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키라는 재빨리 팀의 MT 시기를 잡기 시작했다. 한번 마음 먹으면 바로 해치워버리는 그녀의 성격때문인지 팀의 스케줄은 척척 맞아 떨어졌고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를 MT로 잡았다. 아키라는 이 스케줄을 사장에게 가져다 주고는 흡족해하며 서류철 여러권을 잡고 의자에 앉았다.
"실장님. 뭐 좋은 일 있으세요?"
"있죠. 우리 MT 시기가 잡혔어요. 다다음주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그럼 우리도 홍보팀처럼 놀러가요?"
그래.. 유카리.. 놀러 가는거야. 어쩌면.. 마지막이 될 지도 몰라.. 유카리가 MT를 간다는 사실을 좋아하며 웃는 모습을 보고 아키라는 역한 그 '무언가'가 올라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꼭 피비린내가 느껴졌다. 하지만 아무것도 상관없다. 그냥. 없어지면 된다. 그러면 된다.
조용하고 나른한 일상들이 계속해서 지나가고 MT를 가는 날이 되었다. 엄청 신경 쓰고 온 것 같은 눈치들이었다. 그런데.. 유카리는 끝까지 아키라의 속을 썩였다. 유카리는 졸부의 딸이었다. 자수성가한 아키라의 아버지와는 달리 요즘 한창 유행하는 복권에 1등이 당첨한 바람에 돈을 왕창 받은 유카리의 아버진 유카리를 명품족으로 키워냈다. 유카리는 조금 더 예뻐보이고 싶었지만 아키라나 다른 팀원들의 눈에는 그저 명품에 눈이 먼 머저리처럼 보일 뿐이었다. 여러 곳에서 수근대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유카리는 멀쩡했다.
"자.. 기차가 왔어요. 얼른 가죠?"
기차가 왔다는 안내방송이 들리자 팀원들은 표를 가방에서 꺼내려 하였다. 하지만 그들의 표는 모두 어디론가 사라진 뒤였다. 물론 그것도 아키라의 짓이었다. 유카리에게 일부러 시간을 늦게 알려준 뒤 패스트푸드 점에서 팀원 여럿의 지갑과 기차표를 한꺼번에 훔친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팀원들은 도둑을 맞았다며 소리를 질러댔지만 그 누구도 그들에게 도움을 줄 것 같지는 않았다.
"어떡하죠? 그럼 얼른 표를 끊어서 다음 기차로 와요. 우린 먼저 가서 기다릴께요."
"그래 주실래요? 아이.. 누구지? 얼른 가서 신용카드 분실신고부터 해야겠어요.."
"나도요. 실장님 먼저 가 계세요!"
팀원들은 제각각 집으로 돌아갔고 표가 있는 아키라와 유카리만 기차를 타게 되었다. 그런데 유카리는 아키라의 눈 밖에 났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실수를 하고 말았다.
"저.. 오늘 제가 남자친구를 불렀는데요.. 괜찮을까요?"
"그걸 이제 이야기 하면 어떡해요.. 뭐.. 나는 괜찮지만요."
"감사합니다."
기차에 앉은지 얼마 되지 않아 코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코지는 유카리 옆에 앉아서 지긋이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아키라는 그저 코지에게 눈인사를 할 뿐이었다. 코지는 아키라를 쳐다봤으나 아키라는 그저 창 바깥의 풍경만 바라봤다. 열차는 출발한지 4시간쯤 걸려 온천으로 유명한 한 마을에 도착했고, 아키라는 숙소로 그들을 안내했다.
"실장님, 그러고보니 굉장히 가방이 크네요?"
"일해야죠."
"일밖에 모르셔.. 그렇지 오빠?"
"어? 아.."
그 커다란 가방 속에는 날을 잘 세운 나이프와 주사기등이 들어있었다.
그 물건들을 가져온것이 아키라의 세 번째 실수였다. 숙소로 들어간 아키라는 밤이 되기를 기다렸다. 아키라는 이날로 MT 시기를 잡은 것도 다 이유가 있었다. 다음 기차는 내일 낮에나 있기 때문에 범행에는 적절한 것이다. 유카리는 그런 것도 모른채 그저 자신의 비싼 목걸이를 관심도 없는 아키라에게 자랑할 뿐이었다.
밤이 되었다. 그렇게도 기다리던 밤이 되었다. 유카리는 먼저 잠이 들었고 아키라는 계획을 실행했다. 입에는 살며시 재갈을 물렸고 이불 바깥으로 그녀의 오른팔을 꺼내 소매를 걷었다. 유키를 죽였을때처럼 우윳빛의 희고 긴 팔이 그녀를 반기는 듯 했다. 아키라는 살며시 비웃으며 주사기를 꽂았다. 그리고 서서히 피스톤을 눌렀다. 통증에 눈을 뜬 유카리는 비명을 지를 수 없었다. 그저 온 몸을 비비 꼬며 괴로워 할 뿐이었다.
"사람을 죽인다는거 말야.. 그냥 목을 부러뜨리면 재미 없을것 같아서.."
하지만 너무나도 그녀가 난리를 떠는 것 같다고 생각한 아키라는 살며시 망치를 집어들어 그녀의 팔에 못을 박듯이 지긋이 그러나 세게 쳤다. 유카리는 결국 기절하고 말았다. 아니 죽은 것이리라. 약은 4시간 후면 거의 흔적도 없이 사라지니까 아키라는 유카리가 자기 전에 마약을 주사했다는 것만 봤다고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일은 꼬여버리고 말았다. 커다란 가방에 유카리를 집어넣으려던 순간 허름한 여관이라 유카리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던 코지가 벌컥 문을 연 것이었다.
"허..허억.."
