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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보물 제10호, 장정리 봉은사지 오층석탑,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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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보물 제10호, 장정리 봉은사지 오층석탑,...........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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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가 오늘 찾아간 곳은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 193번지, 정상에 봉천대가 있는 봉천산[291m] 남쪽 자락에 보물 제
10호로 지정된 5층 석탑이 하나 있다. 이름하여 장정리 오층석탑이다. 이 석탑은 강화도 유일의 고려 시기 봉은사지 석탑
으로 알려져 있다. 그 희소성 때문인지 보물 지정 시기도 1963년 1월 21일로 꽤 오래되었다. 유랑자는 마을을 지나 구불
구불 이어진 길을 따라 오른다. 산새 소리의 하모니를 들으며 오른 한적한 길은 천상 시골길 그대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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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물소리가 빠진 것일 뿐 모든 것은 자연 그대로이다. 본시 봉천산은 봉두 산, 하음 산이라고도
부른다. ‘강도지’에 “봉두산은 곧 하음 산인데 봉수가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여지도’에 하음 산이라 표기되어 있고
정상부에 봉수, 산 남쪽에 하음 현 치소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고려시대에 하음 백으로 봉해졌던 하음 봉씨 봉 천 우
라는 사람이 봉천대를 쌓았다고 전하는 산이다. 봉 천우는 봉천대에서 자신의 조상을 도와준 하늘에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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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재미있는 전설이 담긴 오층석탑 이란 안내 글이 유랑자의 눈길을 끈다.
전설이 있는 오층석탑이다.
고려시대, 마을 사람들이 빨래를 하러 오는 연못이 있었다.
어느 날 한 여인이 빨래하러 가니, 함이 떠 있는데 아니겠는가.
그 함 안에 사내아이가 있더란다. 그 여인은 어떻게 할까, 생각하다가
임금님께 아이를 바쳤다.
임금은 그 아이의 이름을 '봉우'라 짓고 잘 가르치라고 하였다.
봉우는 자라서 나라에 많은 공을 세웠고 후손인 봉 천우는 그 부인을 위해 봉은사를 짓고
석조여래입상과 오층석탑을 세워 고마운 마음을 기렸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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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인적 하나 없는 적막감만 맴도는 곳, 장정리 5층 석탑 앞에 섰다. 높이 3.5m. 보물 제10호라고는 하지만 유랑자
의 마음을 무척이나 무겁게 만든다. 일단, 오층석탑이라고 하지만 훼손이 많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단부 위에 올려진 탑
신을 이루는 지붕돌이 4개뿐이다. 지붕돌을 받치는 몸돌 역시 아래 2개 층에만 놓여 있고 3층과 4층 부에는 몸돌이 없다.
맨 위층의 지붕돌과 탑의 꼭대기를 구성하는 상륜부는 아예 흔적조차 없다. 위로 올라갈수록 높이가 층마다 줄어드는 체감
률의 아름다움을 찾아볼 수 없다. 몸돌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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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長井里 五層石塔[장정리 오층석탑] 이 보물로 지정된 이유는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틀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유산청은 장정리 오층석탑에 대해 ‘신라 석탑의 양식을 이어받아 변형된 고려시대 석탑의 전형적인 특
징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고려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석탑이 재미있는 것은 보는 각도
에 따라 그 모습을 달리한다. 보물 지정 기념비 앞 정면에서 보면 그나마 탑의 모양새가 많이 갖춰진 모습이다. 보는 위치
가 지대석 아래여서 약간 올려다볼 수밖에 없는데, 이 때문에 4개의 지붕돌 아래쪽 바닥을 잘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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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지붕돌의 아랫면에는 계단식으로 깎은 면이 4개인데, 위의 지붕돌 3개의 계단은 3개씩이다. 기단부의 상대석을 받치
는 하대석이 동서남북 4개이고, 1층 지붕돌을 받치는 몸돌은 2개를 붙여 놓았고, 2층 몸돌은 하나뿐이다.
