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의 시 모음]
2 月 의 詩 하얀 눈을 천상의 시처럼 이고 섰는 겨울나무 속에서 빛나는 당신 1월의 찬물로 세수를 하고 새벽마다 당신을 맞습니다 답답하고 목마를 때 깎아먹는 한 조각 무 맛 같은 신선함 당신은 내게 잃었던 주지 못한 일상에 새 옷을 입혀준 고통과 근심 내가 만든 한숨과 눈물 속에도 당신은 조용한 노래로 숨어있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라는 우리의 인사말 속에서도 당신은 하얀 치아를 드러내며 웃고 있습니다 내가 살아 있음으로 또다시 당신을 맞는 기쁨 종종 나의 불신과 고집으로 당신에게 충실치 못했음을 용서 하세요 새해엔 더욱 청정한 마음으로 당신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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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과 3월 봄을 빨리 맞으라고 2월은 숫자 몇 개를 슬쩍 뺐다. 봄꽃이 더 많이 피라고 3월은 숫자를 꽉 채웠다. (신복순·아동문학가)
2월 지긋지긋한 한파에 더 이상 시달릴 수 없어 따스한 햇살과 함께 엷은 바람이 시위를 한다. 붉은 띠와 함성도 없이 조용한 혁명으로 양지쪽을 점령하고 서서히 영역을 넓힌다. 도시를 장악했던 빙판과 들판을 차지했던 눈은 기세를 잃은 듯 슬금슬금 자리를 비우고 숨죽이던 시냇물과 움츠렸던 뱁새도 조금씩 입술을 열어 봄의 노래를 부르고 있다. 폭력과 무질서를 거부하고 오직 훈풍으로 하지만 결코 쉽지 않게 세상엔 또 봄이 오고 있다. (박인걸·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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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의 나무처럼 저 음울한 겨울 나무가지에 파아란 잎이 돋고 새 생명 어여쁜 꽃이 피어날 거란 말이지 한겨울 내내 몸살을 앓다가 봄의 길을 트는 바람에도 마음과 마음의 길을 열어주는 사랑의 꿈이 숨어있을 터 몸과 마음을 움츠리게 하던 추운 계절이 가고 어둔 골짜기를 비켜 흐르는 물소리 이어 명랑한 새소리 들리는 이월이다 일제히 일어서는 나목들처럼 함께 일어서자 우리 어깨 나란히 함께 하는 나무처럼 (박신애·시인) 
2월에 꿈꾸는 사랑 봄이 오면 나도 예쁜 꽃 한 송이 피우고 싶어 어울려 피는 꽃이 되어 더불어 나누는 향기이고 싶어 용서의 꽃은 돌아선 등을 마주보게 하고 이해의 꽃은 멀어진 가슴을 가깝게 하지 겸손의 꽃은 다가선 걸음을 머물게 하고 칭찬의 꽃은 마음을 이어주는 기쁨이 되지 나눔의 꽃은 생각만 해도 행복한 미소 배려의 꽃은 바라만 봐도 아름다운 풍경인 걸 사랑과 믿음의 빛으로 내가 어디에 있건 환히 나를 비추는 당신 햇살같이 고마운 당신에게 감사의 꽃도 잊어선 안 되겠지 (이채·시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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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어느 날 밤 꽃잎처럼 겹겹이 접힌 그리움으로 올려다보는 밤하늘에 별빛 푸르게 반짝이다 떨어지고 또 반짝이다 가슴으로 숨어드는데 너는 아는지 저 많은 별 중에 너에게 선물한 별 하나 있다는 걸 봄비 소슬하니 내리고 질항아리 속 촉촉하게 스며드는 빗물 같은 목소리로 널 잊은 적 없는 목소리로 2월의 별빛은 따뜻하다고 하얗게 밝아오는 새벽을 가로질러 너에게 편지를 쓴다 눈 덮인 먼 산 어디쯤에서 바람의 속삭임 달콤하게 들릴 때 썼다 지워지는 편지지에 네 모습 흐릿하게 흐르다 선명한 샛별이 되기도 한다 이 밤 서러움 가득한 이 밤 연둣빛 설렘으로 너에게 편지를 쓴다 새벽이 멀지 않았는지 인기척 들리는 2월의 어느 날 밤 별빛 가득한 편지를 쓴다. (정기모·시인) 
