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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행(덕행, 오대산 북대 미륵암 주지)
1) 축생은 왜 사람에게 죽어야 하는가?
‘왜 사람으로 태어나고, 왜 축생으로 태어나는가? 축생은 왜 사람에게 죽어야 하는가?’
어렸을 때 나는 늘 이 생각 때문에 의문이 점점 커져갔고, 모든 중생, 특히 짐승들의 삶을 보면 모두 슬퍼보였다.
나는 1964년 지리산 동쪽 자락에 있는 경남 산청 시골마을에서 태어나 자랐는데, 어려서 토끼를 많이 키웠다. 시골에 지천으로 자라는 잡초나 아카시아나무 잎을 따다 주면 무럭무럭 크고 생식력도 강해 키우는 재미가 쏠쏠했다. 어느 날 농번기가 되어 품앗이 타작을 하고 있을 때였다. 타작을 하던 한 동네 어른이 우리 아버지에게 말씀하셨다.
“이렇게 대풍년이 들었는데 집에 기르는 토끼 몇 마리 잡지!”
그러자 아버지는 선선히 대답하신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 내 토끼!’ 이렇게 생각한 나는 집으로 뛰어가서 모든 토끼들을 놔주고 빨리 죽기 전에 도망가라고 했다. 그런데 어떻게 된 것인가? 도망가기는커녕 자기가 죽을 줄도 모르고 자꾸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나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가 토끼를 잡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지키고 있자 어머니는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셨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심부름을 갔다 오니, ‘아!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내 토끼들은 이미 간곳이 없었다. 그때 나의 충격과 슬픔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모든 짐승은 사람에게 죽는구나. 왜 토끼로 태어나고 돼지로 태어나는가? 사람들은 왜 짐승을 먹지?”
그 뒤부터 내 마음 속에는 늘 이런 생각이 맴돌며 나를 슬프게 했다. 그리고 내 마음속에는 항상 이런 생각이 꽉 차 있었다.
‘다음에도 꼭 사람으로 태어나야지 축생으로 태어나면 잡혀 먹힌다.’
어느 날 스님이 탁발을 오셨는데 외할머니에게 여쭈었다.
“외할머니 저 스님은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려고 스님 하는 것이죠?”
돌이켜보면 나의 첫 스승은 바로 이런 의정을 내게 한 내가 키우던 토끼였다. 그리고 최근에야 ‘내 토끼를 잡아먹자고 했던 동네 어른’이 바로 첫 스승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동안 ‘내 토끼를 잡아먹자고 했다’는 미움이 자리 잡고 있어 그 어른이 나에게 생사문제를 철저하게 고민하게 하는 화두를 준 선지식이라는 것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중학교 2학년 때 시골을 떠나 마산으로 전학을 왔다. 중학교 때부터는 사물을 보면 모든 것이 서로 다른 모습이었다. 나무도 같은 것이 하나도 없었고, 길 가다 밟는 풀들도 하나도 같은 것이 없었다. 나의 생각은 사람과 축생이라는 생각에서 온 누리의 문제로 넓어졌다. 어린 나이에 머리가 터질 것 같은 이러한 의문을 해결해 줄 도깨비 방망이를 찾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것은 바로 교회였다. 그래서 몇 년간 교회를 다니면서 하느님에게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도록 기도를 했으나 납득할만한 응답을 받지 못했다.
2) 나이 20살에 만난 『극락세계 유람기』와 아미타불
1984년 내 나이 20살이 되던 해, 나는 우연히 한 친구로부터 책 한 권을 받았다.
“전남 곡성 태안사에 기도 갔다 받아온 것인데, 아주 특별한 이야기다. 한 번 읽어봐라.”
관정 스님 지음ㆍ성호(腥晧) 정견(正見) 옮김, 극락세계 유람기, 정업선원(淨嶪禪院), 1984.
나는 책을 받자마자 단숨에 읽었다. 책의 쪽수가 많지 않았지만, 그 안에 전개되고 있는 이야기가 나를 완전히 사로잡았기 때문이다. 관정이라는 중국 스님이 하늘나라를 가서 아라한들을 만나고, 도솔천에 가서 미륵보살과 자신의 스승을 만나고, 그리고 극락을 다녀온 이야기는 당시 나의 모든 상상력을 동원해도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우주적 파노라마였다
‘그렇다. 이런 스님을 만나면 내가 지금까지 고민해오던 의문을 단박에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 꼭 이 스님을 한 번 만나 뵈어야 하겠다.’