동쪽에서 바라보는 장정리 오층석탑은 그야말로 기우뚱하여 강풍만 불어도 금방이라도 무너질 듯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
하구 그 오랜 세월 동안 모진 風波[풍파]와 曲折[곡절]을 잘 견디어 냈다고는 하지만 만신창이가 된 몰골이 좀 안타까울 뿐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 탑의 원래 모습은 어땠을까?”라고 보는 이들의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점에서는 국내 최고의
석탑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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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상상력을 채우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석탑의 역사와 시대별 造形美[조형미]의 흐름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 뒤에
야 장정리 오층석탑의 ‘무너져 내린 아름다움’을 마음속에서 찾아낼 수가 있다. 이런 점에서 장정리 오층석탑은 審美眼[심
미안]을 키우는 콘텐츠로 삼기에 손색이 없다. 이 석탑은 발견 당시 쓰러져 파손되었던 것들을 1960년에 각 부재를 수습하
여 보수 재건하였는데, 파손이 심하고 없어진 부재도 적지 않아 현재는 3층 이상의 屋身[옥신]과 5층 옥개석, 그리고 상륜
탑 부재가 모두 없는 게 아쉽다. 아무튼 이 정도로 보물이라 함에 있어서 과연 타당할 것인가? 유랑자는 고개를 갸우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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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층석탑 앞에 세워진 설명문에는 ‘奉恩寺址[봉은사지] 오층석탑으로도 불린다. 본시 봉은사지 봉은사는 951년 고려
광종 2년에 창건되어 태조 왕건을 봉안한 개성에 있던 국가 사찰인데, 고종 19년[1232년]에 몽골 침입을 피해 수도를 강
화도로 옮길 때 함께 옮겨졌다’라고 돼 있다. 탑 옆에는 이곳이 봉은사지임을 알리는 안내문도 세워 놓았다. 하지만 이곳이
수도를 옮기면서 새롭게 개성의 사찰을 본떠 만든 봉은사 터라고 보기에는 여러 측면에서 설득력이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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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도를 옮긴 지 2년 뒤인 고종 21년 [1234년 2월] 고종이 燃燈[연등] 행사를 위해 봉은사에 갔다는 기록이 ‘고려사절요’ 에
보인다. 또, 관료의 집을 봉은사로 삼고, 민가를 헐어 왕이 타는 輦[연,가마]이 다닐 길을 넓혔다고 돼 있다. 그러나 여기에
서 의구심 하나 더, 봉천산은 고려 궁궐이 있던 강화읍과는 너무나 멀다. 당시 봉은사의 위치는 강화읍 중심지에서 멀지 않
았을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하다. 현재 오층석탑이 있는 봉은사 터는 규모 면에서도 국가 사찰로서의 격에 맞지 않게 작다.
아무튼, 장정리 오층석탑은 탑이 보여주는 묵직함만큼이나 많은 수수께끼를 안고 있음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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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장정리 봉은사지 오층석탑, 찾아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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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소: 강화군 하점면 장정리 산193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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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cafe.daum.net/b2345/9toB/2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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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여행 가이드
*관광 안내소: 032-932-2302.
*강화군청 문화 관광과: 032-930-3568
*관광 통역안내: 1330(24시간 운영)
*한옥관광 안내소: 032)932-5464
*터미널 안내소: 032)934-55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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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군 여행 정보는 여기에서 확인 요.
https://www.ganghwa.go.kr/open_content/tou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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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8경
#제1경 전등사/. #제2경 보문사/. #제3경 연미정/. #제4경 갑곶돈대/.
#제5경 마니산/. #제6경 광성보/. #제7경 초지진/. #제8경 적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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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 성곽길, 강화 나들길 도보 여행 시 유의 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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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코스를 숙지 후, 시간과 거리를 감안한 자신의 체력에 맞는 여행을 하십시오.
*여러 사람과 함께 여행하며, 위급 시 119나 소리를 내어 주변에 알리도록 합니다.
*해안제방 길에서 밀물과 썰물 및 군사 보호지역 통행시간을 고려하여 여행하십시오.
*해안가 근처에는 폭발물 등의 위험물이 있을 수 있으니 주의하시기를 바랍니다.
*강화 나들길 여행시간은 (하절기 09:00~18:00, 동절기 09:00~17:00)입니다.
*코스 중에는 역사·문화 유적지가 많으니 훼손하지 않도록 유의하시기를 바랍니다.
*여행 중에 주민의 사생활 공간을 침해할 수 있으니 조심하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환경을 위한 일회용품 사용을 자제하시고, 쓰레기는 반드시 회수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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