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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전 초-이무영
분야: 어문 > 소설 > 중·단편소설
저작자: 이무영
원문 제공: 한국저작권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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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시궁창에서 용이 났다."
"개천에서 용이 났다."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를 아는 사람은 항용 이런 소리들을 한다. 여기의 개천이란 그의 집안과 그의 아버지 어머니를 말하는 것이요 용이란 그를 추느라고 하는 소리인 것이다. 충청도 사람이면 덮어놓고 양반이라고들 하지만 충청도라고 다 양반은 아니다. 그들은 중인이었다. 더욱이 그의 아버지는 낫 놓고 ㄱ자도 모르는 판무식꾼으로 여덟 살이라든가 열 살이라든가에 진 지게를 죽던 그 순간까지도 벗어보지 못한 채 쓰러져 버린 농군이었다. 어머니는 말할 것도 없다.
어머니 또한 시집오던 날부터 짓기 시작한 새벽밥을 역시 죽던 며칠 전까지 지었었다. 집 가문이 없으니 개천이요 조상에도 국록 먹은 사람 하나 없고 하다못해 면서기 하나도 못 얻어 했으니 개천이란 말이요 시궁창이란 말이다.
이 문벌도 없고 무식한 소작인 집에 국장 영감이 났으니 그가 용이 된 세음이다. 옛날부터‘숭어부’라 하여 자식이 아비보다 뛰어났다면 아비도 기뻐했다니까 그의 아버지는 지하에서 기뻐하리라 생각하는 것이 상식이겠지만 그는 그렇게 믿지를 않는다. 세상을 떠난 지 이미 이십 년이나 된지라 지하에서 기뻐하는지 어쩌는지 낯빛은 볼길도 없거니와 만일 지금 살아 있다 치고 누가 그런 말을 한다면,
"자식이 아비보다 나아야 집안이 되는 거지."
말만은 이렇게 했을지 몰라도 속으로는,
‘당치 않은 ─’
돌아서서는 이렇게 그 사람을 조롱했을지도 모르는 그의 아버지다.
그렇다고 그의 아버지 윤 서방이 자식이 자기보다 뛰어났다는 것을 싫어한대서는 아니다. 그는 자기의 직업만이 가장 성스러운 천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과장이니 국장이니 하는 것은 그의 눈으로 본다면 날건달인 것이다.
용은커녕 미꾸리로도 안 보아줄지 모르는 일이다.
어쨌든 그의 아버지란 그런 사람이었다.
2
그와 아버지 사이에 티각이 나기 시작한 것은 그가 열세 살 나던 해부터다. 아니 좀 더 엄격히 따진다면 돌날부터라 해야 옳을지도 모른다. 그의 어머니가 다산계였던지 그들은 십이 남매였다. 딸이 열에 아들이 둘이었다. 그는 여덟 번째로 둘째아들이다. 첫아들은 낳아서 좋아했지만 한 줄에 딸을 여섯이나 연달았던지라 요새 말따나 그의 아버지는 질렸던 모양이다. 다시 딸을 낳으면 그대로 엎어놓는다고 서둘렀다는 것이다.
다행이 나는 아들이었다. 그래서 나는 겨우 압사를 면했던 것이다. 그 돌날 이야기다.
말이 좋아서 농군이지 제 땅이라고는 기둥 한 개 꽂을 땅도 없는 소작인 집에 아들을 낳아 좋기는 하다지만 흰무리라도 한 조각 쪄줄래야 쌀 한 됫박이 없었다.
흰무리는 커녕 당장 죽에 넣을 쌀 한줌이 없는 그날의 정상이었으니 돌이고 무어고가 있을 턱이 없다. 마침 또 그는 오월 초닷새날 낳아서 단오절이라 좋기는 하다지만 농군한테는 지옥달이다. 작년 쌀은 볍씨까지 찧어먹는 형편이다. 보리 풋바심을 찧어먹자면 아직은 달포는 있어야 할 보릿고개 중에도 한고비였다. 그러니 돌차리는 감불생심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갖은 짓을 해서 돌을 차렸었다. 그 돌상에서 그는 낫이니 호미니 하는 농사 연모가 아니라 붓을 집었던 것이다.
