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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불께서는 사바세계의 하늘을 9천으로 나누었을 때 그 9천에서 6천에 해당하는 도솔천에서 보처보살인 호명보살로 계시다가 9천이 아니라 6천 도솔천에 나신 이유는 6천 도솔천에서 태어나시는 것이 부처님의 상호를 갖추고 부처님으로 가르침을 펴기에 좋겠다고 본 것입니다. 더 높은 하늘인 7천 8천 9천에서 태어나면 그만큼 더 많이 낮춰야하고 힘든 것이 많기 때문입니다. 왜 낮춰야하는가? 업이 두터운 중생을 위해서 낮춰야하는 것입니다.
6천에 있는 도솔천에서 보처보살로 호명보살로 가르침을 펴시다가 이렇게 도솔천에 가르침을 편다는 것은 엄청난 공덕을 짓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 분께서 마야부인과 정반왕을 부모님으로 마야부인의 태속에 드셨습니다. 그리고 싯다르타 태자께서 태어나셔서 사방으로 7걸음을 걸으시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고 하셨습니다. 사바세계에서는 1등 공덕을 짓은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29살에 싯다르타 태자께서는 출가를 하셨습니다. 전륜성왕이라 하는 것은 카필라성 밖을 나가지 아니하고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카필라성의 동서남북의 4방향의 문 밖으로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반왕께서 싯다르타 태자께서 세속의 즐거움을 즐기게 하기 위해서 궁전도 짓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세속의 즐거움이라는 것은 괴로움입니다. 싯다르타의 아버지 정반왕께서 세속의 즐거움을 즐기게 하기 위해서 궁전을 짓기 전에 일찍이 출가를 하면 되는데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세속의 즐거움이 곧 괴로움이지만 받으셨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업이 두터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야부인과 결혼을 하고 라후라를 아들로 두고 29살에 되어서야 출가를 하셨습니다.
싯다르타 태자께서 29살이 되어서야 출가를 하시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낡고 허름한 옷을 입으셨다는 것도 업이 두터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업이 두터운 중생은 괴롭고 그 괴로움을 해결하기 위해서 삭발하고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싯다르타 태자께서 29살에 출가를 하셔서 6년간 극심한 고행을 보이시고 극심한 고행으로는 위없는 깨달음을 줄 수 없다는 것을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석가모니불을 따르는 제자들은 극심한 고행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6천 도솔천에서 인간세상에 내려오셔서 태어나시고 사방으로 7걸음을 걸으시고 "하늘 위 하늘 아래 나 홀로 존귀하다"고 외치셨지만 업이 두터운 중생을 위해서 스스로 낮추고 낮추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낮추고 낮추시고 시절인연에 의해서 부처님이 되시고 21일간 사유하시고는 "내가 가르침을 펴느니 차라리 열반을 보이는 것이 나으리라"하셨습니다. 열반을 보이는 것도 업이 두터운 중생을 위해서 열반을 보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석천왕이 가르침을 펴달라고 간청을 해서 가르침을 펴기 시작해서 45년간 가르침을 펴시다가 80세에 열반을 보이셨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열반을 하시고 실제로 지옥에 들어가셨습니다.
어째서 지옥에 들어가셨냐하면 업이 두터운 중생을 위해서 지옥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들어가서도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십니다.
석가모니불이라서 더 높은 곳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낮은 곳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 낮은 곳에 있다해도 괴로움을 받지 아니합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열반하시고 하늘세계가 9천이 있어서 저 높은 9천에서 최고 높은 곳에 가신게 아니라 오히려 지옥에 가셨습니다. 그러나 석가모니불께서 지옥에 계시면서도 괴로움을 받지 아니합니다.
지옥에 계시면서 괴로움을 받는다면 그것은 업보 중생인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사바세계의 하늘 9개로 나누어 최고 높은 하늘인 9천에 계시면 업이 두터운 중생들은 석가모니불께서 열반하시고 석가모니불께서 상호를 갖춘 모습을 보고 싶어도 못 볼 뿐만 아니라 석가모니불의 불상을 모실 수도 없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 지옥에 계셔서 업이 두터운 중생들이 상호를 갖춘 석가모니불을 뵐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불의 불상도 모셔놓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열반하시고 사바세계의 하늘 9개로 나누어 최고 높은 하늘인 9천에 가신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들의 세계가 있고 그 부처님들의 세계에는 질서가 있습니다.
