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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전각 | 2-5월 |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
6-8월 | 09:00-18:30(입장마감은 17:30) | |
9-10월 | 09:00-18:00(입장마감은 17:00) | |
11-1월 | 09:00-17:30(입장마감은 16:30) | |
개인 (내국인) | 대인(만25세~만64세) | 3,000원 | ||||||||||||||||
단체 (내국인) | 대인(10인이상) ※ 무료대상자 제외 | 2,400원 | ||||||||||||||||
외국인 | 소인(만 7세~만18세) | 1,500원(유료 10인이상 1,200원) | ||||||||||||||||
대인(만19세~만64세) | 3,000원(유료 10인이상 2,400원) | |||||||||||||||||
무료 | * 만6세이하 * 만65세이상 (‘14.10.1.부터 시행) * 한복착용자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 |||||||||||||||||
무료 (내국인) | * 만 6세 이하 어린이, 만 7세~24세 이하 청소년, 만 65세 이상 국민 * 국빈 및 그 수행자, 외교사절단 및 그 수행자 * 국ㆍ공립기관에서 정양 중에 있는 상이군경 * 공무 수행을 위해 출입하는 자 * 학생인솔 등 교육활동을 위해 입장하는 초·중·고 교원 (유치원 및 보육시설 교사포함) * 한복을 착용한 자 * 「장애인복지법」,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 및 문화관광해설사 자격증을 패용하고 단체관람객 인솔·안내를 위해 입장하는 자 * 「효행 장려 및 지원법」에 따른 효행우수자 * 「국민기초생활보장법」에 의한 기초생활수급자 * 차상위계층 중 자활급여, 건강보험료 경감대상, 장애수당, 한부모 가정 중 하나 이상의 * 병무청 발급 병역명문가증 소지자(본인에 한함) *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전수교육조교 * 군복을 입은 현역 군인 * 막내가 만13세 이하 이고 자녀 2인 이상인 다자녀(다둥이)를 둔 부모 (다자녀카드 등 관련증명서 제시) 후원제외 * 문화재위원 및 전문위원 * 기타 문화재청장 또는 해당 유적관리기관의 장이 인정하는 자 *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문화가 있는 날] | |||||||||||||||||
할인 (내국인) | 종로구민 50% 궁궐전각 관람료 할인(‘15.1.29.부터 시행) |
구 분 | 이용기간 | 궁궐전각(일반관람) | 전각+후원(특별관람) |
궁궐 통합관람권 | 3개월 | 10,000원 | *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가능 (각궁별 1회 한정) * 4대궁 및 종묘 매표소에서 구입가능 * 환불 : 구입한 궁에서만 환불가능 |
* 단, 창덕궁 후원 특별관람의 경우, 입장 인원이 제한되어 있으므로 통합관람권을 구매하였어도 관람 당일 매표소에서 현장 구매표로 선착순 교환하셔야 합니다. [창덕궁 후원예매 바로가기] | |||
상시관람권 | 1개월 | 30,000원 | * 구매일로부터 1개월간 사용가능 * 창덕궁 궁궐전각지역만 가능 |
점심시간 관람권 | 12:00~14:00 | 5,000원 | * 구매일로부터 3개월간 사용가능(10회한정) * 구입한 고궁만 입장가능 |
창덕궁 홈페이지서 발췌 참고하셔요
돈화문들어서면 궐내각사 내병조 상서원 호위청 옥당
또무엇 본것같은데요 기억이 안나요 ^-^
아그리고 중간시시 카메라 관리소가 간간히 있는것 같았어요
음식물 반입금지
창덕궁 권역 입구
고궁에는 화장실이 많을것 같으나 엣날에는 비뇨기과
기능이 모두좋고 질병도 안걸렸는지 화장실이 잘 없답니다
낙선재 방향에 화장실이 있었어요 물론 다른곳에 있는지
모르지만요
제기억에는요
창덕궁 궁궐은
돈화문 일원
인정전 일원
선정전
흐정당
대조전 일원
성정각
궐내각사 선원전일원
후원으로 들어가면
부용지와주합류
애련지와의두함
존덕정과 펌우사
옥류천일원
궁궐은 늘 미로같아요 문도 많고요 늘 방문할때마다 새로운기분 익숙한길인가 하면 또다른장소 넓기도 넓은 궁궐이초겨울이라 인적도없고 우리일행외에 |
