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손
권영세
설거지하다가
부엌바닥에 물을 쏟았다.
두툼한 비닐 발판에
흥건한 물
얼른 물기를 닦고
다시 발을 디뎠다.
순간,
발가락 사이로
고물고물 기어오르는
수많은 손들
물도
손이 있었네.
-『2023 여름 우리나라 좋은 동시』 (2023 열림원어린이)
귀의 문
김자미
귀의 문은 마음속에 있어
소리친다고 열리지 않아
야단칠 땐
차분하게 한 번만
칭찬할 땐
크게 여러 번
작아야할 땐 더 작게
커야할 땐 더 크게
마음부터 두드려야
열리는 문
-『천하무적 삼남매』 (2021 브로콜리숲)
물의 주머니
류병숙
개울물은
주머니를 가졌다.
물주름으로 만든
물결 주머니
안에는 달랑,
음표만 넣어
오늘도 여행 간다.
가면서
얄랑얄랑
새어 나오는 노래
물고기들에게
들꽃들에게
나누어 주며 간다
욜랑욜랑 간다.
-『여우가 나왔다』 (2023 소야주니어)
준비, 땅
박순영
오리들 몸 속에
암호 들어 있다.
놀다가도
사람들 오면
훨훨 달아나는
‘준비, 땅’ 날개 단 오리
‘준비 땅’은
오리가 살아가는 무기다.
-《아동문예》 (2022 11•12)
다슬기
박한송
이가 아프지 않니?
거센 물살을
이겨 내려고
돌멩이를
그렇게
꽉 물고 있으면
-《아동문예》 (2023 7·8)
뿌리
신준수
소나무 벚나무 살구나무 앵두나무
뿌리가 다 땅속에 있다
나의
안순길 할머니
신종석 할아버지도 땅속에 있다
뿌리는
다
땅속에 있다
-『어린이 마음 약방』 (2023 푸른사상)
산
오지연
산은 깊다
아무도 뿌리를
본 적이 없지
높이는 알 수 있지만
누구도 그 깊이는
잴 수가 없지
높을수록 깊다
오를수록 깊다
수천 년 수만 년을
언제나 그 자리
그 뿌리가 깊다
-『제주, 그대로』 (2022 RYTH)
혼자서도
유미희
태어나서
엄마 얼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손톱만 한 어린 방아깨비
쏴쏴쏴
소나기 퍼부어도
따끔따끔
땡볕 쏟아져도
잘
논다.
한 발 한 발 걷는 법,
포르르 날아오르는 법,
친구 사귀기,
꼭꼭 풀잎밥 씹어 먹기
엄마한테
따로
배운 적 없지만
큰다.
-《시와 소금》 (2023 여름호)
태풍이 지난 뒤
이수경
개울 건너로 쓰러진
소나무 위로
다람쥐 지나간다.
달팽이 마실간다.
도마뱀 건너간다.
햇살도 앉아 쉬어 가는
소나무 다리
또 다른 삶을
일으킨다.
-『소원을 말해 봐!』 (2021 책고래아이들)
손바닥
-비닐하우스에서
조두현
쏟아지는 햇살이
비닐 지붕을 만나면
농작물을 보살피는
손바닥이 됩니다.
“내 새끼!”
포기 포기마다
어루만져 줍니다.
-《동시발전소》 (2023 여름)
출처: 한국동시문학회공식카페 원문보기 글쓴이: 이묘신
첫댓글 8월 <이달의 좋은 동시>에 선정되신 김자미 선생님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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