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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출신 프리랜서 언론인이다.
연세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문화방송 공채 기자로 입사했다.
문화방송 기자로 있을 당시 탐사전문기자로 활동했고 MBC 퇴사 후 현재는 GO발뉴스라는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방송의 진행자로 활동하고 있다.
대학시절의 삶이 의외로 기자가 된 이후의 삶만큼 파란만장했다.
87년 6월 항쟁의 희생자 이한열 열사의 1년 직속후배이며 1학년 과대표여서, 이한열(당시 연세대 경영학과 2학년) 열사가 최루탄에 습격당했을때 바로 근처에서 함께 시위 중이었다고 한다.
그 사건이 나기 직전에 2학년 과대표 이한열이 1학년 과대표 이상호에게 '내일부터 일반 시민들도 많이 나올테니, 오늘까지는 우리(학생들)만으로 제대로 해 보자'고 시위에 데리고 갔다고 한다.
종로학원에서 같이 재수를 하고 연세대에 같이 입학한 강모씨에 의하면 얼떨결에 과대를 맡게 되었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라 어릴때 서예를 하면서 원래부터 예술가가 꿈이어서, 90년대 초반에 연예인이 되려고 한적도 있었다.
연예기획사 오디션도 봤다가 떨어지면서 포기했었는데, 이후 대학원에 들어가서 언론인이 되겠다고 결심하였다.
하지만 언론고시를 보는데 자꾸 떨어지고, 특정 신문사 시험에서는 초반 과정을 다 합격해서 인턴까지 하고 최종면접에 갔는데, 거기서 떨어지는 바람에 절망감과 더불어 너무 분노하는 상태까지 갔다고 한다.
그러다가 신문에서 우연히 본 것이 KBS 슈퍼탤런트 선발대회였고, 거기 나온 내용 중에 합격하면 탤런트 활동 뿐만 아니라 '토크쇼 사회자'도 시켜준다는 내용이 있어서, 그걸 보고 다시 과거의 꿈도 떠오르고 욱하는 마음에 지원했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끼가 있는게 맞았는지 1만여명의 지원자 중 최종 본선 40명까지 들었다고 한다. 당시 합숙때 연기 배우는 것도 좋고 자신과 잘 맞는다고 느끼고 주변 평가도 좋았는데, 중간에 동기들끼리 대화하면서 "내가 사실 연출을 공부하다가 배우가 되려고 마음이 바뀌어서 온 거다"고 허세를 부리자 고3이던 차태현이 연기지도를 해달라고 하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최종 수상자 6명 안에 들지 못해, 꿈이 좌절되자 더 욱해서 내 인생은 왜 감질나게 최종본선에서만 떨어지는 거야 뒷풀이에서 KBS 간부들에게 'KBS 앞으로 두고보자'고 깽판을 치고 나왔다고..
하지만 그때 생긴 연예계 인맥으로 기자가 된 이후에도 연예계 비리 관련 취재에 도움을 받아 많은 취재를 했었다고 한다.
문화방송 기자로 있을 당시 탐사전문기자로 활동했고 MBC 퇴사 후 현재는 GO발뉴스라는 탐사보도 전문 인터넷방송의 진행자로도 활동 중이다.
변희재로부터 고발당했다.
MBC로부터 고소당했다.
MBC 보도국 기자 시절에는 시사매거진 2580 등의 시사 프로그램에서 주로 활동하였으며, 연제협 MBC 출연 거부 사태 당시 취재를 맡은 것과 2002년 연예계 PR비 의혹 보도 등을 비롯하여 2000년대 초반 연예계 취재를 활발하게 벌인 적도 있다.
또한 이후 삼성 X파일 사건을 보도하였는데, 이 때문에 통신비밀보호법위반 혐의로 2006년 징역 6월에 자격정지 1년의 유죄를 선고받기도 했다.
2011년 12월의 전두환 취재로 인해 2013년 1월 MBC에서 '명예 훼손 및 품위 유지 규정 위반'을 이유로 해고되었다.
이후 MBC를 상대로 해고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하여 동년 11월 해고무효판결과 함께 사측에서 복직일까지 월 400만원을 지금하라는 판결을 받으며 승소했다. 이에 대해 MBC 사측에서는 항소를 제기했다. 그러나 워낙 이 사건의 여파 때문인지 가벼운 뇌경색 증상으로 잠시 탐사보도를 접었다.
