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올림픽 경기 이레째인 지난 2일(현지시간) 타이완 선수 리양과 왕치린이 출전한 배드민턴 남자 복식 준결승 경기 도중 관중석에서 한 관중이 영어로 "가자 타이완"이라고 적힌 격문을 펼쳐 보였다가 경비요원들에게 끌려 나가 대만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다고 미국 CNN이 다음날 전했다. 타이완 당국은 “차이니즈 타이베이”란 이름으로 출전하도록 허용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결정을 재고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을 새롭게 제기하고 있다.
로이터 통신 기자들은 문제의 관중이 경기 도중 경비요원들에게 끌려가게 되자 구호를 외쳐댔다고 전했다. 이 관중이 든 격문의 녹색은 타이완의 독립과 더 광범위한 자치권을 주창하는 집권 민주진보당의 상징 색이다.
이날 관중석에는 타이완 섬 모양으로 오린 녹색 천 배너에 한자로 "대만 짜유"라고 적힌 것을 펼쳐들고 응원한 여성 관중도 있었다. 프랑스에 유학 중인 타이완 여대생으로 알려졌다. 경비요원이 다가와 자제할 것을 요구하자 이 여대생은 버텼고, 이 과정에 중국인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여성의 배너를 빼앗아 짓밟는 일까지 발생, 경비요원들이 이 남성을 붙잡아 끌고 나가는 일도 있었다.
타이완의 정식 국호는 '리퍼블릭 오브 차이나'(ROC)인데 중국은 민주주의를 표방하며 자율적으로 통치하는 영토 일부로 보고 있으며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물론 스포츠 쪽에서도 마찬가지다.
IOC도 중국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어 타이완은 올림픽에 “차이니즈 타이베이”로 출전하고, 정식 국호나 국기, 국가를 쓰지 않기로 정치적인 타협을 했다.
타이완 외교부는 성명을 내 “'가자 타이완' 격문을 무자비하게 낚아챈 잔인하고 사악한 개인들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이런 폭력적인 행위는 교육 받지 못한 것일 뿐더러 올림픽 대회가 표방해 온 문명의 정신을 심각하게 침해한 것이다. 아울러 법치를 파괴하고 표현의 자유를 짓밟은 것”이라고 밝혔다.
타이완 외교부는 또 프랑스 주재 대사에게 사건 경위를 사법 당국에 보고하고 "이런 폭력적인 사고가 재발하지 않게" 프랑스 당국의 협조를 요청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CNN은 프랑스 당국에 관련 코멘트를 요청하고 있다고 밝혔다.
다음날 기자회견 도중 관련 질문에 마크 애덤스 IOC 대변인은 입장권 약관에 “대회에 참가하는 국가와 영토의 깃발들만 허용된다”고 기재돼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1960년대까지 타이완은 올림픽에 “ROC”로 죽 출전하다 1971년 유엔이 베이징 정부를 중국의 유일한 합법 정부로 인정하면서 바뀌었다. 이에 항의하며 타이완은 1976년과 1980년 대회 참가를 보이콧했다. 1984년 대회에 타이완이 돌아왔을 때 IOC와 중국이 타협해 "차이니즈 타이베이"란 이름 아래 출전하되 국호나 국기, 국가는 이용하지 않도록 타협했다.
2018년 타이완 유권자들은 올림픽 대표팀 명칭을 "차이니즈 타이베이"에서 "타이완"으로 바꾸자는 국민투표 제안을 거부했다고 AP 통신은 전했다.
그런데 이런 소란이 여기서 그칠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독립 성향의 라이칭더(賴淸德) 타이완 총통은 3일 소셜미디어에 응원도구 압수에 대한 아쉬움을 토로하며 “IOC 규정에도 불구하고 우리 선수들이 타이완 출신임을 전 세계가 알게 될 것”이라면서 “우리가 단결하고 두려움이 없다면 세계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다. 세계가 계속 볼 수 있도록 우리의 이름을 크게 외쳐달라”고 독려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