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학기 초만 되면 대다수 학생과 학부모들 등을 휘게 만들었던 등록금 문제가 이번에는 캠퍼스 바깥으로 비화되어 우리 사회의 핵심적 이슈 중 하나로 떠오르고 있다. 광화문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벌써 열흘째로 접어들고 있고, 현장에서 잡혀가는 대학생들 사진이 연일 인터넷을 달구고 있다. 우리 현실에서 이것은 그나마 다행한 일이다. 이 사태를 통해 우리는 지금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회에 살고 있는지, 어떻게 해야 더 나은 세상을 향해 한걸음 전진할 수 있는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기 때문이다.
먼저 생각해야 할 문제는 학생들 등록금으로 대학을 운영한다는 것 자체의 원천적인 정당성 여부이다. 이른바 수익자부담이라는 원칙에 따른다면 등록금을 내는 것은 학생이 대학졸업에 의해 얻게 될 차후의 이익을 상정하고 미리 투자를 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즉, 등록금은 미래의 수익을 예상한 일종의 선불금인 셈이다. 만약 이런 비유가 옳다면 등록금은 지난 수십 년간 이 나라 사립대학에서 그래왔듯이 대학기업과 학생소비자 간의 줄다리기에 의해 액수가 정해지는 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기는 똑같이 대학을 졸업하고도 졸업자들 앞에 천차만별의 인생이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투자라기보다 투기라고 해야 할지 모른다.
개인의 ‘투기’인가? 국가유지의 필수비용인가? |
물론 이것은 하나의 냉소적인 비유에 불과하다. 당연한 노릇이지만, 한 국가사회가 유지되기 위해 절대적으로 필요한 사항은 그 사회의 차세대 구성원을 ‘낳고 기르고 가르치는’ 일이 차질 없이 수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가령 ‘가르친다’는 것이 근대적 제도교육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농사짓고 짐승 잡는 법을 포함해서 세상 살아가는 지혜를 익히는 과정 전체에 관련된 것임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데, 아득한 원시시대부터 현재까지 이 대원칙에는 변함이 있을 수 없다. 만약 이 원칙에 동요가 생긴다면 그것은 그 사회의 몰락의 징후이다. 많은 사람들이 체감하는 바와 같이 오늘 우리 사회구성의 중추부대인 젊은 세대들이 ‘출산·육아·교육’에 불안과 공포감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은 장기적으로 이 나라가 망해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신호이다. 그런 점에서 대학등록금은 언젠가는 아예 없앨 것을 목표로 해야 하는 필수적인 국가유지비용의 하나이다.
그런데 목전의 이슈는 ‘반값등록금’이다. 뜻밖이지만 알고 보면 ‘반값등록금’이란 아이디어는 2007년 대선에서 엠비의 당선에 일조한 한나라당의 공약이었다. 그해 3월 9일 김형오 당시 원내대표의 발언, 역시 그해 6월 21일 이주호 당시 제5정조위원장(현 교육부장관)의 언급, 그리고 선거운동이 시작된 10월 ‘경제살리기특위’(위원장 이명박) 안에 ‘등록금절반인하위원회’(위원장 임해규)를 설치하기까지의 과정을 돌아보면, 대통령이 자신의 입에 ‘반값등록금’이란 낱말을 직접 올리지 않았다고 해서 내 공약이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은 현재의 그의 막중한 위상에 비추어 그야말로 국격에 손상을 입히는 창피한 일이다.
어떻든 ‘반값등록금’은 선거 와중에 선심용으로 나오기는 했으나 실제로 현실화하기에는 무리한 공약일 뿐인가, 아니면 실제로 이행 가능한 구체적인 정책일 수 있는가. 나는 단연 ‘반값등록금’이 정당할뿐더러 가능한 정책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의 여러 법적·제도적 조건들을 그대로 둔 채 등록금만 절반으로 줄이려고 한다면 거기에는 엄청난 저항이 따를 뿐만 아니라 부작용 또한 감당하기 어려울 것이다. 당장 며칠 전에는 사립대 총장들이 모여 등록금인하를 논하기 이전에 국가의 재정지원을 늘여야 한다고 주장하지 않았는가. 그런가 하면 반대로 덮어놓고 국고지원을 한다면 부패한 사학들의 배만 채울 수 있다고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따라서 ‘반값등록금’의 실현을 위해서는 그 문제와 연관된 여러 분야의 장·단기적인 보완책과 개혁안이 다각도로 연구 검토되고 조심스럽게 추진되어야 한다. |
지원하되 규제 않으며, 감시장치는 마련되어야 |
국가의 재정지원 없는 반값등록금은 두말할 것 없이 사학운영에 치명적이다. 서울의 일부 사립대학들이 5천억원이 넘는 적립금을 쌓아놓고 있다고는 하지만(민주당 안민석 의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8년 현재 전국 325개 대학의 적립금 보유총액은 대략 10조 834억이라 한다) 그럼에도 등록금이 절반으로 줄어든다면 오래 버티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요컨대 문제는 대학에 지원하는 막대한 국가예산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하는 것과 대학에 지원되는 국고가 어떻게 적절히 투명하게 사용되는가를 감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숫자에 밝은 사람도 아니고 예산이니 결산이니 하는 데는 더욱이나 문외한이다. 따라서 이런 문제에는 전문가가 나서야 책임 있는 논의를 하겠지만, 그래도 문맥의 흐름을 위해 해법의 방향만 말한다면 재벌대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일정한 증세를 통해 국가재원을 대폭 늘이는 한편 4대강사업 같은 터무니없는 낭비를 제거함으로써 복지와 교육을 위한 예산을 확보할 수 있으리란 것이다.
다른 한편, 사학을 지원은 하되 규제하지 않는 묘수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학들 내부에 스스로 감시하는 자기정화장치를 마련하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5년 12월 개정된 사학법의 ‘개방형 이사제’가 말하자면 그런 장치들 중의 하나였다. 그러나 알다시피 사학법은 그 후 개악되었고, 일부 사학들은 조금 남아 있는 견제장치마저 완전히 없애기 위해 백방으로 로비를 벌이고 있는 중이다. 더욱 통탄스러운 것은 교육부 산하의 사분위(사학분쟁조정위원회)가 최근 3년 사이에 과거의 비리재단·족벌재단을 속속 복귀시키고 있는 현실이다.
이렇게 따져본다면 오늘 대학생들이 목이 터져라 외치는 ‘반값등록금’ 구호는 현재로서는 안타깝게도 절벽에 대고 계란을 던지는 격에 가깝다. 작금년 지방선거와 보궐선거에 연달아 패배한 여당이 내년으로 다가온 총선·대선을 겨냥해 쓰레기통에 버렸던 카드를 다시 꺼내 만지작거리는 정경이 눈에 선히 보이는 것이다. 그렇거나 말았거나 지난 3년여 동안 혹독하게 학습효과를 쌓은 우리들로서는 남이 버렸던 카드라도 다시 잘 닦아서 진정한 개혁을 위한 발판으로 활용해야 한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