2015년 7월 9일 대법원은 이상호 기자에게 최종 승소 판결했다.
그런데 이렇게 해고 당한 본인은 타인을 부당해고를 시켰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디어워치대표는 변희재
2015년 8월 4일 MBC는 이상호 기자에게 정직 6개월 징계처분을 내렸다.
2016년 5월 2일,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이상호 기자가 사측 인사위원회로부터 정직 6개월 징계를 받았다”고 밝혔다.
MBC는 이 기자가 정직 기간 동안 연출한 다큐멘터리 <대통령의 7시간>, 해고 기간 동안 연출한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문제삼은 것으로 알려졌다.
평소 소셜미디어 활동에서 회사의 공정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렸다는 점도 징계 사유로 들었다.
결국 진짜 MBC를 떠났다. 이상호 기자는 5월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회사에 사의를 전달했다"며 "이제 국민의 기자가 되기 위해 두려운 가운데 MBC를 떠나 광야로 나서려 한다"고 밝혔다.
사건사고
국산 방탄헬멧의 성능에 대한 의혹 제기
MBC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이란 프로그램에서 국산방탄헬멧의 성능에 대해 의혹을 제기하였다. 2004년 8월 20일 국산 방탄헬멧에 대해 방탄실험을 한 결과 성능에 문제가 있다며 군 장비 납품절차의 투명성과 파병군인 안전도 우려된다는 보도를 한 것.
하지만 국방부는 이에 반발하여 8월27일에 헬멧에 대한 실험을 별도로 실시했고, 이 결과를 토대로 YTN은 “우리 군이 개발한 신형 헬멧의 방탄성능에 문제가 있다는 일부 언론의 보도와 관련, 국방부는 방탄 성능에 문제가 없다는 반박자료를 내고 방탄 실험장면을 언론에 공개했다”고 보도했다.
그러자 이상호 기자는 '신강균의 뉴스서비스 사실은'에서 국방부가 미군에 납품하려던 불량 헬멧을 미군 헬멧인 것처럼 조작했다고 주장했는데, 이에 대해 YTN 돌발뉴스은 국방부 관계자가 "이것은 미군에 납품되는 것과는 다른 것"이라고 분명히 밝혔는데도 MBC 측이 이 말을 편집과정에서 생략해 마치미군 헬멧도 이렇게 심하게 함몰됐다고 국방부가 속인 것처럼 보도했다고 밝혔다.
그러자 이상호 기자는 당시 탄속이나 충격량 계측장치도 없는 목동 실탄 사격장에 가서 실험해보자면서 "MBC가 쏜 총알로 해야지..." 라는 말을 했고, 이때문에 밀덕들에게도 대차게 까이고 말았다.
결국 해당 프로그램은 진행자 신강균과 이상호가 건설회사로부터 핸드백 뇌물을 받은 사건[11]과 맞물리면서 스스로 종영됐는데, 이상호는 핸드백을 3일동안 들고 있다가 다시 반납했다. (이 사건이 밝혀진 것은 이상호 본인 스스로의 심경 고백을 통한 것이었다.) [12]
세월호 사고 당시 활동
2014년 청해진해운 세월호 침몰 사고 때 직접 발로 뛰며 취재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 중에는 인파 중 사복경찰을 골라내는 취재도 있었다.비공개 동영상이다
하지만, 취재 및 보도라는 기자 본연의 임무에서 벗어나서 사건 자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모양새를 보이면서 또 한 번 논란의 중심에 서고 만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균 해양경찰청 청장과 실종자 가족과의 면담 진행 중,
'사상 최대의 구조작전'이라며, 연합뉴스 홍창진 기자의#에 매우 격하게 분노하면서 "넌 내 후배였으면 죽었어. 이 XX야. 연합뉴스! 기자 이 개XX야! 니가 기자야?"라고 발언하였다.
이후 욕설은 너무했다는 지적을 수용하여 사과는 하였으나,연합뉴스 측에선 소송을 고려 중이고 이상호 기자는 추가 사과는 없으며 소송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욕설의 대상이었던 연합뉴스 기자는 이후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블로그를 통해 "여러분도 기자 시키면 저처럼 할 거잖아요"라는 해명문을 올리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후 이상호 기자의 뇌경색이 재발하였다는 것이 알려지고, 진중권을 비롯한 여러 사람들의 걱정을 사면서, 연합뉴스의 소송에 대한 비판 여론이 일었다. 결국 연합 뉴스에서내부적으로 소송을 준비한 적이 없다고 발을 빼면서 소송 문제는 일단락 되었다. 이상호 본인은 증세가 경미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다시 중계를 재개하였다.