동궐도는 창덕궁과 창경궁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궁궐 건축 그림이다. 비단 바탕에 채색한 가로 576cm 세로 273cm 이며 국보 제2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순조 30년에 불타버린 환경전과 순조 34년에 중건된 통명전 경복전 건물은 없고 터만 그려져 있다는 점을 고려하여 제작 연대는 1826년 ~ 1828년 경으로 추정된다. 다리, 담장은 물론 연못, 괴석 등의 조경과 궁궐외곽의 경관까지 세밀하게 그렸다는 점에서 당시 화원들의 뛰어난 화공기법과 정밀성을 엿볼 수 있다. 이에 동궐도는 예술적 가치와 더불어 궁궐 연구와 복원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
(창덕궁 홈페이지에서 발췌 )
*경복궁에서 왕자의 난을거쳐왕위에 오른 태종은 한양에 또하나의 궁궐일짓습니다
창덕궁이랴고합니다
태종실록 1404년
*창덕궁은 무려 270년간 정궁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연산군 효종 현종 순종
영조 순조 철종 고종
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설명을 이위하여 블로그에서 재이동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어 광해군 때에 재건된
창덕궁은 1867년 흥선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서 발췌 ,,)
*에전에등록해둔 제블로그에서 재이동했어요
오래된 나무가신기해요 주목인가요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인가요
고목 ^-^
#진선문
창덕궁 정문인 돈화문을 지나 금천교를 건너면 중문
창덕궁 창건무렵에 세원진것으로추정 1908년 개수공사때헐렸다가
1999년 복원공사 완료
용도는 백성의억울함을 알리는 신문고 역활 이라른 설명
동문고라 불리는 북을 태종때 진선문에 설치했고
중간 유명무실했다가 영조때다시 설치했다고 합니다
돈화문을 거쳐 들어오면 옆으로 궐내각사가있어요
#궐내각사
왕과 왕실을 보좌하는 궐내 관청
관청은 대부분 궐 바깥에 있었지만,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기 위해 특별히 궁궐안에 세운 관청들을 궐내각사라고 불렀다. 인정전 서쪽 지역에는 가운데로 흐르는 금천을 경계로 동편에 약방, 옥당(홍문관), 예문관이, 서편에 내각(규장각), 봉모당(奉謨堂), 대유재(大酉齋), 소유재 등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왕을 가까이에서 보좌하는 근위 관청이며, 여러 부서가 밀집되어 미로와 같이 복잡하게 구성되었다. 일제강점기 때 규장각, 대유재, 소유재는 단순한 도서관으로 기능이 변했다가, 그나마도 소장 도서들을 경성제국대학 도서관으로 옮기면서 규장각과 봉모당 등 모든 궁궐전각들이 헐리고 도로와 잔디밭으로 변해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2000~2004년에 걸쳐 복원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서발췌 )
왕실과 직접 관련이 있는 여러 관청들이 궁궐 안에 설치되었는데, 이를 궐내각사라 부른다.
궐내각사에는 정치를 보좌하는 홍문관, 건강을 살피는 내의원(약방), 정신문화를 담당하는 규장각,
왕의 칙령과 교서를 보관하던 예문관 등이 있다. 대부분이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소멸되었다가 2005년에 복원되었고, 금천교를 경계로 경관을 이루고 있는데
여러 관청들이 밀집되어 미로처럼 구성되어 있다
물론 전각과 정보가 차이가 날수도 있답니다 차이가나면 알려주셔요
즉시수정하겠습니다
#인정문
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과 인정전(仁政殿:국보225호)
인정문(仁政門:보물813호)
인정문은 창덕궁의 중심 건물인 인정전의 정문이다. 효종·현종·숙종·영조 등 조선왕조의 여러 임금이 이곳에서 즉위식을 거행하고 왕위에 올랐다.