이렇게 마음속에 다짐하고, 이때부터 나에게는 극락세계 유람기에 나오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늘 함께하였다. 관정 큰스님을 극락으로 데리고 간 관세음보살, 특히 모든 것을 주재 하시는 아미타불은 그때부터 나의 주불이 되셨고 아미타불을 흠모하여 늘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였다. 이처럼 염불을 하자 의식이 맑아졌고, 그 아미타불은 항상 나를 지켜주셨다. 어느 날 비몽사몽간에 내 몸속에 암울한 기운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하자 그 일성이 끝나기도 전에 나의 마음은 맑아지고 몸이 새털처럼 가벼워졌다. 어느 땐가는 가위가 눌려 몸이 움직이지 않아 꼼짝을 못하고 공포가 밀려올 때가 있었다.
‘아미타 부처님 저를 지켜주세요.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이렇게 외우자 내 몸은 금방 자유로워지고 편해지고 열심히 하자 ‘나무아미타불’을 염하면 아미타부처님이 내 눈앞에 현전하는 느낌을 많이 가졌다.
군복무를 마치고 나는 돈을 벌겠다고 이것저것 사업에 손을 댔다. 그러나 그런 사업은 늘 잘 되다가 어느 날 무너지고, 다시 일어났다가 다시 넘어지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그 당시 나는 마인드 콘트롤에 심취되어 있어, 꿈속에서 꿈을 꾸고 있는 나를 보는 경지까지 가 있었다. 그러자 그렇게 사업을 하며 어렵게 살아가는 나의 삶과 꿈속에 보는 나와 차이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삶은 모두 꿈속에 보는 것과 같은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렇게 살다 죽으면 다시 축생으로 태어날 수도 있고 육도를 윤회하게 된다. 그러니 살아있을 때 꿈에서 깨어나야 한다. 그래서 그 헛된 꿈에서 깨어나기 위해 출가를 발원하였다.
3) 채식과 출가
그리고 절을 다니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초파일을 만나 절에 가니 부처님 말씀을 복사해서 나누어 주었다. 나는 거기서 내가 갖고 있는 의문에 대한 한 가닥 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능가경에 나오는 육식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이었다.
“육식도 살생이다. 먹는 자가 있으니 파는 자가 있고, 파는 자가 있으니 죽이는 자가 있다. 불자들이여, 고기를 먹지 말라. 일체 중생의 고기를 먹지 말지니 고기를 먹으면 대자비의 불성종자가 끊어져서 일체 중생들이 보고는 도망을 가느니라.”
나는 이 글을 보고 생각했다.
‘그렇다. 사람이 먹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사람이 토끼를 먹지 않으면 토끼는 죽지 않는다. 결국 토끼를 먹으니까 인과법에 의해 토끼는 사람으로 태어나서 그 사람을 먹고, 사람은 토끼로 태어나서 죽는 것이 반복된다.’
그리고 그 순간 다짐했다.
“부처님 고맙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던 의문을 부처님이 일깨워 주셨습니다. 부처님께 감사드리는 의미에서 앞으로 100일 동안 절대로 고기를 먹지 않겠습니다.”
그렇게 고기를 먹지 않고 지내는 동안 동국역경원에서 나온 불교성전을 읽었는데, 거기에 ‘비둘기와 매와 왕’에 대한 부처님 본생담이 나왔다.
보리심을 일으켜서 보살행을 하며 오직 사랑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비둘기 한 마리가 황급히 그의 품속으로 날아들었습니다. 바로 그때 발톱이 날카롭고 사납게 생긴 매 한 마리가 먹이를 놓치지 않기 위하여 뒤쫓아 날아왔습니다.
"왕이시여, 그 비둘기는 나와 내 가족들의 저녁거리이니 돌려주십시오. 돌려주지 않는다면 저희 가족들은 끼니를 걸러 배고픔의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나는 모든 생명을 다 구호하겠다고 발원하였으니 비둘기는 내어줄 수가 없구나."
"그렇다면 그 모든 생명 속에 저는 들어있지 않습니까?"
"이야기를 듣고 보니 너의 딱한 사정을 잘 알겠다. 네가 무엇을 먹고 사는지 이야기해주면 그것을 구해주리라."
"예. 저는 갓 죽은 짐승의 날고기만을 먹고 삽니다."
