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시레의 유래 이야기
■ 민담1
옛날에 고시네란 노파가 있었는데, 항상 들판을 돌아다니면서 농부들로부터 음식을 얻어먹고 살았다.
그러다가 결국 굶어 죽었다. 그 이듬해부터 심한 가뭄이 들었다. 이 때문에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는 미
리 떼어 던지면서 “고시레”라고 하게 되었다. 안동지방의 이 전설은 굶어 죽은 고시네 노파를 위로하여
풍년들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음식을 떼어 준다는 것인데, 충남 당진에서 채집된 전설은 고씨네 홀아비
가 굶어죽은 사연이다.
■ 민담2
옛날 어느 두메에 고씨네라는 늙은 홀아비가 혼자 살고 있었다. 고씨네는 논밭이 얼마 되지 않는데다가
비가 조금만 내려도 수해가 나고 단 며칠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메마르는 박토여서 여간 가난하지 않았
다. 그래서 고씨네는 매일 논밭에서 자신이 심은 곡식이 어서 자라기를 기원하였다. 가뭄이 계속되던 어
느 날 애써 가꾼 곡식이 메말라 가는 것을 발견하고는 바가지에 막대기를 달아 아랫 논에서 웃 논으로
물을 퍼 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끼니를 거른 터라 지쳐서 쓰러지더니 몇 시간 후에 그만 죽고 말았다.
죽은 며칠 뒤 마을 사람들에게 발견되어 그의 논밭이 바라다 보이는 산마루 바위틈에 묻어 주었다.한편
같은 마을에 사는 전서방은 어느 날 들에 나가 일을 하다가 점심을 먹으려고 논둑에 앉아 첫 숟갈을 뜨
려는데 그 순간 눈앞에 고씨네 묘가 보였다. 전서방은 고씨네가 일평생 죽도록 일만 하다가 밥 한번 실
컷 먹어보지 못하고 죽었는데 어찌 혼자만 먹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첫술 밥을 “고씨네” 이름을 부르며
묘를 향해 던졌다. 그래서인지 농사가 다른 해보다 갑절 잘되었다. 이 사실을 전해들은 마을 사람들은,
그 후 고씨네 이름을 부른 다음에 밥이나 술을 던졌는데 그렇게 한 사람은 모두 풍년을 맞았다고 한다.
풍년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옛날에는 풍흉은 바로 빈부의 분수령이며, 풍년이 들어야 생존할 수 있
었으므로 빠짐없이 음식을 던졌는데 그것이 급기야 관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 민담3
한편 충남 아산에서 채집된 전설은 두 전설과 달리 인명이 등장하고 구체적이어서 사실감을 더해준다.
옛날에 도선이라는 풍수지리 전문가가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풍수지리 전문가인데도 오막살이에
서 매우 가난하게 살았다. 도선의 명성을 들은 왕이 어느 날 평복 차림으로 그를 찾아왔다. 오막살이를
찾은 왕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 땅에는 귀신이라는 사람이 어째 이런 곳에서 사오?” 하고 물었다. 짚신
을 삼다가 짚신을 찬 채 나온 도선이 대뜸“ 이 터가 좋은 곳이라 일국의 왕이 왕림하셨으니 이보다 더 좋
은 터가 어디 있겠소이까?” 하고 대꾸했다. 왕이 아무도 모르게 변장하고 나섰건만 도선이 알아차린 것
이었다. 도선은 이처럼 용하였다.그러나 자기 어머니의 묘 터를 정하지 못한 채 산지사방 헤매고 다녔다.
몇 달이 지난 후에 산등성이에서 마을을 내려다보던 도선은 커다란 기와집을 발견하고서, 날이 어둡기
를 기다려 숨어들었다. 대청 밑을 호미로 막 파려는 찰라 안방에서 “ 도선이 아니냐” 하는 음성이 들려왔
다. 방문도 열리지 않은 채 또다시 “네 어머니를 모실 곳은 여기가 아니다. 저 건골징계 밍계 들에 모셔라”
하는 것이었다. 놀란 도선이 그 집에서 빠져나와 곧장 들에 가보니, 묘 터가 있긴 하나 썩 좋지는 않았다.
그러나 어쩌랴. 그곳에 친산을 정했다. 그런데 밍계 들에 묘 자리를 정한 후 마을의 농사가 잘 되지 않았
다. 그래서 도선 모친 묘에 제사를 지냈는데, 제사에 참석한 집의 농사만 잘 되었다. 이런 소문을 들은 사
람들이 들에서 일할 적에 밥을 내 가면 으레 그 묘에 밥 광주리를 놓고 제사를 지냈다. 그랬더니 농사가
잘 되었다.그러나 먼 곳에서 농사 짖는 사람들은 거기까지 가져올 수 가 없어 대신 먹기 전에 그 산소 쪽
으로 밥 한술 떠 던지며 “고씨네”한 후에 먹었다. “고씨네”라고 한 것은 도선의 어머니가 고씨였기 때문
이다.
고씨네 유래를 담은 전설은 한결같이 풍년을 기원하는 약식 제사임을 밝히고 있다. 즉, 풍년이 되게 하기
위하여 신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하늘에 천신이 살며, 땅에는 지신이 머문다고 믿어
왔다. 천신과 지신은 인간의 행동을 살펴, 선인에게는 상을 주거나 돕지만, 악인에게는 벌을 내리거나 징
벌한다는 것이다. 이 외에, 농사의 풍흉은 물론이고 질병 따위도 신이 좌우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이들
신을 잘 받들어야 하며 인간은 언제 어디에서나 바른 행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신을 받드는 행위란 제
사다. 그러나 산이나 들에서 음식을 먹을 때마다 제사를 차릴 수는 없으므로 준비한 음식을 미리 조금 천
신함으로써 신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했던 듯하다. 비단 산과 들에서 준비해간 음식을 먹기 전 뿐만 아니
라 집안에서도 새로 장만한 음식, 갓 수확한 과일, 맛있는 고기나 생선을 마련했을 때 사당의 조상과 가택
신에게 먼저 올리곤 하였다. 그리고 나서야 가족들이 먹었으며 그때에도 맛있는 것, 진기한 것이 있으면
웃어른께 먼저 드렸다. 바로 이러한 관습이 산과 들에서도 재현되는 것이라고 믿어진다.
앞에서 본 전설에서 유래되었건, 조상 혹은 웃어른에게 먼저 올리는 관습의 연장이건 간에 고시레 풍속
은 한국인의 넓은 인정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음식을 혼자 먹지 않고 반드시 누구와 나누어 먹는
다는게 얼마나 훈훈한 인심인가. 바로 이 훈훈한 인정으로 인하여 한국인들은 아무리 적은 음식일지라도
숨어서 혼자 먹지 않고 나누어 먹는 버릇이 있다. 낯선 나그네가 지나치더라도 음식을 먹을 때면 으레 함
께 먹자고 청하곤 한다.(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