건물은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기둥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천장 재료가 훤히 보이는 연등천장이며, 단청은 가장 소박하게 꾸몄다.
왕위를 이어받는 의식이 거행되던 곳으로, 정전인 인정전과 함께 조선왕조 궁궐의 위엄과 격식을 가장 잘 간직하고 있는 건축물이다.
(창덕궁 홈페이지서 발췌
#섭장문
#상서원
말그데로 상서로운 기물을 맡는곳이라고 합니다 옥새 마패정원 관리
왕이행차할때 사복시 (말을 관리하는 관청 )
연락을해서 필요한물품을 챙겼다고 합니다
사진에 없지만
#호위청 왕을 호위하는 역활을 인조때만들어지고
광해군을 몰아내고 반정으로 왕위에올라서 자신이군대를 움직여 왕을쫒아냈기에
두려움을 느꼈을까요
그리고
#내병조
저번에 창덕궁 투어할때 찍은사진입니다
지금의 중요한 청와대 어느부서일까요
대통령 경호실쯤될까요 설명해주셨는데
뒤돌아서 서 잊어먹었어요 ㅠㅠㅠ
뒤로돌아가면 옥당
#옥당
국정을 논하며 지금으로치면 불온서적 검색 춘화도
뒷마당입니다
*고궁은 내의모든 공간은 금연구역입니다
*음식물 반입금지
*각종 야영용품 돗자리 그늘막 취사도구일체반입금지
*안내견 외 (장애인 보조견 )이외의 반려동물 애완동물
출입금지
창덕궁 두번채문
#섭장문
사진속 두로보이는 전각은
# 선정전
임금의 집무실로쓰였던곳
하지만 후원갈거랴고 일일히 관람은 못햇어요
현재궁궐로 남아 있는 유일한청기와건물이라고 합니다
선정전 (宣政殿, 보물 제814호)
임금의 집무실로 쓰인 곳
왕이 고위직 신하들과 함께 일상 업무를 보던 공식 집무실인 편전(便殿)으로, 지형에 맞추어 정전인 인정전 동쪽에 세워졌다. 아침의 조정회의, 업무보고, 국정세미나격인 경연 등 각종 회의가 이곳에서 매일 열렸다. 창건 당시에는 조계청이라 불렀는데, 1461년(세조 7)에 ‘정치는 베풀어야 한다’는 뜻의 선정전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임진왜란과 인조반정 등의 화재로 소실되었다가 1647년(인조 25)에 인왕산 기슭에 있던 인경궁을 헐어 그 재목으로 재건하였다. 주위를 둘러싼 행각들을 비서실, 부속실로 이용했으나 전체적으로 비좁았다.
현재 궁궐에 남아 있는 유일한 청기와 건물이다.
뒤편의 희정당으로 편전 기능이 옮겨 가면서 순조 이후에는 이곳을 혼전(魂殿, 종묘로 모시기 전까지 죽은 왕과 왕비의 신주를 모시는 곳)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현재 보물 제 8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덕궁 홈페이저발췌 )
아 여기는 카페인데요 사신을 접대하는곳 이었다고합니다
그련데 평상시와 달리 너무 조용해요 관람객이 없어요
세상에 을시년스려워요 그래도 그나름데로 겨울의 정서
전에는 여기용담꽃이 아주 화려하더니 없어요
지금은 모두시들었어요
궁궐에는 이상한쪽문들이 많았는데
정문은 문무대신이주로 출입하고 쪽문들은 지금으로치면
약간 은밀한문일까요
#성정각 일원
성정각일원
성정각 일대는 공사중이었습니다
성정가은 일반 사대부집사랑채와 세자가 학문을 연마하는 장소로
세자를 위한경연이
열렸던곳이라고합니다
다들추워서 중무장 하고다닌답니다 머리도 손도요 ㅋㅋㅋ
와국인 같기도하고요 그련데늘 제가 방문할시는 조용해서 너무좋아요
창덕궁 후원은 별도요금이 추가됩니다
개인 \5000원
