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여성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는 성(性)을 불평등이나 이데올로기적 억압에서 벗어 날 수 있는 운동 과제로 삼아야 한다'
-여성운동가 케이트 밀레트의 <성의 정치학 Sexual Politics> 중
공안당국에 체포돼 지난 8월 27일 구속 기소된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 원정화 사건은 여성이 성을 도구로 활용해 대남 간첩활동을 벌인 국내 최초의 사건으로 기록되고 있다.
'한국판 마타 하리 위장탈북 여간첩 사건'으로 규정되면서 새삼 성에 얽힌 은밀한 추문 사건에 대한 관심도 증가시키고 있다.
이번 사건으로 새삼 주목을 받게 된 마타 하리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실존하던 인물. 절세의 미모를 내세워 유럽의 사교계에서 활동했던 그녀는 스파이 혐의로 체포돼 1917년 10월 15일 파리 교외 반센드 둑에서 총살당했다.
그녀의 죄목은 1차 대전을 벌이고 있던 프랑스와 독일을 오가며 정보를 판 이중간첩이라는 것. 당시 마타 하리를 재판한 판사는 그녀가 독일에 판 정보가 프랑스군 5만 명의 목숨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이었다고 판단하고, 그녀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마타 하리의 본명은 M .G .젤러.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이자 고급 콜걸로 지금까지도 성을 도구로 해서 스파이 활동을 한 대표적 여성으로 회자되고 있다. 그녀의 행적은 1931년 그레타 가르보 주연의 <마타 하리>, 70년대 성애영화 붐을 일으킨 <엠마뉴엘> 시리즈의 주인공인 네덜란드 출신의 실비아 크리스텔 주연의 <마타 하리>(1985)로 영화화된 바 있다.
1962년 공개된 뒤 최장기 첩보 스릴러극으로 명성을 이어가고 있는 <제임스 본드> 시리즈는 1991년 보리스 옐친이 공산주의 포기와 공산당 해체를 선언하면서 구 소련이 패망하기 직전까지, 세계 제패를 노리는 구 소련의 첩보원과 이를 저지하려는 영국 첩보원 제임스 본드 간의 대결이 극적 긴장감을 높여준 설정.
이 시리즈물에서 자유진영을 대표하는 제임스 본드에게 구 소련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미모를 앞세운 본드 걸을 도구로 내세웠지만, 본드 걸이 본분을 망각하고 미남 본드에게 사적인 정분(情分)을 느끼는 바람에 의도한 작전이 번번이 실패로 돌아간다는 것을 단골로 보여 주었다.
<007 위기일발 From Russia with Love>(1963) <007 두번 산다 You Only Live Twice >(1967) <007 나를 사랑한 스파이 The Spy Who Loved Me>(1977) <007 뷰 투 어 킬 A View to a Kill>(1985) <007 옥토퍼시 Octopussy>(1983) <007 골든 아이 Goldeneye >(1995) 등은 정치적 냉전기에 세계 패권을 높고 영국과 미국 그리고 구 소련이 얽힌 첩보전과 그 사이에 본드 걸을 내세운 성 상납을 은유적으로 다뤄 공감을 얻어냈던 대표작이다.
‘그녀가 노린 것은 미국 대통령의 영부인 자리였다.’ 1962년 8월 5일 약물 과다로 사망한 것으로 밝혀진 세기의 미녀가 바로 마릴린 몬로. 그녀는 활동 당시 프런티어의 기수인 존 F. 케네디 대통령에게 의도적으로 접근해 성적 향응을 베풀었고, 이를 빌미로 영부인 자리를 요구했다는 루머는 지금도 유명 정치인과 미녀 배우가 얽힌 대표적 성적 스캔들로 거론되고 있다.
‘불독’으로 악명을 떨친 에드가 불린 후버 CIA 국장은 재임 당시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와 섹스 심벌 마릴린 먼로 사이의 스캔들의 진상을 파헤치려고 혈안이 됐고, 이를 염려한 케네디 측이 은밀하게 몬로의 죽음에 깊숙이 관여하게 됐다는 설도 제기된 바 있다.