2월 일 년 열두 달 중에 제일키가 작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고 어리광을 피우지도 않는다 추운 겨울과 따뜻한 봄을 잇는 징검다리 역할 해마다 묵묵히 해낸다. 겨울이 아무리 길어도 기어코 봄은 찾아온다는 것 슬픔과 고통 너머 기쁨과 환희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그리 길지 않음을 가만가만 깨우쳐 준다. 이 세상의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나를 딛고 새 희망 새 삶으로 나아가라고 자신의 등 아낌없이 내주고 땅에 바싹 엎드린 몸집은 작아도 마음은 무지무지 크고 착한 달. (정연복·시인, 1957-)
2월이란 달은 난초 꽃처럼 청초하고 청아한 향기가 감도는 달 일 년 중 가장 짧은 달이기에 애련한 마음이지만 가장 강인한 달이기도 하다 밤하늘 저 끝에 걸린 단아한 초승달 같아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내 어머니 같은 달이기에 가장 사랑하고 싶은 달이다 가장 짧은 달이기에 더욱 정성을 기울여야 하는 기울인 정성만큼 풍요를 약속해 주는 달 일년 중 가장 중요한 달이다 (도지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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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저만치 산모퉁이 돌아가는 겨울바람 산비탈 쌓인 눈 스르르 녹아내리고 꽃눈 비비며 산수유 기지개 편다 (목필균·교사 시인,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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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에 쓴 시 지금쯤 어딘가엔 눈이 내리고 지금쯤 어딘가엔 동백꽃 피고 지금쯤 어딘가엔 매화가 피어 지금쯤 어딘가에 슬픈 사람은 햇살이 적당히 데워질 때를 기다려 눈물 한 점 외로운 벤치 위에 남겨두고서 다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있겠다 다시 어디론가 길을 뜨고 있겠다 (홍수희·시인) 
2월 한시라도 바삐 겨울을 데리고 먼 길 떠나고 싶어했던 너는 가난한 식솔들을 위해 위안부로 팔려간 우리 이모의 헤진 옷고름이다. 하루라도 빨리 봄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이름마저도 잊어지길 원했던 너는 홍역을 겪어야 만이 쑥쑥 자랄 여린 영혼을 위해 까까머리 이마 위에 얹어진 내 첫사랑의 젖은 손수건이다. 그런 너의 슬픔을 대신하여 저수지 얼음도 쩌렁쩌렁 울어주고 설움에 불어터진 버들강아지도 노란 개나리로 피어난다. 밤을 새워 여린 생명 피어나길 두 손 모아 빌어준 너는 침묵으로 겨울잠 깨우고는 요절한 계절의 어머니, 빈 쌀독 긁어모아 아침을 차려내신 울 엄니의 정화수이다. (조양상·시인) 