왕은 선뜻 자신의 오른쪽 다리의 살을 베어 매에게 주었습니다. 그런데 매는 비둘기와 똑 같은 무게의 살덩어리를 요구하였습니다. 다리의 살이 모자라 다른 한 쪽 다리의 살을 더 베었으나 매가 요구하는 만큼의 무게가 되지 않았습니다. 왕은 마침내 자신의 온 몸을 저울대 위에 올려놓았다. 그때서야 왕의 온몸과 비둘기의 무게가 평형을 이루게 되었습니다.
결국 평소에 왕은 생명을 존중하고 보살행하기를 즐겨 하였으나 하찮은 비둘기와 자신을 차별하여 누구에게나 하나밖에 없는 생명의 동등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의 일부분을 떼어줌으로써 비둘기의 생명과 바꿀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좁은 소견을 크게 반성한 뒤에야 비로소 깨달음의 세계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는 자기희생을 결심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밖에 없는 생명이란 측면에서 보면 비둘기와 왕의 무게가 같듯 ‘토끼와 나의 무게도 같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 나는 앞으로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기로 결심하였다. 그렇게 해서 채식하기 시작하였고, 내 밥을 해 주시던 어머니는 따로 음식을 준비하시느라 고생이 되었으나 고기를 먹지 않고 채식만 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 주셨다.
어느 해 추석, 어머니가 추석 다례상에 올릴 고기를 몇 근 사오라고 심부름을 시켰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정육점에 갔다. 그런데 여기저기 걸려 있는 빨간 고기를 보는 순간 갑자기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피비린내가 엄습해 오면서 내 몸의 모든 세포가 솟아오르는 것 같은 충격이 왔다. 고기를 써는데 그 고기에서 흐르는 피도 내 피와 똑 같다는 것을 처음으로 느꼈다. 나는 집에 돌아와서도 마음이 안정 되지 않았고 초파일에 본 능가경의 말씀이 다시 떠올랐다. 그리고 결심하였다.
그렇게 피비린내가 싫은 것을 보면 ‘내가 이 생에 출가해서 완전히 도를 이루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저런 윤회의 전쟁에 휘말리지는 않겠구나.’라는 확신이 섰다.
이렇게 출가하겠다는 마음을 확고히 하였다. 그리고 늘 책상 앞에 붙여 두었던 말이 더욱 더 깊이 있게 다가왔다
“오늘 의미 없이 보낸 하루가 어제 먼저 죽은 사람이 그렇게 원했던 내일이었을 것이다.”
많이 봐오던 죽음 가운데 19살 때 나를 아껴주던 선배님이 나에게 써주었던 쪽지의 내용인데, 어쩐 일인지 몇 년간 이 쪽지가 나를 붙잡았다. 알 것 같으면서도 몰랐던 이 쪽지 내용이 갑자기 나의 마음을 바쁘게 하였다. 출가하기로 마음먹고 보니 사람들은 대부분 그 쪽지의 내용대로 살고 있었다. 오늘 이 시간이 중요한데 모든 사람들이 내일에 투자하느라 오늘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죽는 사람들을 보니 모두 오늘 죽지 그놈의 내일에 죽은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 나도 내일ㆍ내일하느라 시간 보내지 말고 오늘 바로 출가하는 것이다. 이렇게 나는 출가를 결정하였다.
4) 출가한 다음 해 관정 큰스님과의 첫 만남
오대산 현해(玄海) 스님을 은사로 득도하여 범어사를 비롯하여 여러 곳을 다니면서 2년 반 동안 남보다 많은 행자 생활을 하였다. 그리고 4~5년간 사미생활을 하다가 1998년 34살에 통도사 계단에서 구족계를 받았다. 그 뒤 다른 수행자들과 마찬 가지로 화두를 받아 여러 선방을 돌아아니며 참선을 하였지만 나의 마음속에는 늘 아미타불이 자리 잡고 있었다. 20살에 극락세계 유람기를 보고 아미타불을 흠모하고 염불을 하였지만 당시 승가대 총장이셨던 종범 스님의 법문을 듣고 내가 왜 아미타불을 염해야 하는 지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다.
1999년, 문경 대승사에서 하안거 기간 동안 스님들을 돕는 소임을 맡아서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그 선방에 법보시 책이 배달되었다. 나는 책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내가 옛날 읽었던 극락세계 유람기하고 똑같은 내용인데!’
