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국지 [列國誌] 416
■ 2부 장강의 영웅들 (72)
제7권 영웅의 후예들
제 9장 이상한 싸움 (5)
정(鄭)나라가 초(楚)나라에게 항복한 직후 초장왕(楚莊王)의 진영에 급보가 날아들었다.
- 진군(晉軍)이 정(鄭)나라를 돕기 위해 구원군을 파병했습니다.
목 빠지게 구원군을 기다리던 정나라로서는 안타까운 일이요, 초나라로서는 다행한 일이었다.
신정성(新鄭城) 교외에 머물러 있던 초장왕(楚莊王)은 곧 비상회의를 소집했다.
"진군(晉軍)이 이 곳으로 오는 중이다. 우리는 돌아갈 것인가, 아니면 진군을 맞이해 싸울 것인가?"
영윤 손숙오(孫叔敖)가 중신들을 대표해 의견을 내었다."돌아가는 것이 옳습니다."
정나라의 항복을 받아내지 못했다면 당연히 진군(晉軍)과 일전을 겨뤄야 한다.
그러나 우리 초(楚)나라는 이미 정나라를 굴복시켰다. 진나라와 굳이 싸울 필요가 어디 있겠는가.
손숙오(孫叔敖)는 이렇게 주장했다.일리 있는 말이었다.
초장왕(楚莊王)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른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모두 입을 다물고 있긴 했으나 손숙오의 의견에 동조하는 표정들이었다.
초장왕(楚莊王)이 막 회군령을 내리려고 할 때였다.
구석에 앉아 있던 편장급의 장수 하나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영윤의 말은 옳지 못합니다."
돌아보니 오삼(伍參)이라는 말장(末將)이었다.손숙오(孫叔敖)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대 의견을 말해보라."지금까지 정나라가 손바닥 뒤집듯 배신하며 진(晉)나라를 섬겨온 것은
우리 초(楚)나라 힘이 미약하다고 여겼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제 또 진(晉)나라를 피해
회군한다면 우리가 등을 돌리는 순간 정(鄭)나라는 다시 진나라와 동맹을 맺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 과연 우리가 정(鄭)나라를 문책할 수 있겠습니까? 왕께서는 중원 여러 나라들에게
우리의 힘이 진(晉)나라보다 강하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러지않고서는 결코 중원 제후들을 굴복시킬 수 없습니다. 이번의 진나라 출병은
우리 힘을 보여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입니다. 더 이상 망설일 일이 아닙니다."
"그대는 우리가 이길 것만 생각할 뿐, 어찌 패배에 대한 것은 생각지 않는가?
최근 수년간 우리는 매년 전쟁을 치렀고, 또 지금도 6개월 가까이 도성을 떠나와 있는 상태다.
그대도 알다시피 우리는 지칠 대로 지쳐있다.그런 우리가 이제 막 당도한 진군(晉軍)과 싸워
과연 승리할 수 있을 것인가? 냉철히 생각해봐야 할 일이다."
"우리 군대가 지친 것은 사실이나, 싸움의 승패는 사기(士氣)에 달렸습니다.
우리가 진군(晉軍)보다 강하다고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들을 이길 수 있습니다."
"지친 군대로 어찌 예기 넘치는 군대를 이길 수 있단 말인가?"
"만일 싸워서 우리가 이긴다면 영윤은 어찌하려고 함부로 장담하시오?"
손숙오와 오삼 사이에 예상치 못한 설전(舌戰)이 벌어지자 초장왕(楚莊王)은
얼른 두 사람을 무마했다."두 사람의 뜻은 충분히 알았다. 각 장수의 뜻에 따라 결정하겠다.
모든 장수는 손바닥에 자기의 의견을 써라. 싸워야 한다는 장수는 전(戰)자를 쓰고,
물러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장수는 퇴(退)자를 써라."장수들은 각기 자신의 생각을 손바닥에 썼다.
초장왕(楚莊王)이 장수들의 손바닥을 펴게 했다.영윤 손숙오를 비롯하여 중군 원수 우구(虞邱)와
연윤 양노(襄老), 비장 채구(蔡鳩), 거팽(居彭) 이렇게 네 사람의 손바닥엔 '퇴'자가 적혀 있었다.
그 외 20여 명의 장수들은 '전' 자를 썼다.
오삼(伍參)의 주장에 동조하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이었다.
그런데 초장왕의 최종 결정은 사뭇 뜻밖이었다."과인은 회군하기로 결정했다."
오삼(伍參)이 따지듯 물었다."싸우자는 장수가 더 많은데, 왕께서는 어찌하여 회군령을 내리십니까?"
"여기 모인 사람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사람은 중군 원수 우구다. 나이 많은 사람은 지혜롭다.
또한 실수가 적다.그런 우구(虞邱)의 뜻이 영윤 손숙오와 같으니, 어찌 그 지혜로움을 버릴 것인가."
이로써 대책회의는 끝나고 초군(楚軍)은 회군할 준비를 갖추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날 밤이었다.한 장수가 초장왕의 군막 앞으로 와 알현을 청했다. 다름 아닌 오삼(伍參)이었다.
