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문 왜 필요한가
[배휴] "어떻게 보리심을 냅니까(如何發菩提心)?"
[황벽] "보리는 얻을 바가 없다.
그대가 지금 얻을 바가 없는 마음을 내기만 하면,
결정코 한 법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니, 곧 보리의 마음이니라.
보리는 머무는 장소가 없기 때문에 얻을 것도 없다.
그러므로 (금강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연등불의 처소에서 작은 법도 얻은
것이 없었으므로 연등부처님께서 나에게 수기하셨느니라'고 하셨다. 일체 중생이
본래 보리이므로, 다시 보리를 얻으려 할 필요가 없음을 명백히 알아야 한다."
(완릉록)
이 중요한 법문을 여러분이 어떻게 바로 알아들었는지 그 점이 중요한 문제다.
이 법문은 어느 한 법문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고 여러분이 현실적으로
살아가는 데 다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이 부분이 뭣 때문에 여러분 현실 생활에 꼭 필요한 것일까?
(대중들이 바른 답을 못하자)
희한하지. 이게 참말로 희한한 거라. 부처님이 그래서 안 하려고 한 거라.
이렇기 때문에 '나는 이 사바세계 중생한테 설법을 안 하고 간다' 그랬거든.
이 말이 오늘날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왜 필요한가?
우리 중생들이 현실적으로 완벽하게 해결할 수 있는 그런 뚝 떨어진
한마디가 나온 게 요새 세상 사람들한테 있는가? (없습니다.)
현실에 우리가 살아가는데 지금 많은 문제점이 있다. 이런 문제를
단방에 해결해 줄 수 있는 뚝 떨어진 한마디를 하는 분이 어디 있느냐?
현실적으로 모든 세상 사람이 편안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목마르게 구하지만,
그걸 해결해 주는 방법을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잖는가.
그러니까 계속 세계전쟁은 나고 사람을 죽이고 배신하고 가정적으로
사회적으로 모든 중생이 말도 못하는 큰 고통을 받고 있다.
근데 고통받는 이걸 단방에 해결해 주는 방법이 뭐냐? 바로 보리심이다.
우리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 모든 중생이 현실적으로 가지고 살아가는 방법,
제도, 학식, 일체 이런 것은 근본적으로 우리에게 영원히 편안한 행복을
해결해 줄 수 있는 방안이 안 된다.
그래서 중생들이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는 그 모든 걸 다 엎어버렸다는 소식이다.
왜 이 말 한마디를 못하느냐 이 말이다.
완전히 엎어버려서 모든 게 없는 속에 참으로 상대 대립이 없고 영원히 평안하고
행복한 그러한 세계가 뭐냐 할 때 보리심이라고 했고, 보리심은 어디서 되느냐?
우리 중생의 생각을 완전히 개혁해 엎어버려야 이 보리심으로 들어올 수 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말씀이다. 만약에 우리가
생각으로 얻어지는 게 있다, 뭘 해서 얻어지는 게 있다는 것은 완벽한 게
아니고 조작인데, 조작 가지고는 어떻게 해결할 방법이 안 된다. 그건 전부가
오염만 시키는 거지. 그래서 일체 모든 조작, 이런 걸 싹 엎어버렸단 말이다.
뒤집어 엎어버려서 다시 되돌아와서 서서 보니 천하가 불세계더라.
걱정 근심도 없고 시비도 없고 투쟁도 없고 일체 문제가 없는
그야말로 아름다운 불찰세계(佛刹世界)더라.
그렇게 중생을 싹 엎어버리고 불찰세계로 이 세상을 바꾸는 그런 대안을
제시한 거다. 이 말이 보편적으로 누가 들으면 맞는 말 아니오?
그러면 다른 말 필요도 없다. 딱 한마디다.
"딱 뒤집어 엎어버리고 다시 돌아서서 보니 아무 문제가 없고 불찰세계네요."
이래 말을 하면 그래도 그건 좀 여기에 대한 거를 어느 정도 알았구나 한다.
"그동안 내가 잘못 착각하고 살았는데 이걸 보고 내가 확 뒤집어졌습니다."
뒤집어 엎어야 되지 안 그러면 맨날 중생보따리 끌어안고 앉아가지고 맨날
들어봐야 귀 밖으로 바람 지나가듯이 슬슬 지나가고 아무 소용도 없는 거다.
- 대원스님-
비밀글 해당 댓글은 작성자와 운영자만 볼 수 있습니다.25.10.17 14: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