책 뒤를 보니 강진 백련사 토굴에 계시는 선용 스님의 연락처가 나와 있었다. 나는 안거 해제
가 되자마자 그 길로 바로 선용 스님에게 연락하여 강진 백련사를 찾아갔다. 선용 스님의 말씀을 들어보니 선용 스님도 내가 20살 때 보았던 똑같은 책을 보고 발심하여 그 책을 복사하여 여러 선방에 법보시를 하고 계신다고 하였다. 나는 그 동안 내가 겪은 이야기를 다 한 뒤, 가능하다면 관정 스님을 한 번 꼭 뵙고 싶다고 말씀 드리고 혹시 관정 스님이 한국에 오시면 연락해 주십사하고 몇 번이고 부탁을 드렸다
다음 해인 2000년 드디어 선용 스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6월 12일 분당 약사암(藥師庵)으로 달려갔다. 약사암에는 작은 절이지만 참 많은 사람들이 와서 법회에 참석하였다. 나는 그 동안 관정 스님의 책
『극락세계 유람기』를 많이 읽어 외우다시피 하였지만 간단하게나마 관정 스님 육성으로 그 이야기를 다시 듣는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극락의 수행법인 정토선을 수행할 때 생기는 여러 가지 경계를 말씀해 주셨다. 이어서 마정수기를 하는데, 나도 태어나서 처음으로 마정수기를 받았다. 극락 가는 수기라고 하였다.
행사하기 전에 출가자들에게는 큰스님과 따로 만나는 시간이 주어졌다. 가까이 뵌 관정 큰스님은 너무 천진한 모습이라 내가 어린애처럼 그냥 큰스님에게 안기고 싶은 심정이었다. 정말 자비롭고 가깝고 편했다. 내 생전 태어나서 이런 느낌을 가진 것은 처음이었다. 어머니가 무남독녀였기 때문에 외할머니와 함께 살았고, 나는 어머니보다 외할머니가 가장 편했고 가까웠다. 그런데 관정 큰스님을 만나고 보니 관징 큰스님이 외할머니보다 더 가깝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나는 큰스님께 삼배를 드리고 그 전날 꾸었던 아주 상서로운 꿈 이야기를 말씀드렸다.
“어제 꿈을 꾸었는데 아주 높은 산에 동굴이 하나 있고 그 동굴에서 아주 맑은 샘물이 흘렀습니다.”
“그대와 나는 전생부터 인연이 많았다.”
관정 큰스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종이에 붓으로 나의 법명을 써 주셨다.
“동운종(洞雲宗) 48대 관정(寬淨)이 49대 굉행(宏行)에게 정법안장을 부촉하노라.”
굉(宏)자는 임제종(臨濟宗) 돌림자로 관정(寬淨)의 관(寬)자 아래 항렬이라고 한다. 이어서 나는 20년 만에 직접 만나 뵙는 스승님께 여쭈었다.
“큰스님 수행하러 토굴에 가도 되겠습니까?”
“토굴에서 혼자 수행해도 된다. 하루 4시간 이상은 앉지 마라. 토굴에서 혼자 공부하다 보면 온몸이 움직이는 경계를 만날 것이다. 그것은 기운이 돌며 막힌 곳을 뚫어 풀리면서 생기는 현상이니 조금도 놀라지 말고 어떤 경계가 일어나더라도 그 경계에 끌려가지 말고 오로지 ‘나무아미타불’만 꽉 붙잡고 나가야 한다.”
나는 혼자서 수행할 때 뜨거운 기운이 단전에서 형성되어 임ㆍ독맥(任督脈)을 통해 엄청난 힘으로 위로 올라갈 때 놀랐던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큰스님의 가르침 아주 실질적이고, 내 속을 빤히 들여다보며 말씀하신 것 같았다. 이처럼 아주 자상하게 수행지침을 내려주시고 마지막으로 토굴의 이름을 지어주셨다.
「연화굴(蓮花窟)」
정말 처음 만나는 제자에게 분에 넘치는 친절한 가르침을 주셨다. 이때 나는 극락세계 유람기의 두 단락이 생각났다.
① 못 한 가운데까지 가니 수많은 연꽃들이 찬란하게 피어 있고, 꽃 위에 사람이 염불을 하고 있었다. 몇몇 연꽃들은 꺾이거나 시든 것도 있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이상하다고 생각해 바로 못가로 헤엄쳐 나와 관음보살께 가르침을 청했다. 관음보살께서 대답하셨다.