"아이구, 우리 무갑이가 선비가 될려는가보구나!"
하고 어머니도 할머니도 기뻐하셨고 붓을 잡음으로써 그대로 선비가 되기나 한 것처럼 모였던
동리 사람들도,
"인저 무순네 가운이 탁 티나보구려! 어쩌면 그 많은 중에서 하필 붓만 반짝 들고 나올까유."
이렇게들 치하를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보고 가장 기뻐해야 할 그의 아버지는 몹시 못마땅해했다는 것이다.
"저 자식이 또 사람 속 무던히 썩이려는 게로군…"
맏아들이 그랬었다. 가지로 꼬이어도 통 상일은 하지 않으려 들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글 공양 줄 마련도 없이 글방에를 보냈지만 뒤를 댈 도리도 없거니와 식구는 열 식구라야 검부럭 한 오리 걷어주는 사람 없는 홀앗이가 남의 땅 아홉 마지기를 떠메고 있으니 벌어먹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래서 결국 글도 제대로 못 배우고 농삿일은커녕 상일도 몸에 배지 않아서 얼치기가 되고 만 것이다. 그래서 끝끝내 아비의 속을 썩였다는 것이다.
"눌 자리를 보구 다리를 뻗으랬다구, 그래 제가 뭘 믿구서 글은 해보겠다는 거야? 농사두 제대루 배우자면 십 년 공이 든다는 겐데 그날그날 끼니가 간데없는 농군 자식이 글을 하겠대? 배꼽이 웃을 노릇이지. 글을 잘하자면 진갑날이라야 문리가 티인다는 거야."
그러니 어줍잖게 글을 배울 테면 아예 초저녁부터 그만두라는 것이다.
"글이란 평생 두구 배워야는 겐데 섣불리 배우다 말면 중도 속한두 못 되지. 보구들은 낌센 있지? 일이 몸에 배질 않았으니 엄두도 안 나지? 그렇다구 굶어죽을 수 있던가? 글루두 못 먹구살구 일루두 못 먹구살구… 그러니 자연시리 입으루 벌어먹을 밖에는 없지. 입이란 벌어다주는 것이나 먹게 마련된 거지 밥 벌어들이란 입은 아니거든! 사람은 손발루 벌어먹으란 게지 입으루 벌어먹으란 건 아니니 입으루 벌어먹는 덴 거짓말밖에 없거든! 거짓말두 한두 번이지. 그게 안 되면 인전 노름꾼이 되구, 노름은 늘 따기만 하던가! 나종엔 협잡꾼이 되구 협잡두 시세가 안 나면 도적질을 할 밖에! 배 안에서부터 도적놈이 따루 있는 게 아니거든. 일 하기 싫은 놈이 도적놈 되는 게지. 첨에야 바눌 도적이지. 허지만 바눌 도적이 저도 모를 새에 쇠 도적놈이 되구 마는걸."
그러니까 글공부는 생각도 말란다. 오르지 못할 나무면 아예 쳐다보지도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글공부를 훈이가 쳐다보았다는 것이다.
정말 아버지와 반목이 된 것은 열세 살 때다. 그 해 훈은 동리 사립학교를 졸업했었다. 학교라야 당판 맹자를 끼고 다니는 개량 서당이었다. 일어는 ‘국어’라 하지 않고 일어 그대로 부르던 시절이었다. 꼬마 홍 선생이란 분이 일어를 알켜주었었다. 그 덕에 훈도 ‘빠가’, ‘고라’도 배웠고 ‘곤니찌와’가 무슨 소리인지 분간하게쯤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결국 잘못이었다. 구구법과 ‘곤니찌와’를 안 것이 화였다. 훈은 오르지 못할 나무를 쳐다본 것이었다. 서울 중학교에 갈 궁리를 한 것이다.
"아 ─ 니, 뭐? 무갑아, 너 서울을 가겠다구?"
그의 부친은 밥풀 눈을 껌벅껌벅하면서,
"그래, 서울루 공불 가겠노라구?"