사바세계에서는 더 공덕이 뛰어난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는 더 낮은 곳으로 가야 뵙 수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는 대일여래 즉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뵙기 위해서는 무간지옥에서 뵙 수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는 대일여래 즉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께서는 무간지옥에서 대일여래의 상호를 갖추고 온 시방법계에 두루 광명을 비추시고 계신 것입니다.
부처님은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는 일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는다는 것은 업보중생인 것입니다.
오히려 사바세계에서는 열반에 들고 어떤 지옥에 가셔서 그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지 않는냐로 더 공덕을 짓은바가 적고 많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꼐서 절을 하신면서 하심을 하는 것은 더 높은 하늘에 태어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낮은 곳에서 부처님을 뵙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공덕을 짓을수록 더 높은 하늘 세계에 가는게 아니라 더 낮은 지옥으로 가는 것이고 그 지옥에서 괴로움을 받지 아니합니다.
어떤 사람이 있어 온갖 죄를 다 지어서 죄업을 엄청나게 짓어서 무간지옥에 들어갔는데 대일여래의 상호를 갖추고 온 시방법계에 광명을 비춘다면 이런 분이라야 대일여래께서 몸을 나툰 사람인 것입니다. 온갖 죄업을 짓은 것은 죄업을 짓는 중생들을 제도하기 위해서 그러한 것입니다. 대일여래(청정법신 비로자나불)께 가르침을 베풀어달라고 해서 쓰여진 경전이 있는데 수구성취다라니경입니다. 수구성취다라니경에 대해서 조금만 강설을 해드리고자 합니다.
수구성취다라니경에 보면 멸악취보살이 비로자나부처님의 거룩하신 모임 속에 있다가 자리에서 일어나 합장하고 공경히 사뢰었다.(이와같은 일은 무간지옥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수구성취다라니경에 나오는 구박 바라문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께서 몸을 나투신 것입니다. 이 구박 바라문은 두생동안 온갖 죄업을 짓고 한 가지 선을 짓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실제로는 죄업이 두터운 중생이 아니라 선지식으로 온갖 죄업을 지은 중생들을 위해서 구박바라문로 두생동안 온갖 죄업을 짓고 한 가지 선을 짓지 않은 것입니다. 선지식 구박바라문이 지옥에 떨어졌는데 알고보니 상방세계 무구불(無坵佛)이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여기에 나오는 상방세계 무구불(無坵佛)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입니다. 수구성취다라니경은 제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남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삿된 소견을 일으키고, 방일한 중생은 제도할 법이 없으니, 살아서는 온갖 고통을 받다가 죽어서는 무간지옥에 떨어져서 삼보의 이름조차 듣지 못하고 부처님 뵙기 힘들고 인간으로 태어나기 힘든 악업 중생을 위해서 설해진 경전입니다. 이와 같은 악업 중생들이 상방세계 무구불이 계신 곳으로 인도해주기 위해서 쓰여진 경전인 것입니다.
실제로 상방세계 무구불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데 수구성취다라니경으로는 악업이 소멸이 되나 이렇게 악업이 소멸되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상방세계 무구불로 뵙게 되는 것입니다.
분명히 아셔야 하는 것은 악업을 짓은 중생이 수구성취다라니경으로는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직접 뵐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수구성취다라니경에 나오는 멸악취 보살은 석가모니불이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무간지옥에서 석가모니불께서 멸악취 보살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모임 속에 있다가 가르침을 청한 것입니다. 석가모니불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 아닙니다. 석가모니불께서 무간지옥에서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뵈면 멸악취 보살이라는 보살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퇴옹성철 큰스님의 열반송을 봅시다.
일생 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여서
하늘 넘치는 죄업은 수미산을 지나친다
산 채로 무간 지옥에 떨어져서 그 한이 만 갈래나 되는데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도다.
선지식께서 죄를 많이 짓었다는 것은 죄를 짓은 중생들을 위해서 그러하신 것입니다.
선지식께서 무간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은 그만큼 대단한 공덕을 짓은 부처님이라는 것입니다.
둥근 한 수레바퀴 붉음을 내뿜으며 푸른 산에 걸렸다는 것은 이후에 몸을 또 나투시겠다는 것입니다.
퇴옹성철 큰스님께서는 과거칠불 중에 한 분인 비바시불이라는 부처님입니다.