물론 창경궁도 별도요금 \1000
관리인이 지켜서서 검표해요
창덕궁 투어하실려면 최소 \8000원이 요금
지붕위 기와모양입니다
목숨 수자와 거미모양
우리조상들은 오래살기를 기원하고 다산과풍요 를 중요시했나봅니다
목숨 수자와 거미모양
위에는 목숨수자와
아래에는 거미모양이라고합니다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고 합니다
그려고 보니 기와지붕이 모두그렇게 생겼더군요
혹시 고궁투어할 기회가생긴다면
한번 유심히 봐보셔요
문아래주로연꽃모양이라고 합니다서까래 같은데 있는것요
아래사진 참고하세요 연꽃문양은요
#자시문
현판이름 모르면 시어머니가 무식이 통통 할지랴도
호기심 발발 궁금중 못참아서 검색해도 근사치 안나오면
즉석으로 울이뿐며느리에게 의뢰 하면 1분1초도 안되서
궁금증을해소해 주어서 답을 알려주는 너무나 이뿐며느리랍니다
며늘아가야 고마워 ,늘 시엄마의 의문을 풀어주어서
자시란 뜻은 만물이건원에의뢰 하여 시작한다는 의미라고합니다
이말은 주역에서 나온말이며 ,궁궐지에서 이르기를 편액이
정조의 어필이라고 기록되어있으나
그련지는 지금이현판이 그련지는 확인되지 않다고합니다
매화나무입니다
동궁일원은 공사중이었어요
저위의 보이는 것은
# 보춘정
설명을 위하여 본인의블로그에서
#보춘정 이사진은 제가 2015년 찍은 사진입니다
옆에는 희우루 현판
동궁궐에 있는 보춘정 손님을 맞는 장소
사대부로 따지면 사랑방인가
#낙선재
낙선재는 국상을당한왕후들이 소복을입고
은거하던곳이랴고합니다
순종승하한후 순명효 황후가이곳에서별세
1963년 일본에서 환국환 영친왕 (이은)도
생애를마치고 조선의마지막옹녀
덕혜옹주도생을마감
영왕은고종의3남이며 순종의동생
대한제국의 마지막황태자
11세일본볼모로끌려가 강제로일본황족
의딸 이방자 여사와결혼
광복했어도 귀국하지못하고
1963년12월귀국 말을못하고 기억상실
7년간병원치료도 헛되이1970년
낙선재에서 눈을감았다합니다
영왕비 이방자..일본출생황족의장녀
제2차세계대전끝나고한법에의하여
왕족신분 상실 두분 무국적으로 있다가
63년 한국적취득 하여 한국으로귀국
1970년영왕과사별
덕혜옹주 조선마지막왕녀 고종나이환갑에 귀인양씨에게얻은외동딸
왕실귀여움받았으나
어머니돌아가시고 강제결혼하고
결혼생활3년만에 우울증실어증
폐인이돼서
낙선재에서 1989년운명하기까지
사람을몰라보았데요
안내책자보고 기록 한 사항입니다
낙선재(樂善齋)(보물:제1764호)
헌종의 검소한 면모가 느껴지는 곳
조선 24대 임금인 헌종은 김재청의 딸을 경빈(慶嬪)으로 맞이하여 1847년(헌종13)에 낙선재를
, 이듬해에 석복헌(錫福軒) 등을 지어 수강재(壽康齋)와 나란히 두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 겸 사랑채였고, 석복헌은 경빈의 처소였으며,
수강재는 당시 대왕대비인 순원왕후(23대 순조의 왕비)를 위한 집이었다.
후궁을 위해 궁궐 안에 건물을 새로 마련한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 헌종은 평소 검소하면서도 선진 문물에 관심이 많았다.
그 면모가 느껴지는 낙선재는 단청을 하지 않은 소박한 모습을 지녔으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 비 순정효황후가 1966년까지 기거하였고
, 낙선재에서는 영왕의 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까지 생활하였다.
