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반적정이란... <열반>은 갈애가 소진되어 드러난 상태라는 뜻이다.
갈애의 소진이 갈애가 사라지기만 해야 가능한 것은 아니다.
한량없는 일체가 드러날 때.. 갈애라 이름할 무엇을 찾을 수 없기도 하다.
무엇이 차별함인가? 달라붙음이 차별함이다.
달라붙음이 있으면 드러남이 있으니 드러남은 차별함과 함께한다.
어째서 그러한가? 그것에만 달라붙지 않았다면 그것만이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만이 드러나지 않았다면 한량없이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한량없이 드러난다면, 이미 그것만의 드러남이라고 할 수만은 없다. 그리하여 평등함이라 이름한다.
하지만 달라붙음이 없다면 드러남도 없을 것이다. 드러남이 없다면 한량없는 드러남도 없을 것이다.
이처럼 평등함이란, 한량없는 달라붙음 즉 한량없는 차별함일 따름이다.
차별함에 의지하여 평등함도 있는 것이다. 차별함이 없다면 평등함도 없다.

첫댓글 이럴진데...
세간을 떠나 어디서 열반을 구할 것이며, 세간을 떠나 어디서 여래를 찾을 것인가?
중도는 세간 가운데에서 행해야 하고, 여래는 세간 가운데에서 만나야 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
방문객님의 옛날 글에서 발췌한 것인데 .. 너무 좋아서 또...
[여래의 자성은
바로 세간의 자성이다.
여래는 자성이 없으며
세간도 자성이 없다.
如來所有性 卽是世間性 如來無有性 世間亦無性.]
-MK.22-16
==
아~ 참 멋있다!!!
방문객님은 화엄행자시니까요.
[한량없는 일체가 드러날 때 갈애라 이름 할 무엇을 찾을 수 없기도 하다]
화엄행자에게는 티끌같은 하나의 마음에서 그 마음과 상즉 상입하며 상호의존하고 있는 일체의 마음이 보이겠지요. 그렇게 하나에서 전체를 본다면 지금 일으키고 있는 이 하나의 마음에만 달라붙는 일은 하지 않겠죠. 그 하나가 전체를 담고 있으니까요. 일중다다중일의 이치에 입각하여..
==
우리가 일으키고 있는 마음에 대해 우리는 선한 마음, 악한마음이라고 분별하지만..
하나의 마음에 일체가 들어있음을 안다면.. 특히 선한마음이다, 악한마음이다 라는 분별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아요. 그 어떤 마음이든 무자성이잖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