멱살을 바짝 추켜들 듯이 이렇게 다지고 있었다.
"……"
어른 앞에서 잠자코 있다는 것은 어른 말을 수긍한다는 표시다. 사실 훈은 어떤 일이 있더라도 서울로 갈 작정이었다. 그도 오르지 못할 나무인 줄은 알고 있었다. 졸업기념으로 매인당 오십 전씩 가져오라는 것도 못 가져간 그였다. 성의는 있었다. 그의 부친은 백방으로 주선을 하다가 못 되어서 삼십 전만 주면서,
"이십전은 내 나종에 꼭 갖다 올린다구 그래라."
이런 형편이었다. 말을 했으면 또 반드시 실행을 하는 윤 서방이다. 달포나 되어서 떨어진 이십 전을 들고 학교에를 찾아갔더라는 것이었다. 그때는 훈이도 벌써 집에 없을 때다.
"넌 내버린 자식이니까 다시는 내 앞에 보이지 말아라…"
동전 한 푼도 없이 서울 공부를 가겠다고 나대는 그한테 그의 부친은 깔죽이 은전 두 닢을 내어던져주면서 액막이 하는 제웅 떼던지듯 마당에 내어동댕이를 쳤던 것이다. 그런 윤 서방이면서도 학교에 남은 돈은 잊지를 않았다.
그러나 학교에서는 그것을 받지 않더라는 것이다. 지금처럼 월사금은커녕 책이고 연필이고 그저 주던 시대라 4년 동안 거저 알킨 학교에 기념품으로 종을 한 개 사 걸자던 돈이었다. 그 종도 사다 걸었으니 그만두라던 것이다.
"그렇게 정 안 받으신다면 이 돈은 학교 마당에다 버리구 가겠십니다."
이렇게 말을 하고는 이십 전짜리 깔죽이 은전 한 푼을 선생 책상 앞에다 던지듯 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 뒤 홍 선생은 입학 때만 되면 이 이야기를 하여 근동에서는 모를 사람이 없을 정도다.
그의 아버지 윤 서방은 이런 사람이었다.
3
세 번째 그가 아버지와 물맞침을 한 것이 열입곱 되던 해 여름 방학이다. 훈은 이십 전짜리 은전 두 푼과 어머니가 달걀 팔아 모은 돈이라 하며 밀가루가 뽀얗게 묻은 동전 스무 닢을 넣고서 삼백여 리 길을 떠났던 것이다. 농군의 자식이니 서울에 친척이 있을 리 없다. 사흘을 걸려서 왕십리로 들어왔었다. 그래도 주머니에 삼십 전이 남아 있었다. 보행 객줏집에서 숙박료와 밥 두 끼에 십전 하던 시대라지만 삼십 전으로 공부를 하겠다던 훈이었으니 방학이 있었을 리 없다. 방학 동안에도 그는 천일약방에서 만든 은단과 고약 영신환 같은 것을 팔아야만 했었다. 훈은 서울로 온 뒤로 편지도 별로 안 했었다. 편지 쓸 시간도 없을 정도의 고달픈 생활이었다. 새벽 일어나서 냄비에 밥을 끓여야 했고 구 용산서 창덕궁까지의 이십 리 길을 걸어야 했고 학교가 파하면 저녁을 지어 먹고 약을 팔러 여관집으로 돌아다니어야만 했다.
정말 훈한테는 십 분이 새로웠다. 십 분이면 편지 못 쓸 수 없었으련만 쓰려 들면 쓸 말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래서 쓰기 시작하고 나면 또 한 줄도 내려가지를 않았다. 쓰는 데보다도 편지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데 더 시간이 걸렸다. 그래 또 집어던지게 되는 것이다.
이 훈이한테 집에서 편지가 온 것이었다. 어머니가 위독하다는 것이다.
집에 내려오니 거짓말이었다. 그의 어머니는 눈이 짓물렀었다. 아들이 고생한다는 말을 서울 다녀온 사람한테 들었던 것이다. 편지를 한 것도 어머니였다. 순사의 부인이 보통학교 출신이었다.
