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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블로그에 올린 (모기가 무는것도 다 이유가 있습니다.) 글에 한 분이 이렇게 댓글을 주셨습니다.
"너무 놀랍네요.정말 진정한 자비심 이십니다.
모기 소리와 움직임,가려움을 모두 다 견디시다니....저는 진작에 모기장을 치고 잠자리 채를 구해서 밖에 방생했을거 같긴 해요..
향은 벌레가 싫어하긴 해도 해치지는 않는다 생각해서 모기가 들어오는 출입구쪽에 두면 어떨까 싶어요.
더 들어오지 못하도록요..
우연히 "오대산 노스님의 인과이야기" 책을 검색하다가 놀라운 경험담을 읽게 되었네요.감사합니다."
그 댓글을 보고 이렇게 댓글을 드렸어요.
"안녕하세요?
모기가 집에 들어온다고 모기가 무는건 아닙니다.
사람도 싫어하고 벌레도 싫어하는 모기향을 일부러 피울 필요가 없어서 22년도부터 피우지 않게 된것입니다.
모기가 무는것도 다 이유가 있으니까요.
살생의 마음이 없으면 모기가 있어도 크게 물리지 않습니다.
감사합니다."
얼마전에 수월스님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어본적이 있습니다.
수월 스님의 법문 중에서――――
도를 닦는다는 것이 무엇인고 허니, 마음을 모으는 거여. 별거 아녀. 이리 모으나 저리 모으나 무얼 혀서든지 마음만 모으면 되는 겨. 하늘 천 따 지를 하든지 하나 둘을 세든지 주문을 외든지 워쩌튼 마음만 모으면 그만인 겨.
나는 순전히 <천수대비주(千手大悲呪)>로 달통한 사람이여. 꼭 <천수대비주>가 아니더라도 ‘옴 마니 반메훔’을 혀서라도 마음을 모으기를, 워찌깨나 아무리 생각을 안 하려고 혀도 생각을 안 할 수 없을 맨큼 혀야 되는 겨.
옛 세상에는 참선을 혀서 깨친 도인이 많았는디, 요즘에는 참 드물어. 까닭이 무엇이여? 내가 그 까닭을 말할 것인 게 잘 들어 봐.
옛날 스님들은 스스로 도를 통하지 못혔으면 누가 와서 화두 참선법(話頭參禪法)을 물어도 "나는 모른다"고 끝까지 가르쳐 주들 않았어. 꼭 도를 통한 스님만이 가르쳐 주었는디, 이 도통한 스님께서 이렇게 생각하신단 말여.
"저 사람이 지난 생에 참선하던 습관이 있어서 이 생에도 저렇게 참선을 하려고 하는구나. 그러면 저 사람이 전생에 공부하던 화두는 무엇이었을까?"
도를 통했으니께 환히 다 아실 거 아니여. 혀서 "옳다. 이 화두였구나" 하고 바로 찾아 주시거든. 그러니 이 화두를 받은 사람은 지난 생부터 지가 공부하던 화두니께 잘 안 하고 배길 수가 있남.
요즘은 다 글렀어. 또 말세고 말이야! 모두가 이름과 위치에 얽매이다 보니, 누가 와서 화두를 물을 짝이면 아무렇게나 일러주고 만단 말이지. 안 일러주면 자신의 이름과 자리 값이 떨어지니께 말이여.
그래서 화두를 아홉 번 받았느니, 여덟 번 받았느니 하는디, 이래 가지고서야 워찌게 도통을 한다고 할 것인 겨!
지가 꼭 공부하던 화두를 일러 주니께 틀림없이 공부를 이루고 바로 도를 통하는 겨. 자신 만만하니께 도통하는 겨.
옛날 사람들은 화두 공부가 잘 되지 않더라도 화두를 바꾸지 않고 ‘나는 열심이 모자라니께 열심히만 정진하면 꼭 성취할 것이다.’는 한 생각으로 마음을 몰아 붙여 오로지 한길로만 애쓰다가 도를 통하기도 혔어.
그러나 요즘 사람들은 그게 아니여. 쓰잘데기 없는 몸과 마음에 끄달려, 조금 하다가 안 되면 그만 팽개치고 ‘소용없다’고 하거든. 이게 다 아상(我相)이 많아서 그런 겨.
무엇이든지 한 가지만 가지고 끝까지 공부혀야 하는디, 이것이 꼭 밥 먹기와 매한가지여. 똑같은 밥반찬이라도 어떤 사람은 배불리 맛있게 먹지만 어떤 사람은 먹기 싫고 또 어거지로 먹으면 배탈이 나는 뱁이거든.
