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 매장에는 판매직원이 없다. 대신 바텐더가 있다. 이들의 역할은 제품 설명이 아니라 그것을 가지고 신나게 즐길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는 것. 세계적인 가구 업체 이케아(IKEA)는 매장을 놀이방과 멋진 식당까지 더한 가족 놀이 공원으로 만들었다. 손님이 매장에 머무는 시간을 늘리기 위해서다.
이제는 경쟁력이 우수한 제품의 본질만으로는 2% 부족한 시대다. 남과는 전혀 다른, 고객이 사족을 못쓰게 만들 ‘특별한’ 요소가 필요해졌다. 판매방식이 더욱 기발해 지고 있는 이유이다. 고정관념을 깨고 고객들을 사로잡은 세일즈의 달인들을 살펴 보자.
사례 1. 클레멘스 앤 어거스트
전 세계 돌며 1년에 6 일만 판매, 희소성의 가치 살려
케이트 모스, 시에나 밀러 같은 유명 모델들이 사랑하는 독일 명품 의류 브랜드 클레멘스 앤 어거스트(Clemens en August 이하 클레멘스). 2005년 첫 판매를 시작한 이 신생 브랜드는 콧대가 참 높다. 제 아무리 유명인사라도, 또 돈을 아무리 많이 내도 아무 때나 살 수 없다는 것. 여느 고급 브랜드와 달리 대형 백화점 입점은 커녕 간판을 단 매장 하나 없고, 심지어 광고도 않는다. 뭘 믿고 이렇게 자신만만할까?
160년 역사를 자랑하는 독일 대표 패션 그룹 C&A 창업주의 5대손인 알렉산더 브렌닌크마이어 (Alexander Brenninkmeijer) 클레멘스 대표는 창업 당시 집안의 힘을 빌지 않고 독자적으로 해내길 원했다. 세계 경기 침체의 여파로 초고가 브랜드 조차 매장을 철수하고, Filippa K, yoox.com 등 명품 할인 인터넷 쇼핑몰까지 등장해 신생 브랜드가 설 자리는 없었는데도 말이다. 사업경험이 부족한 그였지만 ‘신생 브랜드도 합리적 가격에 제품만 좋으면 팔린다’ 는 믿음 아래 선조들의 사업모델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바로 이동 매장! 그의 조상은 고급 천을 떼다가 도시까지 나올 시간이 없는 네덜란드 북부 지역 부농(富農)들을 직접 찾아 가서 판매했었는데, 이를 현대식으로 바꿔 도시를 돌며 3일간만 판매매장을 열기로 했다. 이름하여 순회 컬렉션 개념. 매장 운영 비용도 없고, ‘날마다 오는 것’이 아니라는 희소성까지 확보해주는 영리한 선택이었다.
의류 매장은 365일 언제나 소비자에게 열려있다는 고정관념을 깬 클레멘스의 등장에 시장의 반응은 뜨거웠고, 입 소문이 빠르게 퍼졌다. 1년에 딱 2번, 그것도 시즌 상품만 파는 3일간의 ‘판매 쇼’ 에 소비자는 매 시즌 ‘매진’으로 환호했다. ‘지금 안 사면 언제 다시 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소비자의 심리를 제대로 공략해 2009년까지 30%의 매출 성장률을 이어갔다.
더 놀라운 것은 이러한 성공이 아무런 마케팅 노력 없이 이루어졌다는 점. 매번 도시를 옮겨 다니고, 판매 시간은 단 3일, 오전 11시에서 오후 8시까지만 오픈한다면 일정을 알리기 위해 대개 엄청난 광고 공세를 펼쳐야 할 것이다. 그러나 클레멘스는 정 반대의 접근 방식을 택했다. 홍보는 순전히 입소문과 홈페이지 등록 회원에게만 보내는 이메일 초대장에 의존한 것. 다음 투어 일정을 미리 공개하지도 않는다. 얼마 전 시작한 홈페이지 내 온라인 쇼핑몰도 가장 최근의 컬렉션에 참가한 고객에게 주는 비밀번호가 있어야만 상품 구매가 가능하다.
‘뭐가 이리 불친절해’ 싶지만 한번 클레멘스를 접하면 다음 컬렉션을 손꼽아 기다리는 충성고객이 된다. 무엇보다 명품의 가치를 합리적 가격(affordable price)에 제공하기 때문. 클레멘스는 최고급 소재로 클래식한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옷을 선보였다. 원하면 주문 생산도 가능하고, 제품마다 일련번호에 생산자가 손수 서명한 보증서도 있다. ‘명품’의 품격을 제대로 살린 것. 대신 매장 운영 비용, 마케팅 비용이 들지 않는 만큼 가격은 최대한 떨어뜨렸다. 일반 브랜드에선 941달러(한화 110만원)에 팔릴 수 있는 실크 드레스를 365달러(한화 42만원)에, 200만원짜리 턱시도는 85만원에 내놓았다. 때문에 3일동안만 열린다는 것을 야속해 할 정도로 소비자는 열광한다.
