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1년 3월 30일. 대통령에 취임한 지 69일째 되던 레이건은 워싱턴의 힐튼호텔에서
연설을 하고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 위해 차로 이동 중이었다.
이때 갑자기 총성이 울렸다. 조디 포스터를 짝사랑했던 존힝클리 주니어가 그녀의 주목을
끌고 싶다는 이유로 대통령을 향해 총을 쏜 것이다.
총알 한 발이 레이건의 언론 담당이었던 제임스 브레디를 관통했다.
이어 경찰관이 한 발을 맞고 대통령 경호원도 총알을 맞았다. 레이건은 안전하게 대통령
전용차량으로 들어간 것으로 보였는데, 잠시 후 그는 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피를 토했다.
차에 맞은 총알 파편이 그의 몸에 박혔다. 레이건은 고통에 시달리며 숨을 쉴 수 없었다.
대통령 전용차는 곧바로 조지 워싱턴 대학병원을 향해 내달렸다. 엑스레이를 찍어보니
파편이 그의 심장 근처에 박혔고 이 과정에서 혈관을 손상한 것으로 보였다.
의사들은 파편을 제거하기 위해 곧바로 수술에 나섰다.
전신 마취를 하기 전 레이건은 둘러싼 의료진들에게 “모두 공화당원이기를 바란다.”는
농담을 남기고 잠이 들었다. 의료진은 레이건의 피를 모두 빼서 새 피로 바꾸면서
수술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언론에는 레이건이 큰 부상을 당하지 않았고 곧 회복될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사실 레이건은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렀다.
남편의 총격 사건에 충격을 받은 낸시는 곧바로 병원으로 향했다.
긴수술을 끝낸 레이건은 마취에서 깨어나자마자 옆에서 손을 잡고 있던 간호사에게
“낸시가 우리 둘 사이에 대해 알고 있나요?”라고 농담을 건넸다.
이어 옆으로 온 낸시에게 “여보 머리를 숙이는 걸 잊어버렸어”라며농담을 이어갔다.
레이건은 13일 동안의 회복 기간을 갖고 다시 백악관으로 돌아갔다. 의사들은 그에게
휠체어를 타고 이동할 것을 권했지만그는 걸어서 차로 이동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레이건 정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제임스 브래디 비서는 결국 완전히
회복하지 못했다. 대통령이 위험한 상태에 빠졌는데도 제임스 베이커 비서실장은
수정 헌법 25조에 따른 부통령에게로의 권력이양을 거부했다. 여기에 국무장관이었던
알렉산더 헤이그(AlexanderHaig) 장관은 레이건이 사경을 헤매는 증, 마치 자신이
대통령을 대리한다는 인상을 주면서 레이건의 눈 밖에 났다.
무엇보다 이후 낸시는 더욱남편의 안전에 신경 쓰며 레이건 보호에 나섰다.
하지만, 치명상을 입었던 레이건의 여유로운 표정과 힝클리를 용서하는 모습에서
레이건의 지지율은 67%까지 치솟았다.
4월 초 연방합동의희 연설에 나선 레이건은 양당의 기립 박수를 받자
“총을 맞을 만 했네요”라며 농담을 건넸다.
- 송근종 저, ‘미국대통령 이야기2’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