중년의 가슴에 2월이 오면 삶이 한 그루 나무라면 나는 뿌리일 게다 뿌리가 빛을 탐하더냐 행여라도 내 삶의 전부가 꽃의 표정이라고는 생각하지 마 꽃이 필 때까지 나는 차가운 슬픔의 눈물이었어 잎이 돋을 때까지 나는 쓰라린 아픔의 몸부림인 걸 알고 있니 나무가 겨울일 때 뿌리는 숨결마저 얼어붙는다는 걸 꽁꽁 얼어버린 암흑 속에서 더 낮아져야 함을 더 깊어져야 함을 깨닫곤 하지 힘겨울수록 한층 더 강인해지는 나를 발견해 그 어떤 시련도 내 꿈을 빼앗아가진 못하지 삶이 한 그루 나무라면 나는 분명 뿌리일 게다 뿌리가 흙을 탓하더냐 다만 겨울을 견뎌야 봄이 옴을 알뿐이지 (이채·시인, 19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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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과 3월 사이 슬픔에서 졸업하면 금방 기쁨으로 입학하는 건 아닙니다. 졸업과 입학 사이엔 늘 간격이 있기 마련이듯 이별에서 만남으로 가는 과정에도 홀로 견뎌야 할 틈이 있습니다. 아픔 정리하기도 하고 슬픔을 묶어 세월의 다락방에 올려두기도 해야 하죠. 사람과 사람 사이만큼 한 사람의 마음과 가슴 사이에도 메울 수 없는 깊은 골 있습니다. 시간의 흐름 타는 래프팅에 익숙치 못하면 자신의 가슴골에 빠져 평생 빠져나오지 못하고 허우적거리기도 합니다. 이별하는 사람들, 다시 새로운 사람 만날 사람들에게 행운을 빕니다. 눈물에서 빠져나와 바람처럼 가볍게 날아오르십시오. 지나가면 멀어집니다. 아득히 잊혀지면 신개척지의 새로운 가슴 닿는 일도 무척이나 설레고 멋지답니다. (김하인·시인, 1962-) 
2월 중순의 기도
한낮의 온기 어린 햇살에서 긴긴 겨울의 끝을 예감하게 하소서. 봄을 밀어 올리는 잔설(殘雪) 속 초록 풀들의 온몸의 안간힘에 격려의 박수를 치게 하소서. 하지만 겨울을 미워하지 않게 하소서 추운 겨울이 있어 봄날의 소망도 있음을 알게 하소서. (정연복·시인,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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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벌써'라는 말이 2월처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 없을 것이다 새 해맞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2월... 지나치지 말고 오늘은 뜰의 매화 가지를 살펴보아라. 항상 비어 있던 그 자리에 어느덧 벙글고 있는 꽃... 세계는 부르는 이름 앞에서만 존재를 드러내 밝힌다 외출을 하려다 말고 돌아와 문득 털 외투를 벗는 2월은.. 현상이 결코 본질일 수 없음을 보여주는 달 '벌써'라는 말이 2월만큼 잘 어울리는 달은 아마...없을 것이다... (오세영) 
2월의 시 겨울 껍질 벗기는 숨소리 봄 잉태 위해 2월은 몸사래 떨며 사르륵 사르륵 허물 벗는다. 자지러진 고통의 늪에서 완전한 날, 다 이겨내지 못하고 삼일 낮밤을 포기한 2월 봄 문틈으로 머리 디 밀치고 꿈틀 꼼지락 거리며 빙하의 얼음 녹이는 달 노랑과 녹색의 옷 생명에게 입히려 아픔의 고통, 달 안에 숨기고 황홀한 환희의 춤 몰래 추며 자기 꼬리의 날 삼일이나 우주에 던져버리고 2월은 봄 사랑 낳으려 몸 사래 떤다 (함영숙) 
2월의 향기 열두 대문 활짝 열어 곰팡진 귀퉁이 햇살 아래 펼치고 얼룩 위에 그늘질까 조심스레 뗀 발자욱 뒤로 첫 번째 대문 닫히는 소리 귀가 멍하도록 내 팽개치듯 닫긴 문설주에 아쉬움 한 다발 목숨처럼 걸려있다 문틈으로 샌 한줄기 빛에 엿가래처럼 늘어진 그림자 휘청이는 허리춤에 챙긴 바램은 조심스레 들어선 두 번째 마당에서 솔솔 피어나는 꽃향기에 취한다 얼음 밑 개울물 소리 잠든 개구리 귓볼 간질이고 버들강아지 콧노래 시작된다 (한효순) 