어머니가 편지를 한 데는 보고 싶다는 이유뿐이 아니었다. 장가를 들이겠다는 속셈이었다. 천생 민며느리 가음이라도 침 찍어두어야 할 형편이라 아직은 장가 엄두도 못 내고 있는데 정 과부가 딸을 주겠다는 것이다. 나이는 두 살이 위였다. 그런다면 정 과부네 땅도 몇 마지기 얻어 부칠 수가 있다는 것이다. 훈은 이런 계획은 그의 어머니에 의해서 단독으로 추진된 것임을 내려와서야 알았었다.
"저게 바보라니까! 이 치더린 것아, 그래 사둔집 땅을 얻어 부치어! 그따위 칩칩한 맘은 버려! 얼어 죽어두 양반은 곁불은 안 쪼인대!“
그의 아버지는 이렇게 아내의 입을 틀어막아 주었었다. 지극히 다행한 일이었다. 훈은 덧없이 눈물이 핑 돌았었다. 분수 적은 눈물이었지만 훈은 그런 것을 인식지도 못했었다. 그날 밤 훈은 아버지가 쓰는 사랑방에 불리어 갔었다. 아버지가 장가 이야기 대신 딴 조건을 제시했었다. 장가야 급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 대신 농사를 짓자신다.
"서울 시골 다녀서 눈이 높아진 네 귀엔 아비의 말쯤 귀에 들어가지두 않겟지만서 두 사람은 농살 지어야느니라. 너 월급쟁이 신셀 봤지? 월급쟁이란 허공에 뜬 거야. 허공에 ─ 나무도 뿌리가 있어야 살거든! 뿌리 없는 나무 제아무리 물을 주어봐라. 물 주다 하루만 건너도 시들어버리지. 월급쟁인 편할 것 같지! 매암이처럼 주는 월급이나 받아먹으니까 부러워들 하지. 허지만, 그것이 한 번 떨어져봐라! 끈 떨어진 뒤웅박야. 농산 안 그렇거든! 너 아비 혼자 허덕대는 것 오늘두 보았겠지?“
훈의 목적은 월급쟁이가 아니었다. 그때 그는 중학 3년이었다. 1년만 더 고생을 해서 기왕 내친걸음에 일본으로라도 갈 생각이었다. 열세 살의 허무맹랑한 패기가 희한할 만큼 순조로웠던 데서 그는 용기를 얻은 것이다. 어떻게 되겠지 한 것이 그럭저럭 어떻게 되었었고 또 어떻게 될 것만 같았던 것이다. 그 어떻게가 여의치 않을 때면 그는 자살을 할 생각이었다.
이튿날 그는 새벽 아무도 모르게 집을 떠났었다. 그것이 십 년간의 부자간 작별이 되었었다.
훈이가 일본서 나올 때 그의 부친은 이미 환갑이 가까웠었다. 그도 나이 삼십이었다.
십 년 만에 부자는 만났다. 눈물겨운 상봉이었다. 열세 살에 집을 나간 훈은 이미 삼십에 접어들고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환갑 노인이다. 피를 나눈 아버지와 아들이었겄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얼굴 못 본 채 소식도 모른 채 살아왔던 것이다. 더욱이 최근 3, 4년은 엽서 한 장 없이 살아온지라 그 생사조차도 기연가미연가하던 터다. 붙들고 울어도 시원치 않은 경우다. 울며 뒹굴었대도 누구 하나 웃을 사람이 없을 부자였다. 그러나 안 그랬다.
