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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읽을말씀: 눅12:1-59
주제말씀: 눅12:5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
첫째, 사람을 의식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1-12절).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눅12:5)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주의하라고 하셨습니까? 바리새인의 누룩, 곧 외식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바리새인들의 누룩 곧 외식을 주의하라.”(1절 하) 어째서입니까? 모든 게 다 하나님 앞에서 밝히 드러나고 알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이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서 말한 모든 것이 광명한 데서 들리고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이 지붕 위에서 전파하리라.”(2,3절)
사실 외식(外飾)이란 어디에서부터 비롯됩니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사람들을 의식하고 두려워한 나머지 생겨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오히려 누구를 두려워하라고 가르치십니까? 사람을 죽인 후에 또 지옥에 던져 넣으실 수 있는 권세자, 곧 성부 하나님입니다. “내가 내 친구 너희에게 말하노니 몸을 죽이고 그 후에는 능히 더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마땅히 두려워할 자를 내가 너희에게 보이리니 곧 죽인 후에 또한 지옥에 던져 넣는 권세 있는 그를 두려워하라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를 두려워하라.”(4,5절)
이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만을 의식하는 사람은, 사람들 앞에서 무엇이 불가합니까? 예수님을 부인하거나 배신하는 행위입니다. 만일 부인하거나 배신하면 그는 여전히 어떤 사람입니까? 사람 의식하거나 두려워하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후일에 누구 앞에서 외면당할 것입니까? 하나님의 사자들입니다. “내가 또한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을 당하리라.”(8,9절)
사람들을 두려워하거나 의식하지 않으려면 누구를 전적으로 믿고 따라야 합니까? 우리를 누구보다도 잘 아시고 귀히 여기시며 그때마다 성령을 통해 도우시는 하나님입니다. “참새 다섯 마리가 두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그 하나도 잊어버리시는 바 되지 아니하는도다 너희에게는 심지어 머리털까지도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니라.”(6,7절) / “사람이 너희를 회당이나 위정자나 권세 있는 자 앞으로 끌고 가거든 어떻게 무엇으로 대답하며 무엇으로 말할까 염려하지 말라 마땅히 할 말을 성령이 곧 그 때에 너희에게 가르치시리라 하시니라.”(11,12절)
둘째,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다(15-34절).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눅12:15)
한 사람이 유상 상속문제로 예수님께 나아오자, 예수님은 그에게 무엇이라고 하셨습니까?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칠 것입니다.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산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13-15절)
어째서입니까? 사람의 생명은 그 소유의 넉넉한 데서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물질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15절 하)
그러면서 무슨 비유를 해주셨습니까? 어리석은 부자 비유입니다(16-20절). 이를 통해 무엇을 교훈해주셨습니까? 자기를 위해 재물을 쌓고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렇지 못한 자는 결국 불행한 결과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점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21절)
아울러 무엇을 멈추라고 하셨습니까? 목숨이나 몸을 위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것입니다.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너희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22절) 어째서입니까?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훨씬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고 몸이 의복보다 중하니라.”(23절)
어떤 것들을 예로 드시면서 이를 설명해주셨습니까? 까마귀, 백합화, 들풀입니다.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24절) / “백합화를 생각하여 보라 실도 만들지 않고 짜지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큼 훌륭하지 못하였느니라.”(27절) /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28절)
그러니 대신 무엇을 구하라고 하셨습니까?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다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31절 상) 구하되 무엇을 알고서 그리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들을 친히 채우시고, “...그리하면 이런 것들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31절 하) 기꺼이 하나님 나라를 우리에게 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32절)
그러므로 어떤 자세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해야 합니까? 우리의 마음을 항상 하나님께 고정시키고,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느니라.”(34절) 우리에게 맡겨주신 재물과 시간, 물질 등을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선용함으로써 입니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둑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23절)
셋째, 항상 깨어서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35-59절).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눅12:40)
끝으로, 예수님은 무엇을 명하셨습니까? 항상 깨어서 준비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40절) 이를 위해 어떤 비유들을 말씀해주셨습니까? 주인을 기다리는 종(36-38절), 집주인과 도둑 비유(39-40절), 선한 청지기와 악한 청지기 비유(41-48절) 등입니다.
그러면서 무엇을 특히 강조하셨습니까? 예수님이 생각지도 않은 때에 오실 것이므로 우리가 항상 깨어서 준비해야 한다는 점과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40절) 주인의 뜻을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하면 적게 맞을 것이나, 알고도 준비하지 않으면 더 많이 맞을 것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47,48절)
우리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우리도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과 같이,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35,36절) 도둑의 침입을 막기 위해 불철주야로 대비하는 집주인과 같이,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39절)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주는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와 같이,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42-44절) 그리 살아가고 있습니까?
물론 이와 같은 삶에는 필연적으로 무엇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까? 신앙적인 박해와 분쟁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하게 하려 함이로다.”(51절) 심지어 어디에서조차 분쟁이 불가피할 것입니까? 가정입니다. “이 후부터는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버지가 아들과, 아들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따과, 딸이 어머니와, 시어머니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52,53절)
이를 통해 무엇을 깨닫게 됩니까? 주님의 불이 붙어야 하되, “내가 불을 땅에 던지러 왔노니 이 불이 이미 붙었으면 내가 무엇을 원하리요 나는 바을 세례가 있으니 그것이 이루어지기까지 나의 답답함이 어떠하겠느냐.”(49,50절) 이 과정에서의 신앙적인 박해와 분쟁이 불가피하다는 점입니다.
예수님은 또 무리를 향해 무엇을 분별하도록 하셨습니까? 그들이 살고 있는 이 시대입니다.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구름이 서쪽에서 이는 것을 보면 곧 말하기를 소나기가 오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고 남풍이 부는 것을 보면 말하기를 심히 더우리라 하나니 과연 그러하니라 외식하는 자여 너희가 천지의 기상을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54-56절)
어째서입니까? 깨어 준비하는 것은 막연한 기다림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시대를 분별하면서 그 속에서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힘쓰는 능동적인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보십시오. 시대를 분간하지 못하는데, 어찌 시대적 사명을 깨달을 수 있으며, 이 시대를 온전히 살아갈 수 있단 말입니까!
아울러 무엇에 힘쓰라고 하셨습니까? 화해할 것입니다. 어째서입니까? 종말의 때일수록 관계들이 엉클어지고 꼬일 수밖에 없으므로, 이를 풀어가야 하는 것이 성도의 본분이기 때문입니다. “또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 네가 너를 고발하는 자와 함께 법관에게 갈 때에 길에서 화해하기를 힘쓰라...”(57,5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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