그렇게 2월은 간다 외로움을 아는 사람은 2월을 안다 떨쳐버려야 할 그리움을 끝내 붙잡고 미적미적 서성대던 사람은 2월을 안다 어느 날 정작 돌아다보니 자리 없이 떠돌던 기억의 응어리들, 시절을 놓친 미련이었네 필요한 것은 추억의 가지치기, 떠날 것은 스스로 떠나게 하고 오는 것은 조용한 기쁨으로 맞이하여라 계절은 가고 또 오는 것 사랑은 구속이 아니었네 2월은 흐르는 물살 위에 가로 놓여진 조촐한 징검다리였을 뿐 다만 소리 없이 떨어지는 빗방울이여, 그렇게 2월은 간다 (홍수희) 
2월 상한 마음의 한 모서리를 뚝뚝 적시며 정오에 내리는 비 겨울 등산로에 찍혀 있던 발자국들이 발을 떼지 못하고 무거워진다 응고된 수혈액이 스며드는 차가운 땀 있는 피를 다 쏟은 후에야 뒤돌아보지 않을 수 있겠나 비의 피뢰침이 내려 꽂히는 지상의 한 귀퉁이에 바윗덩어리가 무너져 내린다 우듬지가 툭 끊어진다. 겨울 산을 붉게 적시고 나서 서서히 내게로 오는 비 (조용미)
2월의 시 자, 2월이 왔는데 생각에 잠긴 이마 위로 다시 봄날의 햇살은 내려왔는데 귓불 에워싸던 겨울 바람소리 떨치고 일어나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 저 지평선 끝자락까지 파도치는 초록색을 위해 창고 속에 숨어있는 수줍은 씨앗 주머니 몇 개 찾아낼 것인가 녹슨 삽과 괭이와 낫을 손질할 것인가 지구 밖으로 흘러내리는 개울물 퍼내어 어두워지는 눈을 씻을 것인가 세상 소문에 때묻은 귓바퀴를 두어 번 헹궈낼 것인가 상처뿐인 손을 씻을 것인가 저 광막한 들판으로 나아가 가장 외로운 투사가 될 것인가 바보가 될 것인가 소크라테스가 될 것인가 (정성수)
2월의 시
아직은 겨울도 봄도 아니다
상실의 흔적만 가슴께에서 수시로 욱신거린다
잃어버린 사랑이여, 아직도 아파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더 울게 하고
무너진 희망이여, 아직도 버려야 할 그 무엇이 남아 있다면
나로 하여 쓴 잔을 기꺼이 비우게 하라
내 영혼에 봄빛이 짙어지는 날
그것은 모두 이 다음이다 (홍수희·시인) 
2월 도시의 트럭들은 날마다 살해당한 감성의 낱말들을 쓰레기 하치장으로 실어 나른다 내가 사랑하는 낱말들은 지명수배 상태로 지하실에 은둔해 있다 봄이 오고 있다는 예감 때문에 날마다 그대에게 엽서를 쓴다 세월이 그리움을 매장할 수는 없다 밤이면 선 잠결에 그대가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소스라쳐 문을 열면 아무도 보이지 않고 뜬눈으로 정박해 있는 도시 진눈깨비만 시린 눈썹 적시고 있다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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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바람이 오는 곳을 아는가? 구름이 가는 곳을 아는가? 오는곳도 모르고 가는것도 모르고 삶은 꿈처럼 화살같이 지나간다. 눈 깜짝사이 세월은 저만큼 사라져가고, 그리움도 한순간이고 미움도 한순간 이어라 나의삶 가는 곳을 어디서나 알까?
종착역 오는 곳을 어느때쯤 알까? 눈뜨고 있을 때
감사함 알아라, 모든 것은 한때요 모든 것은 한 순간이다. 감사의 고은마음이 쌓이고 쌓이면 그것이 행복이지요. 거듭나는 삶이라 자손의 가는 길 본이 되는 삶이며, 영원한 나의 삶 빛이 되는 길이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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