최근 공개된 이준익 감독의 <님은 먼곳에>. 극중 미군장병 위문공연을 통해 알게 된 중대장을 찾아간 써니(수애). 베트남에서 행방불명된 남편을 찾아달라고 통사정을 한다. 그리고 위스키를 따른다. 두 사람만 있는 방. 미군 중대장이 마른 침을 삼킨다.
써니는 남편을 찾기 위해 군부대 중간 장교에게 성적 향응을 제공했다는 암시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 속 장면을 통해 평범한 여성들도 정치적 목적이 아닌 개인적인 원한(怨恨)이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성을 향응의 도구로 활용하고 있음을 엿보게 해주고 있다.
대중예술뿐 아니라 역사적 사건에서도 미인을 앞세운 성 상납 사례가 다수 전해지고 있다. 일부학자들 간에 첨예한 진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성웅 이순신의 ‘난중일기’에서도 이순신 장군이 소송을 당한 부하 장수로부터 성 상납을 받았음을 암시하는 내용이 들어 있을 정도로 성이 정치적 도구로 악용돼 온 사례는 부지기수다.
일본의 전국시대 때도 정적 오다 노부나가를 암살하기 위해 사이토 도산은 딸 노우히메를 출가시키지만 딸이 오다 노부나가의 성품에 감복 받아 자신의 목적을 포기한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다.
중국 고전 '한비자'에는 ‘진(晋)나라 헌공(獻公)이 우․괵 두 나라를 공격하기 위한 작전의 일환으로 먼저 명마, 보석과 그리고 미녀 16명을 보내 군주의 마음을 사로잡아 국정을 혼란에 빠트린 뒤 공격을 감행했다’는 구절이 기록되고 있다. 삼국지나 십팔사략에서도 미인을 정치적 도구로 내세워 상대의 기밀 정보를 빼내거나 국가 기강을 해이하도록 유도한다는 ‘미인계(美人計)’는 병법의 한 가지로 적극 활용했다.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에 그녀의 정체를 고발할 수 없었다’고 밝힌 대위 진급 예정의 위관급 장교 황모 씨는 성을 도구로 적극 활용한 여간첩이 바로 대한민국 국가 기강의 혼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는 북한의 미인계를 수행하는 중이었음을 간과했던 것이다. 이런 정신 상태를 갖고 있는 자가 유능한 정훈장교로 군 복무하고 있었다는 것에 모골이 송연할 뿐이다.
국가 안보를 최일선에서 책임지고 있는 우리의 일부 젊은 장교들은 158cm에 불과한 북파 미인에게 한방에 무너진 형국이 됐다. ‘북한은 우리의 주적이 아니다’라고 강변한 좌파 정권 10년의 썩은 뿌리의 대가가 또 어떤 방식으로 터트려질지 조마조마한 형국이다.
‘난 꽃이 아니라 나비에요, 저는 남자에게 선택되지 않아요, 제가 고르죠!’ 오금을 저리게 하는 미모를 앞세워 프랑스와 독일의 국가 정보를 이중으로 빼내다 결국 처형당한 마타 하리의 이 말은 북한 국가안전보위부 소속 여간첩 원정화 사건에 휘말린 남한의 위관급 장교들에게 들려주는 뼈아픈 독설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고뉴스] 2008년 08월 28일(목) 오후 05:26 가 가 | 이메일| 프린트 (고뉴스=김성덕 기자) 30대 여자. 특수부대 훈련. 위장 남파. 한국판 마타하리. 장교들과 성(性)접촉. 군기밀 빼내고 요원살해 지령.
27일 공안당국의 대대적인 ‘여간첩 원정화’ 검거 발표가 있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이 미모(?)의 여자간첩을 소재로 한 기사를 쏟아냈고, 이를 대서특필했다.