훈의 부친은 마침 외양의 거름을 내고 있었다. 훈이가 삽짝 안에 들어설 때 그의 부친은 쇠스랑에 찍힌 소거름을 번쩍 들어 소쿠리에 내려놓으려던 무렵이었었다. 응당 거름이고 쇠스랑이고 내어 던졌어야 할 아버지는,
"왔냐?“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그리고 천천히 거름을 싣고 지게를 한쪽으로 비켜 놓고서야 아들 쪽으로 향했었다. 흙에서 나서 흙만 파고 살아온 아버지 눈에는 양복을 쪽 빼뜨린 아들이 좋이 못마땅했던지도 모른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훈은 해가 뜨자 아버지한테 끌리어 나갔었다. 동리를 나갔었으니 그 보갚음으로 인사를 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훈은 눈꼽만 떼고 옷을 입고 나섰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인데다가 그의 부친은,
"야, 뭐냐. 너 그래, 그 옷을 입구 나갈 작정이냐? 왼 동리 사람들이 흙투성이가 된 옷만 입구 사는 동리에 들어와서 그 옷을 입구 인사를 가겠단 말이겠지?“
기가 탁 막히는 모양이었다. 기가 막히는 것은 그의 부친뿐이 아니다. 훈 자신도 기가 막히었다. 부친이 당장 갈아입으라고 내어 던진 옷은 아버지의 헌옷이었던 것이다. 말이 옷이지 옷이 아니다. 걸레가 다 된 광목 겹바지저고리임에는 틀림이 없었다. 물론 흰빛이다. 그러나 제 색을 유지하고 있는 부분이란 돈짝만한 데도 없다. 쇠똥이 아니면 거름물이다. 겹옷이건만 안팎이 땀에 쩔었다. 살이 비어지게 싹 다린 옷만 입던 훈이었다. 코밑이 아리한 풀냄새가 사라만 져도 생리적인 불쾌를 느끼던 도회 신사는 옷에서 풍기는 쩔은 냄새에 현기증까지를 느끼었던 것이다.
"왜 네 아빈 육십 평생을 두구 입은 옷을 잠시두 못 입겠단 말이냐? 못 입겠으면 그만 두려므나."
하고 윤 서방은 지게 목발에 팔을 꼬이고 있는 것이다.
"아니올시다. 입습니다. 지금.“
훈은 터진 물을 막듯 옷을 들고 방으로 뛰어갔었다. 정말 머리가 핑 돈다. 훈은 아버지 뒤를 따라서 어렸을 적 세배 돌 듯 이십여 집을 돌았었다. 개천에서 용 났다고 아버지 앞에서 말하는 노인도 있었다.
"인저 외국 바람까지 쏘였으니 아버질 뫼셔야지. 자식 좋다는 것이 뭔가. 자네들은 훨훨 쏘다니며 존 구경두 많이 하구 존 음식두 진탕 먹었으니 인저 들어앉아서 아버지 일 좀 덜어드려야잖나? 보게나, 육십 노인이 새벽부터 밤까지 저 지경이니 아버진 무슨 죈가?"
"네."
무슨 뜻인지 그 자신 모르고 하는 대답이었다. 그렇게 하겠노라는 말도 아니요 못하겠다는 말도 아니다. 듣는 이가 요량해 들었으면 그뿐일 대답이었다. 그 자신도 그랬다. 이리 해석해도 그만이었고 저리 해석한대도 시비할 조건이 안 되었다. 사실 이도저도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훈은 몹시 지쳐 돌아왔다. 사이때가 훨씬 겨웠을 것이다. 똑같은 이야기를 십여 군데서 듣는다는 것은 그대로 중노동이 아닐 수 없었다.
"네."
"네 ─"
그도 같은 대답만 되풀이하고 돌아다녔었다. 돌아오니 느른해졌었다.
며칠 후다. 훈은 누이의 혼담으로 아버지와 대담하고 있었다. 군서기로 있는 사람으로부터 그의 누이를 달라고 왔다는 것이다. 마침 사이에 든 사람은 그의 어릴 적 친구였고 집안도 그만했다. 어머니도 몸이 달아 서두르고 있었다. 누이도 만족인 눈치다. 그러나 아버지가 반대라는 것이다.
"너 어머닌 멋을 모르고 신바람이 나서 저런다만 ─ 난 긴찮다. 사람은 꼼꼼하다더라. 잔존한 것이 이면도 밝구. 허지만 너 어머닌 천치야. 숭맥이라니까. 한 가지밖에는 모르거든."
"제 생각에두 괜찮은 상싶습니다만 ─"
훈은 이렇게 나서보다가 찔끔해버렸다.