이 낙선재는 2012년 보물 제 1764호로 지정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에서발췌 )
전에 블로그에 등록한글 그데로 드르륵 드레그 해왔어요
현판글씨와 중간중간 글씨는 추사김정희 선생님의 글씨라고합니다
글자 한자당 지금싯가로는 \1000만원넘는다고 설명이 계셨습니다
귀양지 가계셔도 쓰랴고 하셨는다는데요 전에 해설사 분의 설명을 적어둔글입니다
문살이 아주환상적이라고합니다 다이몬드 형태
햇살에 보면눈부셔서 과히환상이라고 합니다
아여기는 낙선재 전각구경을하기전에 낙선재를 향합니다
다이아몬드 문양이 아름답다고하니다
특별한 감성을 자아낸다고요 서서 볼때와 앉아서 볼때 감성이 남다르게
느껴진데요
마지막 황실 가족이 머무르던 낙선재(보물 1764호) 랴고합니다
석복헌 . 수강재 .순정효 황후와 이방자 (영왕의 비)그다지 왕래도
없이 지냈다고합니다
석복헌
후원인것 같아요 석물이 많았어요
아마 정원에 석물이 더러더러있어요
창덕궁 후원에도 낙선재후원 경복궁 교태전 후원 아미산 창덕궁에도
연경당 사랑채 궁궐도처에 석물이 있다고합니다
암석은 겉보기에 관심 끌 만한 아무 요소가 없어 보이지만, 옛사람들은 그 평범하고도 특별한 경관이 아닌 것에서
특별한 의미를 찾아냈다. 정원을 조성할 때 가능하면 바위를 본래 모습대로 정원에 포함시키려 했고,
그럴 상황이 못 되면 괴석을 옮겨 놓기도 했다. 이는 돌에 대한 애착심의 발로였다.
옛사람들이 암석을 애호하는 심리 가운데 중요한 요인은 암석이 삼라만상 중에서도
가장 불변적인 것이라는 점이었다. 자연계의 꽃과 풀이 생멸을 되풀이하고 있을 때
바위는 모든 것을 초월해 태초의 견고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벗 삼을 가치가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런가 하면 괴석을 정원에 들여놓고 대자연의 정취를 즐겼다.
돌에 낀 이끼나 돌 위에 떨어진 낙엽에서 깊고 오묘한 계절의 변화를 느꼈다.
표면을 타고 흘러내리는 빗물에서 강호의 풍경을 보았고,
뚫린 구멍에서 깊고 유현한 동천(洞天)을 발견하였다
출처 ( 다음백과에서 궁궐 장식에서 발췌 )
이번에는 괴석 석물을 얼마 안찍었지만 설명을 위하여서요
오래된 문살
여긴 엄첨 검소했습니다 낙선재는 헌종의 서재겸사랑채 낙선재에서는
영왕의비 이방자 여사가 1989년때까지 기거
석복헌에서는 순종의비 순정 효황후가지났으나
서로가 가까이지나기는 커녕 서로얼굴도 마주안되고 지냈다고합니다
이방자여사가 약간정신질환도 있고해서요
지붕문양 목숨수와거미모양
생명과 풍요와다산을 상징
#수강재
정조9년에지었으며 단종이 머물렸던 엣수강궁에서서 자리에세워수강재
순조 27년 대리청정을햇던 효명세자
(익종의 )별당 헌종의할머니였던 순원왕후로거처로
중수하였다고합니다
조선의 마지막 옹주인 덕혜옹주가 1989년 77살의숨을거둘때가지 거처했던곳
장례식도 이곳에서치뤄졋다고한다
수강재는 낙선재 석복헌과담장을 사이에두고 있으며낙선재일대의
복원작업후 2006년부터공개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고요 열심히 찍었나 봅니다 어디가어디인지도 모르고요
늘 미로찻기하듯 그래도 잘 봐주셔요
이것은 엣날에 우물이었다고 합니다 가로막아두었지만요
#장락문
지체높은 양반이 수레나 사인교를 타고 들어 갈수 있는 솟을 대문으로
장락문은 즐거움을 오래오래 누리는 곳에 들어가는 문이라는 뜻이라 한다
