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영화를 보고 집에 와서 밥을 먹었습니다. 아내는 실미도보다 별로였다고 하더군요. 나는 실미도를 보지 않았지만 실미도보다는 낫다고 했습니다. 아내는 실미도를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하냐고 하더군요. 나는 영화를 보지 않았지만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모든 걸 경험을 해야만 알 수 있는 건 아니라고 했지요. 아내는 무조건 본 사람만큼은 모른다고 하더군요.
먼저 태극기...를 본 소감을 간단하게 이야기해보지요. 영화가 웅장하고 정말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많은 엑스트라들을 동원한 것 하며 사람이 더 이상 탈 수 없는 피난열차 하며 전쟁 때 폭발장면, 정말 실감나고 완벽했습니다.
다만 너무 개인한테 치우친 내용이 조금 아쉬었습니다. 그리고 형이 동생을 너무 사랑해서 그 동생을 군에서 제대시키기 위해 무공훈장까지 받을 정도로 전쟁에 미쳐가는 것은 아무래도 어색하더군요. 게다가 자기 때문에 그러지 말라고 형한테 무게잡으면서 하는, 원빈의 그 오버하는 연기 또한 어색했습니다.
그리고 역사를 제대로 보여줬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같은 민족끼리 지지고 볶고 하든 말든 놔둬야 하는데 미국이 도와준답시고 참전을 하고 다시 중국이 참전하는 그 까닭을 조금이나마 밝혀야 했습니다. 그리고 미군이 무고한 양민을 학살하는 장면들도 있는 그대로 보여줘야 했습니다. 미군들 폭격 때문에 돌멩이 하나 안 남고 처참하게 변하는 북녘모습들도 보여 줘야 했습니다. 그런 모습들은 하나도 보여주지 않더군요.
그리고 전쟁의 원인 또한 하나도 나오지 않습니다. 부르스커밍스의 <한국전쟁의 기원>에서 보듯이 6.25 전쟁은 단 한 순간에 북녘이 쳐들어와 일어난 전쟁은 아니라는 것도 밝혀야 했습니다.
보도연맹에 가입했다고 반공 극우 단체들이 마을 사람들을 죽이는 모습은 너무 겉만 보여 주었습니다. 하지만 태극기.... 영화가 그나마 옛날처럼 단순한 반공영화로 끝나지 않은 것은 그런 것들을 보여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장동건은 극우 반공단체에 애인과 동생이 죽었다고 북녘으로 넘어가 인민군 깃발부대가 되지만 너무 영화적입니다. 또한 동생 원빈이 그 형을 데려오겠다고 북녘으로 넘어가 형과 만나서 서로 적으로 싸우는 것도 너무 영화적입니다. 물론 아주 가능성없는 이야기는 아닐테지만 어색한 건 어쩔 수 없군요.
포로로 잡은 인민군들 중에 구두닦이 하던 동네 동생을 만난 것도 아주 드물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고 그런 사람들이 강제로 인민군이 된 일도 극히 드문일입니다. 인민군은 옛날 지주들한테 핍박받던 서민들, 머슴들이 공산주의 사상에 매료되어 지원했던 사람들이 훨씬 더 많습니다. 1946년 8월 미군정 여론국이 전국 8,45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공산주의, 사회주의 지지 세력이 무려 77%였고 자본주의 지지는 겨우 14%였다고 합니다. 어쨌든 이 영화는 그래도 극단적인 반공영화는 되지 않았고 좌우익 사상이 먹고 사는데 무슨 필요가 있냐 하는 관점을 보여주는 데 얼마쯤은 성공했고, 전쟁이 다시는 일어나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런대로 돈이 아까운 영화는 아니었습니다.
영화 실미도는 보지는 않았지만 대충 내용은 이런 거라고 생각합니다. 범법자들을 끌고 들어가 북파부대에 입대시켜 훈련을 받다가 남북 화해가 겉으로나마 이루어지면서 그 부대가 별볼일 없이 되는 그런 영화입니다. 그리고 비밀이 탄로날까 두려워 부대원들 전부를 죽이라는 명령이 떨어져 그에 반발하는 부대원들이 실미도를 탈출해 반항하다가 전부 죽는 그런 영화 입니다.
그런데 그 영화가 실제하고 다르다는 주장이 많이 나오는데 그 중에는 실미도 부대원들은 범법자들은 아니었다는 주장이지요. 저도 그게 맞다고 생각합니다. 범법자도 있었겠지만 평범한 사람들이 더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얼마 전에 한 마을에서 실종된 일곱 사람도 실미도에 끌려 들어갔다는 것이 사실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제 아내가 태극기...가 실미도보다 못 하다는데 제가 반박하는 건 실미도는 태극기... 보다 시각이 옳지 못하다는 겁니다. 감독은 실미도를 국가주의에 희생된 사람들 모습을 보여 주고 싶었다고 했는데 그걸 본 사람들은 그렇게 다가 오지 않았나 봅니다. 오히려 국가주의를 찬양하는 모습도 언뜻 보이지 않았을까요? 어떤 평론가들도 그 영화를 국가주의에 희생된 아까운 젊은이들 모습이 선명하지 않다고 말합니다. 저는 그런 뜻에서 아내한테 실미도는 영화 쉬리하고 비슷한 영화 같다고 하니까 아내는 보고 나서 이야기 하라고 강력히 주장합니다. 글쎄요. 저는 그 영화를 봐도 태극기... 보다는 못 하다고 생각하는데 여러분들은 어떤가요? 물론 스케일 면은 빼고 내용만 봐서라도 그렇고, 남과 북녘은 서로 죽여야 할 적이 아니라 서로 공존 해야 할 대상이라는 건 분명한 사실이라는 걸 봐서라도 '태극기 휘날리며' 가 조금 낫다고 볼 수 있겠지요?
첫댓글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실미도는 그때 그런 일이 있었구나 정도로 와 닿았습니다. 태극기는 지적하신 대로 어색한 부분이 있었지만 전쟁의 비극, 민족의 아픔을 잘 그린 영화였습니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뜻이 있다는 생각이 듭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