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선화상인 번역 정원규
소위 ‘고통을 받는 것은 고통을 그치게 하는 것이며, 복을 누리는 것은 복을 없애는 것이다.(受苦是了苦, 享福是消福)’
우리 수도인은 왜 고행을 닦아야 하는가?
하루에 단지 한끼만 먹는 것은 바로 고통을 그치게 하기 위한 까닭이다.
고가 그치면 바로 즐거움이다.
복(福)에는 응당 누려야 할 복과 누리지 말아야 복이 있다.
응당 누려야 할 복은 자기가 일을 하여 소득한 대가로서 좋은 집에 거주하고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좋은 차를 타는 것 등이다.
이러한 복은 한번 누릴 수 있다.
그러나 다 누리고 난 후에는 복이 없어진다.
즉 복의 은행에 저축한 것이 없어진다는 것이다.
마땅히 누리지 말아야 할 복은 자기의 본분 외의 것을 구하여 누리려고 하는 것이다.
즉 요행으로 얻은 복을 말한다.
마치 강도가 남의 돈을 빼앗아 자기가 누리는 것은 도리에 맞지 않는 누림이며, 반드시 법률의 제재를 받게 될 것이다.
복의 은행 통장이 적자가 되는 것이다.
응당 누려야 할 복도 다 누린 후에는 복이 없어지는데, 하물며 마땅히 누리지 말아야 할 복은 억지로 누리려고 하면 복을 없앨 뿐만 아니라 적자가 나는 것이다.
그러하기 때문에 복은 다 누리면 안 되며, 다 누리고 나면 복이 없어진다.
괴로움은 다 받고 나면 괴로움이 없어진다.
우리는 사람이 되어서 이러한 도리를 명백히 이해해야 한다.
어려운 환경에서 역경을 기꺼이 받아들이면 원한이 없어지며, 또한 현실에 불만족하는 마음이 수작을 부리지 않게 된다.
불법을 연구하는 사람은 사상과 행위가 세속인과는 상반된다.
세속인은 생사에 순응하여 업을 짓지만 수도인은 생사를 거슬러 업을 없애는 것이다.
어떤 환경에서도 태연하고 마음이 편안하며, 괴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소위 ‘고통 가운데의 고통을 감수하여야 비로소 사람가운데 뛰어난 사람이다.’라는 말이 지극한 명언이다.
지금 괴로움을 감수하여 업을 소멸시키는 데 관한 이야기를 하나 하고자 하니 참고로 삼기 바란다.
명나라 맨 마지막 황제는 숭정(崇禎)황제이다.
그는 비록 황제가 될 만한 지혜는 있었지만, 황제의 복은 없었다.
왜 그런가 하면 그의 괴로움의 과보가 아직 다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전생에 절의 사미(沙彌)스님이었는데, 구족계를 받지 않았을 때 죽었기 때문에 여전히 사미였다.
그가 사미였을 때 땔나무를 하고 물을 깃는 힘든 일은 모두 그가 하였으며,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았다.
매일 힘든 일을 하면서 도량을 보호하고 유지하였다.
어느 날 그는 절 건물 지붕위에 올라가서 기와를 수리하다가 실족하여 땅에 떨어져 죽었다.
사형사제가 방장스님께 보고하였다.
노스님은 전후의 인과를 알고는 작은 사미를 성취시키고자 그를 대신하여 그의 고(苦)의 업을 그치게 해주고자 생각하였다.
그래서 대중스님들에게 선포하기를
“이 작은 사미는 일을 하면서 조심하지 않아 떨어져 죽었으며, 이 도량에 대하여 큰 손실을 끼쳤다.
그는 절에 손해를 끼친 과오를 범하였으니 그를 징벌하고자 한다.
여러분들은 말로 하여금 그의 시체를 끌게 하여 시체의 살과 뼈가 다 흩어질 때까지 할 것이다.
그러면 매장할 관을 살 필요가 없을 것이다.”
모두 방장스님의 말을 듣고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스님들은 측은한 마음을 내어 방장스님의 명령을 듣지 않았다.
왜냐하면 방장스님의 말씀대로 하는 것은 인정상 차마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함께 의논하기를 “우리는 사형사제로서 같이 이 도량에서 수행을 했는데, 그를 편안하게 매장해야 하며, 말로 하여금 그의 시체를 끌게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돈을 모아 관을 사서 산속에 매장해 주었다.
이 작은 사미는 절을 대신하여 힘든 일을 하여 공덕을 쌓았기 때문에 그 다음 생에 사람으로 태어나 황제가 되었으며, 그 분이 숭정황제이다.
그러나 단지 16년간의 가난한 황제가 되었을 뿐이다.
이분이 황제의 자리에 있을 때 천하는 크게 혼란하여 안으로는 이자성(李自成)이 반란을 일으키고, 밖으로는 청나라의 군대가 침입하여 하루도 편안한 날을 지내지 못하고 근심과 걱정 속에서 보낸 것이다.
이렇게 된 것은 전생에 좋은 마음을 낸 사형사제들이 그에게 후하게 장례를 치러 주어 그의 고(苦)의 업장이 다하지 못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이 당시 방장스님의 말씀대로 했더라면, 고의 업이 곧 다하였을 것이며, 숭정황제가 석탄산에서 나라를 위하여 자살하지도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