공부도 마찬가지여. 염불을 열심히 혀야 할 사람이 딴 공부를 하니 잘 안 되는 겨. 중이 되려면 처자권속을 죄다 버려야 혀. 모두 다 버리고 뛰쳐나와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에서 열심으로 닦아야 혀.
아버질 생각한다든지 어머닐 생각한다든지 가족을 생각할 것 같으면 마음이 하나로 모아지지가 않거든. 무슨 공부든지 일념으로 해야 혀! 위찌케든 일념을 이뤄야 되지, 이 일념이 안 되면 이것저것 다 쓸데없는 겨.
그래서 옛날 도통한 도인들은 부모 형제 모두 내버리고 중이 되어 홀로 공부했던 거여. 도를 깨치지 못하면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겨.
집에 있으면서 부모님을 열심히 위하면 효도라도 되는데, 이런 효도도 못하고 집을 나와서는 도도 깨치지 못하니 두 집에 죄를 짓게 되는 거 아녀.
두 집안에 죄짓지 말고 "워쩌튼 죽어라 혀 보자" 해서 부모 형제 모두
다 버리고 이렇게 산단 말이지.
"한 집안에 천자가 네 명 나는 것보다도 도를 깨친 참 스님 한 명 나는 게 낫다." 이런 말을 옛날부터 많이 들었지. 만일 중이 되어 도를 통할 것 같으면 이 공덕으로 조상의 모든 영령들과 시방삼세의 중생들이 다 이고득락(離苦得樂) 할 것이니 이 얼마나 좋으냐 말여.
이 세상이라는 게 중이 되면, 머리가 있고 없고 글이 있고 없고가 아무짝에도 쓸 모 없는 것이여. 차라리 그런 것들은 없는 게 훨씬 나아. 참으로 사람 되기가 어렵고, 천상천하에 그 광명이 넘치는 불법 만나기가 어려운데 말이지,
사람 몸 받아 가지고도 참 나를 알지 못하고 참 나를 깨치지 못하면 이보다 더 큰 죄가 워디 있을 겨. 사람 몸 받고도 성불 못하면 이보다 더 큰 한이 워디 있을 겨.
부처님께서도 "나는 너를 못 건져 준다. 니가 니 몸 건져야 한다." 하셨어. 그러니 참 그야말로 마음 닦아가지고 니가 니 몸을 건지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 이렇게 사람 몸 받고도 공부를 이루지 못하고 그냥 죽어 봐라. 다 쓸데없다. 어느 날에 다시 이 몸을 기약할 것인가.
(사나운 만주 개 일화――――
수월 스님은 일생동안 한 번도 법상에 오른 일이 없는 것 같다.
위의 수월 스님 법문 말씀은 중국 간도에 있던 화엄사에서 몸을 다쳐 며칠 머물게 된 어느 독립군 연설 단원에게 들려 준 법문이다.
수월 스님에게서 큰 감화를 받은 이 독립군 연설단원은 그 뒤 몽고에서 스님이 되었다고 한다.
수월 스님 하면 또 만주 개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많다.
수월 스님이 그 사납기로 소문난 만주 개 무리를 만난 곳은 회막동(두만강 부근, 중국명 下甸子)에서 수분하(綏芬河)로 가는 길목에 있는 왕청(汪淸)에서 있었던 일이라고 한다.
잠이 없던 수월 스님은 밤낮없이 길을 걸었다. 그 때 만주 땅에는 마적이며 비적 떼들이 많았다고 한다.
마적들은 총과 대포로 무장하고 수백 명씩 떼 지어 다니면서 일정한 지역을 점령하여 주민들에게서 세금을 거두어들이곤 했다.
그들은 사람들을 대들보에 매달아 놓고 불침을 놓기가 일쑤였고 이불이든 살림도구든 보이는 대로 빼앗아갔다. 심지어는 입고 있는 옷까지 벗겨갔다고 한다.
이 같은 마적이나 비적들의 세력은 흉년이 들면 더욱 성행했는데, 그것은 먹고 살길이 없는 농민들이 그들의 집단으로 흘러 들어갔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을 사람들은 이런 무리들로부터 가족과 마을을 지키기 위해 밤이 되면 몸집이 크고 용맹스러운 만주 개를 마당과 거리 곳곳에 풀어놓았다.
이 개는 만주에만 있는 별난 개였는데, 지금은 종자가 끊어졌는지 찾아보기가 어렵다.
이 개들은 마을사람들은 절대로 물지 않지만 밤에 마을로 숨어들어오는 낯선 사람이 있으면 떼로 덤벼들어 여지없이 물어 죽이곤 했다고 한다.