“시들어 죽은 연꽃은 세상 사람들이 붇다를 처음 믿을 때 온힘을 다해 염불하면 연꽃이 연꽃 못 속에서 자라나오게 된다. 그러나 얼마 지난 뒤 마음이 변하면 염불만 그만 두는 것이 아니라 나중에는 10가지 나쁜 짓(十惡)까지 저지르게 되고, 연꽃은 꺾어져 말라죽어 버린다."
② 나는 바로 애처롭게 빌었다.
“이곳 극락세계가 너무나 좋습니다. 붇다께서 크게 사랑하고 불쌍히 여기셔 저를 돌아가지 않게 해 주십시오.”
아미따불께서 다시 말씀하셨다.
“그건 안 된다. 네가 이곳에 머무르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려는 것은 아니다. 네가 이곳에 머무르면 안 되는 것은, 네가 2겁(劫) 전에 이미 극락세계에 와서 태어났는데, 스스로 다시 인간세계로 돌아가 세상을 구하고 사람들을 제도하겠다고 발원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너는 이제 다시 돌아가서 너의 마음 속 바람을 다 이루면서 극락세계의 사정과 형편을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전달해 주고, 책을 펴내 세상 사람들을 가르쳐 일깨워야 한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틀림없이 전생에 염불을 하다가 욕망에 이끌려 염불을 중단하였기 때문에 극락의 연꽃이 시들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전생의 공덕이 조금 남아있어 다시 염불을 시작하게 되어 연꽃이 피기 시작하였고, 2겁 전에 왕생했던 관정 큰스님이 나를 극락으로 인도하시기 위해 오셨을 것이다.’
그날 저녁 보살 2명이 큰스님과 참석한 스님들을 저녁 공양에 초대하였다. 호텔처럼 아주 고급식당인데 채식식당이 아니기 때문에 반찬의 상당부분이 육류였다. 큰스님은 육류는 물론 오신채도 절대 안 드신다고 하셨는데, 어쩐 일인지 그런 식당으로 초대한 보살들에게도 아무런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참석한 다른 스님들에게도 육식을 먹지말라는 말씀도 하시지 않았다. 나는 분위기가 좀 어색하여 큰스님이 왜 ‘고기는 먹지 말라’고 말씀도 안 하시는가 하고 숨을 죽이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큰스님이 음식 들 때 받치고 먹는 빨간 냅킨으로 멋진 연꽃을 만들어 대중에게 들어보였다. 그 순간적인 큰스님의 재치에 모든 스님들이 웃었다. 그러나 나는 농담처럼 그렇게 간단히 웃음이 나오지 않았다. 그리고 내내 혼자 생각했다.
‘고기로 쌓인 성찬 앞에서 큰스님이 빨간 연꽃을 들어 보이신 것은 무슨 뜻일까?’
큰스님을 만나고 나니 내가 어느 생에서는 큰스님을 모시고 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중국을 가고 싶었다. 그래서 운동복을 맞출 때도 늘 나 혼자만 차이나 칼라를 했다. 그런데 큰스님을 만나고 난 뒤부터는 중국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전혀 나지 않았다. 내가 중국을 가고 싶었던 것은 중국이라는 나라 자체보다 관정 큰스님을 만나려는 목적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004년 10월 20일 광주 원각사에서 큰스님과
5) 관정 큰스님과의 마지막 만남과 모친의 마정수기
관정 스님과의 약속대로 토굴에도 가고 선방에도 다니면서 나름대로 열심히 수행하였다. 그리고 2004년 다시 선용 스님으로부터 10월 20일 전남 광주 원각사에서 관정 큰스님의 법회가 있다는 전갈을 받았다. 이 소식을 듣자마자 맨 먼저 어머님 생각이 났다.
나는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분은 나의 어머니다. 출가 전후를 막론하고 어머님의 실천은 늘 나를 감동시켰기 때문이다.
어느 날 집에서 어머님이 나물을 데치시는데 나는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데친 나물을 건지신 어머님은 수돗물을 틀고 찬물로 두세 번 식히시고 그 물이 미지근해 지자, 그때서야 그 물을 하수구에 버리셨다. 나는 그 뜻을 알고 있었지만 여쭈었다.
“밑에는 많은 벌레들이 기다리고 있으니 뜨거운 것을 버리면 안 되지!”
“언제부터 그렇게 하셨어요.”
“내가 뱃속에 처음으로 생명을 가졌을 때부터 내가 한 행동의 과보가 너희들에게 갈까봐서 그랬다.”