장락문은 창덕궁후원에도 있다고합니다
후원은 창덕궁의60%랴고합니다
엣날에는 호랑이도 나올정도로 깊을골짜기와연못정자가 많다고합니다
하지만 여기는 낙선재 들어가는 문입니다
눈으로 보고 사진으로 담고요 열심히 찍었나 봅니다
#감나무
석파정에 갔을때는 감이주렁주렁 하는데
여기는 까치밥도 없어요 ㅋㅋ^-^
고궁을 투어하다보면 지붕위에 경복궁에서도 있고 경회루 11개 창덕궁 돈화문에서도7개
각전각에서도 아마 보면 나타날것입니다 제각각이고 모양은 비슷하나
잡상이라고 한답니다
손오공 삼장법사 사오정 잡상은 서유기에서 나오는 인물과 토신들을 형상화
손오공이 잡상으로 기와지붕에 놓이게된것도 역시서유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원숭이는 꼭들어간다고 합니다 원숭이의 정체는 손오공
손오공은 힘이세고 자유자제로변신을하고 여의봉가지고 있고 요괴를 물리치고
그래서 기와지붕에
토우를 얹기시작했었고 세월이흐르면서 사자와해치 봉같은
토우도 올라갔다고합니다
저지붕위의있는것은 잡상이라고 한답니다
어디가 어딘인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사진에담고 눈의로 보고
늘 그때그때 또다른느낌 익숙한공간이아니라 점점 넓은 공간쳐렴느껴 져요
고궁은요
#선정문 신하들이랑 국사를 논의 했던곳으로 선정전으로 향하는문
비를 피할수 있고 복도 형태라 기쁨과 슬픔
혼전기능도 한선정전으로 들어가는 복도입니다
#선정문
선정이란 정치와가르침 널리 떨친다는 선양의의미 그데로풀면
정치를 베푸는곳 곳이라고합니다
#창덕궁
조선의 왕들이 가장 사랑하고 아낀창덕궁19 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
경복궁외 그어떤 고궁도 아직 등재되어 있지않다고 합니다
창덕궁만 등재되어있다고 합니다
아 ~~~~~헷갈려 여기가 희정당 같기도하고요
물론 정보가 차이가 날수도 있답니다
희정당 검색해본 자료입니다
희정당(熙政堂:보물815호)
침전에서 편전으로 바뀌어 사용된 곳
인정전이 창덕궁의 상징적인 으뜸 궁궐전각이라면
희정당은 왕이 가장 많이 머물렀던 실질적인 중심 건물이라고 할 수 있다. 원래 이름은
숭문당이었으나 1496년(연산 2)에 희정당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원래의 편전인 선정전이 비좁고 종종 혼전으로 쓰이면서, 침전이었던 희정당이
편전의 기능을 대신하게 되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1917년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20년에 복구하면서 경복궁에 있던 강녕전을 옮겨 지은 것이다.
< 동궐도>에 그려진 원래의 희정당은 여러 개의 돌기둥 위에 세운 아담한 집이었고 마당에 연못도 있었다.
지금의 희정당은 이 모습과 완전히 다르고, 원래의 강녕전과도 다르다. 재건된 희정당 내부는 쪽마루와 카펫,유리 창문, 천장에 샹들리에 등을 설치하여 서양식으로 꾸며졌다. 보물 제8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창덕궁 홈페이지서 발췌 )
이사진은 2019년 10.19일 돈화문일대를 투어하고서 찍은것입니다
사계절 고궁 나들이 한번 해보셔요
그날은 공기도 좋았어요 돈주고도 살수 없는 공기도요
#금마문
지금의 창덕궁 후원 기오헌 영역으로 들어가는 문.
