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에...
내가 조그만 설계회사를 다닐 적에 남겨 두었던 업무와 관련한 자료와 책과 도면과
이것저것..
노끈으로 꽁꽁 묶어 A4상자 서너개 분량의 책들을 오늘 죄다 내다 버렸습니다.
오늘 화요일은 우리 아파트 분리수거->분리배출 하는 날입니다...
회사일을 그만두면서 ‘이 지긋지긋한 인간들 다시는 안본다’ 하고 다짐했으면서도
혹시나 일이년후에 다시 복귀하게 되는 일은 없을까 싶은 마음에 버리지 않고 잘 쌓아두었던 자료입니다.
거금 6만원씩이나 하는 책도 있었고 내가 작업해서 만들어 낸 보고서의 가제본도 있고
형광펜으로 여기저기 그어버린 복사한 지형도, 도면, 여러 가지 표와 데이터가 편집된 A4용지..
그것들을 쳐다보면서 몇년전 야근하면서 밤새면서 일했던 일들이 샤샤삭...
순간 머리를 스치고 지나갑니다...
졸지말고 밤샘근무 잘하라고 박카스 한박스를 책상위에 올려놓고 갔던 무개념과 무대포의 사장...
죽어도 야근 안한다고 소리치던 여직원...
캐드 도면을 밤새 같이 작업하다 책상위에 얼굴을 묻고 쓰러졌던 동료 직원들...
여기저기 널부러진 사발면 그릇과 젓가락...
회사도 몇 군데 옮겨 가면서... 그렇게 어찌어찌 몇 년을 살았었죠.....
하지만 야근시킨다고 그리고 밤샘하고 아침에 퇴근 안 시켜준다고 해서
일을 그만 두겠다고 생각해 본적은 없습니다...
아무래도 저한텐 적성에 맞는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나이를 조금씩 먹고 나도 배우자를 만나야 하고, 가정을 꾸려야 하고
부모님이 나에게 많이 도움을 줄 수 있는 형편이 아니라는 아주 현실적인 고민에 빠지다
보니 절망적인 나의 생활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성과급은 고사하고, 심심하면 밀려 버리는 월급...
직원 보기가 껄끄러워 도망다니는 사장...
근무시간에 스타 게임이나 하면서 시간 때우는 직원들...
그리고 형편이 좀 나아져 밀린 월급을 주면 일을 핑계로 다시 닦달을 하는 사장...
또다시 바빠지는 직원들...
지금의 현실에서 부단히 보다더 노력하여 도약할 생각은 안하고 언제나 불만 투성이의
응어리를 늘 가슴에 품고 살았던 내 자신이 너무나 싫었습니다...
수험생활을 시작하면서 그런 치사하고 드러운? 것들로부터 멀어지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국어나 국사 같은 것은 언제 공부를 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나이지만 그래도 좋았습니다...
물리 문제를 들여다보며 머리 아파서 죽겠다 하면서도 그래도 좋았습니다...
와..... 정말... 공부하면서 계절이 지나가는 것을 느낀 적이 아마 처음일 듯 싶습니다...
봄, 여름, 가을 그리고 겨울... 그리고 다시 도돌이표... --;
오랜 잠에서 깨어난 동화속 주인공은 아니지만...
악몽을 꾸다가 다리 한쪽을 휘저으며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난 사람처럼...
정신을 차리고 나를 돌아보니 내 꼴이 말이 아닌걸 알았습니다.
아무것도 해놓은게 없고... 아무것도 달라진 것도 없고...
언제나 뿌시시한 얼굴과 듬성듬성한 수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쌓아 두었던 것들이 꽤 많이 있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먼지도 엄청나게 쌓여 있었습니다...
지나간 것들 모두 깨끗이 털어내고 모두다 내다 버리고 싶습니다...
내 안에 응어리진 것들도 모두 버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힘차게 날개짓을 하고 싶습니다...
한결 더 가벼운 마음으로...
첫댓글 님의 회사생활 그리고 그만둔 동기 너무도 공감이 가네여,,,ㅠㅠ
작년에 첨시작할때 저랑 같네요..저도 야근과 철야가 힘들다기 보다는 10년후에도 변함없을 내모습을 떠올리니..주저없이 이길을 선택하게 되더군요..선택 잘하셨습니다..앞으로 꼭 좋은 결과 있으실거에요~
2년전 제이야기인듯 합니다. 지금은 조그마한 시골 군청에서 소박하게 공무원 생활하고 있습니다. 힘든과거가 오히려 자극제가 되었어요. 님은 꼭 합격하실꺼에요.
저도 설계회사 근무하다가 그만둔 케이스인데... 정말 10년후 비전이 기술사 따지 못하면 힘들더라구요 그리구 일하면서 기술사딴다는게 공무원공부보다 더힘들다는걸알구 이길로 접어들고 운좋게 최종합격했습니다. 뜻이있는곳에 길이 있기마련입니다.
맞어요 저도 동감..전 5년동안 다녔는데 10년후 모습도 변함이 없을꺼 같아서 지금은 힘들지만 10년후 나의 모습을 상상해보고 열공하세요
힘내세요..저도 설계사무실 다닐때 정말 많은 고민을 했습니다..정말 앞이 보이지 않더라구요.. 지금 힘드셔도 일할때 힘들었던거 생각하시면서 열심히 하세요..좋은결과 있을거예요!!
남일 같지 않군요...ㅜ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