이런 논란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속시원한 해결책도 구조 현황도 내놓지 못한 사고 수습의 직접 해당관청인 해수부 장관과 해경 청장을 상대로 끈질긴 추궁 끝에 추후 구조작업에 대해 약속을 받아내기도 하여 당시 실종자 가족들 사이에서 크게 신뢰를 얻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이 제3자로서 정상적인 취재과정이 아니라 사건 자체에 직접 개입하는 모양새로 비춰지면서, 그에 대한 비판 여론도 고개를 들게 된다.
게다가, 여기서도 욕설 논란 이외에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는데, 바로 "잠수부는 다쳐도 된다. 천추의 한이 남으면 안 된다." 라는 말을 한 것으로, 발언 당시 지지부진한 구조작업 때문에 큰 비난을 받지 않았으나, 며칠 뒤에 정말로 민간 잠수사 중에 사망자가 나오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이 발언이 도마에 오르게 된다.
다만 이 발언은 "잠수사 분들이 모두 생명 포기 각서까지 쓰고 들어가신 분들인데, 잠수사들의 수색 활동을 해경에서 방해해서는 안된다."는 뉘앙스로 확인되었다.
그리고, 그가 주장하던 다이빙 벨 투입이 아무런 성과없이 철수하게 되면서 논란을 일으키고 민간 잠수부 사망이 뒤를 잇자 진도 팽목항 취재 현장에서 실종자 가족에게 항의를 받고 쫓겨났다.
다이빙벨은 해경과 일반 민간 잠수사의 평균 30분도 되지 않는 잠수 시간에 반해 2시간 30분의 잠수 시간을 기록하였으나, 이는 사고현장인 맹골 수로에서 팽목항 쪽으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 시연한 것이다.
심지어 처음에는 팽목항 나루에서 실험하면서 마치 사고 현장에서도 투입 가능한 것처럼 선동했지만, 이를 지적당하자 유속이 느린 적당한 지점을 정해서 다이빙벨을 투입하는 영상을 촬영했다. 투입까지 3번의 시도 (이 중 한번은 장비불량)가 있었을 만큼 다이빙벨 안에서는 유속 영향을 적게 받는 것이 사실이지만 다이빙벨 설치 난이도가 높다는 점을 다소 간과한 것으로 보인다. 세월호 구조시 감압 챔버가 부족해서 구조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내용의 뉴스가 보도 되었다.
통영함에도 다이빙벨이 있으나 세월호 구조에 투입되지는 않았는데 이는 이종인 대표의 다이빙벨이 오픈된 wet bell인 반면, 통영함의 다이빙벨은 심해잠수용인 closed bell 타입인 점이 관련된 것으로 보인다.
다이빙벨 떡밥이 사그라들자 이번엔 세월호 침몰 원인이 폭침이라며 고발 방송을 올렸다.방송 내용을 요약하면 세월호출항 전부터 폭파 협박이 있었고 세월호가 침몰하자 정부에서 일부러 구조에 늑장을 부렸다는 것인데, 너무 비약이 심한 황당한 이야기라 기사화도 거의 되지 못 하고 묻혔고, 사람들의 입으로만 퍼지고 있는 실정이다. 폭침설의 근거는 일단 침몰 당시 배 안의 학생들은 가스와 계란 냄새가 난다는 발언을 하였는데 이를 바탕으로 사제 폭탄의 재료로 쓰이는 부탄가스와유황을 떠올리는 것. 구조작업을 지휘했으면서 동시에 구원파장학생 출신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었던 이용욱 전 해경 정보국장이 폭발물 전문가 출신이었다는 증언을 입수, 보도하면서 폭파 가능성에 대한 진지한 조사가 필요함을 주장하였다. 그러나 가스 냄새의 경우 조리시설에 있는 가스가 새어나온 것으로 보는 게 일반적이고, 전에 폭발물 전문가 출신이라는 점이 도대체 폭탄 테러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설명을 못 하고 있어 현재에 있어선 음모론 그 이상 그 이하도 되고 있지 못한 상태다. 폭탄 전문가들 전부 예비 폭탄마로 만들 기세 그래서인지 정부에 비판적인 언론들마저도 이런 의혹은 올리고 있지 않다.
