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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4 : 1. 성령에 이끌리심 4 : 2. 사십 일 금식
제 4 장 : 공생애의 시작
1. 시험을 받으시다 ( 4 : 1 – 11. 막 1: 12-13. 눅 4: 1-13 )
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마 4 : 1. 성령에 이끌리심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
예수께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광야에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다.
인류 역사의 실패는 첫 사람 아담과 하와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지므로 시작되었다(창 3장). 그러므로 이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의 사역이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시작되는 것은 합당하였다.
1] 그때에(*, 토테)
문장의 서두를 이루는 말로서, 요한의 세례를 받고 성령이 예수에게 임한 후 즉시를 말한다('곧').
* 막 1: 12 -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2]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예수를 잉태케 하신(1: 20) 성령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됨을 입증한(3: 17) 후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시도록 광야로 이끄신다(막 1: 12, '몰아내신지라').
이는 외형상 성령의 강권적인 역사에 의해 예수께서 수동(passivity)적으로 인도 당한 것이지만 내면적으로는 예수께서 성령에게 자발적으로 순종하신 것을 나타낸다.
즉 성자, 성령의 유기적 연합과 협력을 통해 예수께서 하나님과 인류의 공동 대적인 마귀에게 나아가신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성자, 성령께서 마귀에게 도전했다는 뜻이 아니다.
수세(受洗)와 관유(灌油)로 성령이 충만하신 예수께서 하나님의 일을 시작하시기 전에 첫째 아담을 정복했던 사탄이 둘째 아담인 자신을 꺾어버리기 위해 도전해 온 것을 받아들이신 것이다.
이 도전을 극복함으로써 예수는 하나님과 사탄의 공인을 받으며 참 메시야로서의 공생애를 시작할 수 있었다.
3] 마귀(*, 디아볼로스)에게
이 단어는 '중상모략을 일삼는 자', '살인자'를 뜻한다. 70인 역(LXX)에서는 대적자, 저항자란 뜻의 히브리어 사탄을 번역한 말이다.
따라서 마귀를 인종 차별이나 범죄의 배후에 있는 비인격적인 '힘'으로 축소시켜서는 안 된다(Schweizer).
마귀 또는 사탄은 인간 타락의 근원으로 하나님과 그의 나라를 대적하였다. 땅 위에 어둠의 권세를 번식시키고 사람들의 파괴를 유도하는 타락한 영(靈)들의 왕이다.
* 요 8: 44 - 살인자, 거짓말쟁이, 거짓의 아비 -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 요일 5: 19 - 악한 자 - 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살전 3: 5 - 시험하는 자 -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 계 12: 10 - 참소하는 자 -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 계 20: 10 - 미혹하는 자 - 또 그들을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벧전 5: 8 - 대적 –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요 12: 31 - 이 세상 임금 -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의 임금이 쫓겨나리라.
* 엡 2: 2 - 공중권세 잡은 자 - 그 때에 너희는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4] 시험을 받으러(*, 페이라스데나이)
'페이라조'(*, '유혹하다')란 말은 인간으로 하여금 악을 행하도록 하는 사탄의 계략이다.
* 고전 7: 5 -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살전 3: 5 - 이러므로 나도 참다 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그를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이니
인간들의 인격을 성숙시키고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계기를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연단이다.
* 창 22: 1 - 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시되, 아브라함아 하시니 그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 출 20: 20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말라. 하나님이 임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하지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 요 6: 6 -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고후 13: 5 - 너희는 믿음 안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는 버림 받은 자니라.
* 계 2: 2 -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예수께서 받으신 '시험'은 전자로써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생결단의 시험이었다. 사탄은 인간을 악에 빠지도록 유혹(temptation)할 뿐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는 사악한 존재이다.
* 계 12: 10-12 – 10 내가 또 들으니 하늘에 큰 음성이 있어 이르되, 이제 우리 하나님의 구원과 능력과 나라와 또 그의 그리스도의 권세가 나타났으니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11 또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그러나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하더라.
* 창 3: 1-5 – 1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2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3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4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5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그 파괴적 실체인 사탄이 예수께 대리자를 보내지 않고 자기의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여 예수를 시험하였다.
5] 광야로 가사
성경 문학적으로 '광야'란 귀신들의 활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이다.
* 사 13: 21 - 오직 들짐승들이 거기에 엎드리고 부르짖는 짐승이 그들의 가옥에 가득하며 타조가 거기에 깃들이며 들양이 거기에서 뛸 것이요
* 사 34: 14 -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숫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에 살면서 쉬는 처소로 삼으며
* 마 12: 43 -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쉴 곳을 얻지 못하고
* 계 18: 2 - 힘찬 음성으로 외쳐 이르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이곳의 구체적인 장소에 대해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금식 처소인 시내산으로 보는 학자도 있고(Alford), 다볼산(외경, '히브리인의 복음') 이나 여리고 근처의 전설적인 시험의 장소로 보기도 한다(De Wette).