"왕께서는 어찌하여 진군(晉軍)을 두려워하십니까? 이대로 돌아가면 애써 얻은 정나라마저 잃게 됩니다.
회군령을 철회하십시오."
"싸움이란 이기기 위해서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영윤과 원수가 이기지 못한다고 하지 않는가?"
"아닙니다. 이번 싸움은 우리가 이깁니다. 신(臣)은 그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째서 이길 것을 확신하는가?""진(晉)나라 원수 순림보(筍林父)는 이번에 새로이 원수직에
오른 사람입니다.그는 늙고 유약합니다. 군사들에게 위엄과 신망을 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신망을 얻지 못한 장수가 어찌 군대를 일사분란하게 움질일 수 있겠습니까.
또한 부장 선곡(先穀)은 선극의 아들입니다. 그는 대대로 내려오는 공신의 후예로
자신의 능력을 과대평가하고 있습니다.
진(晉)나라는 군사는 많지만 통합되어 있지 않으니 싸우면 반드시 우리가 이깁니다."
오삼(伍參)이 진군 장수의 단점을 열거하며 승리를 확신하자 초장왕(楚莊王)은 마음이 흔들렸다.
이를 눈치챈 오삼이 찍어누르듯 다시 말했다."진(晉)나라를 격파하면 왕께서는
중원의 패자가 되십니다. 그러나 만일 싸움을 피하신다면 왕은 천하의 웃음거리가 되고 맙니다."
마침내 초장왕(楚莊王)은 다시 마음을 굳혔다.
"그대 말이 옳다. 내 어찌 천하의 웃음거리가 될 것인가? 과인은 그대를 따라 싸우겠다."
그러고는 즉시 전령을 보내 전군에 싸울 뜻을 알렸다.
이튿날 날이 밝자 초군(楚軍)은 일제히 병차를 북쪽으로 돌렸다.
그들은 관성(管城) 땅에 이르러 진군(晉軍)이 당도하기를 기다렸다.
그 해 진나라는 진경공(晉景公) 즉위 4년째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무렵, 진(晉)나라는 독재 정치를 폈던 재상 조순이 죽은 이후 그 권력이 여러 귀족에게로
분산되는 현상을 보이고 있었다.진성공(晉景公) 3년, 조순의 죽음 이후 재상직을
이어받은 사람은 서극(胥克)이었다. 서극은 진문공을 도와 패업을 이룬 공신 서신(胥臣)의 손자였다.
그런데 서극(胥克)은 정신착란의 괴질이 있었다.
그로 인해 서극은 몇 달만에 재상직에서 쫓겨나고 극결(郤缺)이 그 후임자로 내정되었다.
그러나 극결도 다른 집안의 견제를 받아 장기집권하는 데는 실패했다.
5년여 끝에 재상직에서 물러났다.극결의 뒤를 이은 사람이 순림보였다.
순림보(筍林父)는 진문공 시절의 신하였다.그가 재상직에 오른 때는 이미 나이가 70이 넘어 있었다.
초장왕이 정양공으로부터 육단견양(肉袒牽羊)의 항복을 받아내기 1년 전의 일이었다.
순림보(筍林父)는 조순처럼 카리스마도 없었고, 극결처럼 어질지도 못했다.
게다가 이제 막 재상에 올랐기 때문에 자신의 기반을 확고히 다지지 못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鄭)나라로부터 구원 요청을 받았다.여러 귀족의 의견을 수렴했으나
좀처럼 합일점을 찾지 못해다. 어떤 일족(一族)은 군대를 파병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어떤 일족은 더 이상 국력을 소모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순림보(筍林父)는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마침내 출병 쪽으로 결단을 내리고 군사들에게
동원령을 내렸다. 각 장수들의 보직도 정했다. 총병력은 병차 6백 승.
병차 1승에 75명에서 100명 사이의 갑사(甲士)가 따라붙으니,
전투 병력만도 5만이 넘는 대군이었다.
5만이 넘는 진(晉)나라 대군이 황하 북편에 이르른 것은 그 해 여름인 6월초.
그런데 진군(晉軍) 진영에 예상치 못한 보고가 날아들었다.
- 정(鄭)나라가 이미 초군에 항복했다고 합니다.그소식을 들은 총원수 순림보(筍林父)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기껏 달려왔는데, 도와주어야 할 상대가 이미 적군에 항복했으니
그들로서는 달려온 목적을 상실하고 만 셈이었다.
그는 행군을 멈추고 각 군의 장수들을 불러모았다."난감하구려. 계속 나아가는 것이 좋겠소,
아니면 여기서 군대를 돌려 본국으로 돌아가는 것이 좋겠소?"
순림보의 물음에 상군 대장 사회(士會)가 생각해볼 것도 없다는 듯 대답했다.
"우리가 여기까지 수고롭게 달려온 것은 정(鄭)나라를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정나라가 이미 항복했다니 초군과 싸운다 해도 아무런 명분이 서질 않습니다.