2016년 2월 12일, 자신의 SNS에 ‘대통령의 7시간’ 영상 일부를 공개했다. ‘대통령의 7시간’은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 영화다. 이 기자는 지난해 12월 자신의 트위터 계정을 통해 “다큐 영화 ‘대통령의 7시간’을 비밀리에 취재‧제작해왔다”고 밝힌 바 있다.
영화 '다이빙 벨' 논란
독립영화 감독으로 데뷰해서 안해룡 감독과 함께 세월호 다이빙벨과 관련한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을 찍었다.
세월호를 다룬 첫번째 다큐로서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으나, 다이빙벨 투입논란을 일으켰던 이종인 알파잠수 대표는 사실 다이빙벨 투입후 희생자를 더 찾는 건 의미가 없다며 자진철수를 했던 인물이고, 다이빙벨이 성공했다는 것도 사실과 다르다는 견해가 많아서, 당시 유족들 가운데 상당수는 다이빙벨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일각에선 방영 반대에 나서기도 했다. 정치적 편향성을 가진 사람이, 그것도 해당 건과 직접 관련이 있는 인물이 만든 영화이기 때문에 매우 민감한 상황.
2014년 10월 2일 개막하는 제19회 부산국제영화제(BIFF)에 '다이빙벨'이 상영될 것으로 알려지자, 2014년 9월 24일 일반인 희생자 유족이 상영 중단을 촉구하기도 하였다.
단 1구의 주검도 수습하지 못해 유족들을 우롱하고 제품실험만 하는 데 그친 다이빙벨에 관하여 일방적인 주장만 담은 영화를 상영할 경우, 세월호침몰의 진상을 밝히는 데 오히려 도움이 안 된다는 등의 이유.
이에 '옳다꾸나'한 서병수 부산시장도 당시 부산국제영화제 주무국인 부산시 문화체육관광국에 “<다이빙벨>의 상영이 부적절하다. 상영 중단을 검토해라”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주무부서인 영상문화산업과의 간부가 이용관 집행위원장한테 전화를 걸어 상영 중단을 요청했다.
하지만 집행위원회는 곤혹스러워하면서도 <다이빙벨> 상영을 계획대로 진행하겠다는 태도를 보였다. 선정위원회를 열어 선정한 개막·폐막작 등 313편의 작품을 이미 기자회견 등을 통해 공개적으로 발표한 상태에서 갑자기 특정 작품 상영을 중단하면, 지난 18년 동안 지켜온 부산국제영화제의 전통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셈이라는 것이다.
그 외에 영화의 중립성이나 완성도 부족에도 불구하고 어쨌든 세월호를 다룬 첫번째 다큐인 이상, 그러한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 의미가 있다는 점도 함께 고려되었다.
결국 부산영화제는 서병수 시장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고 '다이빙벨'의 상영을 강행했다. 그러자 2015년 1월 감사원은 부산영화제를 감사했고, 부산시는 3개월 후 이용관 부산영화제 전 집행위원장과 전·현직 사무국장을 수천만원 규모의 횡령 및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그리고 2015년 2월 25일 열린 정기총회에서 이용관 위원장의 임기는 끝났는데, 영화계에서는 이용관 전 위원장이 "정치 보복으로 사실상 해촉된 것이나 다름없다"고 보았다.
그 후 2016년 7월 31일, 베를린 영화제에 상영하기로 되었던 '다이빙 벨'의 상영이 취소되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두고 이상호는 한국 영화계가 베를린 영화제 측에 정치적인 외압을 넣었기 때문이라는 주장을 하였고,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이사장에게 "니가 막은 거지?"라며 SNS 상에서 폭언을 퍼부었다. 그런데 원래 김동호 이사장은 정치권의 압력에 맞서 영화인들의 자유를 지키려고 싸웠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이상호의 폭언에 대해 영화계 인사들은 크게 반발하였다.
