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외 2편)
나태주
눈이 내리다 말고 달이 휘영청 밝았다
밤이 깊을수록 저수지 물은
더욱 두껍게 얼어붙어
쩡, 쩡, 저수지 중심으로 모여드는 얼음의
등 터지는 소리가 밤새도록 무서웠다
그런 밤이면 머언 골짝에서
여우 우는 소리가 들리고
하행선 밤기차를 타고 가끔
서울 친구가 찾아오곤 했다
친구는 저수지 길을 돌아서 왔다고 했다
그런 밤엔 저수지도 은빛
여우 울음소리도 은빛
사람의 마음도 분명 은빛
한가지였을 것이다.
멀리서 빈다
어딘가 내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꽃처럼 웃고 있는
너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눈부신 아침이 되고
어딘가 네가 모르는 곳에
보이지 않는 풀잎처럼 숨 쉬고 있는
나 한 사람으로 하여 세상은
다시 한 번 고요한 저녁이 온다
가을이다, 부디 아프지 마라.
조선무용
마룻바닥에 떨어져
수정이 된 눈물방울이여
종종종 노랑 병아리
눈물얼음을 밟고 가는
분홍빛 수줍은 맨발이여
한사코 소금 바다로 떠나고 싶어 하는
발가락들의 순결이여.
—시집『시인들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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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 / 1945년 충남 서천 출생. 1971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당선. 시집 『대숲 아래서』『누님의 가을』『막동리 소묘』『산촌엽서』『조끔은 보랏빛으로 물들 때』『꽃이 되어 새가 되어』『눈부신 속살』『시인들 나라』외 다수. 현재 공주문화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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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빛 (외 2편) / 나태주
강인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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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4.22 1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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