일단 군사를 돌려 돌아갔다가 기회를 기다려 다시 출동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 의견이 타당하오."순림보(筍林父)가 고개를 끄덕이며 사회(士會)의 의견에 동조했다.
중군 대장과 상군 대장의 뜻이 합치되었으므로 회군은 결정된 사항이나 마찬가지였다.
각 군의 장수들이 회군 준비를 하기 위해 자리를 뜨려 할 때였다.
좌중에서 한 장수가 일어나 통렬한 목소리로 외쳤다."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소!"
중군 좌장 선곡(先穀)이었다.
이번에 정(鄭)나라가 초군(楚軍)에게 항복한 것도 우리가 속히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우리가 초군을 무찌르면 정나라는 당연히 초나라를 버리고 우리를 섬길 것이다.
그런데 정나라가 이미 항복했다는 핑계로 초군을 피하여 회군하면 이는 패자(覇者)의 지위를
초나라에 넘겨주는 것과 같다. 그럴 바엔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더욱이 우리는 싸우기 위해 이미 나라 밖으로 나온 군대이오. 그런데 적이 강하다고 하여
물러간다면 치마 두른 아녀자와 다를 바가 무엇있겠소?나는 회군하지 않겠소.
내가 거느린 군대만을 거느리고서라도 초군(楚軍)과 일전을 겨룰 작정이외다."
여간 강한 주장이 아니었다. 순림보(筍林父)는 난처했다.좋은 말로 구슬렀다.
"지금 초군(楚軍)은 초왕이 친히 지휘하고 있소. 그들의 군대는 결코 약하지 않소.
그대가 자기 소속 군대만으로 초군과 맞서는 것은 굶주린 범에게 고기를 던져주는 것과 같소.
사회(士會)의 말대로 일단 군대를 돌려 다음 기회를 노립시다."
선곡(先穀)은 이미 늙고 우유부단한 순림보가 총원수에 올랐을 때부터 불만을 품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주장은 그런 순림보의 자리를 차지하고자 하는 시위일 수도 있었다.
"군대가 하는 일은 싸우는 일이오. 만일 싸우지 않고 그냥 돌아간다면 천하 제후들은 초나라만을
두려워할 뿐 우리 진(晉)나라에 대해서는 눈곱만큼의 관심도 기울이지 않을 것이외다."
선곡(先穀)은 말을 마치자 찬바람을 일으키며 군막 밖으로 나가버렸다.
평소 그와 절친한 조동, 조괄 형제가 얼른 그 뒤를 따라나왔다.
선곡(先穀)이 두 사람을 돌아보며 분개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대들도 듣지 않았소? 원수는 초군이 무서워 돌아가겠다고 하오. 이게 무슨 원수란 말이오?
나는 내가 거느린 군사만이라도 데리고 가서 싸울 작정이오."
"장군의 뜻이 장하오. 우리 형제도 장군과 행동을 함께 하겠소."
선곡은 크게 기뻐하며 두 사람의 손을 잡고 흔들었다.그들은 마침내 순림보(筍林父)에게
아무런 보고도 하지 않고 자기네 맘대로 군사를 거느리고 황하를 건넜다.
순수(筍首)는 조동과 함께 하군의 대부직을 맡은 사람이다.
그는 조동을 찾았으나 보이지 않았다.
그때 한 군사가 와서 보고했다."조동 형제분은 선곡 장군과 함께 황하를 건너갔습니다."
"어허, 원수의 장령도 받지않고 마음대로 군대를 움직이다니, 이거 큰일났구나."
그는 놀라 사마 한궐에게 이 사실을 얘기했다.
한궐(韓厥)은 총원수 순림보에게 선곡과 조동, 조괄 형제의 이탈을 보고했다.
"선곡(先穀)이 이미 강을 건너갔으니, 그들은 초군과 싸우면 반드시 패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선곡이 싸움에 패하면 그 책임은 오로지 원수에게 있습니다. 빨리 조치를 취하십시오."
순림보(筍林父)는 전혀 원수다운 침착함과 냉철함과 위엄을 갖추지 못하고 있었다.
얼굴에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이 일을 어찌하면 좋겠는가?"오히려 한궐에게 물었다.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할 수 없습니다. 3군을 총진군시켜 황하를 건너는 수밖에 없습니다.
싸워서 이기면 원수의 공이요, 만일 지더라도 여러 장수가 책임을 나눠지면 되는 일입니다."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니 고맙구려."순림보(筍林父)는 한궐의 손을 잡으며 거듭 감사의 마음을 표했다.
이로써 진군(晉軍)은 선곡(先穀)의 뒤를 따라 황하를 건너갔다.
그들은 대군을 정돈하고 오산과 호산 사이에 진을 쳤다.
오산(敖山)은 지금의 하남성 광무현 서북쪽에 있는 산이며, 호산은 오산의 남쪽에 위치해 있다.
이 근처에 필(邲)이라는 땅이 있다.황하 남안의 형옹과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땅이다.
이 곳에서 진군과 초군은 패자(覇者)라는 타이틀을 놓고 한바탕 일전을 벌이는데,
사가들은 후일 이 전투를 '필(邲)의 전투'라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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