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틴 앤드루스 영국 요크대 교수와 조너선 버치 영국 런던정치경제대 교수 등 40여명의 철학·뇌신경학·생물학·동물행동학자들은 지난 19일(현지시각) 포유류와 조류뿐 아니라 모든 척추동물과 무척추동물이 ‘내면세계’를 지녔을 가능성이 있다는 내용을 담은 ‘동물 의식에 관한 뉴욕 선언’(The New York Declaration on Animal Consciousness, 이하 뉴욕 선언)을 발표했다.
이들은 이번 선언에서 “우리는 이미 포유류, 조류가 의식을 갖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강력한 과학적 근거를 갖고 있다”며 “파충류, 양서류, 어류를 포함한 모든 척추동물과 두족류 연체동물, 십각류, 곤충 등 일부 무척추동물도 ‘의식적 경험’을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뉴욕 선언에는 그동안 내면의 삶이 있다고 여겨지지 않던 동물들도 의식을 지니고 있다는 증거가 실험을 통해 밝혀지고 있기 때문에 동물복지에 대한 고려와 성찰을 강화할 필요성이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번 선언은 이날 미국 뉴욕주 뉴욕대에서 열린 ‘동물 의식의 새로운 과학’ 콘퍼런스 이후 공개됐다. 콘퍼런스에는 각 분야 전문가들이 발표자로 참가했다. 이들은 지난 10년여간 과학계에 누적된 동물의 인지·의식 연구에 대한 진전 사항과 연구 방법, 동물 관련 공공 정책 현황 등을 설명했다.
뉴욕 선언을 설명한 뉴욕대 누리집을 보면, 이들이 말하는 ‘의식’의 존재는 ‘어떠한 동물이 주관적 경험을 할 수 있는가’의 여부였다. 즉 “동물이 경험을 통해 촉각, 미각, 시각, 후각 등 감각적 경험은 물론 즐거움, 고통, 희망, 두려움 등의 심리적 경험을 하는가”를 주로 살폈다는 것이다. 이들은 의식이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이번 선언에서는 ‘현상적 자각’(Phenomenal consciousness) 또는 ‘지각’(Sentience)에 초점을 맞췄다고 덧붙였다.
동물이 지각을 가졌을 가능성을 보여준 여러 실험도 소개했다. 가장 대표적인 실험은 ‘거울 자기인식 검사’다. 동물의 몸에 스티커나 페인트 등으로 시각적 표시를 하고, 거울을 보여준 뒤 거울 속 모습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알아채는지 연구한 실험이다. 현재까지 거울 자기인식검사를 통과한 동물은 침팬지, 아시아코끼리, 청줄청소놀래기 등이다. 이 동물들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에 호기심을 보이고, 표시를 제거하려고 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런 행동은 동물들이 의식을 지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2020년 독일 튀빙겐대 실험에서 까마귀도 고도의 지각력을 갖춘 것으로 조사됐다. 까마귀에게 각기 다른 밝기의 시각적 자극을 준 뒤 빛을 인지하면 ‘예’를, 아니면 ‘아니오’를 부리로 찍도록 훈련시켰는데 새들은 높은 정확도로 과제를 수행했다. 연구자들은 까마귀들이 실제 자신이 보고 있는 것을 인지하는 의식을 갖춘 것으로 해석했다.
문어, 갑오징어, 제브라피쉬, 꿀벌, 초파리, 가재, 뱀 또한 의식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문어는 두 개의 방 가운데 한 곳을 선택할 때 고통스러운 자극을 받은 방을 피하고 마취제가 투여된 방을 선호했다. 이는 문어가 통증을 경험한 뒤 이를 적극적으로 피한다는 것을 시사했다. 연구자들은 이것이 의식적 경험의 근거라고 봤다.
인간처럼 꿈을 꾼다는 연구 결과도 동물의 의식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꼽힌다. 지난해 오스트레일리아(호주) 퀸즐랜드대 연구진은 초파리가 잠들었을 때 인간처럼 ‘깊은 수면’과 ‘렘수면’을 오가고 렘수면 단계에서 활발한 뇌 활동을 보인다는 것을 관찰했다. 인간이 생생한 꿈을 꿀 때 관찰되는 뇌 활동과 패턴이 일치한 것이다. 초파리 연구를 진행한 생물학자 브루노 반 스위더덴 퀸즐랜드대 박사는 “꿈은 의식의 핵심 요소다. 파리와 다른 무척추동물들이 렘수면을 취한다면 아마도 이것은 의식이 있다는 좋은 단서가 될 것”이라고 과학저널 ‘네이처’에 말했다.
뉴욕 선언이 공개된 뒤 전 세계 과학자들이 추가로 참여해 26일(한국시각) 현재까지 동참한 인원은 86명에 이른다. ‘조류계의 아인슈타인’으로 불린 회색앵무 ‘알렉스’와의 실험으로 유명한 아이린 페퍼버그 미국 보스턴대 교수와 큰돌고래의 거울 자기인식 검사를 최초로 연구했던 로리 마리노 뉴욕대 교수 등도 이름을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