"봤어? 큭.."
"너..뭐야? 정체가.. 뭐야?"
코지는 남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잔인함에 몸을 떨었다. 피묻은 망치와 주사기, 그리고 재갈이 방에 아무렇게나 흩어져있었고 유카리는 마치 영화 에어리언 속의 희생자들처럼 몸에 이상한 종기들이 돋은 채 가방 속에 관절이 모두 뒤틀려 집어 넣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화. 전화가 어디있지?"
"니 휴대전화는 여기 있어. 줄까? 그렇겐 못해!"
재빨리 망치를 집어든 아키라는 코지의 휴대 전화를 부셔버렸다. 그리고는 코지를 방 안으로 끌고 들어와 그의 머리를 계속 때렸다. 그의 머리는 그리 단단하지 않았다. 그냥 힘주어 몇 번 때리니 꼭 굳기 시작하는 반죽처럼 되어버렸고 그의 뇌는 이미 흐물흐물해진체 방바닥에 흘러내렸다. 하지만 아키라는 미친듯이 망치로 때리고 또 때렸다. 아키라가 탈진해 버려서 쓰려졌을 때 팀원들이 들이닥쳤다. 기차를 기다리기엔 너무 시간이 걸려서 택시를 타고 왔던 팀원들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경찰에 신고를 하고는 아키라를 부축했다.
"실장님 괜찮아요?"
아키라는 축 늘어진 채 경찰서로 끌려갔다. 그리고 망치와 나이프, 주사기 등에서 발견된 아키라의 지문 덕분에 아키라는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아키라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경찰은 아직도 사건 해결에 애를 먹고 있다.
"여보. 우리 애가 태어났어요. 쌍둥이래요, 쌍둥이!"
"여보 수고했어.. 우리 애들 이름은 뭐라고 할까..?"
"유키하고.. 아키라 어때요?"
"좋네.. 구로사와 가문을 이어갈 우리 공주님들이시군!"
유치스키 그룹의 부사장은 자신의 딸 쌍둥이중 언니에게는 유키, 동생에게는 아키라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하지만 왠일인지 유키와 아키라는 사이가 안좋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키라는 '엘렉트라 컴플렉스'라는 진단을 받고는 요양원에 엄마와 같이 가고, 유키만 집에 남아 아버지와 행복한 나날을 보냈다. 유키는 아키라가 보고싶다며 칭얼거렸지만 아직 병이 다 낫지 않았기에 아버지는 딸을 위해 아키라가 아직 아프다며 이야기해줄 뿐이었다.
"엄마, 아키라는 아빠 보고 싶어요.."
"아키라.."
"치.. 다들 유키만 좋아해요.. 아키라도 똑같이 생겼는데 왜 그래요?"
"하지만 아키라. 유키는.."
"언니고 난 동생이니까? 그저 이유가 그게 다예요?"
아키라는 가면 갈수록 병이 나아지기는 커녕 엄마를 학대하기 시작했고 엄마는 아키라가 너무 불쌍해 그냥 받아줄 뿐이었다. 원래 허약한 체질이었던 그녀의 엄마는 아키라의 가출등으로 인해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아 죽고 아키라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려는 듯이 집으로 들어갔다. 아키라는 이미 다 나은 듯 싶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못 볼것을 보고 말았다. 첫번째로 보지 말아야 했던 것은 아키라의 일기장이었다. 아키라의 일기장에는 전혀 말도 안되는 이야기들이 적혀있었다. 아키라는 네 살 어린 유키라는 동생을 데리고 있는데 어쩌고.. 등장 인물들은 모두 실존 인물들이었지만 이야기는 전혀 달랐다. 하지만 아버지는 이 때 알아 차렸어야 했었다.
두 번째로 보지 말아야 했던 것은 바로 아키라가 범행 도구를 챙기는 모습이었다. 아키라는 중얼거리며 주사기등을 챙겼다. 아버지는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아키라는 놀랍게도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런 바보같은.. 왜 아빠는 스무살 생일때 애를 죽이게 만든거야.. 어쨌든.. 나에게서 아빨 뺏어간 내 이복 동생은 꼭 없어져야해. 꼭.. 우리 엄마도 걔 때문에 죽었어. 그런거야.. 유키라고 했었나? 왜 언니인 나에게 찍혀가지고 이 고생을 하게 만들어.. 내가 꼭 고통스럽게 죽여줄거야. 큭.."
아버지는 심한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저명한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그 동안의 정황을 모두 이야기했다. 의사는 아버지에게 몇 마디만을 남기고는 그 자리를 떠났고 아버지는 심하게 앓아 누웠다.
"자신의 가출때문에 어머니가 충격을 받았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다. 그리고 언니를 네 살 어린 이복 동생으로 여기며 아버지를 이성으로 느끼는 엘렉트라 컴플렉스.. 정황으로 보아.. 위조 기억 상실증의 첫 번째 증상으로 보이네. 자신이 기억하기 싫은 것은 다른 기억으로 대체하는 것이지. 어머니가 죽었다는 사실이 자신 때문이라는 기억은 지워버리고 이복 동생이 나타나자 어머니가 충격을 받은 것이라는 기억으로 대체한 것 같네. 물론 이복 동생은 존재하질 않으니 유키가 당할 수밖에..."
기자와 아키라가 응접실에서 인터뷰를 하고 그 가식적인 눈물을 뚝뚝 흘릭 있을 때.. 아버지는 그저 슬프디 슬픈 눈으로 딸을 쳐다볼 수 밖에 없었다.
첫댓글 아.. 좀 헷갈린다는... 암튼 재미나게 잘 읽었습니다.
눈물을 뚝뚝 흘릭 있을 때.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때.^^건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