갖출 건 다 갖춘 한편의 영화 같은 검찰의 여간첩 검거 수사발표는 언론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소재거리였고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10년 정권에서 만들어진 안보불감증이 간첩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꾸짖고, 이명박 정부는 하루 빨리 간첩소탕 작전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27일 검찰의 발표를 보면서 ‘좀 난데없다’는 느낌이 든 것은 비단 기자뿐이었을까?
흥분하는 일부 보수 언론도 그렇고,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은 ‘간첩 원정화’가 소지했다는 증거품으로 나열해 놓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북한물품과 그가 대북정보요원의 살해 지령을 받고 독약과 독침까지 건네받았으나 “남한에 살다 보니 마음이 변했다”는 남파간첩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스스로 믿지 못하겠다는 ‘위선’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정권을 향한 일련의 ‘제(祭)식’ 같은 기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27일은 이미 수주 전부터 예고된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정부의 간첩 검거 발표는 5공 말기의 ‘평화의 댐’ 건설 발표를 떠올릴 정도로 타이밍도 공교롭다.
국정원의 전신인 당시 안기부는 1986년 초에 이미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계획을 입수하고도 그해 10월30일 온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며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 몇 달 전 터진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건대 민주항쟁 등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권이 안보위기를 조장해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꺾으려 한 것이 밝혀진 사건이다.
이번 간첩 사건 발표 또한 범불교도대회에 쏠린 국민적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문제의 사건은 이미 지난 20일 불교매체인 <불교닷컴>과 <불교방송>이 복수의 정보기관원을 대상으로 취재하고, 그날 오후 8시35분 불교방송이 특종 보도했다.
불교방송에 따르면 그러나 다음날 새벽 1시께 사건을 담당한 검찰이 전화를 통해 엠바고(보도유예)사안임을 밝히고 오는 28일 언론에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때 불교방송에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일보가 27일 낮12시를 전후해 간첩 검거 사건을 전격적으로 보도했고, 곧바로 검찰은 연합뉴스를 비롯한 통신사, 일간지, 방송사 등을 불러 기자회견을 자청, 사건의 전모를 공개했다.
불교닷컴은 28일 “7일전 불교방송 보도를 엠바고라는 이유로 삭제케 하고 28일 발표하겠다는 약속마저 어겨 정부가 범불교대회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불교방송 박성용 기자는 불교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남북관계가 상당히 경직된 상황이고, 불교계가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남파간첩을 2개월 동안 발표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었다”며 “범불교대회에 대한 물타기라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오늘 문화일보가 엠바고를 깬 것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간첩을 잡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그걸 나무랄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상을 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떠들썩하게 간첩을 잡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떠벌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혹여 이 정권이 또다시 공안정국을 조장해 국민 여론을 호도하기 위함이 아닌지 우려된다.
새 정부 들어 환율이 올라 국민소득 2만달러도 1만달러대로 후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래저래 과거로 돌아간다는 얘기만 들리니 가슴이 막막하다.
[기자수첩] 절묘한 타이밍의 원정화 사건
[고뉴스] 2008년 08월 28일(목) 오후 05:26 가 가 | 이메일| 프린트
(고뉴스=김성덕 기자) 30대 여자. 특수부대 훈련. 위장 남파. 한국판 마타하리. 장교들과 성(性)접촉. 군기밀 빼내고 요원살해 지령.
27일 공안당국의 대대적인 ‘여간첩 원정화’ 검거 발표가 있었다.
언론들은 일제히 이 미모(?)의 여자간첩을 소재로 한 기사를 쏟아냈고, 이를 대서특필했다.
갖출 건 다 갖춘 한편의 영화 같은 검찰의 여간첩 검거 수사발표는 언론에게는 센세이셔널한 소재거리였고 흥미를 유발하기에 충분했다.