이 뿐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매장은 판매자와 소비자가 제품을 매개로 만나는 곳이다. 그러나 클레멘스의 매장은 한 단계 더 나아가 문화공간이다. ‘On Tour’ 컨셉을 전면에 내걸고 3일간의 컬렉션을 지역에 자주 찾아오지 않는 공연, 문화 행사로 만들고자 한 것. 보통 클레멘스의 컬렉션은 미술관, 박물관에서 열리는데, 쇼핑 하면서 예술 작품 하나라도 더 감상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클레멘스 대표의 고집 때문이다. 작품 전시 일정에 맞춰 컬렉션 일정도 잡히기 때문에 평일에만 열릴 때도 있다. 의류 전시도 최대한 예술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도록 옷을 많이 넣지 않고 정갈하고 우아하게 진열하는 것이 특징. 일반 매장과 달라도 너무 다르지 않은가?
순회 도시 역시 무조건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 보다는 문화적 상징성을 가지는 도시를 선정하는 것을 잊지 않는다. ‘패션을 아는’ 도시, 브랜드 만이 아닌 ‘제품’을 보는 감각을 가진 소비자들이 많은 도시를 찾는 것이 포인트라고. 그래서 지금까지 컬렉션 장소로 선정된 도시들은 베를린, 런던, 뉴욕, 도쿄, 암스테르담, 뮌헨, 비엔나 등 총 12개뿐이다. 시카고, 로스앤젤레스도 컬렉션을 열어달라는 공식적인 요청을 했지만 아직 열린 적은 없다. 물건을 팔라고 해도 팔지 않는, 판매자와 소비자의 갑-을 관계를 바꿔버린 클레멘스이기에 누릴 수 있는 자존심이다.
사례 2. 세멕스
저소득층 시장 공략 위해 직접 판매망인 ‘시멘트 계’ 만들어
여기 한 회사가 있다. 전세계 50여개국에 진출, 연간 9600만톤의 시멘트를 생산해내는 세계 3대 시멘트회사로, 2010년 매출은 무려 140억 달러(한화 약 16조원)에 달한다. 이 글로벌 회사가 어느 날 동네 아줌마들을 모아다가 ‘계주’로 세우고 ‘계’에 들 것을 외치고 다닌다. 그것도 하루 수입이 5달러가 채 안 되는 빈민촌 사람들을 대상으로 말이다.
대표적 B2B 제품인 시멘트를 개인 소비자에게 팔기 위해 직접 판매망까지 구성한 이 기업은 멕시코인에게 가장 존경 받는 기업 세멕스다. 2000년부터 실시한 캠페인 ‘지금 내 집 마련하세요’(Patrimoino Hoy)가 바로 그 독특한 판매망으로, 세멕스에게 이윤뿐 아니라 존경까지 안긴 이 ‘시멘트 계’에 대해 살펴보자.
‘시멘트 계’는 일종의 집 짓기 캠페인이다. 1994년 멕시코에 불어 닥친 경제위기로 건설 경기가침체되면서 세멕스도 큰 위기에 처했다. 수익구조가 경기에 민감한 기업고객에 의존해 있다 보니 매출이 급감한 것. B2B 기업의 근본적인 취약점을 뛰어넘을 무언가가 필요했고, 강도 높은 사업 구조조정을 위해 조사를 펼치던 중 세멕스는 다음 사실을 발견했다. 경제위기 기간 동안 기업 고객의 매출은 반 토막이 난 반면, 개인 소비자의 자가 건축 시장(DIY; Do It Yourself)은 10% 정도 밖에 줄지 않았다는 것. 특히나 개인 소비자 대부분은 전체 인구의 40%를 차지하는 저소득층으로 집 살 돈이 없어 직접 지을 수 밖에 없는 이들. 구매력은 낮을지 몰라도 비교적 안정적인 수요를 보이고 있었다.
