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유족 ‘서수상’ 기증… 광화문 월대 얼굴 되찾았다
문화재청 “李회장이 생전 소장
복원중인 광화문 월대에 활용”
1923년 전차선로 설치되며 치워져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은 29일 “경복궁의 석재 대부분이 화강암이고 서수상 역시 화강암으로 만들어졌다”고 했다. 신원건 기자
고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유족이 문화재청에 서수상(瑞獸像·상상 속 상서로운 동물상) 2점을 기증했다. 광화문 월대(月臺·궁궐 주요 건물의 품격을 높이기 위해 터보다 높게 쌓은 단)에서 임금이 다니던 어도(御道)의 첫머리를 장식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제강점기였던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면서 치워진 것으로, 잃어버렸던 월대의 얼굴을 되찾은 셈이다.
문화재청은 “이 회장이 생전 소장해 유족이 기증한 서수상 2점은 현재 복원 중인 광화문 월대에 활용하기로 했다”고 29일 밝혔다.
1910년대 서울 광화문 월대에 있던 서수상(원 안). 국사편찬위원회 제공
서수상 2점은 각각 너비 57cm, 길이 198cm, 높이 60cm다. 뿔이 1개이고, 목에 털이 있다. 서수상은 고종(재위 1863∼1907년) 때 월대를 건립하면서 사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과거 광화문 월대 사진을 보면 서수상의 형태와 규격, 양식이 기증품과 일치한다. 서수상은 상상 속 신비로운 동물을 나타낸 조각상으로, 서수는 왕이 정치를 잘할 때 나타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은 경기 용인시 호암미술관에 서수상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올해 4월 이 회장 유족에게 협조를 요청했다. 서수상은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가 1982년 호암미술관을 개관할 때부터 있었다. 이달 초 이 회장 유족은 “서수상이 의미 있게 활용되길 희망한다”며 기증했다. 2021년 이 회장 유족은 이른바 ‘이건희 컬렉션’으로 불리는 소장품 2만3000여 점(국가지정문화재 60건 포함)을 국가기관 등에 기증했는데, 서수상은 이에 포함되지 않았다.
광화문 월대는 흥선대원군이 임진왜란 후 270여 년 동안 폐허로 남아 있던 경복궁을 중건하며 정문인 광화문의 격을 높이기 위해 쌓았다. 덕수궁과 창덕궁 정문에도 월대가 조성됐지만 좌우 난간을 두른 건 광화문 월대뿐이다. 학계에서는 경복궁 안팎을 잇는 광화문 월대에서 각종 왕실 행사가 열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1923년 전차선로가 설치되며 월대는 땅속에 묻혔다. 문화재청은 월대 복원을 마무리하는 올해 10월에 기념행사를 열어 서수상을 포함한 광화문 월대를 공개할 계획이다.
김민규 동국대 불교학술원 문화재연구소 전임연구원은 “서수상이 없었으면 옛날 사진을 바탕으로 월대를 복원해야 했다”며 “원래 유물이 돌아옴으로써 월대 복원을 완성하는 화룡점정의 의미가 있다”고 했다. 신희권 서울시립대 국사학과 교수는 “일제에 의해 훼손됐던 광화문 월대는 재현이 아닌 원모습을 살려내는 복원에 방점이 찍힌 만큼 실제 월대에 있었던 서수상을 기증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