그러면서도 지난 10년 정권에서 만들어진 안보불감증이 간첩들이 활개 치는 세상을 만들었다고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김대중·노무현 정권을 꾸짖고, 이명박 정부는 하루 빨리 간첩소탕 작전에 나설 것을 주문했다.
27일 검찰의 발표를 보면서 ‘좀 난데없다’는 느낌이 든 것은 비단 기자뿐이었을까?
흥분하는 일부 보수 언론도 그렇고, ‘뭔가 이건 아닌데’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었던 것은 ‘간첩 원정화’가 소지했다는 증거품으로 나열해 놓은 조잡하기 이를 데 없는 북한물품과 그가 대북정보요원의 살해 지령을 받고 독약과 독침까지 건네받았으나 “남한에 살다 보니 마음이 변했다”는 남파간첩마저 무력하게 만드는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우월성을 스스로 믿지 못하겠다는 ‘위선’ 때문이 아니라, 무언가 정권을 향한 일련의 ‘제(祭)식’ 같은 기류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또 27일은 이미 수주 전부터 예고된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 대회’가 열리는 날이어서 정부의 간첩 검거 발표는 5공 말기의 ‘평화의 댐’ 건설 발표를 떠올릴 정도로 타이밍도 공교롭다.
국정원의 전신인 당시 안기부는 1986년 초에 이미 북한의 금강산댐 건설 계획을 입수하고도 그해 10월30일 온 국민을 공포 속으로 몰아넣으며 ‘평화의 댐’ 건설 계획을 발표, 몇 달 전 터진 부천서 ‘성고문 사건’과 건대 민주항쟁 등으로 궁지에 몰린 전두환 정권이 안보위기를 조장해 국민들의 민주화 열기를 꺾으려 한 것이 밝혀진 사건이다.
이번 간첩 사건 발표 또한 범불교도대회에 쏠린 국민적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함이 아니냐는 의혹도 있다.
문제의 사건은 이미 지난 20일 불교매체인 <불교닷컴>과 <불교방송>이 복수의 정보기관원을 대상으로 취재하고, 그날 오후 8시35분 불교방송이 특종 보도했다.
불교방송에 따르면 그러나 다음날 새벽 1시께 사건을 담당한 검찰이 전화를 통해 엠바고(보도유예)사안임을 밝히고 오는 28일 언론에 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이때 불교방송에 가장 먼저 알려준다는 약속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나 문화일보가 27일 낮12시를 전후해 간첩 검거 사건을 전격적으로 보도했고, 곧바로 검찰은 연합뉴스를 비롯한 통신사, 일간지, 방송사 등을 불러 기자회견을 자청, 사건의 전모를 공개했다.
불교닷컴은 28일 “7일전 불교방송 보도를 엠바고라는 이유로 삭제케 하고 28일 발표하겠다는 약속마저 어겨 정부가 범불교대회를 희석시키려는 의도라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이 사건을 특종 보도했던 불교방송 박성용 기자는 불교닷컴과의 인터뷰에서 “현재 남북관계가 상당히 경직된 상황이고, 불교계가 헌법파괴 종교차별 이명박 정부 규탄 범불교도대회에 총력을 기울이는 상황에서 남파간첩을 2개월 동안 발표하지 않은 것은 이례적이었다”며 “범불교대회에 대한 물타기라는 우려가 있는 상황에서 공교롭게 오늘 문화일보가 엠바고를 깬 것은 의혹을 사기에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간첩을 잡는 것을 탓하는 게 아니다. 그걸 나무랄 국민은 아무도 없다. 오히려 상을 줘야 한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떠들썩하게 간첩을 잡고 대대적으로 언론에 떠벌이는 일이 반복되는 것이 혹여 이 정권이 또다시 공안정국을 조장해 국민 여론을 호도하기 위함이 아닌지 우려된다.
새 정부 들어 환율이 올라 국민소득 2만달러도 1만달러대로 후퇴한다는 소식이 들린다. 이래저래 과거로 돌아간다는 얘기만 들리니 가슴이 막막하다.
kimsd@go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