그래서 어머니는 자식을 가졌을 때는 늘 안 좋은 것을 보지 않고, 험담도 듣기 싫어하셨다고 한다.
나의 출가를 흔쾌히 허락하신 어머니를 모시고 마지막으로 철야기도를 하기 위해 남해 보리암을 갔다. 산길을 걸어서 올라가시던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오늘은 내 기도를 해야 하겠다.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나를 위한 기도를 해본 적이 없구나. 큰 바위를 보아도 그냥 간 적이 없고, 큰 나무를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않았으며, 바다를 지나도 용왕님께 자식들의 건강과 성공을 빌었다. 이제 네가 출가를 하게 되었으니 나도 한 번 나를 되돌아봐야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철야 정진을 하시던 어머님이 저녁 때 사라지시더니 새벽이 되어서야 법당에 들어오셨다.
“어머님 피곤하셔서 들어가 주무셨습니까?”
“아니다. 이 절 아래는 작은 동굴이 하나 있는데 그곳에 촛불을 켜면 좋다고 해서 갔다. 그런데 그곳에 켜져 있던 수많은 촛불들이 모두 꺼져버렸다. 그래서 모든 불을 다 다시 켜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다.”
“어두운데서 왜 그렇게 혼자 애쓰셨어요?”
“출가하는 사람이 그런 말하면 안 된다. 그 촛불 하나하나는 모두 불 켜는 사람들의 소원이 담겨져 있는데 어떻게 그냥 지나갈 수가 있겠느냐?”
출가하고 3년 만에 집을 찾아갔다. 하룻밤 자고 나니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스님!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스님에게 배를 빌려주려고 온 것 같습니다. 삶을 돌아보면 모든 것이 후회스러운데 스님이 출가한 것으로 모든 것을 보상받았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어느 경전에서 본 것 같기도 한 놀라운 말씀이기 때문이다.
“어떤 경전에서 본 말씀입니까?”
“내가 본 경전은 천수경하고 아미타경뿐인데, 어디 그런 얘기가 나옵니까? 그런 생각이 들어서 그랬습니다.”
내가 깨닫겠다는 마음을 내고 출가한 것은 나 혼자의 해탈을 위해서가 아니라 깨달음을 얻어 가깝게는 부모형제들을, 그리고 나아가 모든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서가 아닌가! 그런데 나는 아직 나 자신도 구제하지 못한 상태이니 어머님을 관정 큰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으시도록 하여 극락왕생하시도록 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언젠가 부산에서 관정 큰스님 법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님을 그곳으로 모시고 가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그 절 법회가 취소되었다고 해서 기회를 놓쳤다. 김해에서 광주는 거리가 너무 멀어 망설였지만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김해에 계시는 어머님에게 연락을 하고 아는 택시 기사에게 부탁하여 광주까지 모셔오도록 하였다. 그 기사님은 어머님을 모시고 오면서 자기 노모도 함께 모시고 왔다.
원각사 법회는 공사 중이라 마당에 법석을 만들고 진행되었는데 정말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고 불교방송국에서도 와서 모두 녹음을 하고 있었다. 선용 스님의 주선으로 나와 택시 기사, 그리고 두 노모는 길게 늘어서 줄 맨 앞에 서서 처음으로 마정수기를 받았다. 나는 이 일로 오랜만에 어머님 은혜를 만분의 하나라도 갚은 것 같아서 마음이 편안했다. 어머님은 그 뒤로 가끔 마정수기 받았던 이야기를 하시면서 좋아하셨다. 택시 기사 어머님도 늘 이 일 때문에 고마워하셨는데, 2년 전에 돌아가시면서 정말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하셨다며 기사님이 일부러 나에게 연락을 하고 감사의 뜻을 전했다.
당시 마정수기는 밤 10시까지 계속되었다. 옆에서 시봉하는 스님들도 견뎌내지 못하는데 80살이 넘으신 큰스님은 조금도 지치지 않으시고 많은 사람에게 한결같은 마음으로 수기를 내리시는 것을 보고 참으로 도력이 높으신 스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끝까지 지켜보면서 마정수기라는 것이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는 것을 믿었지만 이 법회에서 그것을 증명하는 아주 좋은 사례를 볼 수 있었다. 한참 수기를 하시던 스님이 한 나이 많은 불자의 수기를 마치고 말씀하셨다
“기다렸다가 수기를 한 번 더 받으십시오.”