어찌나 날쌔고 용맹스러운지 한번 물면 결코 놓아주지를 않아서 이들을 물리치려면 총으로 쏘아 죽이는 길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야밤에 떼로 몰려드는 개들을 정확하게 맞추어 잡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총을 가진 마적떼도 더러 만주개의 표적이 돼 물려 죽는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그 때 왕청 일대는 마적떼와 비적떼들이 자주 나타나던 곳이었다.
그런데다가 호랑이가 나타나 가끔 사람을 해치는 경우까지 있어서 사람들은 어지간히 바쁜 일이 아니면 밤길은 아예 나서지도 않았다.
그래서 밤에 어느 마을을 들러 지나가는 나그네는 미리 그 마을 촌장에게 이 사실을 알려 집집마다 개들을 풀어놓지 않도록 해야 했는데, 특별히 잘 아는 사이가 아니면 이런 부탁을 거절당하기가 일쑤였다.
이런 풍습을 아는지 모르는지 수월 스님은 밤낮없이 길을 걸을 뿐이었다.
낮에는 무리를 이룬 조선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밤에는 조선 사람들이 말려도 한사코 홀로 걸었다.
삶과 죽음을 던져버린 지 오래인 수월 스님에게는 두려움 같은 것은 아예 없었다.
개척 당시, 간도 땅에 자리 잡고 있던 마을들은 대개 수십 리씩 떨어져 있었다.
마적, 호랑이, 비적, 만주 개의 위험에 대한 대비는 그 무렵 간도를 여행하는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어야 할 여행 상식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미 간도에서 몇 해를 지낸 수월 스님이 이런 사실을 모를 리가 없었으리라.
때는 가을, 차고 맑은 간도의 달빛이 거침없이 걸어가는 수월 스님의 발 뿌리를 환히 밝혀주고 있었다.
수월 스님은 아무도 기다리는 이 없는 북녘의 겨울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이런 수월 스님의 발걸음이 왕청(汪淸)의 어느 마을에 들어서는 순간이었다.
거리에 나와 마을을 지키고 있던 만주 개 한 마리가 허공을 향해 길게 울부짖자 집집마다 묶여있던 개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짖어 대기 시작했다.
마을은 금세 피비린내 나는 살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긴장에 휩싸인 마을 사람들은 개의 목을 동여 맨 쇠사슬을 풀었고, 거품을 가득 문 개들은 같은 방향으로 쏜살같이 달려 나갔다.
마을 사람들은 마적들이 마을을 습격한 것이 아닐까하는 불길한 예감 속에서 숨을 죽인 채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낯선 침입자가 들어선 곳은 동구 입구 밖에서 멀지 않은 곳인지, 개들의 울음소리는 동구 밖에서 멈추었다.
마을 사람들은 마적들과 개들이 대치 상태에 들어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도 동구 밖은 조용하기만 했다.
총 소리도, 비명 소리도, 개 짖는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이를 괴이하게 여긴 마을 사람들은 손에 칼이나 몽둥이 따위를 거머쥐고 조심스럽게 한 사람씩 문 밖으로 나갔다.
마을은 서리를 안고 내리는 달빛만 교교할 뿐 어떤 이상한 기미는 찾아볼 수 없었다.
사람들은 금세 무리를 이루어 개들이 뛰어나간 동구 밖 쪽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그리고 그들은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광경을 목격하고 넋을 잃고 말았다.
동구 밖 수수밭이 있는 큰 길 가에 흰 바지저고리를 입은 한 조선 노인네가 가느다란 지팡이에 작은 몸을 기대고 서 있고, 그 앞에는 미친 듯 달려간 수십 마리의 개들이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
노인네는 별다른 표정 없이 가만히 개들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수월 스님이 움직이니 개들이 길을 터주고 조용히 배웅이나 하듯이 스님의 뒷모습을 그냥 바라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날 밤 뒤에도 만주 개들은 수월 스님을 만나면 한결같이 이런 태도로 수월 스님을 반기고 배웅하곤 했다고 한다.
하기는 수월 스님이 마지막 삶을 살다 간 화엄사 부근에서 어린 시절에 수월 스님을 눈으로 직접 본 노인들의 말을 빌리면, 수월 스님을 반기고 따르던 짐승은 비단 만주 개들뿐만 아니었다고 한다.
수월 스님이 손을 내밀면 날아가던 까치도 앞을 다투어 내려앉았고, 수월 스님이 산에 들어가면, 꿩, 노루, 토끼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맹수 가운데서도 가장 사나운 호랑이까지도 자주 스님 곁에 찾아와 마음껏 머물다 갔다고 한다.
