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투(戰鬪)가 시작(始作)되면 최선(最先)을 다해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해군(海軍)은 전통적(傳統的)으로 체급(體級)이 작은 함정(艦艇)이 큰 함정과의 대결(對決)을 회피(回避)해도 크게 문제 삼지 않았습니다.
설령 작은 함정이 기적적(奇蹟的)으로 이길 수도 있으나 사례(事例)를 찾기 힘들만큼 체급의 차이(差異)를 극복(克復)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함포(艦砲)가 주 무장(主武裝)이던 시절(時節)에는 일단 덩치가 커야 강력(强力)하고 사거리(射距離)가 긴 포(砲)를 장착(裝着)할 수 있었기에 크기만으로도 전투 결과(決科)를 충분히 예측(豫測)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교전 상대였다면 크기만으로도 승패를 충분히 예측할 수 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최후(最後)의 결전(決戰)이나 기습 트꽁 작전(奇襲特功作戰) 같은 상황(狀況)이 아니면 지금도 무모(無謀)하게 정면 대결(正面對決)을 벌이지 않습니다.
특히 드레드노트(Dreadnought)급 전함(戰艦)으로 대표(代表)되는 거함거포(巨艦巨砲) 시대가 도래(到來)하면서 이런 패러다임은 더욱 공고(公告)하게 굳어졌습니다.
때문에 해군력(海軍力)을 측정(測定)할 때 함정의 숫자보다 총배수량(總排水量)을 중시(重視)합니다.
물론 무조건 손을 놓은 것은 아니었고 이러한 차이(差異)를 극복(克復)하려는 시도(始睹)는 오래전부터 있어왔습니다.
↑정박 중 자살 폭탄 보트의 급습으로 손상된 미 구축함 콜 하지만 이런 경우는 예외적인 사례입니다
1866년 탄생(誕生)한 어뢰(魚雷)는 이런 격차(格差)를 극복할 수 있는 대표적인 비대칭(非對稱)무기입니다.
어뢰는 흘수선(吃水線) 아래를 공격(攻擊)하는데 대단히 효과적(效果的)이고 또한 자력 주행 방식(自力走行方式)이므로 작은 함정에서도 운용(運用)이 가능(可能)합니다.
아무리 거함이라도 흘수선 아래가 손상(損傷)되면 침몰(沈沒)합니다.
즉,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납니다.
이렇게 어뢰는 체급이 큰 함정에게 치명상(致命傷)을 입힐 수 있는 좋은 수단(手段)이 되었지만 사거리(射距離)까지 다가가서 발사(發射)하기는 어려웠습니다.
↑코마급 고속정에서 발사되는 스틱스 대함미사일
그러다가 어뢰처럼 작은 함정에서도 운용이 가능한 대함(對艦)미사일이 등장하며 이런 한계(限界)를 극복했습니다.
물론 체급 차이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나 사거리와 명중률(命中率)이 향상된 덕분에 거함(巨艦)을 상대로 원거리 교전(遠距離交戰)이 가능해졌습니다.
1967년 10월 21일,
이집트의 코마(Komar)급 고속정(高速艇)에서 발사(發射)한 스틱스(Styx) 대함미사일에 의해 10배가 큰 이스라엘의 에일라트(Eilat) 구축함이 격침(擊沈)당한 사건은 그렇게 패러다임이 바뀌었음을 알린 신호탄(信號彈)이었습니다.
↑스틱스에 강타당해 불타고 있는 구축함 에일라트
이 사건은 우리 해군에게 엄청난 충격(衝擊)을 주었습니다.
당시 북괴군(北傀軍)이 소련으로부터 스틱스를 탑재(搭載)한 고속정을 도입(導入)할 예정이어서 대응 전략 도입(對應戰力導入)이 시급(時急)했습니다.
이때 눈에 들어온 것이 고속 기동(高速機動)이 가능하도록 개발된 미국의 애쉬빌급 고속정(Asheville-class gunboat)이었습니다.
미 해군에게는 연안 순찰(沿岸巡察)에 투입(投入)되는 소형 경비정(小形警備艇)에 불과했지만 이를 개조(改造)하면 코마급처럼 대함미사일을 운용(運用)할 수 있다고 판단(判斷)되었던 것입니다.
↑애쉬빌급 건보트(Asheville-class gunboat)를 기반으로 미사일고속정의 개발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를 기반(基盤)으로 탄생(誕生)한 한국 해군 최초의 고속정(高速艇)이 백구(白鴎)급입니다.
철저히 한반도 연해(韓半島沿海)에서의 작전 환경(作戰環境)에 맞춘 사양(仕樣)으로 초기형(初期形) 2척은 기술 습득(技術習得)을 위해 미국 현지에서, 후기형(後期形) 6척은 국내에서 건조(建造)가 이루어져 1975년부터 순차적(順次的)으로 취역(就役)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서방(西方)의 표준(標準)이라 할 수 있는 하푼(Harpoon)이나 엑조세(Exocet)의 배치(配置)가 이루어지기 전이어서 정작 백구급에 탑재(搭載)할 수 있는 함대함(艦隊艦) 미사일 없다는 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