그 거사는 기다렸다가 다시 수기를 받았다. 수기를 받고나자 큰스님이 또 그 나이 든 처사에게 말씀하셨다.
“수기 한 번 더 받고 가십시오."
그렇게 해서 그 노거사는 수 백 명의 불자들 가운데 유일하게 3번 마정수기를 주셨다. 행사가 끝나고 여러 스님들이 이 뜻밖의 일에 대해서 어떻게 된 까닭인지 큰스님께 여쭈었다.
“저 사람은 임종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10월 20일 광주 법회를 마치고 다음에 조치원 학림사에서 마지막 법회를 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아는 사람이 꼭 관정 큰스님으로부터 마정수기를 받고 싶어 했다. 그래서 함께 학림사로 가서 10월 23일 함께 마정수기를 받았다. 그날은 천도재가 있었다. 천도재를 마치고 공양하러 방에 들어갔을 때 나는 큰스님 옆에 앉아 있었다.
그때 큰스님이 주지 스님에게 말씀하셨다.
“천도할 때 왜 그렇게 피투성이 영가를 목욕도 시키지 않고 법당에 들어앉혔나?"
꽤 따끔하게 지적하시자 주지 스님이 참회의 말씀을 드렸다.
그러자 재주가 물었다.
“어떤 영가가 그렇게 피투성이였습니까?”
“유산을 시켰던 영가가 있지 않은가?”
나는 이 광경을 보고 정말 큰스님은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었다.
6) 큰스님의 입적과 이어받은 혜명의 실천
이것이 큰스님을 마지막 모신 것이고,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법회가 한국에서 마지막 법회였다고 한다.
그러나 나에게는 이미 큰스님이 오시던지 안 오시던지 큰 차이가 없었다. 나의 마음에는 20대에 모셨던 그 마음자리 그대로 지금까지 계속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 다음부터 나는 재정이 허락하는 대로 극락세계 유람기를 사서 내가 만나는 인연 있는 사람들에게 법보시를 하였다. 내가 20살에 받은 감동을 나만 간직할 것이 아니라 남에게도 전해야 한다는 사명감 때문이다.
큰스님과 헤어진 다음해인 2005년, 나는 오대산 중대 사자암에 머물면서 2달을 목표로 매일 적멸보궁에 올라가 염불기도를 하고 있었다.
그 때도 올라갈 때마다 극락세계 유람기를 몇 권씩 가지고 올라가서 기도 도중에 만나 법담을 나눈 불자들에게 한 권씩 보시를 하고 아울러 염불 테이프도 전했다.
이렇게 한 달쯤 기도를 하는데 어쩐 일인지 기도를 마치고 싶어 한 달이 되는 마지막날 기도 회향을 하기로 하였다. 그런데 바로 그날 어떤 보살이 서울에서 내려왔다며 말했다.
“제가 꼭 스님을 뵈어야 할 일이 있는데 어쩐 일인지 오늘 아니면 만나 뵐 수 없을 것 같아 부랴부랴 내려왔습니다.”
“무엇 때문에 꼭 만나야 하셨습니까?”
“스님으로부터 책과 염불테이프를 받아 집으로 가지고 가서 읽어보고 크게 발심하여 이 염불을 철저하게 해보기로 결심하였습니다.
그래서 특별히 남편에게 나의 계획을 말하고 딱 한 달만 나를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하고 도와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밥 먹는 것 빼놓고는 눈만 뜨면 정토선 염불을 계속했습니다. 그러자 모든 일을 남편이 돌보아주며 아이들에게도 자신의 일은 자신이 하도록 하고 집안일을 돕게 하였습니다. 나에게는 집안일은 물론 모든 바깥일도 완전히 다 놓아버리고 오직 두 번 염불하고 두 번은 주의 깊게 듣는 정토선 염불만 집중하였습니다.
그렇게 3주가 조금 지난 어느 날 테이프를 틀지 않고 내가 염불을 하지 않았는데도 배에서 염불소리가 들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일주일 전쯤인데, 일주일이 되자 그 소리가 점점 또렷해져 이제는 어느 정도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사실을 스님에게 알리고 싶은데 오늘 아니면 스님을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 달려왔습니다.”
나는 그것이 바로 관정 큰스님이 말씀하신 자성염불이라는 것을 말씀드리고 열심히 계속하시라고 격려를 해드렸다.
나는 이때 정토선 염불은 출가나 남녀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이 실행할 수 있는 아주 수승한 수행법이라는 것을 깨달았고, 한편으로는 관정 큰스님의 수행법을 펴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다는 것이 자랑스럽기도 했다.