이상호가 김동호를 극딜한 근거는, 그 얼마 전 김동호 이사장이 '다이빙 벨'에 대해 "영화적으로는 완성도가 있다고 이야기 못하겠다"는 인터뷰를 했다는 데 있었다. 그런데 '다이빙 벨'의 영화적 완성도는 사실 문제가 있었던 것이고, 김동호가 그것을 이유로 '다이빙 벨'의 상영취소를 할 만한 사람도 아닌 데다, 김동호는 베를린 영화제에 상영취소를 시킬만한 권한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상호는 자기 일방적인 오해와 억측만으로 음모론을 만들어 영화계 원로 등을 비난하고 말았으니, 자기가 만든 영화 '다이빙 벨'은 전부 옳은 것이고, 여기에 동의하지 않으면 니들은 세월호 참사의 공범이며 박근혜 부역자란 식으로 몰아붙인 셈이 되고 말았다.
유사의학 옹호
또 한편으로는 김남수 등 민간요법계통의 사실상 검증되지 않은 의료행위(좋게 말하면 민간요법이고 나쁘게 말하면 돌팔이)를 마치 권력의 탄압인 양 옹호하여 문제가 되기도 했다. 특히 김남수에 대해서는 책까지 썼다. 공중파 TV 출연도 이상호 기자의 소개로 알려져 있다.
이 일로 김남수는 대중에게까지 상당한 인지도를 얻기까지 하였다. 하지만 이후 추적 60분, 그것이 알고싶다 등 탐사보도 프로그램들에서 그가 옹호했던 인물들의 진상을 파해치고 극딜하였으며 이상호 기자는 이들로부터 뒷돈 또는 향응을 제공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까지 돌고 있다.
서부전선 포격 사건 관련 SNS
과거 총풍사건을 들먹이며 아니면 말고 식으로 떠벌렸다. 여기에 낚인 네티즌들이 음모론을 제기하고 있다. 정작 지금 대통령비서실장은 최근에 역임 한거라...
다만 이 발언은 "그러므로 전쟁이 날 것이다"가 아니라, "그런 사람을 준용할 정도로 구시대적인 정부"라는 의미로, 이 발언 자체를 선동으로 몰긴 어려워 보인다.
젝스키스 관련 DSP미디어 비리 취재
2000년에 젝스키스가 해체하자 강제해체 당했다는 루머가 돌았고, 이에 팬들은 매우 격분했다. 대표적인 예가 팬들이 조영구 차를 사장 차로 오인하고 반파시킨 사건일 것이다.
이 사건은 팬클럽에서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이호연 사장이 1100만원 수리비를 전부 보상함으로써 마무리됐다.
이런 팬들의 성화는 DSP미디어의 비리를 폭로한다는 투서를 보내는데 까지 발전했고, 이를 바탕으로 이상호 기자가 MBC 시사프로 피자의 아침이라는 아침방송에서 5부에 걸쳐 방송하게 된다. 이를 계기로 이호연 사장은 경찰조사를 받았다.소속사 사장을 경찰조사까지 받게 만든 젝키 팬들의 위엄이다ㄷㄷ 당시 경찰조사를 받은 이유는 탈세를 위한 음반판매량 축소와 팬클럽비 유용이다.# 그러나 경찰조사 결과는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그 위에 쓰여진 젝키 팬의 글은 검사와 경찰 관계에 관한 기본 상식 조차 없고, 그저 음모론으로 몰고 가고 있어 신경쓸 부분이 아니라고 보인다.) 이 점에서 당시 이상호 기자 보도의 신빙성에 의심이 강하게 든다. 그 보도 내용대로 라면 처벌이 당연히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상호 기자는 후일담에서, 무혐의처분을 받았지만 탈세와 관련해선 나중에 수억원대의 추징금은 물었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2001년 7월 시사매거진 2580에서 가요계 전반의 실태를 담은 보도를 내보내게 된다.
왜곡 보도가 단적으로 드러나는 부분은 다음과 같다. 해당 방송을 보면 다음과 같이 내보내고 있다. "젝스키스 멤버 부모: 콘서트로 돈을 받은 적이 없다. 99년 11월 이후 (9개월 간) 93만 원 받았고, 그 후로 한 푼도 못 받았다."이상호 기자 홈페이지 원문
이를 근거로 젝스키스가 한달에 100만원 정도 벌었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니다.