세멕스는 그 동안 외면 받았던 저소득층 개인 소비자를 공략하기로 했다. 유능한 매니저들을 멕시코 대표적 빈민촌인 과달라하라(Guadalajar)에 파견해 하루 10시간씩 1년간 고객 관찰부터 시작했다. 이 때 발견한 사실은 저소득 계층의 사람들에게 집은 ‘자녀에게 물려줄 유산’ 이라 매우 특별한 의미여서 집 건축을 일생의 과제로 삼지만, 문제는 집을 지을 돈이 없다는 것. 때문에 공사는 돈이 생길 때마다 조금씩 이루어진다. 그나마 건축 비용을 모으기 위해서 멕시코의 전통적인 ‘탄다스(Tandas•한국의 계와 유사)’에 들기도 하지만, 실제론 곗돈을 타 다른 용도에 써 정작 공사를 못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는 것 등이다.
세멕스는 저소득층 시장의 가능성을 봤기에, 그들을 도우며 매출까지 늘리는 방법을 강구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바로 ‘시멘트 계’. 즉, 세 가정을 한 유닛으로 묶어 매주 돈을 모으게 하고 차례가 돌아오면 돈 대신 필요한 시멘트와 각종 건축 자재 등을 제공해 주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고객이 물건을 사야 하는 데 못 사고 있으니 살 수 있도록 방법까지 제시해 준 것. 게다가 자금 대출 및 건축 계획에 맞는 기술 자문 등의 서비스도 제공해 주어 공사를 끝까지 마칠 수 있도록 도왔다. 거래 업체를 통해 미리 대량 구매한 자재를 시중보다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고 중간에 가격이 올라도 처음 가격으로 제공해 많은 저소득층이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계’에 참여하는 사람이 많을수록 세멕스도, 참가 저소득 가정도 좋은 윈-윈(Win-Win) 모델이었기에 세멕스는 ‘시멘트 계’에 들 것을 적극 장려하고 나섰다. 특히 계주, 즉 프로모터(promoter)를 직원으로 고용해 빈민촌을 일일이 다니며 참가자를 모집했는데, 이들은 마을에서 신망이 두텁고 인맥이 넓은 사람들로만 구성됐다. 그러다 보니 95%가 동네 아줌마, 그 중 절반은 생전 사회생활을 해본 적도 없는 이들이었다. 저소득층 사이에선 오히려 ‘믿을 수 있는 내 이웃’이 계주라 반응이 더 좋았다.
판매망까지 직접 구성하는 세멕스의 노력 끝에 지난 10년간 멕시코,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등 남미 전역에서 130여만명, 약 29만 가정이 이 ‘시멘트 계’를 통해 집을 지었다. 특히 멕시코 내에서는 자가 건축 주택 중 20%가 이 계를 통한 것인데, 참가 가정은 평균 1/3 비용으로 3배나 빨리 공사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시멘트 계’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세멕스 매출도 당연 증가. 이 계 덕분에 매달 15%의 경이적인 매출 성장률을 보였고, 연간 5억 달러 이상의 신규 수요를 창출할 수 있었다. 저소득층의 삶의 질을 개선하고 지역사회 발전을 도운 공로를 인정받아 국제 상업 회의소(International Chamber of Commerce), 유엔개발계획(UNDP) 등으로부터 받은 세계 경영 대상(World Business Award) 등은 덤이었다.
사례 3. 집카
‘영원’이 아닌 ‘잠깐’을 판매, 소유의 의미를 바꾼 집카
원유 1배럴당 100달러, 거칠 것 없이 오르는 기름값에 차주들의 걱정이 늘어간다. 자동차를 타고 다니자니 기름값에, 보험료, 세금까지 유지비가 엄청나기 때문. 그렇다고 자가용이 주는 편리함을 포기하기란 쉽지 않다. ‘자동차도 필요한 순간에만 내 것처럼 사용하고, 이후 돌려 주면 어떨까?’란 고민에서 집카의 도전이 시작됐다. 전통적 ‘판매’의 개념을 버린 것이다.
전통적 판매에서는 구매자가 제품을 영원히 소유하게 된다. 그러나 꼭 필요한 ‘순간’만 소유하도록 한 비즈니스 모델도 있다. 자동차처럼 늘 이용하는 것이 아니고 고정비나 유지비 등이 부담스러운 경우, 필요한 때만 사용 후 돌려주거나 재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것. 공동 소비(Collaborative Consumption)의 개념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집카도 판매가 아닌 ‘공유’를 제공한 것이다.
