배를 준다고 해도 팔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
안타깝게 여기던 거사는 임종 직전 '어머님을 어디에 모실까요?'하자, '내가 숨지면 산소 터가 생기니 걱정하지 마라.'고 하고는 밤중에 어머니가 숨을 거두었는데 새벽이 되자 땅주인이 찾아와서는 무슨 까닭인지 제발 땅을 사달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이적은 49재 때의 일입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여동명 거사는 워낙 불심이 강했던 어머니였기에 혼자 정하지 않고 어머니께 49재는 어디서 모실 것인지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오대산에가면 복 지을 일이 있을 것이라는 유언이있었던 터라 49재를 지내기 위해 오대산 상원사로 갔습니다.
마침 스님들이 거처하는 요사채가 완전히 전소해버려 스님들이 거처할 곳이 없어 근심에 쌓여 있었습니다. 거사는 어머니가 예언한 복 지을 일이 바로 이것임을 깨닫고 요사채 불사를 했습니다.
세 번째는 여동명 거사의 집에 불이 났을 때의 일입니다. 거사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에도 몇 년 동안 집안에 위패를 모셔두었는데 어느날 목조 가옥에 불이나서 가재도구를 모두 태워 버렸습니다.
그런데 위패만은 그을음도 없이 멀쩡했다고 합니다. 거사의 어머니는 지극한 기도로 아들을 성공시켰고 평온한 말년을 보내다가 극락세계로 왕생하더니 죽고 난 뒤에도 이적을 남겼습니다.
이 모두가 기도의 힘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한 힘은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합니다
.
관음경에 '큰 고난이 중생에게 생겨 끝없는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지극한 마음로써 관세음보살을 부르면 관세음보살이 신묘한 힘으로써 세간의 온갖 고통에서 구제하나니 생각생각에 의심치 말라. 관세음은 거룩한 성인 온갖 고뇌와 죽을 액운에서도 구해주리라.'고 했습니다.
일념기도의 경지에 가면 지혜가 샘솟는 기도 성취가 반드시 있다는 것을 명심하십시오.
평화.행복.지혜.복덕은 어느 누구도 주지 않습니다.
오로지 내 자신이 닦아 성취해야 합니다. 이제부터라도 시작해 보시기바랍니다. -철환스님 법문중에서-
<감상> 이 이야기는 대은 큰스님 기도 수행이야기입니다. 스님께서는 대승사.법주사 강원에서 학인들을 지도하신 대강사스님입니다.
대강사이신 스님께는 평생 관음기도를 놓지 않으셨다는군요.
3년 동안 관세음보문품1만번 독송, 금강경5천번 독송, 준제진언600만번 독송,관음정근1000만번 독송기도 하시던 중 심적변화와 신비한 현상이 공중에 나타나는 경계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하셨습니다. 관세음보살기도중 꿈 속에서 백의관세음보살님이 나타나서 붓이 가득 들어있는 필통을 주시더랍니다.
그 후 대중에 부처님 법을 전하라는 계시라고 생각하고 대중포교에 전념하셨습니다. 그 후 군청.도청.관공서.학교 등에 법문하시고 각황사 청년회를 만들어 깃발을 들고는 광화문,탑골공원,서울역을 돌며 포교했고 맨앞에는 손수 목탁을 들고 나셨다고합니다.
평생 포교하고 강연한 회수가 약80만 여회 법문 하셨다고 합니다..
<스님의 약력>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중앙불교학교, 혜화전문학교에서 강의했고 중앙포교사,대자유치원 원장역임.
저서;석가여래약전.암야등불.신앙의 등불. 피안의메아리. 삼세인과경. 육조대사고행록.보덕각시. 연기.법기보살연기.금강신앙등 많은 저서와 논문 수필등이 있습니다. 꿈속에서 관세음보살을 친견한 후 평생 관음경 법문을 많이 하셨으며, 1989년 3월 입적,세수96세 법납89세입니다.
*중국 오대산에 나투신 문수보살..