위 내용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위 발언은 2001년 7월 시점에 한 것이 아니고, 과거 2000년도 피자의 아침 취재 당시 젝키 부모가 이런 발언을 했었다는 내용을 증거자료로 쓴 것이다. 그런데 인용하려면 제대로 인용해야지 의도적으로 "앨범판매 대금"이란 단어를 빼서 내용을 왜곡하고 있다. 저렇게 써놓으면 누가봐도 "99년 11월 이후로는 단돈 93만원만 벌었구나. 개쓰레기 소속사네"라고 생각할 것이 아닌가? 이는 사실이 아니다. 피자의 아침 원본 내용을 보면 다음과 같다. "젝스키스 멤버 부모: 일단은 콘서트로 돈을 받은적이 없다는 얘기구요. 그리고 수당식으로 앨범판매 대금은 작년 11월 이후 93만원 이후에 받지 못했다. 그리고 대만에 내다 판 CD판매대금도 한푼도 못받았다." 즉 앨범판매대금 항목에 관해서 99년 11월 이후 93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젝키의 마지막 앨범인 4집은 99년 9월 9일에 발매됐다.[15]
99년 11월 이후 상황에 대해서 훗날 밝혀진 바를 보면 다음과 같다. 2016년 무한도전에서 이재진이 말한 바에 따르면, 2000년 5월 해체 당시 멤버 부모들이 모두 소속사에 찾아와 정산을 받아갔다고 한다. 해체 몇개월 후에는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입막음 용으로 부모들에게 수천만원씩 전달되기도 했다. 99년 11월 이후 단돈 93만원을 받았다는 보도는 사실무근인 것이다. 나머지 정산에 관한 내용은 젝스키스/정산 문제 문서 참조 바람.
사실 2001년 시사매거진 2580 방송 뿐만 아니라 2000년 피자의 아침 방송에서도 왜곡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앨범판매대금"이란 주어를 빼고서 "작년 11월에 93만원 받고 그 이후로 한 푼도 못 받았다"고 방송 화면을 내보냈기 때문이다.http://imgur.com/a/1lKQ6 정상적으로 전달하려면 앨범판매대금에 관해서 그렇게 받았다고 문장을 작성해야 할 것이다. 추가로 마지막 정규 앨범이 99년 9월초에 나왔다는 점도 보도되어야 할 것이다.
이외 이상호의 저서 '이상호의 GO발 뉴스'를 보면 "젝스키스는 1년에 100만원을 벌었다."고 적혀 있다. 그러나 젝스키스/DSP 관련 루머 문서에서 보듯이 이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몇가지만 뽑아보자면, 2016년 11월 7일 SBS 꽃놀이패 방송에서 이재진은, 데뷔하고 1년도 안되서 1억5천5백만원하는 대신동 빌라를 부모님께 사드렸다고 말했다. # 이재진은 2013년 3월 여성동아 인터뷰에서는 "젝스키스 데뷔 후 몇 개월 만에 부모님께 집을 사드리고도 남을 만큼 벌었으니까요"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사드리고 남은 금액도 있을 것이다. 데뷔 1년차 이후 3장의 앨범을 더 냈으며 그 중 커플이 최고 히트를 기록했으니, 1억5천보다 훨씬 많이 벌었을 것이다. 또한 2015년 1월 27일 tvN 현장토크쇼 TAXI 방송에서 장수원은 당시 행사를 한번하면 멤버당 300만원을 받았다고 말했고, 강성훈은 당시 초상권으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밝혔다. 활동기간은 햇수로 3년 1개월, 음반활동기간으로는 2년 정도였다.
삼성 X파일 관련 폭로
2017년 1월 17일에 이상호는 본인의 기사매체인 고발뉴스에서 문재인이 2005년에 삼성 X파일 관련 특검을 반대했고 이에 관한 해명을 요구했으나 여러 차례 무시했다는 고발을 했다.
오히려 당시엔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특검을 요구했지만 문재인이 시기상조라고 이를 무마시켰다고 하고 박근혜 정부 들어서 문재인이 말하는 재벌 개혁의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영상에선 노회찬 의원의 이름까지 나오면서 본인만의 주장이 아님을 어필했다. 본인의 고발뉴스에 대해 여러가지 반박자료가 계속 나오고 있음에도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는 중이다. 이에 대한 반발로 친노, 친문성향의 고발뉴스 후원자들이 후원을 철회하고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