2007년 여름 하안거는 화엄사 선방에서 나고 있었다.
어느 날 꿈에 관정 스님의 아주 환한 모습을 뵈었다.
직감적으로 관정 큰스님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여 선용 스님에게 전화를 드렸다.
선용 스님이 알아보시겠다고 하더니 얼마 뒤 큰스님이 8월 1일 입적하셨다고 하였다.
앞에서도 아미타불께서 관정 큰스님은 이미 2겁 전에 왕생하셨다가 중생을 제도하기 위해 다시 사바세계로 돌아오셨다는 것을 보았다.
이런 보살이 어찌 생사에 걸리시겠는가?
그런 면에서 큰스님의 입적은 그야말로 옷만 바꾸어 입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면서, 내 마음 속에는 몇 년 전에 친견했던 그대로 남아계셨다.
아니 내 관정 큰스님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더욱 간절해졌다.
2013년부터 나는 내가 출가했던 오대산 북대 미륵암 소임을 맡았다.
그 뒤로 매년 1,000~1,500부의 극락세계 유람경(정토선회 발행, 선용 스님 편저)을 법보시하고 있다. 처음에는 밖에 내놓았더니 꼭 필요하지 않는 사람들도 가져가서 지금은 법당 안에 놓고 꼭 필요한 사람들만 가져갈 수 있도록 하였다.
오늘도 대전에서 100명이 기도하러 왔는데 모두 한 권씩 나누어 주었다. 그런데 한 분이 10권만 더 달라고 해서 더 주었다.
나는 이렇게 나누어주면서 반드시 내가 20살에 만났던 감동과 같은 은혜를 다른 분들도 받을 것이라는 믿음과 관정 큰스님의 뜻을 내 힘닿는 대로 편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 불사는 그치지 않을 것이다.
구족계를 받은 다음해인 1998년 처음으로 제주도 남국선원 선방을 갔다. 첫날 자는 시간에 분명히 꿈이 아닌데 아침 게송소리가 뚜렷하게 들렸다.
“삼계는 두레박줄 오르고 내리는 것 같아 백천만겁 미진수를 지내도다. 이 몸 이생에 제도치 못하면 어느 생을 기다려 제도하리요.”
나는 이때 다시는 엉뚱한 길 가지 않고 바로 올곧이 수행만 하겠다는 다짐을 하였다. 나는 태어나 100일 이전을 기억할 때가 있다. 그 때는 전생의 일을 기억했는데 크면서 다 잊어버린 것 같다. 그런데 아직까지 잊지 않고 남은 기억이 있다. 곧 전생에 크게 후회하며 죽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늘 그 생각이 나면 마음이 아팠다.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내가 수행을 하다가 놓쳐 후회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그럴수록 나는 늘 이번 생에는 그런 후회를 하지 않을 것을 수없이 다짐한다. 더구나 요즘처럼 절의 소임을 맡았을 때는 그것 때문에 수행의 끈을 놓쳐버리지 않을까 하여 늘 자신을 채찍질한다.
내가 3급 승가고시를 볼 때 면접관의 물음에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 보십시오.”
“이 생에 불법을 만난 이상 앞으로 죽을 때까지 적어도 30년 이상 염불만 할 것입니다.”
그저 염불만 하면 그 결과는 아미타불께서 책임지실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글을 쓰기 며칠 전 내 생애 최고의 선지식이신 관정 큰스님으로부터 새로운 메시지가 왔다.
“수행을 할 때는 목표가 뚜렷해야 하고, 그 목표로 가는 길을 분명히 정해야 하며, 가장 효과적인 수행법을 선택해야 한다. 내가 보내는 정토와 선에서 「우주적 깨달음」이 목표가 되어야 하고, 「정토선」이라는 수행법을 택해 그 길을 따라 가야 쉽게 목표를 이룰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토선 원리」를 몇 번이고 읽어야 한다.”
비록 책을 들고 찾아온 처사의 입에서 나온 소리지만 나에게는 관정 큰스님의 정정한 목소리로 내 영혼 속에 울려 퍼졌다. 이제는 큰스님이 나에게 뚜렷한 길을 제시해 주셨다. 큰스님의 법상좌로서 부끄러움이 없는 수행을 통해 큰스님이 걸으신 길을 그대로 가려고 한다.
나무아미타불
극락 다녀온 관정스님과 극락가는 사람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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