왜, 그러한 짐승들까지 수월 스님을 반기고 좋아했던 것일까?
뒷날 (북한산 도선사) 청담(靑潭, 1902~1971) 스님은 이 점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만주 개는 셰퍼드(Shepherd)보다 더 무섭습니다.
사람을 잡아먹을 정도고, 키도 셰퍼드보다 더 큰데, 그 개한테 내가 혼이 난 적이 있습니다.
수백 리 먼 길을 가게 돼서 길을 묻고 싶어도 개가 나올까봐 일부러 다른 곳으로 피해서 산을 넘어서 다니고 그랬습니다.
수월 스님께서 계시던 절 아랫마을에는 조선 사람들이 한 칠백 호쯤, 중국 사람들이 한 삼백 호쯤 살고 있었는데, 그 사람들 말이 수월 노장님 모습이 참 기이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옷도 다 떨어져서 빨간 것, 푸른 것, 흰 것들을 아무렇게나 모아 누덕누덕 기워 입고, 짚신도 상주들 신 모양으로 볼록하고 머리에 쓴 것도 이상스럽게 걸레인지 모자인지 모를 정도인 걸 보면 그야말로 죽은 개도 기겁을 해 짖게 생겼는데, 그렇게 사나운 개들이 그 노장님 보고는 가만히 엎드려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수월 스님 보고는 무서운 개들도 짖지 않는다는 소문이 나 있다는 겁니다. 탐⋅진⋅치의 삼독심이 뿌리째 딱 떨어지면 그와 같이 호랑이와 함께 있을 수도 있고, 토끼나 노루가 그 사람 앉아 있는 곳에 뛰어 들어오고 그러는데, 삼독심이 그렇게까지 없어져야 되는 겁니다.
그 때 나는 나를 보고 자꾸 짖어대는 개를 보고 속으로 참 부끄러워 고개를 못 들었습니다.
이름 하여 장삼 입고 수도하는 중이라면서 개가 짖도록 돼있으니 이게 말이 됩니까. 다 그 해물지심(害物之心)이 남아 있어서 그렇습니다.”
‘해물지심’이란 생명을 해치는 마음, 곧 살생하는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누구든 살생하는 마음이 깨끗이 떨어져 버리면, 목숨 있는 것들이 모두 품안으로 들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고 한다. 어찌 짐승뿐이겠는가?) --출처 (아미산)
보통 사람들은 만주 개앞에 나타나면 죽은 목숨이 되는데 수십마리의 개들이 수월 스님을 보고도 무릎을 꿇고 조용히 앉아 수월스님을 바라보고있었다는 글을 그때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수월스님의 자비심에 감동되어 눈물이 났습니다.
오늘도 이 글을 읽으면서 눈물이 납니다.
관정스님이나 수월스님에 비하면 저는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15년전에 탁한 고기,생선,계란,유제품을 다 끊고 몇년이 지나서부터 모든 동물, 물고기,나는 새,벌레들까지도 다 불쌍하게 생각이 됩니다.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이생에 사람의 몸을 받지 못하고 살아가는 이들의 삶이 너무나 불쌍한데 사람이 아니라고 하여 마음대로 죽이면 안되지요.
저처럼 완전채식을 오래 하고 살생하는 마음을 버리면 누구라도 모기한테 덜 물리게 될것 같습니다.
25년 9월 6일 작성
감사합니다.
![[우수카페]귀농사모/한국귀농인협회](http://t1.daumcdn.net/cafe_image/cf_img2/img_blank2.gif)
첫댓글 모기에 덜물리게 하는것은
식생활도 중요 하것지만
유전자의 힘
저는 덜물리고 거의 흔적도
않남아요
처자식은 모기장
저는 빤스 만 ㅋ
모기한테 덜 물리면 가렵지 않고 좋지요.
댓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행복한 한주 보내세요.
나는 농로를 갈때 개구리나 기타 생물이 있으면 지나기를 기다리거나 일부러 도망가도록 하고 갑니다
벌초를 할때도 메뚜기등 곤충들이 도망 가도록 하고 뜯습니다
그건 마음이 여러서라고 생각하지만 어쩌다 예취날에 몸통이 잘린 뱀등을 보면 후회도 되고 왜 도망을 안갔냐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잘하고계십니다.
사람 목숨이 소중하면 모든 동물,미물의 목숨도 마찬가지로 귀하지요.
댓글 감사합니다.
늘 평안하시고 행복하세요 .
좋은 습관이시네요.
@봄비가 감사합니다.
평안한 하루 보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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