퇴옹성철 큰스님께서 무간지옥에 간다고 해도 괴로움을 받지 아니하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회상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퇴옹성철 큰스님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대일여래)는 아니십니다.
수구성취다라니경에 나오는 선지식인 구박바라문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대일여래)께서 몸을 나투신 것입니다. 선지식인 구박바라문은 악업이 두터운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선업을 쌓은게 아니라 선업을 쌓도록 일러줘도 하지 아니하고 무간지옥에 들어갈 정도의 악업을 짓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 악업을 짓은 것입니다. 온갖 악업을 짓어야만 악업이 두터운 중생들과 맞추게 되고 제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선지식 구박바라문은 지옥에 들어가셔서 상방세계 무구불이 되셨습니다. 사바세계에서는 공덕이 더 뛰어날수록 더 높은 하늘에 계신 것이 아니라 더 낮은 지옥에 계신 것입니다. 사바세계에서는 상호를 갖추신 청정법신 비로자나불(대일여래)을 뵙고 싶다면 무간지옥에 들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상황이라는 것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과의 인연으로 펼쳐지는 것입니다. 이 정도 알면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을 뵙 수 있습니다. 무간지옥에 들어가도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의 회상에 참여한다는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하늘을 9천으로 나누면 9천마다 마왕이 있습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6천 마왕 파순을 항복시켰습니다.
9천의 마왕은 실제로는 보살인데 중생들을 부처님이 되도록 이끌기 위해서 마왕이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9천 마왕은 6천 마왕과는 다른 것입니다.
퇴옹성철 큰스님께서 종정법어에 "사탄이여! 어서 오십시오. 나는 당신을 존경하며 예배합니다. 당신은 본래로 거룩한 부처님입니다" 이때 말씀하신 사탄은 9천에 해당하는 사탄을 말하는 것입니다. 9천의 사탄은 실제로 보살이 중생을 부처님으로 이끌기 위해서 사탄이 되신 것입니다.
마왕도 잘 보아야하는 것입니다. 낮은 하늘에 마왕일수록 마음이 삿되고 부처님이 되도록 이끄는게 아니라 악업중생 업보중생이 되도록 만들어서 파멸시키고 악업을 계속 짓도록 이끌고 마왕에게 의존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는 6천 마왕 파순을 항복시킨 것이고 더 높은 7천, 8천, 9천이 아니라 6천 마왕을 항복시킨 것은
7천 위로는 실제로는 악업이 두터운 중생이 태어날 수가 없는 곳입니다. 예수님을 실험한 마귀도 7천에서 12차원으로 나누었으면 2차원 정도에 해당하는 마귀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6천 마왕을 항복시켜서 제자로 만들었으니 7천 2차원 정도의 마귀는 그렇게 악한 마귀는 아닌 것입니다.
석가모니불께서 6천 마왕을 항복시키고 석가모니불의 제자로 이끌게 된 것입니다. 사바세계의 하늘세계를 9천로 나누고 더 낮은 하늘일수록 마왕이 더 마음이 삿된 마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6천 마왕을 항복시켰으니 이제 5천 아래로 마왕들을 다 항마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더 높은 하늘일수록 마왕들이 삿된 것 같지만 실제로는 석가모니부처님의 제자들입니다. 6천 마왕 파순을 항복시킴으로써 6천 마왕의 무리들을 부처님의 제자로 이끈 것입니다. 지금 6천, 7천, 8천, 9천까지 마계는 실제로 우리 수행을 도와주는 마들이고 5천 아래로는 항마시켜서 부처님의 제자로 이끌어야하는 마인 것입니다.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드러눕게 되는 것은 마에게 항복당했다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수행자가 수행을 하다가 드러누우면 6천 마계에서는 우습게 생각합니다.
석가모니불의 후신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고문을 당하고 십자가에 목 박혀서 열반하심을 보이셨는데 마귀를 쫓겠다고 십자가를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데 5천 마왕이 십자가를 섬기고 있기 때문에 5천 마계에서는 십자가를 들고 있는 사람이나 지니고 있는 사람은 건드리지 못하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5쳔 마왕이 항복하고 석가모니불의 제자가 된 것은 아닙니다. 5천 마계에서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으로 하여금 석가모니불의 제자들과 싸우게 만들고 이것을 즐기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