금마문은 금문(金門)이라고도 한다. 원래는 중국 한나라 때의 궁궐인
미앙궁의 문으로 노반문이라고 불렸다. 한나라의 무제가 현재
중앙아시아 지역에 있었던 작은 나라인 대완국의 명마인
‘한혈마’를 얻은 기쁨에 궁궐 문 앞에 말의 동상을 세우고
문의 이름을 금마문으로 바꾸었다. 『조선왕조실록』을
비롯한 많은 문헌에는 창덕궁에 실재한 금마문보다는
한나라의 금마문에 빗대어 문인 학자들을 상징하는 용어로 더 많이 쓰였다
. 창덕궁의 금마문도 그것에 연유하여 이름 지은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다음 위키 실록사전 일부분만 발췌
자구 경은 잘 하셨나요 창덕궁 돈화문 일원일부와 낙선재를 보여드렸습니다
후원은 창덕궁 60%차지한다고 합니다 호랑이가 나올 정도로 숲과 정자가 있고
아름다운곳이라고 합니다 다음에는 후원일대를 보여드릴께요
교통편
*안국역 3호선3번 출구.도보10분가능
*내가찿아간방법
도보 10분더걸리는것같았어요
1.3.5호선
*7번출구로 계속직진종로3가역
1월..오전9시부터5시30분까지
전화02ㅡ762ㅡ8261
종로3가역1호선3호선6번출구
종로3가역5호선7번출구로나
입장은 관람마감 1시간전까지
*일행 4명
함께해주셔서 수고하셨습니다
그리고 처음 오신분도 방가웠습니다
추운날씨에도 불구하고 동참할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항상 건강하십시요
다음을 기약하겠습니다
2019년 12.19일
첫댓글 역사가 살아있는 현장의 상세한 정보와 자료 잘 봤습니다.
추운 날씨에 수고 하셨구요?..감사합니다.
네네 항상 격려해주심에 고맙습니다 오늘도 주말 잘 활용하십시요
그시대의 역사를 잘 설명해주셨네요 감사합니다
네네 엣날에 적어둔것 그데로 드르 르드레그햇어요거웠습니다 좋은하루열어가셔요
함게해서
으악 글 슨게다아났어요 ㅠ
눈이 나빠선가 두시간정도 꼼꼼히 읽
엇어요 금방 잊어먹을줄 알면서도 빧
지않고 일엇어요.
아공 제가귀찮게 했군요 전에 기록해둔것 찿아서 등록 했어요 창덕궁 여려차레 방문 했거든요 '
그련데 갈대마다 새로운걸 알게되요
금방 잊어버릴줄 알면서도 제밋서서
시간가는줄도 몰랏답니다.
다행입니다 공유해주셔서 고맙습니다
5백년 역사를 한눈에 보는듯 한것은 행복님의 제밋게글을 끌고 가는특출한 재능때문이예요
과찬이십니다
어떤대에서는 하나의 시같은 표현이고 어떤글에서는 노레같은 느낌이 있어 계속 더 읽고 싶답니다
그리고 이많은 글을 올릴려면 많은
시간과 정리된 생각이 필요한대 내가
말로써다표현을 못하겟읍니다.
먹고살기위해 돈나오는 일도 아닌대
두손합장하여 고맙고 감사합니다
보춘정은 멀리서 보고 가보고 싶다
햇는 여기서 보춘정인걸 알앗읍니다.
우리는 대조전 일대와 선원전 일대와 그리고 희정당일대도 못보았을걸요
성정각은 보수중에 있었고요 선정전 도 제데로 구경 안했을줄 압니다 창덕궁이
하도 넓어서요 미로도 많고요 옥당 검서청 수락간 기타등등 그덕택에 후원을 대신 잘관람하는
호사를 누렸잖아요 고맙습니다
모두를 건성건성 봣는대 행복님의
설명으로 배에서 배로 즐겁습니다
이상 행복님 이쁘요 다음주에 뵈요ㅗ
고맙습니다 꺼죽데기만 보면 재미가 없잖아요
하나라도 알면서 보면 꿀재미가 있잖아요
고맙습니다
나도늘고 콤퓨터도늙고 하여 콤퓨터가 맨날고장인대 그장저장쓰다가 죽을려햇는대
애라이모르겟다 큰맘먹고 구입하자 하여 오늘 180만원주고 엘지노트 삿답니다 별로쓸일도 없는대 하면서////ㅋ
어머나 축하드립니다 화질도 훨씽 좋을것이에요
참 잘 하셨습니다
태극정 취규정 농허정 내년4.20후예
같이가서 투어해요 이번에 잘못갓서
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