* 수 16: 1 – 요셉 자손이 제비 뽑은 것은 여리고 샘 동쪽 곧 여리고 곁 요단으로부터 광야로 들어가 여리고로부터 벧엘 산지로 올라가고
시험받은 장소가 세례받은 장소에서 멀지 않았을 것이라고 본다.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이 십자군 원정 이후 이곳 지역을 그리스도의 '40일 금식' 지역(Quarantania)으로 명명(命名)하였다고 한다.
인류 역사의 실패의 시작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짐이었다. 따라서 인류를 구원하실 메시아의 사역의 시작도 마귀의 시험을 이기심으로 합당하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이끌림을 받아 마귀의 시험을 감당하셨다. 마귀 또는 사탄은 실재(實在)한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주장하듯이 신화나 상징적 존재가 아니고 실재하는 인격적 존재이다.
그는 인류 역사의 시초에 에덴동산에서 첫 사람들을 죄를 범하도록 함으로 세상을 죄와 파멸로 이끈 장본인이다.
사탄은 오늘도 교회를 부패시키고 속화시키고 택한 백성들을 미혹하려 한다.
* 벧전 5: 8-9 – 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9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그러므로 교회와 성도들은 현재 마귀와의 영적 전쟁 속에 있다. 예수님이 시험을 당한 것처럼 성도들도 시험을 당한다.
따라서 바울 사도의 권면처럼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고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 엡 6: 10-17 – 10 끝으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11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으라. 12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13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14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15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16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17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마 4 : 2. 사십 일 금식 -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
예수께서는 40일을 밤낮 금식하신 후 주리셨는데, 그때 마귀가 그에게 와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말하였다.
1] 사십 일을 밤낮으로
'40이란 숫자는 성경 문학적으로 징벌과 고통, 인내와 완성, 인간 한계의 최대치, 하나님의 준비기간으로 이해된다.
이 숫자는 이스라엘의 역사와 관계가 깊다. 예수의 40 주야에 걸친 금식은 이스라엘의 40년 방랑과 연결되며, 모세와 엘리야의 40일 금식과도 관련된다.
* 신 8: 2 -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 출 34: 28 - 모세가 여호와와 함께 사십 일 사십 야를 거기 있으면서 떡도 먹지 아니하였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으며 여호와께서는 언약의 말씀 곧 십계명을 그 판들에 기록하셨더라.
* 왕상 19: 8 - 이에 일어나 먹고 마시고 그 음식물의 힘을 의지하여 사십 주 사십 야를 가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이르니라.
소수 비평가들은 '40'일을 신성 숫자라 하여 무한한 기간으로 해석하나(Koster, Henneberg, Nender), '밤낮'이라는 어구의 추가로 보아 문자적인 '40일'로 보아야 한다.
이스라엘과 예수는 40일 동안 굶주림으로부터 신령한 교훈을 얻었고, 광야에서 대업(大業)을 준비하기 위한 시련을 겪었다.
* 신 8: 3 -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스라엘은 애굽의 압제에서 하나님께 구원을 받은 후, 예수는 세례를 받은 후 각각 주어진 일을 준비하는 데 필요한 순종과 충성을 증명하려고 시험을 받았다.
그러나 전자는 실패하였다. 실패한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오신 예수는 완전한 승리로 40일을 마감하셨다.
한편 사탄의 시험이 40일 동안 계속된 것으로 보는 학자도 있다(Lenski, Alford). 그러나 마태복음은 금식 후에 시험을 받으신 것으로 되어있어 대부분 학자들은 이 견해를 취하고 있다.
2]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예수는 40일 밤과 낮 동안 모든 음식을 전폐하고 육체적 소욕을 철저히 제어(control)하셨다. 이 기간에 하나님과 깊은 영적 교제의 세계로 들어가셨을 것이다.
많은 학자는 예수께서 금식하는 동안에 모세와 같이 영적 무아경(a spiritual ecstasy) 속에 지냈으며, 육체적 욕구는 중지되었다고 주장한다(Alford, Robertson, Lange 등).
예수는 완전한 하나님이신 동시에 완전한 육체를 지닌 인간으로서 음식의 결핍에서 오는 식욕의 고통과 그로 인한 육체적 쇠약을 철저히 감내해야만 하셨다.
그리스도는 세상의 금식 정신과는 달리 금욕과 고행을 위해 주리실 필요가 없으셨다(M. Henry). 다만 그분은 하나님의 뜻을 만족시키시고, 당신의 공생애를 준비하는 데 필요한 순종과 충성을 증명하시려 이 육체적 극기 기간을 할애하셨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대화가 그의 양식이었다(4절). 따라서 하나님의 교제에 열중한 나머지 시장기를 잊으셨고, 하나님께서는 광야의 이스라엘에게 만나를 먹인 것과 같이 자신의 말씀으로 예수를 먹이셨다.