"너 대학굘 다녔다지? 헛 다녔구나! 사람이 글을 밴다는 건 의견이 티이자구 배는 겐데 ─ 허, 너 헛공부 했어. 바른대루 말해보렴. 너 대학굘 다녔지? 보고들은 것두 많지? 음식두 가진 음식 다 먹어봤겠구? 그래, 그렇게 먹구 입구 살다가 집에 와서 있으니 어떻던? 그래, 네 동생이 해주는 음식이 입에 맞아? 안 맞지? 쓸데없는 소리니라. 그 사람이 네 동생을 한번 길에서 보군 마음이 동한 모양이더라만, 지금뿐야. 네 당장 맘에 든다구 얼씨구 내주어봐라. 일년두 못 가서 와서는 죽네 사네 할 게니. 당장 너만 해두 이 시골 구석에서 밭이나 매던 처년 안 얻겠지? 공불 못 했어두 좋다? 시체 풍속을 몰라두 좋다? 그때뿐이니라."
‘대체루 이 영감님은 어떻게 다루어야 한단 말인가.’
훈은 밤 늦도록 이런 생각이었다. 훈은 자기 부친이 낫 놓고 ㄱ자도 모른다는 것은 거짓말이 아닌가 했다. 그 어떤 위대한 철학자가 농군으로 가장하고 숨어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도 들던 것이다. 훈은 어렸을 적 생각도 해보는 것이었다. 그가 아직 철도 안 났을 때 일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평생을 두고 해보다 먼저 일어나는 사람이었다. 한식이 지나서 걷음새를 하기까지는 말할 것도 없었지만 삼동에도 먼동이 트면 벌써 자리를 튀어난다. 망태를 둘러메고 쇠똥이나 개똥을 주우러 가는 것이다. 새벽소바리꾼들이 자나가기 때문이다. 행길을 한 바퀴 돌아서는 비를 들고 나간다. 그의 집 앞이 바로 싸전이었다. 장날이면 싸전이 서지만 무시날은 터가 넓으니까 나무꾼들이 수십 명씩 모여드는 것이다. 대개 짐나무였다. 나뭇짐끼리 스치기도 하려니와 매일 한두 사람쯤은 나뭇짐을 깨빡을 친다. 상짐이면 십오전, 애기짐은 십전이었다. 나무를 사는 사람은 대개가 면서기나 그렇지 않으면 음식 장사집이다. 비싸니 싸니 시비도 나고 가자거니 안 가겠다거니 승강이 끝에는 으레껏 나뭇짐이 나가동그라진다. 이래저래 흩어진 나무를 쓸어모으면 쇠죽내기는 되는 수가 많았다. 홀앗이에 농사 지으랴 땔나무를 대일 재간이 없었던 것이다.
4
아마 훈이가 열 살쯤 되었을 때였을 것이다. 훈은 댕댕이 그물로 미꾸리를 잡아가지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생전 처음으로 손바닥만한 붕어가 그물에 들었었다. 그는 용의 목을 탄 사람처럼 신바람이 났었다. 아직 해도 있었고 좀 더 잡았으면 붕어가 또 잡혔을지도 몰랐으련만 훈은 잡은 붕어를 자랑하고 싶어서 좀이 쑤셨던 것이다. 그때였다. 훈은 수푸리재 뙈기밭에서 깨를 베고 있는 아버지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던 것이다. 어린 생각에도 무서웠다.
‘우리 아부지가 도둑놈인가?’
훈은 가슴이 다 뛰었다. 아버지가 베고 있는 깨밭은 분명 그의 밭이 아니었다. 훈네 밭은 뒤뜰에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것은 똘똘이네 밭이 틀림이 없었다. 그 밭에는 매해 똘똘네가 골참외를 심기 때문에 훈이도 잘 아는 터다. 훈은 어린 속에도 못 볼 것을 본 것 같았다. 그는 오던 길을 논둑으로 내려섰다. 아버지 앞에 나타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그는 고기를 더 잡았다. 붕어는 못 잡았지만 실뱀장어가 논두렁에 들었었다. 정말 신바람이 났었다. 인제는 자기도 어른이 된 것처럼 기뻤다.