중국 당나라 때 오대산에 있는 영축사에서는 해마다 3월이면 누구나 부처님처럼 공양을 받는 평등공양을 열었습니다. 즉, 무차법회인데 스님이든, 마을 사람이든, 여자든, 남자든, 귀천 노소, 심지어는 짐승들까지도 누구든 동참만 하면 차별없이 배불리 먹고 가는 공양 법회였습니다.
이 법회야 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지극히 따스하고 아름다운 자비의 법회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법회에 임신한 거지 여인이 두 아이와 개 한 마리를 앞세우고 나타났습니다. 가진 것이 없는 이 거지 여인은 자신의 머리 카락을 잘라서 부처님 전에 공양을 올리고는 주지 스님을 찾아와서 다음과 같이 요청을 했습니다.
"저는 바쁜 일이 있어서 곧 이곳을 떠나야 합니다. 그러니 제게 먼저 먹을 음식을 주십시요."
아직 음식 먹을 시간이 아니었지만 주지 스님은 여인의 청을 들어 주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음식을 배불리 먹은 여인은 자신이 데리고 온 개에게도 음식을 먹인 다음 또 다시 주지 스님을 찾아와서 자신의 배안에 잉태 중인 아기 몫의 음식도 달라는 요청을 하였습니다.
주지 스님은 '어쩌면 그렇게도 식탐이 많단 말인가?'하고는 더 이상은 주지 않고 거지 여인을 쫓아냈습니다. 쫒겨나면서 거지 여인은 다음과 같은 노래를 읊었습니다.
쓴 조롱박은 뿌리까지 쓰고
달디 단 참외는 꼭지까지 달다네.
집착할 것없는 이 삼계
나는 왜 스님의 꾸지람을 듣는가?
그리고는 갑자기 허공으로 몸을 솟구치더니, 문수보살이 되어 금빛 사자로 변한 개를 타고 두 동자와 함께 구름 속으로 사라지며 다시 법문을 들려 주었습니다.
평등을 배우는 이들이여,
어찌하여 그대들은 온갖 경계에 흔들리나.
이 몸과 이 마음 다 흩어지고 말면
미워하고 사랑하는 마음 어느 곳에 있는가?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수천의 대중은 눈물을 흘리면서 함께 외쳤습니다.
"성스러운 문수보살이여, 평등 법문을 들었으니,힘써 수행하겠습니다.다시 이곳에 하강하소서."
보살의 모습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어디선가 다시 보살의 법문이 울려 펴졌습니다.
내 마음
모든 삶을 실어 주는
너른 땅과 같이 평등 하다면,
그 마음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 같다네.
두 가지 모습 없는
참 세계 속에서
행복하게 살리라.
다툴 일 없이.
있고 없음 그 바탕
허공 아닌가?
문수보살의 화신을 몰라 본 주지스님은 근처에 있는 칼로 자신의 어두운 두 눈을 찌르려고 하자 대중이 달려들어 가까스로 말렸습니다.
대중들은 그 자리에 큰 탑을 세우고는 거지 여자가 잘라서 공양올린 머리카락을 탑 안에 모셨습니다.
명나라 초에 이 절의 주지로 있던 원광법사가 탑을 고치다가 그 머리카락을 발견했는데 그 머리카락은 금빛광명를 뿜어내며 볼 때 마다 수효가 달라 보였다고 합니다. 그 탑은 지금도 중국 오대산 대탑원사 동쪽에 위치해 있으니, 사실임을 전하고 있습니다.
문수보살은 끊임없이 분별하고 너와 나를 집착하는 번뇌의 뿌리가 완전히 녹아버린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만 볼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내 자신이나 내가 속한 단체가 조금만 잘하거나 나아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여 내세우며 남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중생입니다.
우리는 왜 요즘의 오대산에는 문수보살이 나타나지 않는가? 하는 의문 대신에 우리가 참으로 문수를 볼 수 있는 눈과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를 반성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법문을 듣는 것도, 문수나 관음보살을 친견하는 것도, 깨달음의 열쇠를 얻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_철환스님 글에서-
첫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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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들려 즐감하고 갑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즐거운날 되세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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