렌털카와 뭐가 다르냐고? 일일이 차량 대여소에 찾아가 계약서에 서명하고 보험 들고 또 반납하는 절차를 없앴다. 그 흔한 중개인도 두지 않았다. 도시 곳곳이 주차장이자 보관소라 고객은 자동차가 필요할 때 가장 가까운 곳에 주차된 차량을 바로 이용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자동차를 공유할 수 있게 함으로써 도시민의 삶을 편리하게 만든다’ 는 사명 아래 차 보관소를 별도로 두지 않은 것. ‘잠깐 동안의 소유’를 판매할 수 있게 해준 방법을 좀 더 알아보자.
먼저 등록회원제 운영. 고객이 홈페이지에 가입, 등록비와 연회비만 내면 모든 차량을 열 수 있는 집카드(Zip Card)를 준다. 매번 대여소를 방문해 계약서를 쓰는 불편함을 없앤 것. 인터넷이나 핸드폰을 이용해 주변 차량 검색 후 예약해 이용하고, 시내 도처의 집카 지정 공간 아무곳에나 다시 주차해 놓으면 끝. RFID(Radio-Frequency Identification: 전파를 이용해 먼 거리에서 정보를 인식하는 기술) 카드와 위치추적 시스템(GPS)이 차량 보관소 역할을 대신한다. 키는 항상 꽂혀 있어 집카드를 카드 리더기에 읽혀 차량 문을 열면 바로 운전이 가능하다. 최근 SNS, 스마트 폰의 발달은 집카 이용에 신속성과 간편성이라는 날개를 달아줬다. 스마트 폰의 ‘Zip Car’ 어플리케이션을 설치하면 차량 검색, 예약 및 추천 서비스까지 모든 서비스 이용이 한 번에 가능. 특히 집카 어플은 그 인기와 이용 편의성을 인정받아 Time지 선정 2009년 최고 여행 프로그램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필요할 때만 사용해 좋긴 한데, 요금이 부담스럽지 않을까? 천만에. 등록비라야 한화로 3만원, 연회비는 6만원이 끝이다. 이용요금은 평균 시간당 1만원에서 1만5천원 수준으로 보험료와 기름값이 모두 포함된 금액. 시간 내 최대 290km 거리까지는 추가요금도 없다. 기름이 모자라면 차 안에 비치된 유류카드로 주유하면 된다. 1초 단위로, 최대 1년까지 예약 가능해 원하는 시간만큼만 사용하고 비용을 지불하면 그만이다. 차량점검과 고장수리는 정기적으로 집카 직원이 순회하면서 해결한다. ‘영원한 소유권’을 가지는 대신 부담해야 하는 고정비, 유지비의 짐을 덜 수 있게 한 것.
평균 수입의 약 18%를 차량 유지비로 쏟아 붓는다는 미국인들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끈 집카는 2000년 설립된 이래 영국과 북미 80개 도시에서 유료 등록 회원만 40만명이 넘는다. 나날이 늘어나는 자동차 문제로 고통받고 있는 지구. 집카를 통해 환경 오염도 줄이고, 지역 사회 환경 개선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은 착한 소비자들을 끌어들이는 충분한 매력이 되고 있다. 실제로 트위터 창업자 잭 도시(Jack Dorsey)는 “집카를 이용하는 것이 지구를 위해서도 좋고, 간편하고, 비용 절약에 최고인 재미있는 경험”이라 자주 애용한다고. 이 같은 성장을 발판 삼아 2004년부터는 기업 및 대학교 대상 B2B 사업도 시작했는데 이 또한 성공적이다. 구글, 닌텐도 등 8500여 개의 기업과 120여 개의 대학이 참여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치열한 경쟁 속 모든 기업은 ‘차별화’를 추구한다. 그러나 웬만한 차이로는 까다로운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이 기업들의 고민. 조금은 건방지고 오만하더라도 고정관념을 뛰어 넘은 혼자만의 길을 갈 때 진정한 차별화가 가능하다. 제품과 서비스 만으로는 차별화가 쉽지 않은 요즘, ‘판매’를 재해석 해보는 건 어떨까?
판매의 고정 관념을 깨기 위해 기억해야 할 3가지
1. 장벽이 무엇인지 파악하라 판매가 안 되는 건 우리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구매를 막는 장벽이 있기 때문이다. 장벽을 뛰어 넘기 위해 고정관념을 깨 보자.
2. 쉽고 재미있게 하라 새로운 판매 방식을 꺼려하는 소비자도 있을 수 있다. 최대한 간편하게, 그리고 모험을 시도해보게 하는 재미 요소를 더하라.
3. 본질을 놓치지 말라 새로운 판매 방식으로 얻게 되는 가치가 ‘고객 중심’ 일 때 소비자는 반응한다. 좋은 품질에 합리적 가격, 편의성은 기본이다. 기본을 잊지 말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