해가 져서야 집에 돌아온 훈은 이번에는 정말 놀랐었다 마당 앞에 깨 한짐이 놓여져 있지 않은가? 무서운 일이었다. 훈은 슬프기도 했다. 그는 남의 깨를 훔치러 다니는 아버지를 가진 것이 슬펐다. 부끄럽다. 동무 앞에 무슨 낯으로 나가랴 싶다. 붕어도 뱀장어도 자랑할 기력이 없어져서 우물 둥천에다 내어던지고 상에 달라붙어 버렸었다. 순 조밥이다. 북간도에서 나오던 것이다. 훈은 되도록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했다. 그러면서도 저도 모르게 흘깃흘깃 아버지를 훔쳐보면서 밥을 먹고 있으려니까.
"무갑아, 너 저녁 먹구 똘똘이 형 좀 아부지가 오란다구 그래라. 이눔, 한번 혼구멍을 내놔야지!"
"왜유? 뭘 잘못했나유."
하고 그의 어머니가 묻고 있었다.
"잘못 ─ 이면 이만저만한 잘못이야. 그놈 못 쓰겠더라. 될상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구 싹수가 뇌랗거든. 젊은놈들이 ─"
"뭔데유?"
"글쎄, 그런 일이 있다니까. 너 다 먹었건 냉큼 뛰어갔다 와!"
그날 저녁이다. 그의 부친은 똘똘이 형 점득이를 사랑 봉당에 꿇어앉혀놓고서 생벼락을 내렸던 것이다. 점득이는 술기운이 있었다.
"너 그래, 하늘이 무섭지도 않더냐? 하늘이? 초가을엔 양반집 대부인두 나막신을 신구 나댄단다. 이눔."
이렇게 한마디 뚝 떼어놓고는 막 몰아세우는 것이었다. 점득이가 대답할 여유도 안준다. 대답은커녕 미처 숨도 못 쉬게 하는 것이었다. 점득이는 작년에 아버지를 잃었었다. 혼자서 어머니와 세 동생을 먹여 살려야 한다. 그런 책임이 있는 네가 그럴 수가 있느냐는 것이다. 곡식이 익어 튀도록 걷지를 않는 것은 남의 물건을 훔친 죄보다도 크다는 것이다.
"네 생각엔 내 곡식 내가 안 걷었기로니 딴남이 무슨 참견이냐 이렇게 생각이 들 거라? 그렇지, 이눔? 남의 집 제사에 쓸데없이 대추 놔라 밤 놔라 한다구 까우롱하지? 아니는 뭐가 아니냐, 네 눈초리 보면 다 안다. 그게 또 못된 생각이거든! 느 아버지하군 생전에 자별히 지난 내다. 너두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야! 농사란 저만 위해 짓는 게 아니거든. 세상을 위해 짓는 거야. 남을 위해 짓는 게구. 저만 위해 짓는다면 저 먹을 것만 지으면 그만이게! 농사란 하느님의 뜻을 받아서 하늘 밑에 사는 사람들을 위해서 짓는 게거든!"
저녁도 못 먹은 점득이의 뱃속에서는 쪼르륵 소리가 나고 있었다. 그래도 농군인 윤 서방의 꾸지람은 그칠 줄을 몰랐었다. ─ 벌써 20여 년 전 이야기였지만, 지금도 그 때의 자기 아버지의 증오에 타던 눈을 상상할 수가 있었다.
그 일이 있은 후로 윤 서방은 점득이의 ‘의붓아비’가 되고 말았었다. 물론 점득이를 놀리느라고 동무들은 다 그 아버지가 보이면 놀려댔다.
"점득아, 저기 가신다."
"누가?"
"느 의붓아버지 말여!"
"망할 자식은!"
점득이뿐이 아니다. 여인네들도 그랬었다. 모여들 있는데 혹 윤 서방이 지나가면 점득 어머니를 놀렸다.
"저기 가시는군."
"누가?"
"아, 점득 아부지 말여!"
점득 어머니는 그런 놀림을 받을 나이기도 했었다. 그때 아직 서른여덟이었었다.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