하지만 금식 기간이 끝난 후에는 심히 주리셨고 식욕의 고통으로 인해 그분의 육체가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던 것 같다. 간교한 사탄은 바로 이와 같은 결정적인 유혹의 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Godet).
3] 그리스도의 시험 ( 마 4: 1-2 )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신 직후 성령이 충만해 있을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다. 예수께서 마귀에게 시험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예수가 진정으로 인간이심을 나타내 준다. 이에 본문의 예수님께서 시험 받으시는 상황을 살펴봄으로 우리 생활에 시시때때로 다가오는 마귀의 시험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을 알아보자.
(1) 시험은 은혜를 받은 즉시 온다.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하늘로부터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하여 영적으로 충만한 상태였다. 뿐만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하신 것을 보면 그와 하나님과의 교제는 완전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바로 이때 그리스도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기 위해 광야로 가셨다. 이처럼 마귀는 성령을 받고 거룩한 생활을 하려는 자를 유혹한다.
그러므로 은혜를 충만히 받고 마음이 기쁨으로 넘칠 때 우리는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 12)라는 말씀을 기억하여 스스로 자고하지 않도록 삼가 조심해야 한다.
(2) 시험은 사람을 훈련 시킨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이 받은 시험이 그의 사역의 기초가 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하늘나라를 가르치고, 또한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먼저 자신을 돌아보고 그 일을 준비하기 위해 시험을 받은 것이다.
그는 본래 하나님이시지만 완전한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인간으로서 준비를 갖추어야 했다. 이처럼 우리 생활에서도 때로는 시험이 필요하다. 만일 우리의 삶에 시험을 통한 훈련이 없다면, 마치 맑은 날만 계속될 때 땅이 갈라져 메마른 사막이 되는 것처럼 우리는 무기력하고 안일하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시험이 있기에 날마다 더욱 새롭게 노력할 수 있는 생활의 근거를 맞이할 수 있다. 시험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을 만들어낸다. 곧 시험은 이 세상에서 훌륭하고 뜻있는 일을 위해 성도들을 훈련하며, 하늘나라의 백성으로서 온전하게 한다.
이렇듯 은혜를 받은 다음에는 시련이 따른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험이 우리의 삶을 위해 중요한 준비적 요소임을 알아 시험이 왔을 때 꿋꿋하게 이겨내야 한다.
(3) 시험은 알곡과 쭉정이를 갈라내는 방편이다.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성도들이라고 해서 누구나 다 구원받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알곡과 가라지가 함께 자라듯 교회 안에도 거짓 신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시험하시되 시험이나 환난을 통하여 알곡과 쭉정이를 분리하듯 거짓된 성도들로부터 신실한 성도들을 분리하기 위함이다.
모든 시험은 하나님의 주권에 속하며, 시험의 궁극적인 목적은 성도들을 온전하게 하는 데 있다. 그러므로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라고 하신 말씀(고전 10: 13)에 의지하여 모든 시험을 하나님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
(4) 예수님의 시험은 우리의 모범이다.
예수님이 행한 것을 우리도 행해야 하며, 그가 당한 고난을 우리도 당해야 한다. 예수가 성령에 이끌려 마귀의 시험을 받기 위해 유대 광야로 갔지만 하나님을 믿는 신앙으로 이기신 것처럼 우리도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항상 시험을 받지만 성령의 도우심으로 이겨야 한다.
① 예수님이 시험받으신 것은 세례를 받고 40일 동안 금식하신 후에 일어났다.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영적인 큰 축복 다음에 얼마든지 격심한 시험이 올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② 예수께 닥쳐온 세 가지 시험은 우리가 싸워야 할 시험이다.
그것은 육체적인 정욕이요, 세상의 명예와 권세이다.
③ 우리는 모든 시험을 성경 말씀으로 극복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모든 공격과 위협으로부터 지켜 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을 밝혀 주는 등불이기 때문이다.
④ 될 수 있는 한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있어야 한다.
일단 마귀의 시험에 들면 간악한 마귀의 손길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마귀는 세상의 온갖 좋은 것으로 유혹을 하며 선에 대한 인지 능력을 마비시켜 점점 더 깊숙한 수렁으로 빠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사악한 것들에게는 준엄하고 단호한 자세를 가져야 한다. 광야에서의 예수님의 승리는 성도가 당하는 모든 시험의 승리를 대표한다.
인간이 육체적으로 당하는 물질적인 시험과 신앙생활을 하면서 빠지기 쉬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는 일, 그리고 세상의 영광과 명예에 이끌려 자신을 속되게 하는 시험까지 그리스도께서 한꺼번에 감당하셨다.
그러므로 주 안에 있는 성도들은 이러한 시험이 올 때마다 '사탄아 물러가라'고 단호하게 물리치신 그리스도의 믿음을 본받아 시험에 담대히 맞서서 승리하시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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